발밑의 혁명 - 쟁기질과 비료에 내몰린 땅속 미생물들의 반란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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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숲책 읽기 166 흙을 가꾸는 이웃님하고


《발밑의 혁명》

 데이비드 몽고메리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8.7.13.



  발밑의 혁명》(데이비드 몽고메리/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8)은 앞서 나온 《흙》이라는 책하고 짝꿍입니다. 앞서 선보인 《흙》은 여러모로 살핀 ‘흙’을 다루었다면, 《발밑의 혁명》은 이 흙을 어떻게 ‘돌보며 사랑할’ 적에 우리 삶이 새롭게 피어나는가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모두 375쪽에 이르는 도톰한 책인데, 한 줄로 갈무리한다면 ‘흙을 갉지 말고 쓰다듬으면 즐겁다’라고 할 만합니다. 씨앗이 깃들어 무럭무럭 자라날 만한 흙은 쟁기로도 어떤 쇠삽날(트랙터)로도 ‘갉’지 말라지요. ‘흙을 갉으’면 그야말로 흙이 아파하면서 고름이 맺혀 딱딱하게 바뀐다지요.


  오늘날 우리는 땅갈이를 합니다. ‘갈다’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숱한 쟁기질은 ‘갈이’라기보다 ‘갉기’이기 일쑤입니다. ‘갈다·갉다’가 어떻게 비슷하면서 다른가를 읽어야 해요. ‘흙결을 바꾸려고 갈아엎는다’면 무엇이 바뀔까요? 여태 지렁이랑 풀벌레랑 잎벌레랑 벌나비랑 새가 어우러지던 흙이 오직 사람 손길을 타는 쪽으로 바뀝니다. 집이며 터전을 빼앗긴 지렁이하고 풀벌레하고 잎벌레는 이 땅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달려들까요?


  풀죽임물을 뿌리고 비닐을 덮어버리는 땅이 되면, 이리하여 ‘갉는’ 몸짓을 되풀이하면 이 흙에서 살아가던 뭇숨결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달려들까요?


  이 별을 푸르게 돌보며 감싸는 숲은 사람 손길이 안 닿기 마련입니다. 사람 손길이 안 닿은 숲에 있는 흙은 까무잡잡합니다. 이러면서 고소하고 달근한 냄새가 퍼져요. 이와 달리 쇠삽날이 끝없이 지나가고 풀죽임물을 듬뿍 치는 땅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날 뿐 아니라 풀 한 포기조차 날 틈이 없고, 가랑비에도 흙이 쓸립니다. 가벼운 바람에도 흙먼지가 날리고요.


  일본 한자말로 ‘무경운’이나 ‘자연농’이라 합니다만, 흙한테서 얻으니 흙을 고이 쓰다듬고 사랑하면서 흙한테 고스란히 돌려주면 흙은 언제나 향긋하면서 싱그럽기 마련입니다. 해바람비를 머금은 흙은 늘 튼튼하면서 보송보송합니다.


  자꾸자꾸 생각하고 헤아릴 노릇인데, 모든 나라 어느 곳에서도 이어오는 옛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콩 석 알”을 되새기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며 어른 스스로도 곱씹어야지 싶어요. 콩 석 알을 심을 적에 사람이 석 알을 다 차지하지 않습니다. 사람 한 알, 벌레 한 알, 새 한 알입니다. 석 알 가운데 한 알만 사람 몫으로 삼으라 했어요. 벌레랑 새하고 똑같이 나누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벌레하고 새가 이 흙을 언제나 살뜰하고 찰지게 가꾸는 빛손이거든요.


  무당벌레가 날지 않고, 딱정벌레가 사랑을 속삭이지 않고, 벌나비가 찾아들지 않고, 새가 내려앉지 않고, 지렁이가 춤추지 않고, 잎벌레가 갉작거리지 않고, 사슴벌레가 문득 고개를 내밀지 않고, 사마귀가 알을 낳지 않고, 개미가 돌아다니지 않고,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는 곳이라면, 사람도 숨쉬며 살아가기 어려운 땅뙈기라는 뜻인 줄 모든 배움터에서 가르치고 모든 어버이가 마음으로 새길 적에 온누리가 아름답고 즐거이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건강한 흙은 건물 구조를 떠받치지 못한다. 땅이 단단하게 안정되어야 그 위에 건물을 올릴 수 있다 … 자연은 수백 년이 걸려야 기름진 겉흙 2.5센티미터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몇 세대 안에 겉흙을 모두 파괴하는 길을 밟아 온 것이다. (26쪽)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쓰는데도 모든 작물의 30∼40퍼센트는 해충과 질병 탓에 수확 전에 사라진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식품 가운데 4분의 1정도는 수확 후에 못쓰게 되거나 생산 단계와 소비 단계 사이에서 폐기된다. (42쪽)


오랜 기간 땅을 갈지 않은 그곳의 흙은 거무스름한 빛깔에 고슬고슬하고 지면 바로 밑은 촉촉하가. 우리가 기억하는 한 가장 건조한 해였는데도, 그가 처음 일구었던 칙칙하고 누런빛이 도는 흙을 떠올려 보면 뽐낼 만한 발전이다. (131쪽)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이들은 농부의 돈을 원합니다. 피복작물로 잡초를 관리한다는 건 농부가 화학제품을 그렇게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농부에게 돈이 더 남겠죠.” (162쪽)


사람들이 흙의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 니컬스는 “오늘날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삽입니다. 흙을 파서 흙을 들여다봐야죠.” (209쪽)


10년 전에 그는 흙 속에 가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적절한 양분을 공급하면 수확량이 늘어난다고만 배웠다. “지렁이가 잡초 씨앗을 먹고 겨울 동안 소화시켜서 우리 대신 잡초를 관리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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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숲에서 짓는 글살림 

49. 살살이꽃 곁에 바람이


  말이란 언제나 생각입니다. 생각이란 모두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늘 삶을 가꾸거나 누리는 길에 피어나는 숨결입니다. 숨결이란 노상 살아가는 하루에서 스스로 지피는 빛살입니다. 빛살이란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고 아름답게 흐르는 넋입니다. 넋은 고요하게 잠들어 꿈꾸는 씨앗이 나아가려는 길입니다. 이런 얼거리를 헤아려 본다면, 아무 말이나 안 하거나 못 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흐름을 살핀다면,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고장·고을·마을마다 다를 뿐 아니라, 집집마다 다르게 태어나서 주고받으면서 퍼지는구나 하고 알아챌 만합니다.


  길이를 따진다면 더 멀구나 싶은 길이 있을 테고, 더 높구나 싶은 멧골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더 멀리 가기에 힘든 길이 아니고, 짧게 가기에 쉬운 길이 아닙니다. 즐겁게 간다면 길이를 안 따지고 높이를 안 살펴요. 즐겁지 않기에 자꾸 길이를 따지고 높이를 돌아봅니다.


  올해에는 살살이꽃이 꽤 느즈막하게 살랑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여름부터 살살 춤추던 살살이꽃인데, 올여름은 내내 비요 먹구름에 매지구름이노라니, 여름꽃이 제대로 여물거나 피지 않았어요. 달개비꽃조차 살짝 고개를 내밀다가 큰비랑 벼락비랑 함박비에 녹아버리더군요. 이 여름꽃인 달개비꽃이 가을에 새삼스레 피고, 살살이꽃도 겨울을 앞둔 한가을이며 늦가을에 춤추는 나날입니다.


  살살이꽃이 왜 ‘살살이꽃’인지 궁금했어요. 바리데기 이야기에 나오는 ‘숨살이꽃·몸살이꽃·살살이꽃’이기도 합니다만, 어느 해에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다니다가 다리쉼을 하는데, 아이들이 살랑살랑 한들한들 슬슬 춤추는 이 들꽃 따라서 춤을 추고 놀다가 톡 꺾으며 ‘살살거린다!’ 하고 읊는 말에서 옳거니 깨달았어요.


  바람이 살살 불 적에 시원하거나 포근하면서 즐겁습니다. 살살 들려주는 말이 부드럽습니다. 살살 다가서니 조용하지요. 살살 건드리면서 북돋우고 보살펴요. ‘살살’이란 말씨란 대단하지요. 아마 우리 ‘살갗·살’도 이런 결을 담아내는 낱말이지 않을까요? 한자말 ‘피부’만 쓰다가는 ‘살갗·살’이라는 낱말에 어린 숨결이나 깊이나 너비를 조금도 못 헤아릴 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나누지도 못할 만합니다. 텃말을 쓰자는 뜻에서 ‘살갗·살’을 쓰기보다는, 이 낱말을 혀에 얹는 동안, 비슷하면서 다른 숱한 말을 엮어서 생각을 꽃피울 만해요.


  살. 살갗. 살살. 살랑이다. 살살거리다. 살짝. 살며시.

  살갑다. 살뜰하다. 알뜰살뜰. 사랑. 살림. 살다.

  살살이꽃.


  그냥 태어난 말이란 없습니다. 그냥그냥 쓰는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말은 그저 즐겁게 태어났고, 그저그저 즐거이 나누기 마련입니다. ‘ㅅ + ㅏ’라는 얼개에 ‘ㄹ’을 받침으로 달아 놓은 ‘살’ 한 마디이지만, 이 한 마디가 밑틀이 되어 숱한 낱말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 말씨를 즐겁게 썼을 테고, 곱게 가다듬었을 테며, 널리 지폈을 테지요.


  영어로는 ‘코스모스’인 들풀이자 들꽃인데요, 이웃나라에서 들어왔다는 코스모스일 텐데요, 이 들꽃이자 들풀을 마주한 이 나라 수수한 숲사람은 ‘살살이꽃’이란 이름을 이내 떠올렸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이 꽃이름 하나를 놓고서 어린이한테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줄 만할까요? 그냥그냥 ‘코스모스’를 써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바리데기 이야기하고 엮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더 기울여 우리 삶에 깃든 숱한 낱말을 구슬처럼 엮어 새롭게 이야기를 짤 만합니다.


  바람이.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바퀴로 구릅니다. 바퀴에는 바람을 담은 주머니가 깃들어요. 바람을 담은 주머니를 으레 영어로 ‘튜브’로 가리킵니다. 이 영어를 그냥 써도 나쁘지 않아요. 여기에서 생각을 새삼스레 가다듬어도 되고요.


  바람을 담은 주머니이니 ‘바람주머니’란 이름을 수수하게 붙일 만합니다. 단출하게 ‘바람이’처럼 끊어도 어울립니다. 이렇게 자전거 바퀴랑 바람이를 헤아리다가, 바람을 베푸는 여러 가지로 생각을 이을 만해요. 이를테면 ‘선풍기’하고 ‘에어컨’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놓고 그 이름대로 그냥 써도 되지요. 그리고 새롭게 이름을 붙이자고 생각을 지펴도 됩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 바퀴에 깃드는 ‘바람이’가 있다면, 시원하게 바람을 베푸는 ‘바람이’가 있을 만합니다. 따로 ‘바람날개’ 같은 이름을 지어도 됩니다. ‘바람싱싱’이라든지 ‘싱싱바람’처럼 꾸밈말을 붙여도 되겠지요.


  모든 말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짓습니다. 더 나은 말이나 덜 좋은 말이 아닌, 그때그때 쓰임새를 살펴서 짓는 말입니다. 말을 새롭게 짓는 틀거리를 어린이한테 찬찬히 들려주면서 “자, 이렇게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름은 저마다 스스로 짓는단다. 이렇게 저마다 스스로 지어서 즐겁게 쓰는 말이 ‘사투리’나 ‘고장말’이라 하지. 너희도 앞으로 너희 사투리나 고장말을 지어 보렴. 너희가 바라보는 대로, 너희가 느끼는 대로,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 너희가 살림하는 대로, 너희가 사랑하는 대로, 너희가 살아가는 대로, 이러한 숨결을 고스란히 말 한 마디에 얹어서 생각 한 자락을 지펴 보렴.” 하고 들려줄 만합니다.


  곁짐승.


  ‘곁님’이란 낱말을 처음 지어서 쓴 지 제법 됩니다. 일본말 ‘내자(內子)’를 엉성하게 옮긴 말씨가 ‘안해(아내·안사람)’입니다. ‘아내·안사람’은 무늬는 한글이지만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입니다. ‘내자(內子)’를 옮겼을 뿐이거든요. 이와 짝을 이루는 낱말은 ‘님편’이란 한자말입니다. ‘아내’도 ‘남편’도 멋없을 뿐 아니라, 꽤 낡았다고 느꼈는데, 실마리를 오래도록 못 찾다가 “곁에 있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말을 이 뜻대로 단출히 적으면 ‘곁사랑·곁사람’이요, 서로 아끼고 보살피자는 뜻으로 ‘-님’을 달아 ‘곁 + 님’ 얼개로 ‘곁님’이란 낱말을 지었습니다. ‘각시님·서방님’처럼 쓰는 말씨를 확 바꾸어 누구나 똑같이 ‘곁님’이라 하면 되겠구나 싶었지요.


  요즈음은 사람하고 같이 살기보다 짐승이나 풀꽃나무하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꾸준히 늡니다. 이때에는 으레 ‘반려동물·반려식물’처럼 일본스러운 한자말을 쓰는데요, 굳이 일본스러운 말을 따오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한테는 ‘곁’하고 ‘님’이 있는걸요. 더구나 ‘동무·벗·지기’도 있습니다.


  ‘곁짐승·곁꽃’이라 할 만합니다. ‘곁벗·곁동무’나 ‘곁지기’라 해도 어울려요. 부드럽게 ‘곁아이·곁숨결’이라 해도 좋고, ‘곁빛·곁노래·곁별’처럼 아예 새롭게 이름을 붙여서 불러도 좋습니다.


  이런 말줄기를 하나씩 살필 줄 안다면, “곁에 두면서 마음에 새기는 말”을 가리키는 한자말인 ‘좌우명·신조·경구·잠언’이나 영어 ‘모토’를 ‘곁말’로 담아낼 만합니다.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까다로울 구석이 없습니다. 생각하고 살아가며 사랑하는 살림결을 그대로 담으면 됩니다. 마음을 기울여 차근차근 엮고 다듬으면서 즐겁게 노래하면 됩니다. 서울말을 안 써도 돼요. 아니, 서울말이 푸짐하고 흐벅지도록 가꾸어 주면 됩니다. 바로 우리 사투리로, 우리가 손수 짓는 살림에 맞추어 손수 짓는 말씨로 우리말을 북돋우면 됩니다.


  우리가 펴는 아름다운 책이라면 ‘곁책’이 됩니다.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싶은 책인 ‘곁책’일 테니 얼마나 따사롭고 아늑할까요. 모든 이름은 우리가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짓기 마련이기에, 어제까지 오래도록 쓴 이름이라 해도 오늘부터 새롭게 지어서 쓰면 됩니다. 사람들 입에 꽤 익숙하게 붙은 이름이라고 해서 옛틀에 얽매인다면, 우리는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지 못합니다. 묵은 이름은 거름이 되어 새흙으로 살도록 묻으면 돼요. 어린이처럼 들꽃처럼 피어나는 사투리가 살갑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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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오늘말. 잿빛종이



모름지기 종이는 나무한테서 얻으니 나무빛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일부러 하얗게 하려고 이것저것 섞고 말아요. 흰종이여도 여러 빛깔을 넣기 좋다지만, 누런종이나 잿빛종이여도 여러 빛깔을 얼마든지 넣을 만하다고 느껴요. 종이가 나무빛을 잃으면서 우리 마음을 종이에 얹는 길도 어느새 잃어버리지 싶습니다. 책을 찍으려면 종이를 더미로 씁니다. 많이 찍는다면 두어 덩이를 쓸 테지요. 오늘은 우리 곁에 종이란 모습이지만, 아름드리로 숲을 이룬 나무이던 옛모습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어떤 숨으로 이 별에서 빛났을까요? 어떤 숨결을 이어가면서 우리 앞길에 새롭게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종이가 되어 주었을까요? 종이에 글을 담는 붓도 나무한테서 얻어요. 붓대로 바로 그 나무입니다. 나무는 우리한테 집도 주고 땔감도 되며 여러 세간까지 되어 주지요. 더없이 너그러우면서 어진 목숨인 나무이기에 사람 곁에서 곱게 다시 태어난다고 느껴요. 하늘같은 삶이랄까요. 참한 삶길이랄까요. 종이에 글을 적으면서, 책을 손에 쥐면서, 쉬엄쉬엄 생각합니다. 둘도 없이 사랑스러울 이야기를 오늘 하루 즐거이 지으면서 글 한 줄을 기쁘게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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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종이·잿빛종이·흙종이·똥종이 ← 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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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덩어리·덩이 ← 림(ream), 연(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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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숨결·목숨·삶·삶길·앞·앞길·앞날·길·가다·둘도 없다·대단하다·놀랍다·타고나다·바로 그·곱게 ← 운명(運命), 운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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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럽다·넓다·어질다·참하다·느긋하다·쉬엄쉬엄·배짱좋다·뱃심·털털하다·하늘같다 ← 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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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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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오늘말. 잔뜩



하나이면 작으나 떼를 지으면 큽니다. 혼자서는 여리나 무리를 이루면 셉니다. 이웃 한 사람이 거들어도 고맙고, 동무들이 찾아와 도와도 반갑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을 적에는 그저 씨앗 한 톨이 자라는 곳이요, 씨앗을 여러 톨 심으면 밭이 됩니다. 모으면서 달라져요. 더미를 이루니 새로워요. 잇달아 찾아드니 가득가득하고, 잔뜩 거두어 여러 사람하고 나눕니다. 힘들 적에는 대꾸 한 마디가 버겁지요. 지칠 적에도 맞대꾸를 못하기 마련입니다. 애써 갚으려 들면 오히려 벅차요. 찬찬히 이 길을 가면서 실마리를 풀다 보면, 어느새 즐겁게 나누는 곬을 찾아내리라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태어나지만, 빈몸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새롭게 짓는구나 싶어요. 헐벗었기에 나뒹굴지 않아요. 바닥나기에 얼뜨지 않아요. 스스로 꿈을 지으려는 마음이 없기에 넋이 나가기 마련이고, 우두커니 구경만 할 테지요. 스스로 하루를 생각하는 마음이 된다면 어리벙벙한 티끌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겨울빛은 새하얗습니다. 모두 잠재우고서 새삼스레 북돋우는 철빛이에요. 하얗게 비운 마음에 줄줄이 깨어날 새싹 같은 생각씨앗을 차근차근 심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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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떼거리·무리·-들·갈래·밭·-붙이·모둠·모음·모으다·모이다·우르르·줄줄이·더미·덩어리·덩이·잇달다·잔뜩·가득·이·사람 ← -군(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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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꾸·말·말씀·맞글·맞대꾸·드리다·갚다·실마리·길·곬·왜·생각·뜻·까닭·풀다·풀이·즐겁다·기쁘다·고맙다 ← 답하다(答-), 답(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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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빈손·빈몸·빈털터리·비다·나뒹굴다·헐벗다·떨어지다·바닥나다·발가벗다·넋나가다·얼나가다·얼뜨다·멍하다·붕뜨다·어리벙벙하다·하얗다·새하얗다·우두커니·하염없이·헬렐레 ← 공황, 공황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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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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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



아직 낱말책(사전)을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기 앞서인 2000년 겨울까지 ‘사전에 나온 올림말’에 꽤 시큰둥했습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이라면서 정작 우리말을 허술히 다룰 뿐 아니라 깔보는 티가 물씬 났거든요. 한문쟁이조차 안 쓰는 중국 한문에 일본 한자말을 새까맣게 억지로 실으면서 ‘한자말을 아득바득 50% 넘게 실으려고 용쓴’ 자국을 숱하게 보았거든요. 국립국어원을 비롯해 대학교수는 왜 ‘우리말꽃에 한자말을 아득바득 더 실어서 우리말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들은 여느 사람인 우리가 쉽고 맑으며 고운 말결로 생각을 새롭게 짓는 길을 알아채거나 깨달으면 ‘먹물힘(문자 기득권)’이 사그라드는 줄 일찌감치 알았거든요. 누구나 책을 읽고 누구나 글을 쓰는 때가 찾아오면 ‘먹물힘’은 쪼그라들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낱말책 하나는 무척 대수로우며, 우리나라를 뺀 온누리 모든 나라에서는 ‘나라(중앙정부)’가 말꽃짓기(사전집필)에 터럭만큼도 못 끼어들도록 막아요. 말꽃이 말꽃다울 적에는 사람들이 맑고 곱게 눈을 뜨면서 생각날개를 훨훨 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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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즈음 되자 비로소 신문이 뭔지 알았으나 뜻은 몰랐지요. “새로 듣는다”고 해서 ‘신문(新聞)’이던데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신문에 거짓글이 실리는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때에 ‘정론직필’이란 말을 들었고 ‘바른붓’이란 말도 함께 들었어요. 힘으로 눌러도 눌리지 않고, 돈으로 꾀어도 흔들리지 않는 붓이기에 바르겠지요. 거짓이 아닌 ‘참글’이요, 바람이 불어도 곧게 나아가는 ‘곧은길’입니다. 참소리, 참말, 참붓, 참길이 삶을 가꿉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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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길을 더 느끼고 싶다면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2019)를 곁에 두어 보셔요. 낱말책(사전)이 들려주는 노래를 같이 누려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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