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뒹굴며 읽는 책 13
완다 가그 글.그림, 신현림 옮김 / 다산기획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그림책

즐겁게 가꾸는 살림꽃은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완다 가그 글·그림

 신현림 옮김

 다산기획

 2008.9.30.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해 줄까?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서 들은 얘기야. (7쪽)



  우리 아버지는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었습니다만, 우리 어머니는 집살림을 살뜰히 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저를 낳은 두 어버이는 어떻게 다른 길을 가셨나 하고 돌아본다면, 우리 어머니도 처음부터 집살림이나 집안일을 고이 여미던 손길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배우고 싶었으나 가시내라서 더 배울 길이 꽉 막히고 ‘손에 물 묻히는 길’을 가셨는데, 더없이 씩씩하면서 야무진 마음결이 되어 새빛을 스스로 지으셨다고 느껴요.


  1950년대하고 1970년대는 다르고, 1990년대하고 2010년대도 다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다 다른 삶길을 얼마나 헤아릴 만할까요? 2020년대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는 가시내도 사내도 집안일을 거뜬히 해낼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함께 살림을 가꾸는 슬기롭고 상냥한 눈빛이어야 합니다. 사내라서 집안일을 안 해도 되지 않으며, 가시내이니까 집안일을 사내한테 모두 넘겨도 되지 않아요. 둘 다 집안팎에서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사랑스레 하루를 짓는 눈빛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아차! 사과주스! 주스통 마개를 잠갔나? 아냐, 잠그지 않은 것 같아. 다시 보니 아저씨는 손에 마개를 쥐고 있었어.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갔지.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단다. (24쪽)


세상에! 사과주스가 계속 쏟아져 지하실이 온통 물바다였지. 아저씨는 맥 빠진 채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야. “어이쿠, 이미 쏟아져 버렸네. 괜찮아, 괜찮아.” (25쪽)



  우리는 왜 누구나 집안일이며 집살림을 즐거우면서 거뜬히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누구나 옷을 걸치고 밥을 먹으며 집에서 자거든요. 옷을 안 걸치고 밥을 안 먹으며 집에서 안 잔다면, 옷밥집이라는 일거리하고 살림을 안 쳐다봐도 돼요. 그러나 우리가 이 몸에 옷이랑 밥이랑 집을 베풀면서 하루를 누리는 삶길이라면,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옷살림이며 밥살림이며 집살림을 차근차근 익혀서 새롭게 가다듬고 가꾸는 걸음걸이여야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삶이 되리라 봅니다.



풀밭에 넘어진 아기는 반쯤 저은 크림과 버터를 뒤집어썼단다. 아저씨는 눈은 껌벅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중얼거렸어. “어이쿠, 버터도 끝났네.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는 흠뻑 젖은 아기를 일으켜 볕이 잘 드는 곳에 앉혀 두었어. 벌써 해가 하늘 높이 떴어. 정오였어. 곧 아주머니가 점심을 먹으러 올 텐데, 아직 점심 준비도 못했지 뭐야. (35쪽)



  1935년에 “The Story of a Man Who Wanted to do Housework” 또는 “Gone is Gone”이란 이름오로 나온 그림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완다 가그/신현림 옮김, 다산기획, 2008)로 나왔는데, 거의 일흔 몇 해 만에 알려진 셈입니다. 일흔 몇 해 만에 우리말로 나온 조그마한 그림책은 오래 사랑받지 못한 채 새책집에서 사라집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런 이야기를 함께 읽거나 생각하기 어려운 터전인 탓일까요? 어린이하고 손잡으면서 살림빛을 가꾸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삶을 들려줄 만한 어른이 아직 적은 탓일까요?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에 나오는 아저씨는 ‘혼자 밖에서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했다지요. 아저씨가 보기에 아줌마는 집에서 ‘딱히 하는 일도 없어 보이고, 힘도 안 들 텐데’ 싶었다지요. 이리하여 어느 날 ‘서로 일을 바꾸어 보자’고 했다지요.


  자, 생각해 봐요. 집안일을 여태 해본 적이 없던 아저씨가 처음으로 집안일을 하겠노라 나서요. ‘사내가 힘들게 바깥에서 일하고 돌아온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아저씨는 ‘가시내는 집에서 하느작거릴 뿐, 힘들지도 않잖아? 나도 이제 좀 쉬엄쉬엄 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저씨 생각마냥 집안일이란 쉬엄쉬엄 해도 될 만한가요? 그림책 아저씨가 읊듯 집안일은 설렁설렁 해도 누구나 손쉽게 해낼 만한가요?



아주머니가 또 무엇을 보았게? 버터통은 넘어져 있고, 아기는 햇볕에 타고 있었어. 크림과 버터는 말라서 빡빡하고 끈적거렸지. (50쪽)


아주머니는 초조해졌어. 풀밭에는 강아지가 누워 있었지. 소시지를 잔뜩 먹어 배가 남산만 했어. 강아지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어. (51쪽)



  이웃나라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잡아먹던 무렵에 조선총독부에서 내놓은 배움책부터 2020년으로 넘어선 오늘날 이 나라에서 나오는 배움책까지 두루 살피면, 한때 ‘실과’란 이름으로 어린이한테도 집안일을 익히도록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만, 어느새 ‘실과’는 가뭇없이 사라졌어요. 도시락을 쌀 줄 아는 어린이가 매우 적습니다. 아마 ‘도시락’이란 이름조차 낯설 만합니다. 배움수렁(입시지옥)에 빠져든 푸름이라면 집에서 설거지나 걸레질이나 비질조차 안 시키지 않나요? 열린배움터에 들어가려고 새벽부터 밤까지 배움책을 붙드는 푸름이는 마을길을 거닐며 집하고 배움터 사이를 다니는 일도 없지 않나요?


  집안일을 모르고 자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앞으로 어떤 젊은이(대학생)가 될까요? 집살림을 어려서부터 배운 적이 없이 몸뚱이만 어른이 된 젊은내기는 짝꿍을 사귈 적에 어떤 마음이나 눈빛이나 몸짓이 될까요?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이 자라서 짝을 맺은 가시내랑 사내는, 새집에서 새로 아기를 낳아 돌보는 길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건사할까요? 나라에서 어린이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나요, 스스로 아기를 돌볼 줄 아는가요? 아기는 할머니한테 맡기고 바깥에서 돈만 벌면 되는지요, 어버이로서 두 사람이 아기가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자라는 살림빛을 펼는지요?



아저씨가 소리를 버럭 질렀어. “당신이 하는 일이라곤 꾸물거리며 집 주변을 어슬렁대는 게 전부잖아. 그런 일이 뭐가 힘들어.”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어. “그러면 내일부터 일을 바꿔 볼까요. 내가 바깥일을 할 테니, 당신은 집안일을 해 봐요. 내가 들에 나가서 풀을 자를게요. 당신은 집에서 꾸물거리며 어슬렁대 봐요. 어때요? 바꿔 볼래요?” 아저씨는 얼마든지 잘할 거 같았단다. 풀밭에서 뒹굴거리며 아기를 돌보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버터를 젓고, 소시지 몇 개 굽고 수프나 좀 끓이면 되지 뭐. 흠! 무척 간단한 일이잖아! (14∼15쪽)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를 푸름이 배움책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이 그림책을 젊은 가시버시가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이 그림책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둘러앉아서 함께 넘기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이 그림책을 나란히 소리내어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푸름이를 돌보는 어버이가 푸른 아이들하고 함께 빨래하고 밥하고 비질하고 집안을 돌보면 좋겠습니다. 젊은 가시버시가 집안일을 ‘난 이만큼 넌 저만큼’으로 뚝 가르지 말고, ‘모든 집안일을 노래하면서 함께하기’로 가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면서 하루살림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아기는 소꿉놀이로 집살림을 즐겁게 그리면서 무럭무럭 크면 좋겠습니다.



“집안일이 처음이라 좀 어려웠을 거예요. 내일은 아마도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아주머니가 말했어. “아냐, 이제 그만! 오늘로 집안일도 그만이야. 제발, 부탁이야, 여보, 사랑해. 다시 들에서 일할게. 당신 일보다 내 일이 힘들다고 다시는 투정하지 않을게.” 아저씨가 애원했어. “예, 좋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행복하게 잘 살겠죠? 영원히 말예요.” (58쪽)



  온누리 모든 어머니는 얼마나 슬기로우면서 상냥한 넋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온누리 모든 아버지는 슬기로우면서 상냥한 넋을 사랑으로 즐겁게 배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꿉니다.


  멀리 나가서 배우지 마요. 집에서 배우기로 해요. 곁에서 하루를 기쁘게 짓는 손길을 같이 익혀 봐요. 잔치밥을 차려야 하지 않아요. 사랑밥을 차리면 넉넉해요. 꽃빔을 지어야 하지 않아요. 사랑옷을 지으면 돼요. 으리으리 우람한 집을 지어야 하지 않아요. 사랑이 피어나는 보금자리이면 좋아요.


  즐겁게 가꾸는 살림꽃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집안일을 하지 않는 사람한테 나라지기를 맡기지 말아요. 집안일을 모르는 사람한테 고을지기나 벼슬자리를 맡기지 말아요. 아기 기저귀를 갈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배움터에서 배움이를 가르치지 말아야겠지요. 우리 모두 살림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로 살림순이랑 살림돌이가 되고, 살림지기가 되며, 살림님으로 어깨동무하는 앞날을 그려 봅니다.


#TheStoryofaManWhoWantedtodoHousework #GoneisGone #WandaGag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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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5.


《天相의 弦 1》

 야마모토 오사무 글·그림/천강원 옮김, 서울문화사, 2003.11.29.



그림꽃책 《머나먼 갑자원》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려고 하다가 자꾸 깜빡한다. 《도토리의 집》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나서 문득 궁금하여 야마모토 오사무 님을 찾아보니 《天相의 弦》이라는 그림꽃이 1∼3까지 우리말로 나온 줄 뒤늦게 알았다. 모두 판이 끊어졌다. 더 알아보니 일본책은 10까지 나왔네. 일본책을 누리책집에서 시켜 보는데 일본책조차 열 자락 가운데 넉 자락은 판이 끊어져서 받을 수 없단다. 일본에서 나온 연속극이 있어서 찾아보니 ‘우리말이 너무 엉성하고 어설프’다. 더구나 줄거리를 억지스럽게 바꾸었더라. 곰곰이 보면 ‘온누리에 손꼽힌 바이올린 지음이’인 진창현 님은 1999년까지 이녁 바이올린을 우리나라로 가져올 수 없었다고 한다. 웃긴 일이지. 일찌감치 이녁 이름이 널리 알려졌어도 우리나라는 1999년까지 이분을 괴롭혔더라. 일본에서는 배움책에 진창현이란 이름을 싣더라도 나라에서 보람(훈장)을 주진 않았단다. ‘재일조선인’이라서. 혼자 배워서 혼자 바이올린을 깎은 이분은 홍난파·안익태·윤이상 님도 만나면서 그분들 가락틀(악기)을 고쳐 주었다는데, 이렇게까지 이분 이야기가 파묻혀 버리기도 하네 싶어 새삼스럽다. 그러나 바보나라가 아무리 파묻더라도 이슬빛은 새벽마다 피어나기 마련.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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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4.


《SNOW》

 Uri Shulevitz 글·그림, Sunburst, 1998.



바람이 가라앉으면서 날이 폭하다. “이제 봄이야?” 하고 아이들이 묻는 말에 “네가 바람한테 물어봐.” 하고 대꾸한다. “봄인가?” 하는 아이들 말에 “한여름에도 추운 날이 있어. 한겨울에도 폭한 날이 있고.” 하고 보탠다. 다만 오늘부터 바람결이 바뀐 줄 확 느낀다. 아직 높바람이긴 하되, 높바람이 조금 누그러진다. 이 높바람은 앞으로 두 달에 걸쳐 천천히 누그러질 테고, 어느새 마파람으로 바뀌리라. 오늘이 바로 높바람이 꺾이는 하루랄까. 우리 집에는 보임틀을 안 들여놓기도 하지만, 새뜸을 끊은 지도 스무 해쯤 된다. ‘그들’이 하는 말을 따를 까닭도 들을 일도 없다. ‘우리’가 듣거나 생각할 말이란, 우리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 한 가지하고, 우리 곁에서 노래하는 풀꽃나무라고 여긴다. 날씨가 궁금하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구름을 부르면 된다. 풀꽃나무한테 다가가서 “오늘은 어떤 날씨일까?” 하고 물으면 된다. 이러면 풀꽃나무는 “네가 바라는 대로.” 하고 알려준다. 《SNOW》를 가볍게 읽었다. 조금 더 생각날개를 편다면 한결 싱그러울 테지만, 그림님은 꼭 그만큼만 날개를 펴고 싶었겠지. 아이들이 한 판만 스윽 넘기고는 다시 들추지 않는다. 그냥 알리라. 그림책은 손멋이 아닌 ‘눈뜨는 사랑’이면 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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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3.


《미스 미소우 下》

 오시키리 렌스케 글·그림/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8.6.30.



기다린다. 앓는 몸이 낫는 길을 기다리고, 바람에 얹어 띄운 글월을 받는 이웃님이 반가이 여기려나 하고 기다린다. 즐겁게 지어서 선보인 책이 물결처럼 둘레로 퍼지는가 하고 기다리고, 아이들이 오늘 하루를 스스로 일구며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다린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는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며 밥내음을 맡고, 겨우내 숨죽이는 듯하지만 어느새 잎눈이며 꽃눈을 매달고서 조금씩 봉긋거리는 나무 곁에 서서 기다린다. 오늘 익힌 살림이 몸으로 고이 스며들기를 기다리고, 내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날을 기다린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기다리면서 바라본다. 서두르거나 다그칠 수 없다. 곱게 눈을 뜨고서 기다리고, 차분히 눈을 감고서 기다린다. 《미스 미소우 下》를 읽었다. 이렇게까지 그림꽃으로 담아내는구나 싶어 놀랍고, 이만큼 사람들 가슴에 멍울이며 고름이 잔뜩 배었구나 싶어 놀라다가, 피멍울이며 피고름을 씻는 길을 제대로 들려주거나 가르치거나 나누려는 어른이나 동무나 이웃을 못 찾고 헤매기에 오늘날 이토록 어지러울 만하겠다고 느낀다. 칼을 꽂으면 이 칼은 나한테 돌아온다. 손을 내밀어 포근결을 띄우면 이 포근결은 새삼스레 바람을 타고서 우리한테 찾아온다. 언제나 이뿐이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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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2.


《내가 책이라면》

 쥬제 죠르즈 레트리아 글·안드레 레트리아 그림/임은숙 옮김, 국민서관, 2012.11.26.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길을 생각한다. 이만 한 키라면 이 키를 받아들이고, 이러한 얼굴이라면 이 얼굴을 받아들이기도 할 테지만, 곁에서 흐르는 풀내음을 받아들이고, 멀리 바깥일을 보러 다녀올 적에는 보금자리에서 피어나는 나무빛을 어디에서라도 받아들이는 길을 생각한다.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눕다 보면 갖은 꿈이 잇달아 찾아든다. 이 꿈은 누구 얘기일까? 먼나라 남들 얘기인가, 아니면 아스라히 먼 예전에 스스로 겪은 얘기인가, 아니면 또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다른 내 얘기인가? 《내가 책이라면》은 책을 둘러싼 얘기를 조금 넓거나 깊으면서 재미있게 들려주려고 했다고 느끼지만 썩 넓거나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구나 싶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책이라면 할머니도 얼마든지 하늘을 날아오르는 길을 들려줄게’라든지 ‘내가 책이라면 아이가 신나게 뛰놀며 꿈꾸는 하루를 들려줄게’라든지 ‘내가 책이라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나무랑 속삭이는 말빛을 들려줄게’라든지 ‘내가 책이라면 몸피를 개미만큼 줄여서 땅밑나라로 나들이를 가고, 몸뚱이를 빛으로 바꾸어 온별누리를 가로지르는 마실을 들려줄게’ 같은 얘기를 펴고 싶다. 나무는 왜 숲을 떠나 마을에서 사람들 곁에 머무는 종이꾸러미인 책이 되었나 하고 돌아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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