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8.


《절대미각 식탐정 15》

 테레사와 다이스케 글·그림/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9.12.25.



걸어나가서 걸어오는 하루이다. 이렇게 잔뜩 걸을 줄이야. 그렇지만 이렇게 잔뜩 걸어도 될 만큼 몸이 많이 나아졌다. 어쩌면 이 몸이 얼마나 나았는가를 느끼려고 오늘 하루 잔뜩 걸었구나 싶다. 같이 길을 누빈 작은아이는 언제나 아버지보다 앞서서 걷는다. 꼭 이슬떨이 같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시골버스에서는 꾸벅꾸벅 잠든다. 잠든 아이 고개를 살며시 받쳐 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하늘은 새파랬다. 마실을 가는 길에는 마치 파란종이에 흰얼룩 조금 남긴 듯했다. 낮부터 구름이 조금씩 드리우더니 어느새 가득 덮고, 세차게 이는 바람에 진눈깨비가 날리더니, 한밤에는 다시 걷히더라. 별빛이 초롱초롱하네. 하루 사이에 이렇게 갖은 하늘이며 날씨가 갈마든다. 《절대미각 식탐정 15》을 읽으며 생각한다. 큰아이가 열네 살을 넘어서면서 이제 ‘큰아이가 볼 수 있는 그림꽃책’을 넓혔다. 큰아이가 들여다보니 작은아이도 덩달아 들여다본다. 작은아이는 아직 낱말이나 줄거리를 다 알아채지 못한다. 큰아이도 그렇겠지. 익살스런 대목을 볼 텐데, 머잖아 그 익살말이나 익살그림 사이에 어떤 삶빛이 흐르는가를 눈여겨보면 좋겠다. 눈여겨보는 마음일 적에는 바람하고 수다를 떨고 풀꽃나무하고 이야기를 펼 테니.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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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7.


《몸의 중심》

 정세훈 글, 삶창, 2016.11.29.



누구나 목소리를 내고, 이 목소리가 고르게 퍼질 적에 온누리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새도 풀벌레도 사람도 그렇다. 뭇숨결이 저마다 다른 빛으로 노래할 적에 아름답다. 한 가지 목소리만 흐른다면 얼마나 스산하며 메마를까? 사람들이 ‘민주’라는 틀에서 ‘다수결’을 자꾸 잘못 알거나 밀어붙이는데, ‘다수결 = 옳다’가 아닐 뿐 아니라, ‘다수결 = 소수를 눌러도 된다’가 아니다. 어느 목소리가 아무리 드높더라도 ‘낮고 작은 목소리를 품고 다독이고 안으면서 함께 갈’ 적에 비로소 민주가 되고 평등이며 평화가 된다. 이를테면 ‘국회 180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똑같다. 오늘 힘으로 밀어붙이면 모레에는 거꾸로 힘으로 억눌리겠지. 마땅한 일 아닐까? 《몸의 중심》을 읽는데 꽤 버겁다. 일하는 사람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글인 줄 알지만, 조금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는 없을까? ‘노동자’란 이름이어야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집살림을 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이다. 일터를 이끌거나 꾸리는 사람도 일을 한다. 쟁기와 망치만 들어야 일꾼이 아니다. 출판사 영업부나 관리부도 일을 한다. 더구나 아이들도 심부름이란 이름으로 일을 한다. ‘일’을 좁게 바라보지 말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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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오늘말. 손바닥


처음으로 “내 손바닥에서 노는군” 하는 말을 듣던 때에는 못 알아들었어요. 내 몸뚱이가 이렇게 큰데 어떻게 네 손바닥에서 놀 수 있나 싶어 갸우뚱했습니다. ‘손바닥’을 그저 조그마한 바닥으로만 여기던 어린 날에는 못 알아들은 그 말씨를 나중에 알아차리지만, 그래도 영 아리송했어요. 머리가 굵는 길에 ‘안마당’이나 ‘앞마당’ 같은 말도 그냥 안쪽에 있거나 앞쪽에 있는 마당이 아닌, 다른 자리를 빗대는 말씨인 줄 조금씩 깨닫습니다. “우리 집”이란 말씨도 제가 어버이하고 살아가는 집일 뿐 아니라 “우리 쪽 모두”를 가리키는 자리에도 쓰는 줄 조금씩 눈을 뜹니다. 그러고 보면 ‘텃밭’이란 낱말도 그렇지요. 말 한 마디를 더 새롭게 쓰는 셈입니다. 말에 담는 뜻을 한결 넓힌다 할 만하고, 새롭게 더하거나 보태거나 붙이거나 덧대면서 말길을 가꾸는 셈이기도 합니다.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말입니다. 양념처럼 깃들다가도 사르르 녹아들어요. 더욱 맛을 내는 재미난 눈빛이요, 가만히 넣거나 곁들이면서 반짝반짝 피어나는 손길입니다. 이 손바닥에 온누리를 얹어 봅니다. 우리 앞마당에 온별을 담아 봅니다. 포근한 집인 둥지입니다.


손바닥·안마당·앞마당·우리·우리 집·우리 쪽·이곳·집·둥지·보금자리·바탕자리·바탕터·바탕집·텃밭·텃자리 ← 홈(home), 홈그라운드, 홈구장


곁들이다·곁들이·곱·곱하다·더·더더·더욱·맛내기·양념·깃들다·녹아들다·녹이다·넣다·담다·담아내다·채우다·섞다·더하다·보태다·붙이다·덧대다·덧붙이·덧바르다·덧입히다·덧붙다·어우러지다·어울리다·얼크러지다·하나되다 ← 가미(加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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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오늘말. 뜻


우리 하루는 아침으로 열고 저녁으로 닫습니다. 아침마다 큰뜻을 품고 일어나는 분이 있고, 크지는 않더라도 오늘 할 일을 생각한다든지, 오늘 꼭 하고픈 일거리를 살핀다든지, 조그마한 몫을 헤아리는 분이 있어요. 반드시 하고 싶은, 어김없이 해냐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세워도 좋습니다. 조용히 들길을 거닐면서 바람을 쐬겠노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함께하는 일도 좋고, 다같이 나서는 일거리도 좋아요. 마당에 가만히 서서 햇볕만 쬐도 좋고,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에 나들이를 다녀와도 좋습니다. 봄이기에 봄바람을 쐴 만하고, 가을이기에 가을바람을 마실 만해요. 바삐 움직이기보다는, 어린이하고 놀이하는 마음으로 느긋이 일해 볼까요. 서둘러 뛰어다니기보다는 가볍게 땀을 뺄 만큼 달리면서, 우리 몸짓이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듯 가누면 좋겠어요. 스스로 몰아치다 보면 자칫 싸움이 되어요. 너무 애쓰다가는 그만 놀이하고 동떨어지면서 벅차기도 해요. 차근차근 땀을 흘립니다. 서로 손을 잡고서 땀방울을 쏟습니다. 부드러이 흐르는 구름처럼 너랑 나랑 더불어 하루를 아름다이 누리는 길을 찾습니다. 저 별빛이 우리를 상냥하게 부릅니다.


ㅅㄴㄹ


뜻·큰뜻·길·다짐·몫·한몫·할거리·할 일·생각·일·일거리·일몫·꼭·반드시·어김없이·해야 하다·부름 ← 사명(使命), 소명(召命), 소명의식


일·일거리·널리·두루·마당·판·물결·바람·너울·바다·같이하다·함께하다·다같이·다함께·더불어 ← 캠페인


움직이다·놀다·일하다·뛰다·뛰어다니다·달리다·몸짓·땀·땀방울·땀빼다·땀흘리다·하다·쓰다·흐르다·길·싸우다·애쓰다·힘쓰다·물결·너울·바다·바람 ←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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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1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이붕언 엮음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3.5.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이붕언/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은 ‘일본에서 나고자란 한겨레’인 이붕언 님이 ‘일본에서 일하고 살아온 한겨레’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은 자취를 갈무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일본에서 일하며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붙잡히거나 끌려가야 한 분이 있고, 이 나라에서는 입에 풀바를 길이 없어 떠나야 한 분이 있고, 시달리고 들볶이는 살림이 벅차 건너간 분이 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다면 누구나 곱게 품습니다. 나라가 사랑스럽다면 누구나 반가이 안습니다. 마을이 아름답지 않기에 한켠에서 울며 괴로운 사람이 있고, 나라가 사랑스럽지 않아 한쪽에서 멍들며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총칼을 벼린다고 할 적에는, 이 총칼로 으레 옆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총칼이란 옆사람을 이웃 아닌 밉놈으로 삼아 짓밟고 죽이려고 하는 싸움연모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총칼로만 이웃을 짓누르거나 죽이지 않아요. ‘개밥도토리’란 말이 있듯 우리 겨레도 스스로 옆사람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따순 마음이 아닌, 높낮이(신분·계급·돈·이름·힘)로 가르는 틀을 두었으니, 때리는 쪽하고 맞는 쪽이 있기 마련입니다.


  옆에 있대서 이웃이 되지 않습니다. 담 하나를 마주하는 사이라서 이웃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나라하고 더없이 가까운 사이가 될 만하기에, 우리한테 넉넉한 살림을 나누어 주고, 우리한테 없는 살림을 나누어 받으면 서로 좋겠지요. 나라지기라면 나라하고 나라가 사이좋도록, 고을지기라면 고을하고 고을이 사이좋도록, 마을지기라면 집집이 사이좋도록, 슬기롭게 이끌 노릇입니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이웃나라에서 일거리를 찾아서 살림을 짓고 살아가기에 ‘재일조선인’이라면, 이 나라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재한조선인’일까요?


  서로 아끼는 가까운 사이는 ‘동무’입니다. 동글동글 어우러지고, 동글동글한 마음이에요. ‘동포(同胞)’란 한자말은 “1.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2.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만, 글쎄요, 참말로 따스하게 한겨레를 일컬으려고 이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은 터럭만큼도 안 듭니다. ‘우리하고 다르잖아?’ 하는 뜻으로 금을 그으려고 이 이름을 쓴다고 느껴요. ‘한배를 타는’ 사이라면, 한살림을 꾸리는 동무가 되자면, 한사랑으로 나아갈 이웃으로 살자면, 가장 수수한 이름인 ‘이웃·동무·마을’으로 돌아가서 바라보고 어깨를 겯어야지 싶습니다. 이제는 눈물을 닦고 웃음으로 가길 바라요.


ㅅㄴㄹ


“먼 길 오셨네.” “네, 조금요. 이런저런 옛날이야기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야기할 수야 있지만 한량이 없어서…….” 말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 그 순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1쪽)


“일본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그야 탄광이지. 그때가 열예닐곱 살이었으니 아직 어린애잖소. 느닷없이 데려와서는 처박은 거지. 탄광이란 게 어지간해서는 못 배기는 곳이오. 돌덩어리가 머리 위에서 데굴데굴 떨어지는 곳이니까.” 드디어 그는 탄광에서 도망쳤다. (42쪽)


“한국에는 가 보고도 싶다오 태어난 곳은 역시 그리운 법이거든. 그렇지만 생활하기는 어려워. 27년 만에 고향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수. 저기에 내가 자란 마을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멀리서 바라보며 울기만 했지.” (49쪽)


일본이 전쟁에서 지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옷가지와 가재도구를 전부 팔아치우고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147쪽)


조선에 가면 목숨은 건진다.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년 후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밀항선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에서는 살 수 없어. 돌아가지 마!” 밀항으로 돌아온 조선인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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