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오늘말. 뭇눈


온누리에는 숱한 사람이 살아갑니다. 사람 둘레에서는 숱한 목숨붙이가 살림을 꾸려요. 사람은 사람대로 마을을 이루고, 여러 목숨붙이는 이곳저곳에서 보금자리를 틉니다. 이 땅에는 사람에 풀꽃나무에 풀벌레에 새에 짐승이 고루 있습니다. 어느 한 갈래만 살아가지 않아요. 온갖 숨결이 두루 만나면서 사랑을 꽃피웁니다. 없어도 될 목숨은 없어요. 어느 하나라도 빠질 수 없습니다. 힘이 센 쪽만 살아남아야 하지 않고, 사람들만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르기에 저마다 다른 그릇입니다. 다 다른 몸차림으로 오늘을 맞이합니다. 온나라를 뭇눈으로 바라보기로 해요. 남 눈길에 매이는 길이 아닌, 뭇눈길이 되어 고루 헤아리는 마음이 되기로 해요. 깜냥을 키우고 주제를 북돋아요. 온몸에 따스히 마음이 흐르도록 다스려요. 우리는 언제나 꽃솜씨를 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가꾸고 둘레를 돌보는 아름재주를 펼칠 만합니다. 땀 한 방울이 아름답습니다. 조그맣게 내미는 손길로 어우러집니다. 누구나 사랑입니다. 언제나 노래입니다. 우리 몸에는 서로 아끼거나 돌보는 숨결이 어우러집니다. 몸차림을 추스릅니다. 빛나는 몸씨가 되도록 다스립니다.


ㅅㄴㄹ


온누리·온나라·둘레·마을·이곳저곳·여기저기·이 땅·이 나라·사람들·남·누·귀·눈·눈길·뭇눈·뭇눈길·고루·두루·널리·온갖·온통·숱한 ← 세간(世間), 세간의, 세상, 세상의, 항간, 항간의


그릇·깜냥·주제·됨됨이·몸차림·몸씨·몸·온몸·온힘·피땀·땀·땀방울·솜씨·재주·힘 ← 기량(器量)


몸·온몸·온힘·피땀·땀·땀방울·솜씨·재주·힘 ← 기량(技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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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돌멩이의 외침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 5
유동우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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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2.5.

인문책시렁 164


《어느 돌멩이의 외침》

 유동우

 철수와영희

 2020.5.1.



  《어느 돌멩이의 외침》(유동우, 철수와영희, 2020)은 1978년에 처음 나왔고, 1984년에 다시 나왔으며, 2020년에 새로 나왔습니다. 해묵었다고 여길 분이 있을 테지만, 이 책을 1990년대랑 2000년대랑 2020년대에 새삼스레 되읽으며 돌아보노라니, 오늘날 우리 터전 민낯은 그대로이지 싶습니다. 일꾼은 그럭저럭 일삯을 제법 받을 만큼 나아졌습니다만, 벼슬자리에서 사람들을 깔보거나 억누르는 흐름은 걷히지 않았습니다. ‘일순이가 짓밟혀도 일두레(노동조합)가 먼저’라 여긴 지난날 그 사람들은 오늘날 ‘가시내를 괴롭히고 응큼짓을 일삼았어도 나라힘(정치권력)을 지키기가 먼저’라 여기지요.


  우리는 무엇을 바꾸었고, 아직 무엇이 그대로일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억눌리는 사람이 사라지는 터전일 뿐 아니라 억누르는 사람도 사라지는 터전입니다. 한켠에서 억눌리는 사람이 있다면, 한쪽에서 억누르는 사람이 있어요. 한구석에서 우는 사람이 있다면, 한복판에서 우쭐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라힘을 거머쥔 이들은 몇 해째 ‘검찰 바꾸기’를 외칩니다만, ‘경찰 바꾸기·공무원 바꾸기’는 언제 하려나요? 갖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국회의원이란 자리에 서면 배짱으로 밀어붙이는 이런 판은 언제 바꾸려나요? 눈먼돈을 돌라먹는 창피한 벼슬판·텃사람 고리(지자체·토착세력 유대관계)는 언제 치우려나요?


  우리는 모두 돌멩이입니다. 데구르르 구르는 돌멩이요, 아직 깨어나지 못한 돌머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돌더미입니다. 시키는 대로 굴러가는 돌이요, 아직 스스로 날개를 펼 마음을 깨지 못한 돌부스러기입니다.


  이리하여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책이 태어났습니다. 나쁜짓을 일삼는 이는 저쪽에만 있지 않다고, 우리 스스로 모든 고인물을 털어내고서 우리부터 깨끗하게 일어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아름길로 나아가는 사랑이 되자고 하는 피울음을 갈무리했습니다. 손을 잡아야 함께 살아갑니다. 주먹힘도 돈힘도 벼슬힘도 글힘도 아닌, 오롯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마주할 적에 이 별이 푸르게 빛납니다.


ㅅㄴㄹ


오야지가 아침에 출근해서 주는 25원짜리 식권 두 장이 전부였다. 25원짜리 식권 한 장이면 회사 지정 식당에 가서 백반 한 그릇을 사 먹을 수 있었으므로 나는 하루 두 끼의 밥을 얻어먹는 것으로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밥 두 끼조차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내 처지였다. 왜냐하면 내겐 당시 잠잘 곳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내 수입의 전부인 식권 두 장으로 잠자리까지 마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27쪽)


근로감독관은 “네가 뭘 안다고 근로기준법이니 뭐니 떠드느냐”고 호통을 치더니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도장을 찍어 주면 될 게 아니냐”면서 마치 내가 범죄자라도 되는 듯이 다루는 것이었다. (81쪽)


“우리들이 요구하는 것이라곤 항상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일 뿐입니다.” (124쪽)


부분회장인 양 형까지도 “여자들이 남자한테 좀 맞았기로서니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분회장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 안 그래도 노동조합을 깨려는 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판인데 자꾸 적을 만들면 어떡해?”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약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기본적인 자세가 없다면 노동조합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업주에 대해서는 약한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력이 센 남성들에게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당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모순된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157∼158쪽)


담당 순경으로부터 지독한 손찌검을 당해야만 했다. 손에 가죽장갑을 끼고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난타하는 바람에 내가 앞으로 거꾸러지자 그는 구둣발로 얼굴이며 허리를 마구 짓밟는 것이었다. “이 새끼, 네가 노조 분회장이면 다야! 죽여버릴 거야.”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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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직업 니시카와 미와 산문집 1
니시카와 미와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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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책읽기 2021.2.5.

인문책시렁 163


《고독한 직업》

 니시카와 미와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9.4.30.



  《고독한 직업》(니시카와 미와/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9)을 읽다가 멈추다가 읽다가 멈추다가 했습니다. 이러다가 한참 책상맡에 놓고 잊었습니다. 왜 이렇게 이 책을 못 읽는가 하고 갸우뚱하며 되읽으려는데, 글님이 속마음을 언뜻 털털하게 드러낸 듯한 책이지만 어쩐지 털털한 듯 꾸민 모습이 썩 와닿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진을 하든 영화를 하든 살림을 하든 이야기를 하든 모두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대목에서 어느 자리 어느 때나 매한가지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 사랑하면 즐겁습니다. 어느 일을 붙잡든 꼭 끝까지 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고독한 직업》은 글님 스스로 영화찍기가 “외로운 일”일밖에 없다고 못을 박고서 이 틀에 맞추려 하면서 어긋나지 싶습니다.


  외롭지 않은 일이 있을까요? 외로워야 할 일이 있을까요? 모든 일은 외로우면서 외로울 까닭이 없습니다. 즐거이 할 적에는 외로운지 아닌지를 안 살핍니다. 안 즐거울 적에는 어쩐지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거나 내세우고 싶습니다.


  영화를 찍은 삶길을 퍽 부드러이 담아낸 듯하지만, 아무래도 허울이 꽤 짙습니다. 굳이 이런 허울을 붙여야 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허울이 있다면 허울좋게 살아온 모습을 빙그레 웃으면서 달래면 될 테지요.


  영화를 찍는다면 무릇 여러 사람 앞에 선보여야 하기 마련이라, 속내나 민낯을 감추고서 ‘사람들 앞에서 다르게 보여주기’를 해야 할 테니, 그리고 어느 영화를 끝냈으면 다음길을 가려고 예전 영화를 까맣게 잊어야 할 테니, 여러모로 ‘허울벗기’를 바꾸는 길이 되지 싶은데, 허울을 벗기보다는 허물을 벗는다면 어떨까요? 애벌레가 나비로 깨어나는 ‘허물벗기’로 영화를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글님이 펼 이야기는 이 책하고 확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좀더 평범하게 행동했다면 좋았을 텐데.”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 말했지만, 그 “좀더 평범하게”가 불가능했다. (25쪽)


영화감독이 천직인 타입이라면 또 모를까. 나 같은 기량의 사람에게 영화 촬영은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어서, 그중 즐거웠던 추억을 내 안에서 곱씹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 나갈 희망을 잃어버린다. (78쪽)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염불을 아침저녁으로 들으며 자란 나는 친척 언니가 다니던 기독교계 중학교를 동경해서 입시를 위해 보습학원에 다니겠다는 말을 꺼냈다. (202쪽)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 나는 일이 나중에 돌아보면 본의 아니게 내 인생의 전기가 된 경우가 많다.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흰종이 위를 나의 왕국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 같다.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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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2.1.


《하늘이 레이스처럼 빛나는 밤에》

 엘리너 랜더 호위츠 글·바버러 쿠니 그림/이상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0.11.19.



노래꽃을 띄우러 우체국에 찾아간다. 저녁빛을 안고서 갔고, 밤빛을 품으면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서 등허리를 토닥인다. 하늘은 언제나 하늘하늘 새롭게 춤춘다. 이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근심도 걱정도 녹는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거나 잊은 날에는 어쩐지 고단하거나 나른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하늘빛은 우리 몸에 기운을 새로 북돋운다. 그래, 그렇다. 하늘을 가리고 햇볕이나 바람이 들지 못하게 가두는 곳에서는 누구나 죽는다. 땅밑을 깊이 파고서 사슬터를 둔 까닭이 있지. 오늘날은 돌봄터(병원)도 꽁꽁 가두는 얼개이다. 이래서야 아픈 사람이 어찌 나을까. “When the sky is like lace”란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이 《하늘이 레이스처럼 빛나는 밤에》란 이름으로 나온 적 있다. “like lace”를 “레이스처럼”으로 옮겨도 될까? 이래서야 하늘빛을 어림할 만할까? 서울은 하늘을 보기 어려울 만큼 잿빛집이 높다. 서울에서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잊거나 잃게 하려고 빼곡하게 잿빛집을 쌓지 않을까? 서울바라기가 되는 다른 고장도 매한가지 아닐까? 우리는 집을 낮추고, 마당을 넓혀서, 하늘바라기로 가야 숨통을 트면서 스스로 튼튼하지 않을까? 해를 먹지 않으니 배고프다. 비바람을 멀리하니 앓는다. 하늘은 늘 사랑물결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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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31.


《세계의 명장, 진창현》

 진창현 글, 혜림커뮤니케이션, 2002.7.5.



올해 첫머리에 쓴 동화 애벌글을 잃었다. 어떻게 잃었는지 가물가물하다. 하루를 헤매다가 새로 쓰기로 한다. 여태 잃은 살림이 무엇이었는가 주루루 돌아본다. 꽤 많다. 잃었대서 헤매다가는 앞으로 가지 못한다. 책을 낼 적마다 숱하게 쳐내고 자르고 고치고 손질하고 바꾸는데, 애벌로 쓴 동화 한 자락을 잃었어도 마음에는 고스란히 있으니, 마음을 살펴서 처음부터 즐겁게 쓰면 될 테지. 하루를 꼬박 새우며 동화쓰기를 마쳤다. 기운이 다 풀려 드러눕는다. 조금씩 써서 모을 때가 있다면, 밑얘기를 마음에 차곡차곡 모으고서 한달음에 쉬잖고 쓸 때가 있다. 모로 누워 《세계의 명장, 진창현》을 읽다가 잠들고, 한참 곯아떨어진 몸을 일으켜 마저 읽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진창현 님을 놓고 만화책을 그려 주기도 했는데, 다음 동화로 진창현 님 이야기를 써 볼까. 그래, 위인전이 아닌 동화를, 아이들한테 어른스러운 어른이란 길을 간 여러 사람들 이야기를 이야기로 부드러이 여미면 좋겠다. 대단하거나 뛰어나기 때문이 아닌, 그 어른들이 걸어가면서 디딘 사랑·기쁨·노래·눈물을 차곡차곡 엮으면 좋겠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같은 가르침이 아닌 “우리 이 삶을 사랑으로 노래하자” 같은 어깨동무 동화를 쓰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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