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7


《민주시민의 교육》

 해인사 쎄미나에서

 중앙교육연구소

 1962.9.



  ‘입시 수험생’이어야 하던 무렵, 둘레 어른이 ‘공교육 정상화’나 ‘선행학습 금지’ 같은 말을 하면 알쏭했습니다. 모든 어린이랑 푸름이를 ‘대학바라기’로 몰아넣는 틀을 그대로 두고는 배움터를 바로세울 수 없으니까요. 미리 배우고(예습), 다시 배우라(복습)고들 하면서, ‘선행학습(미리배움)’은 안 된다고 막는 일은 덧없으니까요. 즐겁게 잘 배우면 나이를 건너뛰어도 좋아요. 배우기 벅차면 여러 해 머물어도 돼요. 또래하고만 어울려야 하지 않아요. 언니 동생하고도 어울릴 뿐 아니라, 풀꽃나무랑 숲이랑 바람이랑 바다하고도 어울려야지 싶어요. 총칼로 나라힘을 거머쥔 일이 벌어진 뒤에 나온 《민주시민의 교육》은 허울만 ‘민주시민’이되, 속내로는 ‘군사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도록 길들이는 배움살이’를 다룹니다. 우리는 왜 배우고 가르칠까요? 대학교를 마쳐야 돈을 잘 벌고 이름을 얻기 때문인가요? 대학교도 초·중·고등학교도 안 다니면서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살림길을 익힌 다음 마을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허울로만 ‘민주’에 ‘시민’이라고 씌우지 말고, 참한 어른이 되도록, 착한 눈빛이 되도록, 고운 마음이 되도록, 푸른 숲누리가 되도록 배우면서 나아가야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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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밝다 (2021.2.6.)

― 목포 〈고호의 책방〉


  요즈음 어른들은 아이들이 손전화만 주무른다면서 걱정하거나 나무랍니다만, 이렇게 말하는 어른을 보면 딱할 뿐입니다. “여보셔요, 어른 여러분, 그대들이 아이들 놀이터를 몽땅 빼앗은 다음에 손전화만 쥐어 주고서 뭔 소리랍니까?” 하고 외치고 싶어요. 아이들은 따로 놀이터가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디에서나 맨발에 맨손으로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깔깔거리고 떠들면서 놉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손전화만 주무를 수밖에 없는 이 나라꼴을 고스란히 보아야 합니다. 어느 곳을 가도 아이들이 숨통을 틔울 자리가 없는 판입니다. 서울뿐 아니라 시골도 똑같습니다. 시골은 풀밭이나 논둑에 앉을 수 없어요. 어떤 풀죽임물(농약)을 마구 뿌려대었는지 모를 뿐더러, 자동차로 들길을 달리는 서울내기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시골 어르신 스스로 빈병이나 비닐을 나란히 어디에나 버리거나 태우거든요. 큰고장은 모든 곳을 자동차가 잡아먹었고, 가게가 빼곡하고, ‘학교 + 학원’으로 꽁꽁 틀어막혔습니다. 뛰놀 빈터를 하나도 안 남기고 손전화만 쥐어 준 어른인 주제에 아이들 탓을 하는 모습이란 볼썽사납습니다. 그나마 ‘마당 있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이 해바라기라도 하겠으나, 겹겹이 쌓인 잿빛집에서 살림을 꾸리니, 아이들은 집에서조차 못 뛰고 못 달리며 소리도 못 질러요.


  목포 기차나루 앞으로 유달산이 있고, 둘 사이에 저잣거리가 있으며, 이곳에 〈고호의 책방〉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일찍 여는 이곳 알림판에 “고호의 책빵”이란 이름이 나란히 붙습니다. 잔글씨로 “빵은 옆집에서 팝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알림판에는 ‘환 호흐(van Gogh) 아저씨’가 두 손에 빵하고 책을 쥔 그림을 담습니다. 뭐, 우리는 일본 말씨대로 ‘고호(고흐)’라 말하지만, 네덜란드말로는 ‘환 호흐’입니다. ‘Ruud Gullit’란 사람을 ‘루드 굴리트’라고들 하나, 네덜란드말로는 ‘륏 훌릳’입니다. 그나마 ‘Den Haag’는 이제 ‘헤이그’ 아닌 ‘덴 하흐’라 말하는 사람이 좀 늘었어요.


  걷거나 달리고 싶어 근질거리는 작은아이하고 길손집을 나서자마자 만난 〈고호의 책방〉으로 들어서지 못합니다. 이다음 목포마실길에 들르려 합니다. 아침햇살이 곱게 퍼지는 책집 앞에 살그마니 서서 이곳으로 찾아들 여러 마을손님이며 먼 마실손님을 생각합니다. 두 손에 빵이랑 책을 쥘 만하고, 두 손에 호미랑 책을 쥘 만하며, 두 손에 붓이랑 책을 쥘 만합니다. 두 손에 바람이랑 별을 쥘 만하고, 두 손에 풀꽃이랑 나무를 쥘 만해요. 오늘 저는 한 손에 작은아이 손을 쥐고, 다른 손에는 이야기를 쥐기로 하고서 호젓한 곳을 찾아서 뚜벅뚜벅 걷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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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어린이책집 (2021.2.6.)

― 목포 〈장미서점〉


  큰고장에서는 책집을 빼고는 쳐다보지 않습니다. 아니, 책집 빼고도 쳐다보는 곳이 있으니, 길에 선 나무하고 골목 귀퉁이에서 돋는 조그마한 풀꽃입니다. 흐드러지는 자동차하고 잿빛집은 쳐다볼 일이 없고, 줄줄이 늘어선 가게도 쳐다볼 까닭이 없습니다. 큰고장 큰길에서는 옆사람하고 말을 섞기도 힘들 만큼 시끄럽습니다. 시골 읍내나 면내에서도 자동차가 부릉부릉 지나가면 말소리를 잡아먹습니다.


  부릉거리는 쇳덩이를 모는 이는 그 쇳덩이 탓에 어느 곳이나 얼마나 시끄러운지 얼마나 헤아릴까요? 쇳덩이가 다닐 길을 닦는다면서 풀밭이나 빈터나 숲이나 들을 얼마나 파헤쳤는지 알기나 할까요?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오늘처럼 책을 곁에 두면서 말꽃(사전)을 쓰는 살림을 지었으려나 하고 가끔 돌아봅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겠거니 싶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를 그대로 다니면서 열린배움터를 바라보는 수렁판에 잠겼다면, 이내 이 모든 사슬을 스스로 끊고서 ‘숲으로 가는 책길’을 조용히 갔으리라 생각해요. 어버이가 저를 배움터 아닌 숲터로 이끌었으면 굳이 종이꾸러미를 곁에 두지 않고 풀꽃나무만 곁에 두면서 맨몸으로 멧골에 안겨서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목포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가족관광호텔’이란 이름이 붙은 길손집인데, 칸은 제법 넓으나 바닥은 비질을 안 했고, 씻는곳은 좁습니다. 겉이름하고 다르게 허술한 속내입니다. 작은아이하고 일찌감치 나옵니다. 뛰거나 걷고픈 아이는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요. 기차나루 앞자락 저잣거리를 한 바퀴 걷습니다. 옷가게랑 밥가게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옷가게 가운데 어린이옷을 다루는 데는 안 보입니다. 왜 어린이옷은 뒷전일까요? 숱한 밥가게 가운데 어린이가 느긋이 드나들 곳은 어디일까요? 한 군데라도 제대로 있나요? 온통 술집판입니다.


  책집이란 곳에 눈이 간 까닭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책집(어린이책 전문서점)’입니다. 어린이가 마음껏 쉴 수 있는 샘터가 바로 책집이었어요. 어린이책집은 책숲(도서관)하고 달리 아이들이 좀 떠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노래를 하면 외려 사랑스레 바라보곤 합니다. 그래요, ‘어린이책숲(어린이책 도서관)’이라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시끌벅한 터전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한참 걷고 걸어서 중앙초등학교 들목에 있는 〈장미서점〉에 닿습니다. 열렸는지 닫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닫이에 붙인 이름쪽에 적힌 손전화로 여쭈면 책집을 열어 주실 듯합니다. 겉배움책(참고서)이 바탕인 헌책집일 텐데, 목포시가 이곳을 ‘어린이 책놀이터’로 북돋우는 생각을 편다면 참 아름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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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2.3.


《노다라고 합니다 1》

 츠케 아야 글·그림/강동욱 옮김, 미우, 2019.7.31.



옆집에서 담을 허문다. 집을 크게 새로 짓는다면서, 담도 새로 올리겠다면서 허문다. 그러면 담은 언제 새로 올리려나? 우리 집은 담이 없는 채 아직 겨울이어서 씽씽 부는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기만 해야 하는가? 기름값이 750원으로 올랐다. 미국 나라지기가 바뀌니 기름값이 껑충 뛴다. 예전 미국 나라지기는 푸른별 기름값이 떨어지도록 했으나, 새 미국 나라지기는 기름값이 껑충 뛰도록 부추긴다. 먼발치 나라지기가 바뀌어도 우리나라까지 바람이 훅 끼친다. 이 나라가 어지러우면 이 어지럼바람은 이웃나라로도 확 끼칠는지 모른다. ‘공교육 정상화’나 ‘선행학습 금지’는 얼마나 옳을까? 이런 말은 얼핏 옳아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모두 ‘대학입시’에 맞출 뿐이다. 아이들이 삶을 슬기롭게 배우는 사랑길을 가도록 북돋우려 한다면 ‘대학입시’ 아닌 ‘살림배움터’를 어디에서나 누리고 펼 노릇이겠지. 아이를 왜 ‘교사’만 가르치나? 어버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가르칠 줄 알 노릇이요, 아이를 ‘대학생’ 아닌 ‘어른’으로 키우는 삶을 지을 노릇 아닌가? 《노다라고 합니다 1》를 읽으면서 ‘공교육·대학교’는 모두 헛짓이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나라한테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하자. ‘졸업장’ 아닌 ‘살림’을 아이한테 주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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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오늘말. 말


가만히 말을 합니다. 마알간 넋으로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하고서 얘기합니다. 환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조곤조곤 읊어요. 상냥히 마주하는 눈빛으로 읊조립니다. 차근차근 짚고서 밝히지요. 즐거이 들려주고 싶어요.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이러쿵저러쿵, 때로는 나긋나긋, 때로는 두런두런 살펴봅니다. 한쪽으로만 흐른다면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고받는 생각이기에 이야기입니다. 외곬로는 같이하지 못해요. 한길이기에 함께합니다. 소를 잃지 않으면 외양간을 고칠 엄두를 못 내지 않을까요. 뒤늦게 손을 대기에 바보스러울는지 모르나, 때늦더라도 뒤치다꺼리를 할 줄 안다면 앞으로는 확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첫손이 더 좋지 않아요. 처음손도 아름답고, 나중손도 알찹니다. 빠른손도 고우며, 늦은손도 살뜰하지요.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면 어쩐지 미워 보일는지 모르나, 그 말에 깃든 숨소리를 조용히 보면 좋겠어요. 하나하나 들출 만큼 우리를 살폈겠지요.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차근차근 뒷갈무리를 합니다. 아이들이 어질렀으면 어른이 치웁니다. 놀고 노래하면서 바람을 동무삼아 조잘조잘 떠드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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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하다·얘기·얘기하다·이야기·이야기하다·읊다·읊조리다·밝히다·들려주다·왁자지껄·떠들다·떠벌리다·따따부따·미주알고주알·이르다·이러쿵저러쿵·따지다·다루다·삼다·짚다·들추다·살피다·살펴보다·보다·헤아리다·생각·생각하다·나누다·주고받다·같이하다·함께하다 ← 논(論), 논하다(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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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늦다·뒤늦다·때늦다·늦장·늑장·뒷갈무리·뒷갈망·뒷손·뒷손질·뒷일·뒷길·뒤치다꺼리·나중손·나중손질·늦은손·늦손·늦은손질·늦손질 ← 사후대책(事後對策),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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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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