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오늘말. 그루


저는 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로 세면서 심습니다만, 둘레에 “한 주 두 주”로 세는 분이 꽤 많습니다. 예전에는 흙두레(농협) 벼슬꾼이나 ‘주(株)’라는 한자를 썼다면, 요새는 여느 시골지기도 이 한자를 쓰면서 ‘그루’란 낱말을 멀리합니다. 지난날에는 ‘그루갈이’를 말하는 분이 많았으나, 이제 이렇게 말하는 분은 찾을 길이 없이 ‘이모작’을 한다고 해요. 사람이 손수 갈아서 돌보는 땅이며, 이러한 일을 오래오래 ‘그루’로 가리켰지만, 이 ‘그루’는 여러 가지에서 바탕을 이루는 일이라 여겨 ‘그루터기’란 낱말도 태어났지만, 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 차근차근 숲으로 나아가듯 우리 손길을 하나씩 모아 찬찬히 일터를 보듬는 살림을 나타내는 자리에 ‘그루·그루터기·그루지기·그루두레·그루일터’처럼 쓰임새를 넓히기보다는 ‘주식회사·주주·주식’ 같은 말씨만 번집니다. 어느 말이든 우리 삶을 나타낼 텐데, 우리가 땅을 디디는 줄 느끼고, 땅에서 피어나는 꽃인 줄 헤아리고, 땅에서 살림을 짓는 수수하면서 빛나는 손길인 줄 느끼면 좋겠어요. 나무 한 그루를 심듯, 손길을 한 그루씩 모아 봐요. 함께 그루님이 되어 봐요.


그루 ← 경작, 경작지, 농지, 농토, 농경지, 주(株), 주식(株式), 농업, 농사, 농사일, 재배(栽培)

그루갈이·그루뜨기 ← 이모작, 양모작

그루님·그루지기 ← 주주(株主)

그루두레·그루일터 ← 주식회사

그루터기 ← 하부, 기본, 기본적, 근본, 기초, 기초적, 주주(株主)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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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3.5. 서울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시골사람 말씨대로라면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바깥일을 ‘서울’에서만 보지 않습니다만, 몇 해 앞서까지는 “인천을 다녀왔”다든지 “포항을 다녀왔”다든지, 대구 부산 광주 강릉 춘천 수원 대전 청주 음성 상주 마산 군포 양주 삼천포 서천 목포 신안 ……처럼 고장 이름을 밝히면 마을 어르신이 힘들어 하더군요. 마을 어르신은 저한테 ‘콕 집어서 어디’를 묻는 말씨가 아니에요. 그저 ‘시골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하겠거니’ 하고 묻는 말씨입니다.


  인천·서울에서 살며 말꽃을 짓던 무렵에는, 또 음성에서 살며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때에는, 나라 곳곳을 그리 자주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말꽃을 짓겠다는 뜻으로 고흥에 깃들어 지내는 요즈음이야말로 외려 이 고장 저 고을을 틈틈이 찾아다닙니다.


  시골에서 ‘서울을’ 바라보면서 찾아가고 일을 본 다음 시골로 돌아올 적마다 새삼스러운데요, 우리나라는 모든 고장이 ‘서울을 닮아’ 갑니다. 고장빛이나 고을빛이나 마을빛이 확확 사라져요. 전주에 한옥마을이 있습니다만, 한옥마을을 빼면 서울하고 똑같아요. 제주에 오름이 있다지만 오름을 빼면 모든 곳은 서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부산다움이나 대구다움이나 포항다움은 뭘까요? 부천다움이나 의왕다움이나 시흥다움은 뭘까요? 옥천다움이나 문경다움이나 괴산다움은 뭘까요?


  더 들여다보면 이제 어느 고장에서든 ‘우리(사람들) 스스로’ 우리다움을 잊거나 잃는 셈이지 싶습니다. 남들처럼 비슷하게 입고, 남들처럼 비슷하게 먹고, 남들처럼 비슷하게 말하고, 남들처럼 비슷하게 읽고, 남들처럼 비슷하게 써요. 모두 바람(유행)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가공식품을 먹든, 풀밥(생채식·비건)을 누리겠다고 하든, 스스로 몸이며 마음을 살펴서 새롭게 가는 길이 아니라, 누가 어떤 틀을 세워 주면 그 틀에 따라가는 결입니다.


  낫으로 풀을 베다가 그만 손가락을 찍어서 피가 철철 흐르면 어찌해야 할까요? 둘레에 있는 어느 풀이든 다 좋으니, 넓적하든 가늘든 이 풀포기를 훑어서 찬찬히 감싸면 됩니다. 강아지풀로 감싸든, 머위잎이나 쑥으로 감싸든, 뽕잎이나 감잎으로 감싸든, 느티잎이나 솔잎으로 감싸든 다 같아요. 갓잎으로 감싸도 안 쓰라리더군요. 민들레잎도 좋고 배춧잎도 좋아요,.고들빼기잎이나 소리쟁이잎이나 도트라지잎을 쓴다면 아주 훌륭하고요.


  삶을 이루는 길은 언제나 다 다르기에 새롭고 즐거워요. 살림을 짓는 하루는 늘 다 다르니까 싱그러우면서 재미나요. 뭐, 틀에 갇힌다고 나쁘지 않습니다.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따르기에 괴롭지 않습니다. ‘누가 시키느냐’는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대수롭습니다.


  마음을 열면 돼요. 마음을 열어서 바라보면 돼요. ‘겉으로는 고기를 먹는다’지만, 사람이 먹는 고기는 ‘고기를 먹는 짐승’이 아닌 ‘풀을 먹는 짐승’입니다. 풀을 풀로 먹든, 풀을 먹는 고기로 먹든, 우리 몸에 들어오는 숨결은 같아요. 다만, 오늘날에는 ‘풀을 먹고사는 짐승’이 ‘풀 아닌 화학사료를 먹는 굴레’에 갇혔고, 비바람해를 먹고살 풀이 비바람해가 아닌 ‘비닐집에 갇혀 농약에 비료에 수돗물을 먹’는 얼거리라서, 이제는 풀밥을 먹든 고기밥을 먹든 우리 밥살림이 ‘화학약품에 길든 쳇바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바꾸고 새롭게 사랑으로 지피는 길이 대수롭습니다.


  무엇을 먹거나 읽느냐도 따져야겠습니다만, 어떻게 먹거나 읽는지를 훨씬 깊게 먼저 살필 노릇이고, 먹거나 읽은 다음에 스스로 어떤 사랑으로 오늘을 지으려는가를 생각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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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2.28. 비님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예전에는 그저 비를 ‘비’라고 하다가, 어느덧 ‘비님’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비’라고만 할 적하고 ‘비님’이라고 할 적은 사뭇 다릅니다. ‘해’라고만 할 적하고 ‘해님’이라고 할 적에도 확 달라요. 아이를 ‘아이님’이라 하고, 동무를 ‘동무님’이라 하고, 책을 좋아하는 이웃을 ‘책님’이라 하면, 서로 만나는 마음까지 새롭더군요.


  둘레에서 마주하는 사람이며 목숨마다 ‘-님’을 붙이다가 남이 아닌 나한테도 ‘-님’을 붙이곤 합니다. 다같이 님이 되자고, 서로 님으로 노래하자고, 누구나 님이면서 이야기(니르다·닐다·이르다)를 할 적에 온누리가 넉넉히 피어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손바닥에 떨어지고 이마를 톡 치고 머리카락이며 몸을 적시는 빗물은 구름이기도 했고 아지랑이에 바다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몸을 흐르는 피이기도 했고, 냇물이며 샘물이기도 했습니다. 나무나 꽃이기도 했고, 흙을 안고서 질척질척한 길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얼음이나 눈이기도 했고, 못이며 수돗물이 되기도 했고, 빵이나 밥이나 주전부리가 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풀꽃나무가 되기도 했던 비·물방울인 만큼, 이 숨결은 책이 되기도 했어요. 오늘 우리 곁에서 책이란 몸뚱이로 있는 숱한 종이꾸러미는 모두 숲에서 자라던 나무였으니, 이 별을 두루 돌던 빗물이란 기운이 고이 배었다고도 하겠습니다. “책을 읽는다 = 숲을 읽는다 = 비를 읽는다 = 물을 읽는다 = 별을 읽는다 = 숨을 읽는다 = 삶을 읽는다 = 나를 읽는다 = 사랑을 읽는다”라고까지도 말할 만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참방참방 놀이를 하고 쓱싹쓱싹 비질을 합니다. 비가 그친 날에는 폴짝폴짝 놀이를 하고 살림을 갈무리합니다. 비를 싫어한다면 우리 스스로 ‘나’를 싫어하는 셈이고, 비를 반긴다면 우리 스스로 ‘숲’을 반기는 셈입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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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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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아직 없는 (2021.2.5.)

― 광주 〈소년의 서〉



  1980년 오월 빛고을을 기리는 자리가 꽤 많고, 이 자리를 맡으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분 가운데 그런 자리에 가거나 돈을 버는 사람은 없더군요. 고흥이며 장흥이며 보성이며 순천에서 그날 그곳 한복판에 있던 적잖은 분은 그저 조용히 흙을 일구거나 장사를 하거나 살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면서 마치 이 나라에 ‘없는 사람’인 듯이 하루를 보냅니다. “광주? 나도 게 있었지. 알 만한 놈들은 다 안다.” “그런데 아재 이름은 거기 없던데요?” “에, 그런 거 싫어 조용히 살잖아. 누가 찾아오겠다고 하면 산으로 달아나지. 돈 받거나 이름을 남기려고 광주에 있지 않았다.”


  광주로 마실을 하면서 〈소년의 서〉에 찾아올 적이면 이곳 책꽂이 한쪽을 차지한 ‘광주 이야기책’에 먼저 눈이 갑니다. 다만 이 책꾸러미는 모두 안 파는 책입니다. 이곳에 와서 살며시 넘기다가 제자리에 꽂아 놓아요.


  그날 그곳에서 참 많이 죽었습니다. 고작 마흔 해 즈음 된, 가까운 핏자국입니다. 이 핏자국을 되읽을 적마다 우리 발자국을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우리는 1980년도 살았고 1945년도 살았습니다. 1915년이나 1855년이나 1555년이나 555년도 살았어요. 아스라한 지난날, 백제란 이름으로 가야·고구려·신라를 이웃하던 터전에서는 어떤 핏자국이 있었고, 땀자국이 있었으며, 살림자국이 있었을까요?


  ‘밝은뉘’란 이름이던 까마득한 지난날에는, 이런 이름조차 없던 더 아렴풋한 지난날에는 이 고장 이 터 이 숲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서로 사랑하고 돌보고 노래하는 꿈이 흘렀을까요?


  광주 발자국을 담는 커다란 집에 부산·마산·대구 발자국을 담는 칸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인천·강릉·옥천 발자국을 담는 자리를 같이 둘 수 있을까요. 모든 어깨동무(평화)는 밑바탕이 사랑입니다. 모든 사랑은 밑뿌리가 어깨동무입니다. 백기완 님은 ‘노나메기’를 말했는데, 저는 ‘너나들이’를 말하고 싶어요. 빛나는 고을에는 너나가 따로 없이, 너나가 하나되는, 사랑이며 어깨동무로 마주하는 옛자국과 새걸음이 나란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신나게 뛰어놀 빈터를 고을 한가운데에 두기를 바라요. 어른들도 맨발로 신명나게 마당놀이를 펼 쉼터를 이 곁에 놓기를 바라요. 봄을 맞이하면 들마다 푸르게 물결치는데, 이곳 전라도에서 가장 커다란 고장에 아직 없는 너른숲·열린숲·아름숲을 넓혀 나가기를 바라요. 높다란 집을 세워야 열린배움터(대학교)가 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실컷 뛰놀고 노래하는 곳이 마을이면서 배움터예요.


ㅅㄴㄹ


《아이누 민족의 비석》(가야노 시게루/심우성 옮김, 동문선, 2007.4.2.)

《예술가의 여관》(임수진, 이야기나무, 2016.2.15.)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C.A.웨슬리져/박소예 옮김, 청하, 1992.5.15.)

《차분히, 한 걸음씩(광주 동구 비건라이프)》(김태희와 네 사람, 오늘산책, 2020.11.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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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2021.2.28.)

― 부산 〈파도책방〉



  누가 ‘파도’라는 소리를 혀에 얹으면 “무슨 땅을 판다고?”라든지 “무슨 길을 파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땅을 파서 굴을 내고, 책이며 글을 파서 생각이 흐를 길을 냅니다.


  고흥에서 살며 곧잘 자전거나 택시로 아이들이랑 바다마실을 갑니다. 그야말로 파랗게 일렁이는 물결을 호젓이 바라보다가 풍덩 뛰어들어 같이 헤엄을 치며 놀아요. 출렁이는 물결을 가르며 놀아도 즐겁고, 넘실대는 물결에 가만히 잠겨서 모랫바닥에 배를 대고서 물살이 흐르는 노랫가락을 들어도 즐겁습니다. 바닷물에 잠겨 눈을 동그랗게 뜨다 보면 눈앞을 휙휙 스치는 바다동무가 있고, 모래알은 데구르르 춤추면서 북새통입니다. 멀리서 보자면 하늘빛을 고스란히 품은 파랑파랑 바다인데, 막상 물에 잠겨서 바라보면 그저 끝없이 맑은 바다예요.


  2000년에 처음으로 부산마실을 했지 싶은데, 부산서 사는 동무를 만나러, 또 부산동무하고 보수동 책집골목을 누빌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부산서 살아도 보수동에 안 온다 아이가. 책을 안 읽으니까. 그래도 네가 부산까지 와줬는데 아무리 책을 안 읽어도 여 와서 책도 보고 해야 안카나.” 저를 만나는 동무나 이웃은 제가 책을 밑도 끝도 없이 사읽는 줄 압니다. 여느 때에는 심드렁이 여기지만, 제가 꽤나 먼길을 달려서 찾아오면 책집이나 책집골목에서 한나절쯤 같이 보내 줘요. “아, 모처럼 책집에 와 보니 좋네. 나중에 혼자서라도 와야겠네.” 하는 말이 동무나 이웃 입에서 터져나오면 빙그레 웃으면서 “좋지. 그런 뜻에서 오늘은 책을 두엇쯤 사줄게.” “에? 책을? 두셋은 많다. 하나만 도라.” “자주 안 온다며. 그러니 한 해 동안 읽을 책을 사줘야지.”


  지난 스무 해 사이 보수동은 너울을 넘고 고비를 지났습니다. 책집골목 한쪽은 뭘 새로 올린다면서 크게 허물었습니다. 앞으로 보수동은 어떤 책터가 될까요. 부산서 벼슬자리나 글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펼까요? 부산지기(부산시장)가 새로 될 일꾼은 하늘나루(공항)는 좀 집어치우고 이 고장이 ‘도란도란 삶꽃이 피어나는 아기자기 마을빛’으로 거듭나는 길을 귀여겨들으면 좋을 텐데요.


  두어 사람이 서면 꽉 찰 만한 〈파도책방〉에서 이 책을 보다가 저 책을 읽습니다. 요 책을 넘기다가 그 책을 쥡니다. 더 많이 안 읽어도 사랑길을 열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안 벌어도 살림길을 틀 수 있습니다. 땅을 팔 적에는 나무를 심어 마을을 푸르게 돌보려는 뜻이어야지 싶습니다. 높다란 잿빛집을 줄이고 나무그늘이 싱그러운 풀밭쉼터를 보수동에 마련한다면 이곳은 책숲마을로 나아가겠지요.


ㅅㄴㄹ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2012.4.25.)

《김성근이다》(김성근, 다산라이프, 2011.12.5.)

《새경남 제5권 제1호》(공보실장 박용범 엮음, 경상남도, 1968.2.15.)

《행복의 길, 활짝핀 건강 장수의 비결》(김영보, 녹원출판사, ?)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에서 자신이 읽어본 책만 파는 책방 주인》(레즈 드 사 모레이라/이희정 옮김, 예담, 2014.3.7.)

《홀로 있는 時間을 위하여》(김형석, 삼중당, 19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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