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4.8.

숨은책 319


《信仰》 6호

 全師基督學生會 傳道部 엮음

 全師基督學生會

 1951.11.8.



  종이 한 자락이 어떻게 책이냐고 묻는 분한테 되묻습니다. “1000쪽으로 나오면 책이지요?” “그럼.” “100쪽으로 나오면 책인가요?” “그렇지.” “99쪽은?” …… “55쪽은?” …… “12쪽은?” …… “1쪽은?” 1000쪽부터 1쪽으로 오는 동안 ‘쪽이 적어도 책이다’라는 말을 할밖에 없습니다. 이 되물음에 “말장난 같은데?” 하고 대꾸하시다가도 ‘두툼하지 않으면 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갇혔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두껍기에 값진 책이 아니요, 얇기에 안 값진 책이 아닙니다. 저마다 다른 숨결을 언제나 새로운 손길로 가다듬어서 엮기에 이야기꾸러미인 책입니다. ‘全師基督學生會 傳道部’에서 6호로 낸 《信仰》은 1951년 11월 8일에 태어납니다. 1951년이면 한겨레가 총부리를 서로 들이대며 죽이던 뼈아픈 한복판입니다. 그무렵 종이 한 자락하고 오늘날 종이 한 자락은 사뭇 다릅니다. 그무렵 종이 한 쪽으로 낸 이야기꾸러미는 오늘날하고도 확 다르겠지요. 앞뒤 한 쪽짜리 종이에 빼곡하게 쇠붓으로 새기어 나누려는 믿음길은 삶길을 비는 애타는 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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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安의 이世上을 異常히 生覺하며 이世上의 不安을 이世上것으로 解決된다 生각마라. 不安은 이世上의 正體이며 解決은 이世上의 終末과 더부러있을 것임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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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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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8.

숨은책 510


《강특고 아이들 6》

 김민희 글·그림

 서울문화사

 2010.



  만화책을 안 반기는 분이 많아요. 이 나라가 ‘만화’란 이름에 씌운 굴레에 매인 탓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만화책은 ‘청소년 유해도서’란 굴레에 갇혀야 했고, 1990년으로 접어든 뒤에도 ‘열린터에서 유해만화 불태우기’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만화는, 글하고 그림을 꽃처럼 여미는 이야기꾸러미’라는 얼거리를 살펴 ‘그림꽃책’이란 이름을 지어 보았어요. 만화책은 그림으로만 꾸리는 일이 더러 있지만 으레 글이 꽃처럼 어우러지는 이야기이기 마련입니다. 그림도 글도 꽃처럼 엮을 적에 어린이랑 어른이 손잡고 누릴 아름다운 책으로 태어나요. 2010년 앞뒤로 태어나 일곱걸음으로 맺은 《강특고 아이들》은 새로웠습니다. 종이책을 떠나 누리그림(웹툰)으로 가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이 그림꽃책은 종이책으로 우리 삶자리 이야기를 녹여내었어요. 일본스러운 결에 젖어들지 않은 채 아기자기하면서 익살에 속뜻을 품었지요. 그런데 ‘서울문화사·학산문화사·대원’처럼 그림꽃책만 힘껏 펴내는 곳에서 나오면, 아무리 재미나고 알차고 좋더라도 아름책(추천도서)에는 안 넣는다는 말을 곳곳에서 들었습니다. 그림꽃책을 오래도록 내는 곳에서 낸 책을 안 보면 만화는 어디에 있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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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뭘까 : 때로는 아침부터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둘레에서 쓰는 말로는 ‘비추천’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얄궂책·거짓책·말썽책·나쁜책·몹쓸책·손사래책’처럼 다르게 이름을 붙여 본다. 어느 책은 얄궂고, 거짓스럽고, 말썽을 일으키고, 그저 나쁘고, 몹쓸 이야기이며, 손사래를 칠 만하더라.


그러나 내 눈과 삶과 자리와 숲으로 볼 적에만 얄궂책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책을 좋아할 수 있어도 좋겠는데, 나로서는 싸움연모(전쟁무기)를 안 좋아해도 싸움연모를 좋아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책을 찾기도 한다. 아무리 말썽을 일으키고 응큼짓을 저질렀어도 이런 치를 믿거나 따르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거짓을 담은 책이지만 정작 불티나게 팔리기도 하고, 나쁜짓을 일삼고도 그저 이름값으로 장사를 하는 책이 있다. ‘아름책’이 아닌 ‘얄궂책’이 판친다고 해서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이런 삶터가 되는 탓에 글 한 줄을 놓고 ‘글치레·글멋·글꾸미기·글만들기’가 판친다. ‘등단’이란 이름으로 수수한 글지기를 억누르기도 한다. 겉멋질은 겉멋질일 뿐, 글이나 책이 아니다. 겉치레 글쓰기로는 그럴듯하게 꾸밈질이 될 뿐, 눈부시거나 피어나거나 아름다울 글하고는 동떨어진다.

 

적잖은 평론가·시인·작가·기자가 겉멋질 글쓰기를 내세우는데, 이 바람에 휩쓸리는 사람도 적잖다. 이런 글에서는 사랑이 묻어나지 않고, 삶이 흐르지 않으며, 살림하고 동떨어진다. 궂이 얄궂책 이야기를 쓰는 뜻은 이 하나라 할 만하다. 겉치레 이름값이 아닌 우리 사랑을 바라보면 좋겠다. 겉멋이 아닌 우리 살림을 읽으면 좋겠다. 겉껍데기를 글에 담지 말고, 잘나든 못나든 우리 삶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면 좋겠다.


누구나 글을 즐겁게 쓰면 된다. ‘이름올리기(등단)’를 해야 하지 않고, 등단작가 아니면 작가나 예술가로 안 치는 썩어문드러진 이 나라 글판을 갈아엎을 노릇이라고 여긴다.


글쓰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글님(작가)’이다. 누구나 글님이다. 언제나 글님이다. 아이도 글님, 할매도 글님이다. 이웃 글님 누구나도, 흉내나 따라하기가 아닌 이웃님 삶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고스란히 글빛으로 여미면 좋겠다. 2021.3.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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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아이들 눈 : 아이들은 매같은 눈이라기보다 사랑스런 눈으로 다 알아채지 싶다. 아이들이 보기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답다면 그 이야기를 질리지 않고 늘 재미있게 다시 듣고 싶다. 책이라면 그 책을 100벌도 200벌도 아닌 1000벌을 거뜬히 다시 읽으면서 늘 새롭고 좋다고 말한다. 어른 눈은 어떠한가? 어른은 ‘서평단’이나 ‘주례사 비평’에 얽매여 그만 ‘사랑눈’을 잊거나 잃어 가는구나 싶다. 어른 스스로도 100벌이나 200벌조차 아닌 1000벌을 되읽을 만한 책일 적에 즐거이 아름책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면 좋겠다.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가 아닌 ‘아름책’을. 2021.4.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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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1.


《고양이 눈으로 산책》

 아사오 하루밍 글/이수미 옮김, 북노마드, 2015.6.26.



우리 집에서 새끼를 낳은 마을고양이가 제법 많다.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더니 철마나 여러 마을고양이가 헛간에서 새끼를 낳고는 다 데리고 나가더라. 새끼를 낳아 돌보는 마을고양이한테 먹이를 준 일이 없다. 들고양이라 할 이 이웃은 늘 스스로 먹이를 챙겼고 새끼를 돌보며 가르쳤다. 이러고서 어느 날 조용히 떠난다. 우리 집이 마음에 들었을까. 우리 집은 안 내쫓으니 조용히 자거나 쉬기에 좋다고 여길까. 이러다 누가 종이꾸러미에 담아서 버린 새끼 고양이를 우리 집 아이들이 ‘주워’ 온 적 있다. 마을 할매가 새끼 고양이를 종이꾸러미에 담아 버릴 턱이 없고, 틀림없이 큰고장에서 누가 자동차를 씽 몰아서 이 시골에 버리고서 달아났으리라. 비가 하염없이 오던 날이었는데,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라서 어찌저찌 살리고 돌봐서 걷고 뛸 수 있을 때까지 건사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누가 슬쩍 데려갔다. 고양이 눈에는 사람이 어떻게 보일까? 《고양이 눈으로 산책》을 읽어 보는데, 이 책은 ‘고양이 눈’이 아닌 ‘사람 눈’으로 보는 이야기만 흐르네. 그러려니 여기다가도 못내 서운하다. 아니, 서운할 까닭은 없다. 책이름이야 누구나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일 뿐일 테니까. 어느 눈으로 보든 사랑을 보면 될 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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