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 - 곤충의 변태 과정을 처음으로 알아낸 여성 과학 예술가 담푸스 지식 그림책 4
마르가리타 앵글 지음, 줄리 패치키스 그림, 엄혜숙 옮김 / 담푸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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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4.9.

그림책시렁 651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

 마르가리타 엥글 글

 줄리 패치키스 그림

 엄혜숙 옮김

 담푸스

 2011.8.8.



  우리는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할 노릇입니다. 하고픈 일을 그리고, 꿈그림으로 생각을 열고, 꿈생각을 마음에 심고, 꿈마음을 사랑스레 돌볼 노릇입니다. 모든 하루는 꿈길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스스로 이루려는 꿈이란, 스스로 빛나고 싶은 사랑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딛는 발걸음에는 즐겁고 슬기롭게 바라보는 눈빛이 묻어납니다.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은 1647년에 태어난 ‘마리아 메리안 지빌라(Maria Sibylla Merian)’ 님이 풀벌레를 사랑하면서 그림으로 담아낸 발자취를 조촐하게 들려줍니다. 1947년도 2000년도 아닌 1647년에 태어나 자라면서 풀벌레를 아끼고 눈여겨본 마음결은 이녁이 남긴 그림마다 고스란히 흐릅니다. 풀벌레를 바라보며 그림으로 담으니 풀꽃나무도 나란히 바라보며 그림으로 담습니다. 풀꽃나무를 함께 바라보며 그림으로 담으니, 해바람비를 늘 바라보며 그림으로 담아요. 우리 곁에 어떤 이웃이 있나요? 우리 눈길은 어디로 뻗나요? 우리 마음은 어떻게 피어나는가요? 우리 생각은 얼마나 넉넉하면서 포근한가요? 눈앞을 보셔요. 땅바닥에 쪼그려앉아서 풀잎에 맺힌 이슬을 봐요. 딱정벌레가 우리를 마주보며 웃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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ちいさなおばけえほん ばけものづかい (ちいさな〈せなけいこ·おばけえほん〉) (單行本)
세나 게이코 / 童心社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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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4.9.

그림책시렁 650


《ねないこ だれだ》

 せな けいこ

 福音館書店

 1969.11.20./2919,5,10.156벌



  잠들기에 꿈을 꾸고, 꿈을 꾸기에 새롭게 바라봅니다. 새롭게 바라보다가 동이 트는 줄 느껴 문득 일어나면, 어느덧 몸에 기운이 다시 흐르는 줄 느끼고, 기지개를 켜면서 햇살을 맞이합니다. 잠을 누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만해요. 다만, 잠을 누리기에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포근히 쉬면서 무럭무럭 자라요. 신나게 뛰어논 하루를 구석구석 새기고 나면 반짝이는 별빛이 온몸으로 스며들어서 이튿날 다시금 신나게 놀자는 노래가 피어납니다. 《ねないこ だれだ》는 잠들지 않는 아이한테 누가 찾아가는가 하고 속삭입니다. 한밤에 누구랑 놀고 싶어서 잠들지 않느냐고 가만히 물어봅니다. 밤에도 놀고 싶다면 밤놀이를 해야지요. 도깨비하고 해볼까요? 스스로 도깨비가 되어 밤하늘을 훨훨 날아 볼까요? 낮에는 바람이 되어 낮하늘을 휙휙 날았으니, 밤에는 도깨비불이 되어 별빛이 물결처럼 흐르는 하늘을 가로질러도 재미나겠지요. 아, 그런데 밤에 스스로 도깨비불이 되어 날면 싫다고요? 그렇다면 사르르 눈을 감고서 꿈나라로 가면 돼요. 굳이 도깨비불이 되어야 하지는 않거든요. 삶나라 저켠에 있는 꿈나라에서 새롭게 만나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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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지 친구이야기
이와타 겐자부로 지음, 이언숙 옮김 / 호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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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었나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군더더기 같은 잔소리를 덜어내고서

새로 써 보았다.


숲노래 책읽기/숲노래 아름책

동무하며 걷는 길


《백 가지 친구 이야기》

 이와타 켄자부로 글·그림

 이언숙 옮김

 호미

 2002.5.25.



  《백 가지 친구 이야기》(이와타 켄자부로/이언숙 옮김, 호미, 2002)가 갓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쓰고 엮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을 꾸리는 분(출판사 사장님)은 멋스러운 책이 나왔다면서 잔뜩 장만하셨고 둘레에 하나씩 건네셨어요. “그래, 너도 좀 봐라. 순 글씨가 가득한 책만 읽지 말고, 이런 그림도 읽고 시도 읽으면서 마음 좀 다스려 봐.” 하고 한마디 보태셨어요. “사장님, 저, 시집도 많이 읽는걸요?” “에그, 그런 시 말고, 이렇게 여백을 남기면서 노래하는 글을 읽으라고!” “그럼 시에 빈자리(여백)가 있지, 빈자리가 없는 시가 어디 있어요?” “됐다. 그냥 읽어라.”


  그때 그 어른은 왜 제가 《백 가지 친구 이야기》 같은 책을 안 좋아하거나 못 알아보리라 여겼을까요? 우리말꽃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글이 빼곡하고 두툼합니다. 이런 책을 지어야 하는 일을 한대서 글책만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2002년 무렵에 저한테 아이가 없었어도 그림책이며 동화책을 늘 곁에 두고 살았어요. 나라를 꾸짖는 노래(시)도 읽고, 숲을 사랑하는 노래(시)도 같이 읽었어요. 나라를 꾸짖는 노래하고 숲을 사랑하는 노래는 동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요. 둘은 한마음입니다.


  저를 낳아 돌본 어버이는 제가 열일곱 살이던 해까지 ‘13평짜리 잿빛집(아파트)’에서 살림을 꾸렸는데, 이듬해부터 ‘48평짜리 잿빛집’으로 덜컥 옮겼습니다. 빚을 지면서 옮기셨는데, 열석 평은 코딱지만 한 집이라서 더는 못 살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코딱지만 한 열석 평짜리가 아닌 ‘나고 자란 마을에서 늘 어울리는 동무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저한테 집은 ‘크기’가 아닌 ‘동무’하고 어울리는 삶자리예요.


  우리 아버지가 넓은 잿빛집으로 옮긴다고 할 적에 차마 아버지한테는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어머니한테 “어머니, 이 집을 팔고 나가야 하니 어쩔 길 없더라도, 한 칸짜리 조그마한 데를 얻어서 저는 이 마을에 그대로 살면 안 될까요? 제 동무는 모두 여기에 있는데 동무가 하나도 없는 그 커다란 곳으로는 가기 싫어요.” 하고 귓속말을 했어요. 어머니는 “너만 그러니? 어머니도 어머니 동무가 다 이 마을에 있잖아. 나도 가기 싫어.” 하시더군요.


  잿빛집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한테 마을이며 골목을 빼앗은 자동차일까요. 자동차한테 동무가 있다면 크고작은 벌레와 길짐승을 비롯해 사람조차 마음놓고 건너다닐 수 없는 까만 찻길일까요. 까만 찻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나날이 바닥나는 까만 기름일까요. 까만 기름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하루 한때도 잊을 수 없어서 꼭 껴안으려는 돈일까요. 돈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날마다 손쉽게 쓰고 버리는 갖가지 살림인, 뚝딱터(공장)에서 뽑아낸 것일까요.


  뚝딱터에서 뽑아낸 것한테 동무가 있다면 이 땅 아이들을 괴롭히는 살갗앓이(아토피·피부병)를 비롯한 갖가지 몸앓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며 항생제일까요. 항생제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 입을 길들이는 고기떡(소시지)이랑 튀김닭일까요. 고기떡이랑 튀김닭한테 동무가 있다면 부릉부릉 씨잉씨잉 골목길과 찻길을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씽씽이(오토바이)일까요. 씽씽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경찰일까요. 경찰한테 동무가 있다면 길가에 나뒹구는 담배꽁초일까요. 담배꽁초한테 동무가 있다면 그 옆에 비슷한 크기로 뱉은 엄청난 침덩이일까요. 침덩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로 눌린 다 씹은 껌일까요. 다 씹은 껌한테 동무가 있다면 껌을 싼 비닐 껍질일까요. 비닐 껍질한테 동무가 있다면 비닐 껍질이 처박히는 쓰레기통일까요. 쓰레기통한테 동무가 있다면 아무렇지 않게 주전부리 껍데기를 휙휙 집어던지는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젊은이들 손일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주전부리 껍데기를 휙휙 집어던지는 어린이·푸름이·젊은이들 손한테 동무가 있다면 큰일터(재벌회사) 글종이(면접 서류)일까요.


  큰일터 글종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열린배움터(대학교) 마침종이(졸업장)일까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열린배움터 마침종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배움수렁(입시지옥)으로만 몰아넣는 푸른배움터(고등학교) 길잡이(교사) 회초리일까요. 푸름배움터 길잡이 회초리한테 동무가 있다면 날마다 얻어맞고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 허벅지일까요. 뻘겋게 물드는 아이들 허벅지한테 동무가 있다면 배움터가 싫어 당구장으로 달려가며 붙잡은 길다린 작대기일까요. 길다란 작대기한테 동무가 있다면 짜장국수 한 그릇일까요. 짜장국수 한 그릇한테 동무가 있다면 한 벌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일까요. 나무젓가락한테 동무가 있다면 빈 종이꾸러미와 넝마를 주으러 다니는 할배 할매 손길을 타는 낡은 수레일까요. 낡은 수레한테 동무가 있다면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짐더미를 안고 굴리는 할배 할매가 살짝살짝 쉬면서 걸터앉는 거님길 돌일까요.


  서울은 처음부터 서울이지 않습니다. 서울도 똑같이 숲이자 마을이요 들이고 냇물이었습니다. 어느새 서울은 지하철에 잿빛집에 찻길에 끝없이 잇닿는 가겟길입니다. 바야흐로 서울은 흘러넘치는 열린배움터에 큰일터에 자가용에 매캐한 바람입니다.


  제비는 서울하고 시골을 안 가렸으나, 더는 서울에 깃들기 어렵습니다. 돌멩이도 서울이며 시골이며 두루 있었으나, 더는 서울 한켠 골목에서 구르기 어렵습니다. 서울 아이는 뭘 하며 노나요. 시골 아이는 뭘 하며 소꿉을 할까요.


  골목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골목집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골목사람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누구일까요. 논과 밭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이고, 멧골과 들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냇물이랑 바다는, 바람이랑 구름은, 비랑 눈은, 들꽃이랑 나무꽃은, 나비랑 벌은, 누구를 동무로 삼아서 오늘 이곳을 살아가려나요.


  다람쥐와 너구리한테는 누가 동무가 되나요. 오소리와 여우한테는 누가 동무로 마주하는가요. 곰과 범한테는 누가 동무로 곁에 머무나요. 박새와 동무였던 동박새는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박쥐와 동무이던 올빼미는 어디에 깃들일까요. 매와 동무하던 무지개는 오늘 어디에서 숨을 죽이나요. 쉬리는 동무와 오붓하고 지낼까요. 각시붕어는 동무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할까요. 메기는 동무와 느긋하게 한삶을 마칠 수 있을까요. 땅강아지 동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사마귀 동무는 어디에 숨었을까요. 풀무치 동무는 어디에서 마지막 숨을 쉴까요.


  동무를 하나둘 손꼽아 봅니다. 잃어버린 동무하고 잊어버린 동무를 헤아려 봅니다. 우리 곁에는 누가 동무인가요? 우리는 누구를 동무로 곁에 두나요?


  마당에 조용히 서서 두 팔을 벌립니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눈을 감습니다. 이윽고 눈을 뜨고는 후박나무한테 다가가서 줄기를 쓰다듬습니다. 후박나무 우듬지에 앉은 멧새가 시원시원 노래합니다.


  우리는 누구한테 동무일까요. 어떤 사람한테 동무일까요. 우리를 두고 선뜻 동무라고 할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기쁠 때만이 아니라 힘들 적에도 기꺼이 부르면서 웃고 울 동무는 누구일까요. 우리한테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적에 스스럼없이 불러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웃고 울 동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인가요.


  그림이야기책 《백 가지 친구 이야기》를 덮습니다. 책이름에 온(100) 가지 동무라고 나옵니다만, 가만 보니 온한(101)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왜 온한 가지일까 하고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온(100) 가지 동무에다가 ‘나(1)’를 넣어서 온하나(101)가 되더군요.


ㅅㄴㄹ


1

한가로이 길을 걷다 보면 길에서 친구를 만난다.


3

돌멩이의 친구는 작은 시냇물.

작은 시냇물의 친구는 개구리.


15

조개의 친구는 물론 바닷가 모래밭.


25

비는 어느새 땅속으로 스며들고

도토리는 이불인 양 마른 낙엽으로 제 몸을 감싼다.


33

그런데, 정말 친구가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물위에 떨어져 누운 나뭇잎이 묻습니다.


49

난 친구 따위는 필요없어, 하며 늑대거미가 물가를 달린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친구를 찾고 있을는지도

모르지…….


55

그럼,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등불 하나 켜고 태어나고말고!

반딧불이가 장담한다.


65

여뀌의 친구는 소꿉놀이할 때 쓰는 나뭇잎 접시.


74

제비의 친구는 모내기를 끝낸 논의 벼 포기,

파릇한 잎들, 바람 따라 살랑인다.


84

씽씽 부는 바람의 친구는 진눈깨비 섞인 함박눈,

아, 다시 겨울이 ……


93

전철길의 친구는 이젠 끊어져 아무도 다니지 않는

철길에 피어난 잡초,

아마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들국화이겠지요.


98

떠돌이 일꾼들의 친구는 술,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노래도 이곳저곳 여행하였지.


岩田健三郞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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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4.8. 일상적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그제부터 실랑이를 하던 ‘예정·기질·격투’란 한자말을 놓고서 하나씩 실마리를 풀다가 오늘 아침에 이르러 ‘반출·엄하다·문화공간’을 지나 ‘인권침해·석불’에다가 ‘일상적’이란 일본 말씨까지 닿습니다. 하나를 풀자니 더 풀 낱말이 줄줄이 찾아들어요. 이럭저럭 마무리를 보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쉬운 말이 평화》는 겉그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펴냄터(출판사)에서 마지막 꾸러미를 보내 주셨고, 참말 마지막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곧 새책으로 태어나겠지요. 아이들은 오늘도 무럭무럭 크고, 어버이는 오늘도 씩씩하게 살림을 짓습니다. 서로 오가는 말을 새로 읽고, 아침에 피어나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저녁에는 아이들하고 〈천국의 아이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두 아이 모두 예전에 본 줄 까맣게 잊었더군요. 본 지 좀 오래되었나 싶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손빛, 가난한 골목마을, 가멸찬 잿빛집에 마당이 넓은 집, 자전거가 망가져서 고꾸라지기, 꿋꿋하게 다시 일자리를 찾는 아버지, 장님인 아버지를 사랑하는 동무, 신 하나를 둘러싼 오누이가 날마다 하던 달리기, 이 여러 가지를 곱게 여민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곁에도 잔뜩 있는데, 막상 이처럼 수수한 살림꽃을 글이나 그림이나 영화나 책으로 새삼스레 투박하게 담아내는 일은 드물구나 싶어요. 사랑타령이 나쁘지는 않겠습니다만, 사랑타령보다는 삶노래를 글이며 그림이며 영화이며 책에 담을 적에 한결 빛나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쓰는 말도 이와 같다고 여겨요. 남들이 아직 모르는 멋진 낱말을 굳이 캐내어서 쓰기보다는, 여느 삶자리에서 언제나 수수하게 주고받는 말씨부터 새롭게 바라보고 즐겁게 혀에 얹고 손에 쥔다면, 우리 눈빛이며 말빛이 아름다이 흐드러지리라 봅니다. 굳이 ‘일상·일상적·일상화·일상생활·일상다반사’를 말해야 하지 않아요. ‘삶’ 하나와 ‘살다’ 둘에다가 ‘살림’ 셋을 놓으면 돼요. ‘늘’ 하나에 ‘언제나’ 둘에 ‘한결같이’ 셋을 둘 만합니다. ‘으레’ 하나에 ‘툭하면’ 둘에 ‘자꾸·자주’ 셋을 두어도 어울려요.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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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8.

숨은책 518


《國文版 논어》

 이선근·최남선 머리말

 신현중 옮김

 청익출판사

 1954.?.



  1985년치 새뜸종이로 겉을 싼 《國文版 논어》는 어떻게 스며든 책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헌책집에서 《國文版 논어》를 찾았기에 그해에 가장 정갈한 새뜸으로 겉을 가볍게 쌌을까요? 집안에 오래도록 건사하다가 너무 닳았기에 그해에 갓 나온 새뜸으로 겉을 단단히 여미었을까요? 《國文版 논어》는 ‘國文版’처럼 한자를 먼저 적고서 ‘논어’는 한글로 적어요. “한글 논어”처럼 적을 생각을 1954년에는 못했구나 싶고, 아직 우리는 우리말을 슬기로우면서 수수하게 가다듬는 길에 넉넉히 나서지는 못하네 싶어요. 언제나 첫걸음이 새걸음이지 싶습니다. 첫발을 떼려고 마음에 생각을 품기에, 이 생각이 즐겁게 씨앗이 되어 차근차근 나아가는 밑힘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첫걸음에서 멈추어야 하더라도 즐겁게 품은 씨앗이 늘 마음에 감돌 테니 앞으로 한결 씩씩하면서 홀가분히 피어나는 꽃으로 거듭날 테고요. 1985년치 새뜸종이를 슬쩍 들추며 생각합니다. 그무렵 아버지 심부름으로 새벽마다 새뜸을 사왔는데, 어른들이 날마다 읽는 새뜸에 무슨 소리가 적혔는지 영 알 길이 없었어요. “왜 어른들은 아이가 못 알아볼 낱말로 이런 글을 쓰지?” 하고 투덜거렸어요. 오늘날 ‘한글로 적은 글’은 얼마나 쉬우면서 고울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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