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5.


《사라진 나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김경연 옮김, 풀빛, 2003.1.15.



2021년을 넘어서며 큰아이는 열네 살. ‘마침종이 배움터(졸업장 학교)’가 아닌 ‘숲놀이터(우리 집 학교)’를 누린 지 일곱 해째.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린이집은 얼씬거리지 않았다. 우리 집 두 아이처럼 여느 배움터나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으면 배움삯이 많이 든다. 마침종이(졸업장)를 주는 어린이집이나 배움터를 다니면 나라에서 배움삯을 두둑히 대준다. 얼핏 보면 ‘숲놀이터(‘홈스쿨링’이 아닌 ‘놀이터’이다)’로 살림을 하자면 돈이며 품이 많이 든다고 할 만하니, 여느 집에서는 엄두를 못 낼는지 모르나, 달리 보자면 아이가 집을 숲으로 삼아 마음껏 뛰놀며 자라도록 할 적에는 집살림도 같이 익히면서 나누기 마련이라, 갈수록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로 피어난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왜 굳이 바깥살이(사회생활)를 해야 할까? 《사라진 나라》는 린드그렌 님이 손수 남긴 발자취이다. 이녁을 기리는 책이 여럿 나왔지만 어쩐지 시큰둥하다. 이분이 손수 쓴 이녁 발자취를 읽으면 넉넉하리라. 참 마땅할 텐데, 린드그렌 님은 그야말로 신나고 개구지게 뛰논 어린날을 누렸다. 스스로 누린 삶을 이녁 아이한테 이야기로 지어서 들려준 셈이더라. 숲을 곁에 두고 노래하기에 아름답다. 숲아이로 자라기에 사랑을 활짝 편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4.


《Coyotes》

 Wilfrid Swancourt Bronson 글·그림, sunstone press, 1946./2007.



비는 이틀째 줄줄이 오고, 마을이 조용하다. 조용하게 살아가고픈 우리로서는 이런 비가 좋고, 비가 오면서 마을이 조용하기에 포근하다. 걸으면 되고, 때때로 자전거를 타면 된다. 두어 시간마다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이따금 타고서 읍내를 다녀오면 되고. 시골에서 살며 자가용을 건사할 까닭이 없다. 큰고장에 살 적에도 자가용을 둘 까닭이 없다. 요즈막에 ‘쓰레기 없애기(제로 웨이스트)’를 말하는 분이 많은데, 그렇게 소리높이거나 애쓰지 않아도 좋다. 씽씽이(자가용)·보임틀(텔레비전) 두 가지부터 치우면 된다. 이다음으로 잿빛집(아파트)을 털어내고, 조금 애쓰고 싶다면 싱싱칸(냉장고)을 버릴 수 있다. 싱싱칸을 버린다면 손전화하고 셈틀도 버릴 만하겠지. 또는 손전화나 셈틀을 쓰는 칸을 집 한켠에 놓고 일할 적에만 쓰면 된다. 이렇게 하면 쓰레기는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지거나 확 준다. 《Coyotes》를 1946년 책으로는 장만하지 못했지만 2007년에 새로 찍은 판으로 장만했다. 목돈을 모아 옛판도 장만할 생각이다. 코요테·늑대·여우랑 들짐승이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갈 적에는 사람도 푸르면서 아름답게 살림을 짓는구나 싶다. 고라니·너구리·맷돼지에 숲짐승이 살 틈을 내준다면, 우리나라는 아주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3.


《쿄카 요괴비첩 상》

 이마 이치코 글·그림/서수진 옮김, 미우, 2020.10.15.



얼핏 살짝 드는가 싶던 비가 잇달아 내린다. 저녁까지 내내 온다. 올해는 비가 살짝 잦은가 싶으나, 비가 하루이틀쯤 내린 다음에는 어김없이 사나흘이나 엿새 즈음 맑다. 알맞게 하늘을 씻고, 살그마니 땅을 쓸어 준다. 이토록 고맙게 내리는 비라면 온누리가 맑을 만하다. 우리 집에는 보임틀(텔레비전)을 안 두니 날씨가 어떨는지 날씨터(기상청) 말을 듣지 않는다. 날씨는 바람이며 하늘이며 이슬이며 풀꽃으로 읽으면 된다. 옛말에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가 있다. 개미를 살펴보아도 어림할 만하니, 개미가 풀밭에 바글거리면 비가 아직 안 온다는 뜻이요, 개미가 풀밭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면 곧 비가 온다는 뜻이다. 《쿄카 요괴비첩 상》을 읽었다. 《백귀야행》이 익숙하다면 이 그림꽃책도 곁에 둘 만하다. 문득 생각하니 ‘시공사’는 그림꽃책을 거의 접었으나 《백귀야행》만큼은 꾸준히 우리말로 옮긴다. ‘전두환 아들내미 펴냄터’라지만 이 대목은 돋보인다. 님이란 내가 아닌 사람을 고이 맞이하는 이름이다. 동무도 이웃도 너도 모두 님이다. ‘남’이 ‘님’이다. ‘놈’이라 안 한다. 거꾸로 동무나 이웃이나 네가 볼 적에 ‘나(내)’도 ‘님’이 되지. 서로 님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늘 마음을 읽을 만하다. 날씨까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2.


《그림자 동물》

 우리 오를레브 글·밀카 시지크 그림/한미희 옮김, 비룡소, 2000.11.25.



서울에서 찾아온 이웃님을 만나러 고흥읍으로 간다. 같이 낮밥을 먹고서 물가 쉼터에 가서 앉는다. 예전에 논밭이던 곳을 고흥군에서 싹 밀어 엄청 커다랗게 고흥군청을 올렸고, 이 곁에 하늘을 찌르려는 잿빛집을 올린다. 새삼스러운 잿빛덩이인데, 이런 군청이며 잿빛집이 자랑스럽거나 즐거울까? 창피하거나 바보스럽지 않을까? 시골이 시골인 까닭은 냇물이 맑고 멧골이며 숲이 푸르기 때문이 아닌가? 시골 군청은 더욱 수수하면서 둘레에 숲을 품는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나라나 고을에 돈이 없지 않다. 돈이 뒷주머니로 흘러들 뿐이다. 《그림자 동물》을 읽었다. 좋다. 맑글(동화)이란 이렇다. 쉽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하고 즐겁기에 맑글이다. 어린이한테 삶을 비추어 주고, 어른한테 삶을 되새겨 주는 글이 맑글이지. 몸눈으로만 이웃을 느끼거나 보지 않는다. 마음눈으로도 이웃을 느끼거나 본다. 우리는 어떤 책을 읽으며 즐거울까? 우리는 어떤 이웃을 사귀며 반갑고 아름다울까? 즐거우면서 아름다울 길에 서기에 삶이라고 본다. 반가우면서 사랑스레 짓기에 살림이라고 본다.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나라인데, 벼슬아치(공무원)하고 싸울아비(군인)를 줄이고, 배움터(학교)도 줄여야지 싶다. 우리 스스로 삶을 지을 노릇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4호
브로드컬리 편집부 지음 / 브로드컬리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1.4.11.

인문책시렁 176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조퇴계 엮음

 브로드컬리

 2018.2.15.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조퇴계 엮음, 브로드컬리, 2018)을 읽고서 ‘새터님(이주민)’이란 이름을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다들 한자말로 ‘이사·이주’ 같은 낱말을 쓰는데, 우리말로는 ‘옮기다’이고, ‘새터’를 찾는 발걸음입니다. 북녘을 떠나 남녘으로 온 사람도 ‘새터님’일 테고, 서울을 떠난다든지 큰고장을 등지는 사람도 ‘새터님’입니다.


  그런데 어떤 새터님도 처음 며칠이나 몇 이레나 몇 달쯤만 새터님일 뿐, 어느덧 ‘마을사람’이 됩니다. 길을 익히고 이웃을 헤아리고 하늘빛하고 햇볕하고 비바람을 받는 사이에 똑같이 마을지기란 자리에 서요.


  한 달을 살았건 두 해를 살았건 열 해를 살았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곳에 발을 담그면서 찬찬히 뿌리를 뻗으면 다 ‘마을사람’입니다. 굳이 ‘텃사람·새사람’을 갈라야 하지 않아요. 어느 마을 어느 자리에서든 스스로 하루를 사랑하면서 살림을 짓고 싶다면 ‘마을사람’이요, 집이며 몸은 마을에 있되 돈벌이에만 매달리면 ‘돈바치’입니다.


  제주에 깃든 지 세 해가 안 되는 가게지기 목소리는 그 고장에서만 들을 만한 목소리는 아닙니다. 어느 고장 어느 가게에서도 한결같이 들을 만한 목소리예요. 책이름에서 ‘제주’를 가린다면 다 매한가지입니다. 책이름에서 ‘세 해’를 가려도 그래요. 세 해가 안 되든 서른 해가 넘든, 부대끼거나 복닥이거나 맞닥뜨리는 이웃이며 살림은 어디를 가서 물어봐도 똑같습니다.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이 좀 남다르게 틀을 짜서 책으로 엮으려는 뜻은 알겠지만, 참말로 ‘제주·세 해·새터·가게’란 길을 얼마나 깊거나 넓게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좀 아쉽달까요.


  저라면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대목은 하나도 안 물을 생각이에요. 굳이 물어봐야 하지 않아요. 다 다른 사람이요 다 다른 가게인 만큼 뭘 물어보려 하지 말고, 그곳을 느긋하게 누리면서 ‘스스로 무엇이 즐거운가’를 가게지기한테 들려주면 가게지기는 손님 이야기를 듣고서 이녁 이야기를 한결 스스럼없이 노래하듯 피워 내리라 봅니다. 다만, 책을 엮은 분이 틀에 박힌 말만 묻더라도 여러 가게지기는 스스로 할 말만 하시기도 하더군요. 그렇지요, 스스로 할 말이 있는 사람이기에 새터를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알다시피 제주도에 부동산 붐이 있었다. 갑자기 집값이 뛰다 보니, 마을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월세 비교하고 그랬다. 누구는 방 한 칸에 얼마를 받는데 너희는 그것밖에 못 받느냐, 그런 식으로 서로 부추기는 상황에서 근거가 무슨 소용이겠나. (49쪽)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시간이 문제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누가 시킨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미래의 성공이나 실패와 관계없이 이미 어느 정도의 성취감을 느낀다. 구태여 앞날을 불안해 할 이유는 없다고 감히 생각한다. (107쪽)


자연이 생각보다 가깝지 않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내권은 차를 타고 20분은 나가야 바다를 볼 수 있다. (2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