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만에 '살림꽃 이야기(아버지 육아일기)'를 쓴다.

2017년 12월 7일에 선보인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책을

거의 끝으로

육아일기를 안 썼다.

이제 그만 써도 되리라 여겼다.


'아저씨(남자)가 쓰는 시골 살림글'이 읽히기에는,

또 읽힌 다음에 삶으로 녹아들기에는

아직 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새로 쓰면 되지.


새로 쓰는 '살림꽃 이야기'는

짧고 굵게 엮을 생각이다.


글을 매듭짓고서 책으로 낸다면

책이름은 <살림꽃> 세 글씨로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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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22 샘물 같은 님



  나라에서 펴낸 낱말책에 ‘선생님’이 올림말로 나옵니다. “‘선생’을 높여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일본은 ‘선생(先生)’을 매우 자주 흔히 씁니다. 일본이라면 이 말씨로 넉넉할 테지만, 우리는 달라요. 우리말 ‘스승’이 있고, ‘길잡이·길라잡이’하고 ‘이슬떨이·이슬받이’도 있어요. 그리고 경상도에서 고장말로 ‘샘·샘님’을 두루 써요. 어느 모로 본다면 ‘선생님’을 ‘샘·샘님’으로 소리낸다고 여길 테지만, 새로 본다면 “숲에서 싱그럽게 새로 솟아서 온누리를 맑게 돌보는 물 (숲노래 말꽃)”인 ‘샘·샘물’을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새말로 삼을 만합니다. 낱말책은 누구하고라도 어깨동무하는 징검다리 노릇을 하는 꾸러미예요. ‘샘·샘님(←선생·선생님)’을 오늘부터 즐겁고 새롭게 받아들여 누릴 수 있도록 뜻풀이를 새로 붙여 봅니다. “숲이나 멧골에서 비롯하여 온누리를 시원하고 포근하며 새롭게 적시고 돌보는 물줄기처럼, 누구라도 슬기롭고 상냥하게 가르치면서 스스로 새롭게 배울 줄 아는 몸짓이 되고, 언제나 부드럽고 너그러운 품이 되어 즐거이 앞장서고 먼저 살림을 지어서 익힌 하루를, 차근차근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 (숲노래 말꽃)”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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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21 뜻풀이 해내기



  ‘나무’는 ‘나 + 무(모)’나 ‘나 + ㅁ + ㅜ(ㅗ)’인 얼개입니다. 나무를 어떻게 풀이하면 어울리면서, 나무 숨결을 찬찬히 짚고서 이야기를 엮는 실마리를 누릴 만할까요? 서울에서 자라는 나무랑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얼마나 다르거나 닮을까요? 먼 옛날 살던 나무랑 오늘날 사는 나무는 얼마나 다르거나 같을까요? 마당에 씨앗으로 심어서 돌본 나무하고 길거리에 있는 나무는 얼마나 다르거나 비슷할까요? 붓꾼(학자)은 “나무 : 1.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여러해살이 식물 2. 집을 짓거나 가구, 그릇 따위를 만들 때 재료로 사용하는 재목 3. 땔감이 되는 나무 (국립국어원 말꽃)”처럼 풀이하더군요. 이 풀이가 마음애 든다면 그냥 지나갈 테지만, 아무래도 새로 뜻풀이를 해야 어울리겠구나 싶으면 “나무 : 1. 줄기와 가지가 단단하게 굵으면서 흙에 뿌리를 내리며 오래도록 사는 목숨 2. 집을 짓거나 살림을 짜거나 그릇을 깎을 때에 쓰려고 밴 나무 3. ‘땔감’이 되는 나무를 가리키는 이름 (숲노래 말꽃)”처럼 새길을 찾을 만합니다. 그리고 “나무 : 내(사람) 곁·둘레에서 부드럽고 상냥하게 감싸며 어우러지는 숨결이 되는 사이 (숲노래 말꽃)”처럼 보탬말을 달 수 있어요. 뜻풀이를 하면서 이웃 숨결을 새로 사귑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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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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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넋


숲에서 짓는 글살림

50. 어린이하고 어깨동무



  어느 책을 읽다가 ‘책임 방기’라는 일본 말씨가 나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말씨를 쓰신 분은 일본 말씨인 줄 몰랐을 수 있고, 알면서 쓸 수 있으며, 이 말씨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 방기’는 이 말씨를 아는 사람한테는 뜻이 흐르겠으나, 어린이나 시골사람한테는 뜬금없거나 엉뚱하다 싶기 마련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말은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으로 써야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써야 ‘옳거나 바르다’가 아닙니다.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줄 아는 눈빛이 되고 입술이 되며 손길이 될 적에 다같이 ‘아름답고 즐거우면서 사랑스럽다’입니다.


  말길이란 말이 흐르는 길이면서 말을 쓰는 길입니다. 글길이란 글이 흐르는 길이면서 글을 쓰는 길이고요. 어린이가 읽는 모든 책은 어른이 쓰고 엮어요. 어른끼리 읽는 모든 책도 어른이 쓰고 엮습니다. 어린이가 새뜸(신문)을 펴도, 또 어린이가 보임틀(텔레비전)을 켜도, 모든 어른이 쓰고 엮고 지은 말이 흐릅니다. 배움터에서 펴는 배움책(교과서)도 모조리 어른이 쓰고 엮지요.


  자,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는 눈빛이요 입술이며 손길인가요? ‘책임 방기’ 같은 일본 한자말을 그냥그냥 쓰는 어른인가요? 아니면, ‘팽개치다’나 ‘내버려두다’나 ‘등돌리다’나 ‘고개돌리다’처럼, 어린이하고 함께 알아듣고 헤아리는 말씨로 추스르는 어른인가요?


  어른들은 한자말 ‘무명(無名)’하고 우리말 ‘이름없다’를 섞어씁니다. 다만, 낱말책에는 아직 ‘이름없다’가 안 실립니다. 이와 맞서는 ‘이름있다’도 낱말책에 아직 없어요. 어른들이 어린이를 헤아린다면 ‘무명·유명’이란 한자말을 ‘이름없다·이름있다’로 손질할 뿐 아니라, 이 두 가지 쉬운 우리말도 낱말책에 실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생각한다면 ‘수수하다·투박하다’나 ‘조용하다·고요하다’ 같은 낱말로 이름없는 모습을 나타낼 만합니다. ‘드날리다·나부끼다·뜨다’나 ‘잘나다·자랑하다·알려지다’ 같은 낱말로 이름있는 모습을 나타낼 만해요. 어린이한테 이런 비슷하면서 다른 여러 말씨를 알려줄 만하겠지요.


  우리말 ‘고요하다’를 놓고 더 헤아려 봅니다. 이 우리말 하나를 한자말 ‘한적, 한가, 소강상태, 무풍지대, 무(無), 선(禪), 선정(禪定), 무아지경, 무아경, 무아, 무념, 무념무상, 편안, 달관, 달관적, 초탈, 묵상(默想), 정적(靜寂), 정적(靜的)’ 같은 자리를 나타내려고 쓰곤 합니다. 거꾸로 본다면 ‘고요하다’는 이렇게 여러 갈래로 쓸 만한 깊고 너른 낱말입니다. 어린이한테 우리 말결을 이렇게 들려주면서 노래한다면, 애써 우리말을 살려쓰거나 바로쓰자고 외치지 않아도, 어린이 스스로 말빛을 한껏 가꾸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자랄 만하리라 봅니다.


 꽃날·꽃철·아름철·좋은날


  어린이한테 ‘평화’를 가르치려고 애쓰곤 합니다만, 정작 ‘평화’가 어떠한 결이요 길이며 삶인가를 뚜렷하게 못 밝히지 않을까요? 싸우지 않기에 평화가 아니고, 밥을 나누기에 평화이지 않아요. 더 깊고 너른 길이 있습니다.


  다섯 살 눈높이로 생각해 봐요. 일곱 살 눈어림으로 바라봐요. 아홉 살 눈빛으로 ‘평화’를 단출하게 나타내 봐요. 저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면서 ‘평화’를 손이나 혀에 안 얹습니다. ‘고요하다’로도 이 결을 나타내고, ‘기쁘다·넉넉하다·따사롭다’라든지 ‘아름답다·사랑스럽다·즐겁다’란 낱말로도 나타내요. 단출하게 ‘꽃날·꽃철’이나 ‘아름날·아름철’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꽃이 되어 살아가는 때이기에 꽃날이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꽃처럼 빛나는 삶이기에 꽃철이라고 말해요. 서로 아름답게 살림을 짓는 때이니 아름날입니다. 다같이 아름답게 사랑으로 노래할 만하니 아름철이지요.


  요새는 어린이한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어른이 무척 많아요. 이렇게 가르치는 일이 나쁠 까닭은 없으나 말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왜 ‘여성운동·여성해방·페미니즘’이란 말에 머물러야 할까요? 날개를 달지 않고 쓰는 말로는 생각날개를 북돋우지 않는다고 느껴요. 금긋기가 되기 쉽습니다.


  위아래를 가르던 나라에서는 여태껏 어느 한켠을 억누르거나 짓밟거나 들볶는 몸짓이었습니다. 위아래를 가르지 않는 곳에서는 사내도 가시내도 위나 아래에 서지 않아요. 위아래를 가르면서 가시내나 사내 가운데 한켠이 억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들볶이는데요, 이제껏 으레 가시내 쪽이 억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들볶여요.


  이 발자취를 돌아본다면, ‘여성운동·페미니즘’이란 “가시내를 위에 세우는 길”이 아닐 테지요. 서로 어깨동무하는 슬기로운 살림길을 찾자는 물결일 테고, 이제껏 짓밟거나 억누르던 바보길이 아닌, 참다이 아끼고 돌보는 사랑길이지 싶어요. 틀이나 수렁을 걷어치워서 너나들이로 어깨동무하는 참다운 삶길이지 싶습니다. 너나들이로 가기에 아름답지요. 어깨동무를 하기에 위아래 없이 즐거워요. 사랑길을 가기에 오순도순 포근합니다. ‘아름길·아름삶·아름사랑’을 생각합니다.


 오순도순·도란도란·포근·따스함


  어른으로서 어린이한테 들려줄 삶길이라면 ‘사랑길’이어야지 싶습니다. 동무가 없이 나보다 여린 남을 밟고 올라서는 다툼판(입시지옥)이 아닌, 서로 아끼면서 손을 맞잡을 줄 아는 어깨동무인 사랑길을 들려주고 알려주고 가르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어깨동무란 ‘손잡기’이기도 합니다. 서로 손을 잡고서 나아가기에 어깨동무예요. 이 길은 참다이 따스합니다. 이 삶은 언제나 포근합니다. 이 하루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입니다. 이때에는 오순도순 어우러집니다.


  어른끼리 아는 어려운 말(거의 모두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영어·옮김 말씨이지요)을 어른 스스로 떨치거나 씻어내거나 버리지 않는다면, 이 또한 어른 스스로 어린이한테 굴레나 사슬을 씌워서 들볶거나 괴롭히는 짓이지 싶어요. 가시내하고 사내가 사이좋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슬기롭고 즐거웁듯, 어린이하고 어른이 상냥하고 손잡거나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가꾸는 사랑을 찾아야 아름다우면서 기쁜 노릇이 된다고 느껴요.


  저는 ‘곁님’이란 낱말을 지어서 쓰는데, 여성해방도 페미니즘도 성평등도 아닌, 그저 어깨동무요 손잡기요 사랑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내’란 낱말은 무늬는 한글이되 일본 한자말 ‘내자(內子)’를 그냥 옮긴 말씨입니다. ‘안사람’도 매한가지예요. 그런데 ‘아내·안사람’은 일본 한자말을 베낀 말씨를 넘어, 사랑스럽게 가꿀 살림하고 동떨어진 이름이에요. 집안일은 두 가시버시가 함께해야지요. 집밖일도 두 가시버시가 같이하고요.


  예부터 우리말은 금을 안 긋습니다. ‘놈·년’처럼 가르는 때는 드뭅니다. ‘동무’란 말은 가시내도 사내도 써요. ‘어린이·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여보’도 그렇지요. 이러한 결을 살펴 “서로 곁에서 돌보고 사랑하는 사이”를 나타낼 ‘곁님’이란 낱말을 지었어요. 페미니즘 아닌 사랑길·아름길을 생각했어요.


 어깨동무·아름사랑


  쉽게 여기면 쉽습니다. 어렵다고 손사래치거나 등돌리거나 고개짓거나 멀리하면 내내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자꾸 넘어지다가 다릿심이 붙어 씩씩하게 달리는 모습을 떠올려요. 아이들이 새로 듣는 말씨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말살림을 가꾸는 나날을 그려요. 우리 어른도 얼마든지 사랑으로 부드럽고 쉬우면서 즐겁게 말하는 아름다운 말빛이 될 만합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걷어내기’가 아닙니다. 어린이한테 삶을 슬기롭게 가꾸는 상냥한 노래 같은 말을 즐겁게 들려주도록 우리 어른들 말씨를 가다듬으면 좋겠어요. 아름사랑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시골하고 어깨동무해요. 숲하고 어깨동무해요. 바다하고 어깨동무해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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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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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 12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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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675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 12》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이지혜 옮김

 학산문화사

 2019.8.25.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 12》(시노하라 치에/이지혜 옮김, 학산문화사, 2019)을 읽다가 조금 지쳤다. 열두걸음에 이르는 동안 줄거리가 되풀이로 흐른다. 그린님 붓끝은 여기까지일까? 앞자락에서 담은 말(만화대사)을 뒤에서 똑같이 담지 말아야 하지는 않으나, 앞에서 담은 말을 자꾸자꾸 써먹는다면, 이러면서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는 말을 엮어내지 못한다면, 이제 그만 그려도 되겠지. 큰틀에 맞추어 줄거리가 있어야 하기에 더 그린다면 너무 느슨하다.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조금 더 큰 누리를 맞이하면서 한결 자라나는 철든 사람이 되는 길을 그리기에 비로소 이야기라고 본다.


ㅅㄴㄹ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면 제위에 오르지 못한 황자는 목숨을 잃는다. 그것이 이 제국의, 이 후궁의 법칙. 나는 그것이 두렵다. 어떤 황자가 즉위하더라도 다른 황자가 죽지 않는 후궁으로 만들고 싶어.’ (16쪽)


‘나 자신이, 내 손으로 움켜쥐고 내 발로 딛고 걸어갈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야. 내가 하지 않으면 이 후궁은 바뀌지 않아!’ (44∼45쪽)


‘참다운 의미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이 정도의 행운을 갚지 않아도 되는 걸까?’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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