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더 높아! 개암 그림책 1
지안나 마리노 글.그림, 공경희 옮김 / 개암나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그림책 2021.4.28.

그림책시렁 632


《우리 집이 더 높아!》

 지안나 마리노

 공경희 옮김

 개암나무

 2013.3.3.



  집은 즐겁게 살도록 지을 노릇입니다. 집을 지을 적에 터럭만큼이라도 ‘옆집보다 크게’라든지 ‘다른 집을 내려다볼 만큼’ 같은 생각이 깃든다면, 이 생각을 고스란히 뒤집는 일이 벌어집니다. 오늘날 큰고장에서 끝없이 올라가는 잿빛집이 이와 같아요. 모든 잿빛집은 골목마을을 내려다볼 뿐 아니라, 더 값나가고 더 우람한 길로 가는데, 이런 잿빛집이 들어서기 무섭게 옆에 더 값나가고 더 우람한 잿빛집이 들어서기 마련입니다. 《우리 집이 더 높아!》라는 그림책이 들려주기도 합니다만, 모름지기 ‘숲결을 싱그러이 사랑하는 숨결’로 집을 지을 노릇입니다. 서른 해나 쉰 해쯤 뒤에 다시짓기(재개발)을 할 집이 아닌, 이백 해나 오백 해를 내다보면서 느긋이 보금자리로 누릴 마을을 헤아려야지요. 즐거이 누릴 살림집이라면 시끄럽게 때려짓지 않습니다. 기쁘게 어우러질 살림터라면 마구마구 높이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물려줄 터전이라면 땅을 어지럽힐 쓰레기가 나오는 잿빛집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 나라를 봐요. 앞으로 모든 싸움연모(군사무기)는 서른 해 뒤에 어떡해야 할까요? 우리는 마을·나라·별을 조금도 생각 않는 하루이지 않나요?


#tootallhouse #GiannaMarino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릴레오 갈릴레이 - 별 세계의 전령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5
피터 시스 글.그림, 백상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2021.4.28.

그림책시렁 615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터 시스

 백상현 옮김

 시공주니어

 1999.6.30.



  우리 집 큰아이가 매우 어릴 무렵에 ‘머스마’로 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고는 아직도 ‘가시내’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만 보면 숱한 어른이며 아이는 ‘동무나 이웃’으로 마주하지 않고서 ‘가시내 머스마’로 가르려 하고 ‘나이가 몇 살’인지를 따지려 합니다. 누가 저한테 몇 살이냐고 물으면 웬만하면 말을 안 합니다. 서로 동무나 이웃으로 지내려 한다면 나이를 알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밝히는 길에 궁금한 대목이 없기에 그저 나이만 바라보고, 가시내냐 머스마냐로 가른다면, 우리 눈빛은 발돋움할 길을 스스로 막아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눈을 뜨지 않는 삶터’가 어떤 굴레인가 하고 들려줍니다. 마음이라는 눈을 안 뜬다면 겉모습조차 못 훑기 일쑤입니다. ‘눈 가리고 코끼리 짚기’만이 아닙니다. ‘눈 안 가리고 코끼리 짚기’를 해도 코끼리를 못 알아보기 일쑤이거든요. 온별누리는 온갖 연장을 써야 알아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을 디딘 이 별도 ‘과학·기술·이론’만으로는 겉훑기입니다. 마음에 모든 실마리랑 빛이랑 사랑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ㅅㄴㄹ


다만, 이 그림책은

옮김말이 너무 엉성하다.

아이들한테 읽히려고

옮김말을 죄다 죽죽 긋고서

새로 붙여 주느라 애먹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포알 심프 비룡소의 그림동화 67
존 버닝햄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2021.4.28.

그림책시렁 620


《대포알 심프》

 존 버닝햄

 이상희 옮김

 비룡소

 2001.8.6.



  모두한테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얼핏 소리가 같을는지 몰라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랑이며 마음이 흘러서 붙인 이름이 ‘같은 소리’이더라도 ‘같은 사랑이나 마음’이지는 않습니다. 모두 다르면서 새로운 숨결이 흐르는 사랑인 줄 안다면, 어떤 겉모습이더라도 안 휘둘립니다. 모두 다르면서 새로운 숨결이 흐르는 사랑인 줄 알아보려 하지 않거나 마음을 틔우지 않으니 늘 겉모습에 얽매입니다. 남을 보면서 겉모습을 따지는 사람은 누구보다 스스로 겉모습을 따져요. 이웃한테서 마음빛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마음빛을 가꾸는 하루를 누립니다. 《대포알 심프》를 펴면 심프를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손길이며 생각이며 눈길이며 마음이 다릅니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니 저마다 다르게 볼 테지요. 그렇다면 겉모습 아닌 속마음으로 보는가요? 살빛이나 생김새가 대수로운가요? 말짓이나 몸차림을 따지는가요? 날씬해도 제비이고 토실해도 제비입니다. 날렵해도 고양이요 느릿느릿해도 고양이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우리 아이요, 빨리 달려도 우리 아이입니다. 이 아이들 속빛을 헤아리면서 같이 나아갈 즐거운 하루를 그립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체스터
아야노 이마이 글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느림보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2021.4.28.

그림책시렁 658


《체스터》

 아야노 이마이

 선우미정 옮김

 느림보

 2008.2.4.



  누구나 스스로 보고픈 곳을 봅니다. 보고픈 곳을 보기에 잘못이지 않으며, 보고픈 대로 본다고 나쁘지 않습니다. 보고픈 곳만 옳거나 맞다고 여기니 어긋나고, 보고픈 대로 보면서 둘레를 깎아내리거나 괴롭히니 엉뚱하지요. 오늘 이 삶터를 보면 어린이를 반드시 배움터에 밀어넣어서 마침종이를 따도록 내몹니다. 마침종이를 따기까지 줄도 잘 서야(시험성적) 한다고 몰아붙여요. 열두 해 배움터살이로 모자라 네 해 더, 또는 다시 네 해 더 시키곤 하지요. 어린이가 스스로 삶터나 배움터를 고르면 안 될까요? 어린이가 스스로 사랑길과 살림길을 익히면 안 되나요? 《체스터》에 나오는 아이는 ‘개’라는 모습입니다만, 깃들 자리가 없어서 헤맵니다. 이쪽으로 떠나고 저쪽으로 옮깁니다. 몸을 누일 자리는 아주 작아도 되는데, 이 작은 틈마저 내주지 않으려는 터전입니다. 신나게 뛰놀다가 잠자리에 들고플 뿐인데, 이 작은 살림을 봐주지 않으려는 삶터예요. 어른들은 온갖 이름을 앞세워 길을 부수고 새로 깔고 마을을 갑자기 허뭅니다. 어린이가 쉬거나 놀 곳이 아예 없는 오늘날입니다. 어린이한테 빈터가 없다면 어른한테도 열린터가 없는 나날이겠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8
이지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2021.4.27.

푸른책시렁 160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

 이지현

 철수와영희

 2021.3.20.



  《10대와 통하는 법과 재판 이야기》(이지현, 철수와영희, 2021)를 읽다가 속이 꽤 쓰렸습니다. 아무래도 저한테 아픈 구석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어느 대목이 아픈가 하면 “꼭 여성만 강간 피해를 입을까요?”입니다. 이제는 이런 말을 어렵잖이 할 만합니다만, 2000년으로 접어들고 2010년이 되었어도 이렇게 말하기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내(남성)가 가시내 못지않게 노리개질(성폭력)에 시달리면서 아픈 어린날·푸른날·젊은날을 보냈는가를 입밖에 내기란 참으로 까마득했어요.


  적잖은 이웃님이 ‘나쁜 뜻은 없다’지만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면서 “남자가 참 여자 아이처럼 생겼다”고 말한다거나 “귀엽게 생겼다”고 말하는데, 어린 사내한테 읊는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노리개질로 탈바꿈하는가를 거의 모르지 싶어요. 이른바 ‘곱상하게 생긴 사내’는 숱한 응큼손에 휘둘린 이 나라입니다. 아니, 이 나라뿐이 아니지요. 로알드 달 님이 쓴 책을 보면 이분도 어릴 적에 노리개질(성폭력)로 얼마나 괴로웠는가를 밝힙니다.


  우리 삶터는 틀림없이 거듭나겠지요? 그러리라 믿고 싶습니다. 다만 2004년에 저한테 노리개질을 한 58년 개띠 시인이 2019년에 ‘광주 문학정신과 뿌리’를 읊는 책을 내놓는 글판인 만큼, 아직 거듭나기까지는 한참 멀었지 싶습니다. 막짓을 일삼은 그들은 어떻게 뉘우치는 말 한마디도 없이 이런 자리를 거머쥐고 저런 이름을 팔까요? 누구나 광주를 말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나 광주를 말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새롭게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익히고 사랑을 배울 푸름이는 ‘법과 재판’을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어질게 맞아들이면 좋겠어요. 허울만 법이 아닌, 껍데기만 재판이 아닌, 왜 어떠한 틀을 잡아서 잘잘못을 따지는가를 살피고, 왜 어떠한 길을 세워서 옳고그름을 밝히는가를 헤아리도록 우리 어른이 길잡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쁜길(악법)은 그저 나쁜길입니다. 길(법)일 적에만 길(법)이지요.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적에만 사람일 뿐, 사람탈을 쓴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나라가 바로서기 앞서 마을이 바로설 노릇이고, 마을이 바로서기 앞서 집안이 바로설 노릇이며, 집안이 바로서기 앞서 수수한 어버이와 어른부터 바로설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수수하지만 가장 빛나는 살림자리에서 우리가 스스로 바로설 적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면서 짙푸른 삶터를 이룰 테지요.


  다만 잘못을 저지른 그들 목아지를 치거나 손목아지를 분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못을 저지른 그들이 모든 돈·자리·이름을 내려놓고서 시골로 삶터를 옮긴 다음, 손수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면서 해바람비를 맞이하는 흙지기 살림을 보내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잘못을 일삼은 그들을 차가운 사슬터에 가두기보다는, 짙푸른 숲으로 보내어 숲사람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내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차가운 사슬터에 가두면 사람은 더 차갑게 메마르기 마련입니다. 포근한 숲터에 풀어놓아야 사람다운 길을 스스로 알아볼 틈이 생깁니다.


ㅅㄴㄹ


지금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소수자를 희생시키는 방식을 인정하지 않아요. (17쪽)


꼭 여성만 강간 피해를 입을까요? (32쪽)


우리 스스로 외모나 성격에 대한 편견은 없는지, 학교 성적으로 친구에 대한 선입견을 품은 적은 없는지 떠올려 보세요. (35쪽)


주변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때조차도 무심하게 지나친다면, 법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반대로 도움을 받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고 외려 자신을 왜 도왔냐고 상대를 비난하며 소송을 벌인다면 이것이 과연 그 법의 취지에 걸맞은 일일까요? (56쪽)


우리나라에서는 판결을 잘못했다고 판사가 처벌을 받지는 않아요. (78쪽)


유럽 국가들 중에는 법 왜곡죄를 형법에 두고, 잘못된 재판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어요. (79쪽) 


가짜 논리로 누가 가장 많은 혜택과 이득을 얻었을까요. 바로 총칼로 권력을 잡은 그 당시 독재 정권입니다. (143쪽)


악법은 우리의 힘으로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합니다. 법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정당성을 따져 보고 국민을 위한 법인지 살펴보아야 해요. 악법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1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