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5 숨



  돌봄터(병원)에서는 저를 ‘만성축농증’이라고 했습니다. 워낙 고삭부리라 아픈 데를 잔뜩 달고 사는 저였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코 탓에 이비인후과를 날마다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집안일이며 곁일(부업)이며 몹시 바쁘고 힘든 어머니는 돌봄터에 치르는 돈뿐 아니라 돌봄터를 오가는 품이며 찻삯도 버거워 돌봄터 지기한테 묻습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수술을 해야지요.” “수술을 하면 낫나요?” “아뇨. 수술을 해도 안 낫습니다.” 옆에서 이 말을 듣다가 벙 쪘습니다. ‘코를 째도 안 낫는다면서 코를 왜 짼다고! 네(의사) 코도 아니잖아!’ 돌봄터에서는 붙이기 쉬운 이름을 붙였을 텐데, 저는 코로도 입으로도 숨을 쉬기 어려운 나날을 39살까지 보냈습니다. 숨막혀 죽는다는 말을 내내 되새겼어요. 숨을 못 쉬면 1초도 버티기 힘든 서른아홉 해인데, 둘레에서는 “숨 좀 못 쉰다고 뭐가 아프다고 그래?” 하더군요. 이런 말을 외는 분은 눈코귀입을 다 막고 1시간 아닌 1분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요? 숨이 늘 가쁘고 벅찬 나날을 보냈기에 꿈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숨쉬기로도 바쁜걸요. 문득 돌아보면 이 숨을 쉬는 동안 오늘이 저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장 아름다운 날로 여겨서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구나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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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27.


《그림책이라는 산》

 고정순 글, 만만한책방, 2021.3.12.



2011년에 전남 고흥에 깃들면서 후박나무를 처음 알았다. 우리가 이 집에 깃들기까지 내내 줄기가 뭉텅뭉텅 잘리면서 시달리던 이 나무를 날마다 쓰다듬고 곁에서 속삭이는 사이에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큰나무가 되었다. 잎도 가지도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죽어가던 나무는 네 사람 손길하고 숨결을 먹으며 짙푸르게 컸지. 뒤꼍 뽕나무도 후박나무 못지않게 예전 임자한테 들볶였지만 열한 해 사이에 우람나무로 우뚝 선다. 두 나무를 지켜보며 생각한다. 해바람비에 즐거운 사랑을 머금으면 ‘죽는 일’이란 없고 ‘사는 길’이 피어나지 싶다. 《그림책이라는 산》을 구미 〈그림책산책〉에서 장만했다. 곁님이 먼저 읽다가 ‘서머셋 모옴’이 한 말을 읊는다. 서머셋 모옴은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은 전업작가 아닌 부업작가여야 한다’고 말했단다. 곰곰이 보면 내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길은 늘 곁일(부업)이다. 여태 곁일로 살림돈을 벌어서 겨우겨우 우리말꽃을 쓰는 밑천을 삼는다. 온일로 우리말꽃을 쓴다면 훨씬 빠르고 알차게 끝맺을 수 있을까? 글쌔, 잘 모르겠다. 곁일이기에 외려 더 느긋이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돌보기도 한다. 곁일이기에 되레 더 천천히 두고두고 바라보면서 가꾸기도 한다. 그림책은 멧갓 아닌 그림책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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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4.25.


《더우면 벗으면 되지》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양지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2021.2.17.



어제 포항에서 네 군데 마을책집을 다녔다. 두 다리로 다니자면 하루가 꼬박 든다. 더구나 빛꽃눈(사진기 렌즈)이 숨을 거두는 바람에 새로 장만하려고 한동안 헤매기까지 했다. 해질녘에 닿은 〈지금책방〉 지기님은 “다른 책방으로 마실을 가면 책을 늘 10권도 넘게 사요.” 하고 말씀한다. 나도 매한가지인데 이제는 책을 줄이고 또 줄이려 한다. 적게 사는 책이 한 해에 1000∼2000이다. 차마 1000 밑으로는 못 줄인다. 《더우면 벗으면 되지》는 재미있는데 사나 마나 망설이다가 내려놓았다. 아쉬운 대목 몇 군데를 보고는 ‘몇 군데가 아쉽다는 핑계’로 이다음에 장만하자고 생각한다. 어젯밤에 진주에 닿았다. 진주 남강 곁에 있는 헌책집에서 ‘밤수다’를 폈고, 아침에 고흥으로 돌아간다. 책집이 있는 큰고장을 벗어나서 두멧시골인 고흥으로 다가설수록 하늘빛이며 바람결이 바뀐다. 전남 고흥에는 마을책집이 없지만 파란하늘에 푸른숲이 있다. 마을책집이 있는 큰고장에는 파란하늘도 푸른숲도 없으나 바로 마을책집이 있다. 두멧시골에서는 풀꽃나무랑 하늘을 누리고, 큰고장에서는 마을책집을 누린다. 진주 이웃님이랑 고흥으로 왔는데 “이렇게까지 고흥이 먼 곳인 줄 몰랐다”고 말씀한다. 고흥은 큰고장하고 멀어서 푸른 시골이다. ㅅㄴㄹ


#あつかったらぬげばい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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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1.4.28.

오늘말. 한그루


해보고서 안 되면 안 될 뿐이고, 해보고서 되니 될 뿐입니다. 이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져도 되니까 하지 않아요. 무엇을 할 적에는 이기거나 지려는 생각이 아닌, 어떤 일을 스스로 치르면서 삶을 배우고 사랑하는 길을 열고 싶은 뜻이라고 봅니다. 섣불리 뛰어들기에 그르친다면, 의젓하게 맞서지 못하기에 쓰러집니다. 그저 기운을 내요. 잘되기를 바라지 말고, 오늘 이곳에서 싱그러이 피어날 마음을 바라보면서 다시 힘을 내요. 어느 곳이든 한 가지 남새만 심어서 돌보려 하면 흙도 풀도 고단해요. 드넓은 들에 한짓기를 한다면 벌레가 꼬이기 쉬울 뿐 아니라, 흙이 메마릅니다. 돈을 바라본다면 홑짓기가 되고, 살림을 헤아린다면 여러짓기로 나아갑니다. 무엇을 돌보고 싶은가를 생각해 봅니다. 더 얻고 싶은가요, 더 나누고 싶은가요? 더 거두고 싶은가요, 더 사랑하고 싶은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별은 온갖 씨앗을 품기에 아름다워요. 갖은 씨앗이 저마다 다르게 깨어나서 자라니 즐겁습니다. 모두 깍듯이 마주합니다. 귀엽지 않은 꽃이란 없습니다. 부드러이 쓰다듬다가 살포시 안으면 반기는 풀꽃나무예요. 사람도 뭇짐승도 매한가지일 테지요.


ㅅㄴㄹ


해보다·이기다·이겨내다·부딪히다·부딪치다·뛰어들다·달려들다·맞붙다·맞서다·기운·힘 ← 도전의식


한나물·한남새·한푸성귀·홑나물·홑남새·홑푸성귀·하나심기·하나짓기·한심기·한짓기·한그루·홑그루·홑심기·홑짓기·하나 ← 단일작물, 단일재배, 단일경작


깍듯하다·귀엽다·사랑·좋아하다·아끼다·돌보다·보살피다·감싸다·보듬다·안다·품·품다·사랑이·귀염이 ← 총애(寵愛), 총희(寵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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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1.4.28.

오늘말. 마침겨룸


아이들은 배움터에 깃들기까지 겨루는 짓을 모르다가, 배움터에 깃들고 나면 너랑 나 사이에 어떤 줄이 있는가를 살피면서 끝없이 겨룹니다. 어린배움터에 앞서 어린이집부터 겨루기 일쑤요, 어른이 쥐어 준 손전화에 있는 누리놀이는 으레 겨룸판입니다. 철마다 겨루고 달마다 겨루면서 자꾸자꾸 줄세우기를 바라보고 길드는데요, 즐길거리 아닌 온갖 겨룸마당으로 어린날이며 푸른날을 보내야 한다면, 우리 아이들 앞날은 어떤 길이 될까요. 이 푸른별에서 우리나라만큼 ‘아이를 안 낳는’ 나라가 없고 ‘아이를 낳고픈 마음이 없는’ 나라도 없다지요.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어른이 된다면 아이를 낳고플까요? 사랑이며 놀이로 자라지 못한 채 어른이란 몸을 입는다면 사랑으로 아이랑 놀면서 돌볼 수 있을까요? 어디에 눈을 두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착하게 살림을 짓고 참다이 사랑을 속삭이는 하루를 반갑게 맞이하는 터전이어야지 싶어요. 아이들을 사잇겨룸에 마침겨룸에 모둠겨룸에 달겨룸에 허덕이도록 내모는 짓을 멈추고 해맞이를 고요히 하면 좋겠어요. 스스로 따스한 마음이 되어 스스로 사랑하는 어른이 될 적에 비로소 겨룸판을 걷어내겠지요.


ㅅㄴㄹ


새해·새해첫날·새해머리·첫날·첫머리·첫마당·첫무렵·설·설날·해맞이·해머리 ← 정초(正初)


사잇겨룸 ← 중간고사, 중간시험


마침겨룸·끝겨룸 ← 기말고사, 기말시험


모둠겨룸·한겨룸·함겨룸·함께겨룸 ← 일제고사


달겨룸 ← 월말고사, 월말시험


즐길거리·즐김밥·즐기다·좋다·좋아하다·사랑·사랑받다·솔깃하다·반갑다·반기다·입맛·맛·눈·눈길·눈이 가다·마음에 들다·침이 고이다·군침이 돌다 ← 기호(嗜好), 기호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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