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말 2021.5.27.

오늘말. 훤히


어떻게 이 길을 가는가를 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아리송합니다. 이 이야기를 지은 발걸음도, 이 줄거리를 이룬 발자취도 고스란히 혼자 이루지 않거든요. 걸음마다 제가 자국을 남긴다고 하겠지만, 온빛을 돌아보면 숱한 사람이 이바지해요. 숱한 풀꽃나무가 차근차근 동무해 주었고, 풀벌레에 벌나비가 하나하나 찾아들어 거들어요. 어느 일이건 혼자 하지만 모두 혼자 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저마다 찬찬히 받아들이는 물이며 바람이며 해로 우리 몸이 새롭게 태어나니, 우리는 다 다른 나이면서 모조리 같은 우리이지 싶어요. 이 얼개를 헤아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곬을 살핍니다. 오늘부터 읽고 짓는 얘기를 생각하고, 어떤 알맹이를 담으면 즐거울까 하고 돌아봐요. 틀은 단단히 세워도 되겠지요. 앞뒤가 조금 엉성해도 될 테고요. 겉모습을 다독여도 좋으나, 고갱이부터 추스르고 싶어요.  환히 알아차려도 즐거울 테고, 훤히 알아내지 못해도 좋아요. 서둘러 가야 하지 않아요. 궁금한 대목을 푸는 자리를 아침저녁으로 조용히 마련하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마음을 열면서 이 별에 어떤 뜻으로 찾아와서 무엇 때문에 하루를 짓는가 하고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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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틀·곬·얼개·얼거리·이야기·얘기·알맹이·고갱이·줄거리 ← 논점


모두·몽땅·모조리·다·처음부터 끝까지·낱낱이·고스란히·환히·훤히·차곡차곡·차근차근·찬찬히·하나하나·까닭·때문·뜻·앞뒤·흐름·일·대목·판·자리·줄거리·얼거리·틀·이야기·속내·길·걸음·발걸음·자취·발자취·자국·발자국·온모습·온빛·모습 ← 전말(顚末), 전모(全貌)


풀이모임·풀이자리·열린모임·열린자리·궁금풀이·궁금모임·묻는모임·묻는자리 ←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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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5.25. 실실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북녘에서는 ‘붉은피알·흰피알’이란 이름을 쓴다고 합니다. 남녘에서는 진작 ‘붉은피톨·흰피톨’이란 이름이 있었으나 ‘적혈구·백혈구’를 내세운 이름에 밀렸습니다. 몸에 흐르는 피이니 ‘피’라고 말할 뿐이요, 굳이 ‘혈액’이라는 한자말로 옮겨야 하지 않아요. ‘톨’이나 ‘알’은 동그랗게 맺거나 낳는 숨결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밤 한 톨”에 “쌀 한 톨”이고, “능금 한 알”에 “배 한 알”입니다. 열매가 작아 ‘톨’이고, 열매가 조금 커서 ‘알’이요, 열매가 꽤 커서 ‘통’이니, “수박 한 통”니나 “배추 한 통”입니다.


  우리말 ‘톨·알·통’을 쓰면서 말결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말밑을 읽기도 해요. ‘톨·통’으로 잇고, ‘ㅌ·ㄷ’이 맞물리니 ‘돌·동’을 나란히 그리면서 살림살이랑 숲을 더 읽어내지요. 이러구러 본다면 몸에 흐르는 피를 살필 적에는 ‘피알’보다는 ‘피톨’이 어울리지 않느냐고 북녘사람한테 물을 만한데 ‘알’을 ‘쌀알’처럼 쓰기도 하니 ‘피알’이 안 어울린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두 나라에서 다르게 보면서 쓰는 말씨로 여기면서, 서로 말쓰임을 넓히는 발판으로 삼으면 즐거웁습니다.


  새벽나절에 ‘톨·알’을 가누다가 ‘노동집약’이란 일본 말씨를 푸는 실마리를 엿보고, ‘플래시·섬광’을 ‘불빛’으로 가다듬다가, ‘묽기·짙기·깊이’로 ‘농도’를 손보면 되겠다고 느끼고, 일본 영어인 ‘코스프레’를 손질하고는, ‘집사·면봉’을 추스르다가 ‘소개장·추천장’을 담아낼 말씨를 생각하니 어느새 저녁입니다.


  요즈막에 ‘여혐·남혐’이 금긋는 다툼질로 불거지는데, ‘혐’을 붙인 말씨도 일본에서 건너왔습니다. 일본은 ‘혐한’으로 장난질을 쳤고, 우리나라는 ‘혐일’로 맞붙었어요. 우리말로 하자면 ‘밉질’입니다. ‘밉한·밉일’에 ‘밉갓(밉가시내)·밉벗(밉사내)’으로 치닫는데, 막질 못잖은 바보질인 밉질은 이제 끝장내어야지 싶어요. 우리는 싸우려고 다른 몸을 입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사랑을 새롭게 찾으려고 다른 몸을 입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줄 깨닫고 새록새록 사랑하는 이웃이자 동무가 되려고 다른 겨레에 다른 나라에 다른 고장에 다른 마을에 다른 집을 이뤄요.


  배움터나 책으로 ‘다름’을 가르치려면 “사랑하려고 서로 다르단다” 하고 말할 줄 알아야겠고, “서로 다르게 사랑하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짚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러자면 말부터 슬기롭게 가다듬으면서 어린이하고 손을 잡고 놀이하는 쉽고 상냥하면서 포근한 말살림을 지어야겠지요.


  그나저나 아침나절에 ‘성실·건실·견실’을 가누며 갈무리하느라 골이 조금 아팠습니다. 실실실 겹치는 세 한자말은 ‘열매’를 가리킵니다. ‘알’이고 ‘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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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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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5.23.


《보이지 않는 잉크》

 토니 모리슨 글/이다희 옮김, 바다출판사, 2021.1.29.



다시 비. 가볍게 비. 꿈꾸듯 지나가는 하루. 빗소리를 들으면 귀뿐 아니라 온몸이 가볍다. 빗방울을 맞으면 살갗뿐 아니라 온마음이 녹는다. 작은아이가 종이에 그려서 오리는 자동차랑 싸움수레(탱크)를 일산 할머니한테 보내겠노라 한다. 작은아이는 우리 집을 둘러싼 나무나 풀꽃을 그림에 담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보는 자동차나 경찰차나 소방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쳐다보다가 빈틈없이 옮겨낸다. 문득 빛꽃(사진)으로 보는 싸움수레나 싸움배나 싸움날개를 어느새 꼼꼼하게 그려낸다. 《보이지 않는 잉크》를 읽는다. 옮김말이 꽤 먹물스럽다. 먹물스럽지 않게 쓰거나 옮기는 어른을 보기 어렵다. 풀빛스럽거나 바다스러운, 꽃스럽거나 노래스러이 쓰거나 옮기는 어른은 드물다. 흔히 ‘흑인’이란 한자말을 쓰는데, ‘황인·백인’도 매한가지인데, 흙을 만지고 일하는 사람은 살빛이 흙빛이다. 싱그러이 숨쉬는 흙은 누렇지도 노랗지도 않다. 새까맣다. 흙지기 살빛은 흙빛대로 까무잡잡하다. 흙하고 등지면 으레 ‘흰둥이’가 된다. 글을 쓰기 앞서 물을 만지며 집살림을 하고, 흙이며 풀꽃나무를 만지며 사랑살림을 하면 좋겠다. 아이를 돌보고 나서야 글을 쓰고, 맨발로 비노래를 부르고 춤춘 다음에야 글을 쓰거나 옮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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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5.22.


《10대와 통하는 기후정의 이야기》

 권희중·신승철 글, 철수와영희, 2021.5.31.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는 바람맛을 베푼다. 엄청나게 내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베푼다. 지지난해부터 돌림앓이가 불거질 적에 날개(비행기)가 거의 안 뜨면서 하늘빛하고 바다빛이 파랗게 돌아간다고 반기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날개는 확 줄되 자동차가 허벌나게 늘었다. 나라(정부)부터 자동차를 자꾸자꾸 팔려고 한다. 자동차를 새로 사는 사람은 늘 뒷배(보조금)를 받는다. ‘친환경’으로 하면 뒷배를 더 받는다. 그렇다면 두 다리로 걷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막상 뒷배를 할 셈이라면 자가용을 멀리하고 자전거하고 두 다리로 살아가는 사람한테 해야 알맞지 않나? 《10대와 통하는 기후정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후정의’를 외치는 숱한 글님을 새삼스레 생각한다. 요 몇 해 사이에 ‘환경단체 목소리’는 확 사라졌다. ‘숲과 멧골을 밀어내고 때려박는 태양광’에다가 ‘멀쩡한 나무를 베어 새 나무를 심는 탄소감축’에다가 ‘갯벌하고 바다에 세우는 해상태양광·풍력’에 벌써 몇 백 조원에 이르는 돈을 썼으니, 이 나라를 치켜세울 만해서 입을 씻을까? 자가용 안 타는 환경운동·시민운동·노동운동·탈핵운동이 있는지? 적어도 온나라 사람들이 자가용을 두셋 아닌 하나만 몰아도 하늘하고 땅이 나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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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5.21.


《새내기왕 세종》

 권오준 글·김효찬 그림, 책담, 2021.5.15.



부산에 보내기로 한 책을 여태 잊은 줄을 잊다. 지난 부평·서울 마실길에는 바깥에 있느라 못 보냈다면, 고흥에 돌아온 다음에는 몸을 쉬다가 잊어서 못 보냈다. 어제 낮에 누리수다를 함께한 인천 샘물님한테 띄울 노래꽃판을 열아홉 자락 옮겨쓰다가 떠올랐다. 낮 한 시부터 바지런히 옮겨쓰니 낮 네 시가 훌쩍 넘어 끝났고, 부랴부랴 꾸러미에 담아서 우체국으로 달린다. 《새내기왕 세종》을 읽다가 쉬다가 한다. ‘요즘 말씨’로 오백 해 앞선 때를 돌아보는 글이니 어쩐지 안 맞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요즘 눈길’로 오백 해 앞선 때를 읽으려는 글이니 어긋나 보이는구나 싶다. 자취(역사)를 글로 쓰는 어른은 으레 다른 글(책)을 들춰보고서 쓰는데, 하나같이 임금이나 글꾼 둘레에서 머문다. 예나 이제나 ‘수수한 사람(시민·서민·백성·민중)’이 살림하는 이야기를 글로 거의 안 담거나 남기니, 새글을 쓰더라도 옛글에 얽매이고, 임금·글꾼 언저리에서 떠돈다. 옛이야기를 떠올리면 좋겠다. 옛이야기는 임금·글꾼이 아닌 살림꾼·흙꾼·숲꾼·바다꾼 이야기를 다룬다. ‘새내기 흙살림꾼(농부) 바우’라든지 ‘새내기 나무꾼 마루’ 이야기를 쓸 어질며 참한 오늘날 글꾼은 없을까? 다른 책에서 따오지 않는 글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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