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아저씨의 보물찾기 국민서관 그림동화 232
카테리나 고렐리크 지음, 이주희 옮김 / 국민서관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2021.6.22.

그림책시렁 699


《두더지 아저씨의 보물찾기》

 카테리나 고렐리크

 이주희 옮김

 국민서관

 2020.2.18.



  낱말책은 “보물(寶物) = 썩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으로 풀이합니다. “보배 : 아주 귀하고 소중한 물건”으로 풀이하는데, “귀하다(貴-) :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 구하거나 얻기가 아주 힘들 만큼 드물다”처럼 풀이하기에 돌림풀이에 뒤죽박죽입니다. 우리말로 쉽게 하자면 ‘값지다·드물다’라 하겠지요. 땅을 파는 두더지한테는 무엇이 값지거나 드물까 하는 줄거리를 다루는 《두더지 아저씨의 보물찾기》입니다. 이 그림책은 두더지를 그립니다만, 두더지를 비롯한 숲짐승 살림살이는 ‘사람 모습’입니다. 어린이가 귀엽게 바라볼 숲짐승을 그린 셈이지 싶은데, 숲짐승을 그리자면 ‘숲살림’을 바탕으로 ‘숲에서는 무엇이 값질까?’ 하고 그려내면 좋겠어요. 사람살이를 다루고 싶다면 그냥 어린이나 어른을 그리면서 ‘사람한테는 무엇이 값질까?’를 드러내면 되겠지요. 닡말풀이로 어림하기로도 ‘보물·보배·귀하다·귀중·소중’은 “값지면서 드문” 무엇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답고 즐거이 살아가는 길에서는 그저 ‘아름답’고 ‘사랑스’럽기에 ‘즐겁’습니다. 아름빛·사랑빛·기쁨빛은 ‘드물’지 않습니다.


#LachasseautresordeMonsieurTaupe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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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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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6.22.

책으로 삶읽기 691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천년의상상

 2020.11.11.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진중권, 천년의상상, 2020)를 읽었다. 책은 도톰하지만 비슷비슷한 줄거리로 흐르기에 이내 다 읽는다. 간추리자면 “민주당은 내로남불 끝판짓을 일삼아 스스로 무너지고, 따갑게 나무라는 목소리가 아닌 님바라기(팬덤)에 사로잡힌 목소리에 스스로 갇혔다”이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쉽게 빗대어 말할 만하다. 어버이라면 모름지기 아이를 가없이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가 남몰래 막짓이나 검은짓을 한다든지, 동무를 괴롭히거나 돈을 훔친다든지, 이웃을 괴롭히거나 풀꽃나무를 함부로 짓밟는다든지, 들고양이나 들개한테 돌을 던지거나 막말을 일삼는다면, 어버이로서 마땅히 아이를 따끔하게 나무라고 가르치겠지.


님을 바라는 마음은 안 나쁘다. 그런데 막짓과 검은짓과 잘못을 일삼는 님을 그저 따르고 높이기만 한다면 이 나라꼴이 어떻게 될까? 민주당이 저지른 잘못을 따지면 으레 “저짝(국민의 힘) 사람들 잘못은 왜 안 따져?” 하고 되묻더라. 아니, 저짝 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아닌 이짝(민주당) 잘못을 따지는 자리에서 웬 뜬금없는 소리일까? 더구나 민주당은 오늘 이곳에서 ‘권력자·지배자’요, 이 힘(권력)으로 잘못을 저질렀으니 검찰·언론·야당이 민주당을 얼마든지 나무라야 하고, 나무랄 만하며, 꼬치꼬치 파고들어서 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왜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이명박을 사슬에 가두었는가? 사람들이 왜 아직도 전두환을 손가락질하고, 노태우가 고개숙이고 뉘우치는 모습은 다르게 바라보는가? 문재인이나 문준용이라는 이름도 스스로 ‘권력자·지배자’이기 때문에 더 고개숙여야 하고, 더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하며, 더 몸을 숙여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한테 나누어 주고 베푸는 몸짓이 되어야겠지.


우리나라는 힘·돈·이름이 있으면 싸움판(군대)에 들어가더라도 ‘땅개(육군 보병 소총수)’가 되지 않는다. 지난날에는 군대 취사병도 뒷힘이나 뒷돈으로 들어갔다. 요즈음 군대 취사병은 퍽 힘들다지만, 지난날 군대 취사병은 노닥거리면서 먹을거리(부식)를 많이 빼돌렸고, 훈련도 안 뛰고 점호도 안 했다.


글바치인 진중권은 이 나라 밑자락을 이루는 사람(서민·시민·국민·백성·민중·민초·대중)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이 사람은 워낙 글바치(지식인)이기에, 글바치로서 제몫을 하려고 이 나라 힘꾼(권력자)인 민주당을 따박따박 나무라는 말을 들려준다. 진중권이 펴는 말이 다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꽤 옳다. 다만, 진중권이 펴는 말에도 하나가 빠졌다. “자, 그러면 내로남불을 일삼은 민주당과 구닥다리인 국민의힘, 아직도 헤매는 정의당·녹색당은 둘째치고, 여느 사람들이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살림을 사랑스레 짓는 아름다운 길은 무엇입니까?” 하는 말과 생각과 물음이 없다.


요즈막에는 잘잘못을 나무라는(비판) 목소리가 갑작스레 사라지고 파묻혀 버렸는데, 이런 판에 씩씩하게 목소리를 내는 진중권은 여러모로 글바치 노릇을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글바치가 참말로 글바치가 되려면, 낮에는 땅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는 몸짓으로 나아가야지 싶다. 글바치 진중권 씨한테 “전라도에서 세 해 살아 보기”를 여쭙고 싶다. 전라도 보성이나 고흥이나 해남이나 신안처럼, 외지거나 깊은 시골자락에서 세 해쯤 살아 보시면 좋겠다. 이러고서 경상도 시골, 이를테면 영양이나 예천이나 봉화 같은 고장에서 세 해를 살아 보시면 참 좋겠지.


서울이나 큰고장에서 불거지는 잘잘못을 파헤치거나 따지는 눈썰미를 이제는 ‘지자체 깊은 곳에 썩을 대로 썩다가 문드러져 구린내가 펄펄 나는 밑자락’으로 들어가서 살펴본다면, 이녁 글에 엄청난 날개 하나가 돋으리라 본다.


ㅅㄴㄹ


놀이하던 인간들이 언제부터인가 놀 줄을 모르게 되었다. 오늘날의 공장에서는 노동요를 들을 수가 없다. (82쪽)


철학의 빈곤은 통치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발언에는 정작 국민이 듣고자 했던 이야기가 쏙 빠져 있었다. ‘윤미향의 거취를 어찌할 것인가?’ 여당은 범법만 없으면 문제없다며 판단을 검찰에 맡겼다. (224쪽)


무능하나 순결했던 진보는 어느새 유능하나 부패한 보수로 변신했다. 이는 ‘예외’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이다. (256∼257쪽)


사실 민주화 세대는 그동안 꾸준히 보수화 해왔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급속히 체제에 포섭돼 아파트를 가진 중산층으로 변모한다. (271쪽)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지배층이 되었다. 그들이 조국 일가의 일을 제 문제로 느낀 것은, 같은 상류층으로서 계급적 이해를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 그들은 더 이상 ‘비판’하지 않는다. 비판해야 할 그 현실을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그 막강한 영향력으로 대중을 장악해 얼마 남지 않은 희미한 ‘비판’의 목소리마저 잠재우려 한다. (282쪽)


박원순을 위해 성추행 피해자의 지위는 ‘피해호소여성’으로 변경되었다. ‘피해호소여성’이라는 표현은 곧 “나는 너의 말을 믿지 않겠다”는 결연한 집단적 의지의 표명이다 … 그(박원순)가 애써 세워놓은 원칙을 그들(조국과 민주당)은 그(박원순)를 위해 무너뜨렸다. 그러써 그가 이 세상에 다녀간 흔적마저 지워졌다.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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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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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6.22.

책으로 삶읽기 690


《조국의 시간》

 조국

 한길사

 2021.5.31.



《조국의 시간》(조국, 한길사, 2021)을 조용히 읽어 보았다. 글님 이야기로 바깥이 시끌시끌한 듯하지만,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나 그러할 뿐, 시골에서 글님 이야기를 할 일이 없고, 할 사람도 없다. 오뉴월로 접어든 이즈음 시골은 아주 바쁜 일거리는 어느 만큼 마무르는데, 달개비꽃이 파랗게 올라온다. 오동꽃도 눈부시다. 오디가 조금씩 저물지만, 까마중잎이 새롭게 오른다.


이른봄에는 풀벌레가 소리쟁이를 훑으려고 달려든다면, 이른여름에는 풀벌레가 까마중을 갉으려고 달라붙는다. 풀벌레가 좋아하는 풀은 사람한테도 이바지한다. 뽕잎도 취잎도 풀벌레가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르고, 모싯잎도 풀벌레가 매우 좋아한다. 풀꽃나무하고 풀벌레하고 풀살림을 서울이며 큰고장에서 왁자지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아름길을 가리라 본다.


벼슬이나 감투를 얻은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스스로 좁은 울타리에 갇혀서 종이꾸러미만 들여다보거나 셈틀맡에 앉아서 한숨을 쉬거나 하소연을 하는가? 아니면 그들 이름값·힘값·돈값을 고스란히 내려놓고서 맨몸으로 심부름꾼 노릇을 하겠다면서 소매를 걷어붙이는가?


책으로 갈무리한 이야기라면 모든 바깥소리를 끄고서 오롯이 책을 바라보면서 ‘글님이 글줄에 숨기거나 언뜻 비친 마음’을 우리가 스스로 읽으면 된다. 누가 쓴 어느 책을 읽든 그저 속내를 읽으면 된다. 글님 목소리만 읽는다면 님바라기(우상숭배)가 된다.


《조국의 시간》을 읽는 내내 “나와 내 가족이 아프고 힘들다”는 목소리가 줄잇는다. “나와 내 가족을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검찰·언론·야당이 나쁘다”고 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알쏭하다. 검찰·언론·야당이 하는 일이란 지켜보기·지청구(권력감시·권력견제)이다. 민주당이 야당일 적에 하던 일을 오늘날 야당인 곳에서 할 뿐이요, 글님을 비롯한 민주당은 “오늘날 이곳에서 권력자·지배자인 줄 잊은” 듯하다. 누구라도 ‘권력자·지배자’ 자리에 서면 샅샅이 파고들면서 잘잘못을 가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켜보기·지청구(권력감시·권력견제)’를 할 수 있겠는가?


곰곰이 보니 글님은 타고나기를 ‘권력자·지배자’ 자리였고, ‘서민·시민·국민·백성·민중·민초·대중’ 같은 이름인 자리에는 하루조차 선 적이 없구나 싶다. 언제나 위에 서서 부리거나 내려다보는 길만 걸은 탓에,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이하면서 흙을 짓고 살림을 돌보고 아이를 사랑하는 집에서 살아 본 적도 없구나 싶다.


꼭 모든 사람이 배를 곯아 보거나 가난해 보아야 하지는 않다만, 감투나 벼슬을 얻는 자리, 더구나 높직한 감투나 벼슬을 얻는 자리에 서는 이라면, “가난한 사람(저소득층·빈민층)으로 살아 보기”를 적어도 석 달은 해봐야지 싶다. 자가용 아닌 두 다리하고 대중교통(이 가운데 지옥철)으로 일터를 오가고, 반지하 아닌 지하 삯집이나 하늘집(옥탑)에서 한겨울과 한여름을 지내 보고서야 감투나 벼슬을 받아야지 싶다.


또한 여름가을에 들일을 해봐야겠지. 낫으로 풀을 베고 나락을 거두어 보지 않고서야 벼슬아치가 삶을 알 수 있을까? 맨손으로 아기 똥오줌기저귀를 갈고서 자장노래를 부르고 젖떼기밥을 먹여 보지 않고서 살림을 알 수 있을까?


힘꾼(권력자·지배자)이기에 검찰·언론·야당을 탓하겠지. 수수한 사람들은 검찰·언론·야당을 탓할 일이 없다. 검찰·언론·야당 등쌀이 싫다면 감투와 벼슬뿐 아니라 돈·이름·힘을 모조리 내려놓고서 시골에 조용히 깃들어 흙살림을 하기를 빈다. “있는 사람”이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 모든 개혁은 저절로 차근차근 이룬다.


ㅅㄴㄹ


2019년 8월 9일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후 저와 제 가족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습니다. 검찰·언론·야당은 합작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위한 조리돌림과 멍석말이를 시작했습니다. 검찰이 정보를 흘리면 언론은 이를 기초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야당은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 저와 제 가족은 광장에서 목에 칼을 차고 무릎이 꿇린 채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5쪽)


검찰·언론·야당 카르텔에 비판적인 시민들은 ‘조빠’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카르텔의 강변과 주장이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살수(殺手)들은 신이 났습니다. 도끼를 내리쳤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활을 쏘고 창을 던졌습니다.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갈 때마다 쌍욕과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6쪽)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친애하는 벗과 동지들의 권유였습니다. 추후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2019년 8월 9일 이후 벌어진 사태의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 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책을 발간하는 것은 부담이지만, 검찰·언론·야당의 주장만이 압도적으로 전파되어 있기에 더 늦기 전에 최소한의 해명은 해야 했습니다. (7쪽)


찔리고 베이고 부러진 상처가 너무 깊어 아무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면은 더욱 단단해지리라 믿고 희망합니다. 이 고통의 시간이 어떻게 마무리되건, 그 뒤에도 인간으로서의 삶, 시민으로서의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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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6.20.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글, 천년의상상, 2020.11.11.



나라를 놓고 목소리를 내는 글바치(지식인)가 거의 안 보인다. 예전에 글바치였던 이들이 하나같이 벼슬자리에 서거나 감투를 얻거나 힘꾼(권력자)으로 스며든 탓일까? 또는 돈을 잘 버는 곳으로 스리슬쩍 들어갔기 때문일까?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문재인 민주당 권력”이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잘못하면서 이 나라가 뒷걸음을 치게 하는가 하고 하나하나 따진다. 그런데 이 책은 이름부터 아리송하다. ‘진보’가 무너졌다고 할 수는 없다. ‘진보인 척 장사꾼’이 판치면서 참길(진보)을 조용히 가는 사람들 목소리가 아주 파묻혔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다. 이 나라는 아직도 대학교수쯤 되어야 새뜸(언론)에 글을 내거나 말을 할 수 있고, 서울 한복판 이야기가 아니면 귀여겨듣지 않는다. 글바치 가운데 서울을 떠나거나 부산·광주 같은 큰고장마저 떠나면서 시골에 깃드는 이는 몇 손가락에 머문다. 잿빛집(아파트)하고 부릉이(자가용)를 멀리하는 글바치는 몇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다시피 하다. ‘돈·이름·힘’이라는 단물에 넋나간 글바치가 너울거린다. 다만, 이 책을 쓴 글님도 “그래서 어떡해야 아름나라로 갈까?” 하는 생각으로 뻗지 못하고 “서울 아닌 시골을 보는 눈, 정치 아닌 숲을 읽는 빛”은 하나도 없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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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6.19.


《조국의 시간》

 조국 글, 한길사, 2021.5.31.



《조국의 시간》은 나오기 무섭게 팔린단다. 찍는곳(인쇄소)에서는 하루 내내 찍는틀(인쇄기)을 돌린단다. 글님은 “내 가족 생채기가 크고, 검찰·언론·야당이 나쁘다”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그런데 벼슬자리(정치·공직)에 서려면 스스로 내려놓을 세 가지가 있으니 ‘돈·이름·힘’이다. 글님은 이 셋을 고스란히 거머쥔 채 벼슬까지 움켜쥐려 했다고 느낀다. 민주당·정의당이 예전에 지청구 노릇을 했듯이, ‘검찰·언론·야당’은 늘 지청구(권력 견제)를 하는 몫이다. 글님은 스스로 ‘여당 권력·지배자’이기에 여러 지청구를 달게 듣고서 ‘돈·이름·힘’을 내려놓고 “사람들 사이로” 스며야 올바르리라. ‘탈핵’을 하겠다며 온나라 시골·숲을 밀고 바다와 갯벌에까지 햇볕판(태양광패널)에 바람날개(풍력발전기)까지 때려박을 뿐 아니라, ‘탄소저감’을 한다면서 멀쩡한 숲을 밀고 어린나무를 새로 심는다며 돈을 펑펑 쓰더니 ‘새로운 핵발전’을 슬그머니 꾀하는 나라를 놓고, 글님은 한마디도 안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내 가족을 아프게 하는 이는 나쁘다”에서 맴돈다. ‘윤미향과 LH’를 놓고서 어떻게 칼을 대고 바로잡아야 하는가를 밝힌 적이 있을까. 부디 ‘돈·이름·힘’을 다 버리고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시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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