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7.16.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황주환 글, 갈라파고스, 2016.4.11.



오늘은 가볍게 자전거를 타려고 생각했는데, 어째 오르막만 자꾸 나오고 판판길이나 내리막은 없다. 생각해 보니, 오늘 닿을 곳까지 달릴 자전거는 한라산을 마주보며 가는구나. 그러니 그저 오르막만 있지. 제주에서 ‘홀씨엄마(싱글맘)’로 아이를 돌보는 이웃님을 만난다. 수수하게 붙일 이름은 ‘홀엄마·홀아빠’인데, 사이에 ‘씨(씨앗)’라는 낱말을 넣어 본다. 어른 스스로도 씨앗이 되고, 아이한테도 씨앗을 물려주는, 즐겁게 사랑살림이란 길을 함께 가꾸는 사이로 나아가자는 뜻을 ‘홀씨엄마·홀씨아빠’란 이름에 담아 본다.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를 한밤에 되읽었다. 예전에 읽을 적에도 생각했는데, 오늘날 배움터(학교)는 워낙 ‘묻기·궁금·생각’을 도려낸다. 묻거나 궁금하거나 생각하면 싸움(점수 경쟁·입시 전쟁)을 못 한다. 아이어른이 함께 ‘묻기·궁금·생각’을 도려내어 ‘이웃밟기’를 마구 해대지. 이웃을 밟고서 마침종이(졸업장)를 거머쥔 젊은이가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쓴대서 ‘민주·평화·진보’가 될 턱이 없다. 삶을 가꾸고 살림을 돌보고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보금자리가 아니라면, 길들어 쳇바퀴에 스스로 갇혀서 싸움질만 한다. 그만 배우고 가르치자. 이제는 살고, 살림하고, 사랑하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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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7.15.


《목장 OL 1》

 마루이 마오 글·그림/신동민 옮김, 직선과곡선, 2019.5.15.



새벽에 일어나서 노래꽃을 쓰고 글을 여민다. 등허리랑 무릎을 토닥이고 자전거가 튼튼히 달려 주기를 빈다. 제주 시내부터 조천 바닷가를 보며 달린다. 바람이 얼마 없고 땡볕이 좋다. 살이 잘 익는구나 싶다. 바지런히 달리다가 조그만 나무그늘을 찾아서 쉴 적에 “빨리 달릴 생각이니, 느긋이 누릴 생각이니?” 하고 혼잣말을 한다. 조천에서 〈시인의 집〉에 들러 다리를 살짝 쉰다. 바닷게를 손바닥에 얹고서 얘기를 하고서 구좌읍 세화마을 쪽으로 이어 달린다. 맞바람도 등바람도 없이 오직 다릿심으로 나아간다. 뺨을 타고 입술에 닿는 땀을 짭짤하게 누린다. 풀밭에 앉아 신을 벗자니 개미가 발가락부터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를 슬금슬금 긴다. 다리가 뭉치지 않도록 간질여 주네. 개미를 보다가 노래꽃을 새로 한 자락 쓴다. 세화 〈제주풀무질〉에 닿았고, 낯을 거푸 씻으며 땀을 털어낸다. 《목장 OL 1》를 이태 묵혀서 읽었다. 이 그림꽃책을 펴니 《백성 귀족》이 떠오른다. 《백성 귀족》은 익살스레 줄거리를 짜맞추느라 어느덧 샛길로 확 빠졌다면 《목장 OL》은 차분하게 훗카이도 들밭(농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주에서 밭살림 일구는 이웃님을 만나서 한참 수다를 폈다. 들빛을 머금으며 들노래를 부른다면 온누리가 푸르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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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바닷바람 (2021.7.17.)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어제는 제주 애월읍 이웃님하고 밤 한 시까지 이야기했고, 오늘은 새벽에 하루 글거리를 서둘러 추스르고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주제 넘은 서점〉에 들르고서 제주 시내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길잡이(내비게이션)를 보고서 달린 지는 요 제주마실이 처음이라 자꾸 엉뚱한 곳으로 새요. 제가 보기엔 이쪽으로 가라는구나 싶어 ‘이쪽’으로 갔더니 길잡이 화살은 차츰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응? 이쪽이 아닌 요쪽이니?” “에? 이쪽이 아닌 그쪽이야?” 길이로 치자면 〈주제 넘은 서점〉부터 제주 시내 〈바라나시 책골목〉까지 고작 20킬로미터 안팎입니다. 제 다리로는 자전거로 한 시간이 안 될 길인데, 막상 이 길을 거의 네 시간을 걸려서 갔습니다.


  그만큼 샛길로 자꾸 빠졌고, 샛길로 빠진 김에 마을길이며 바닷길이며 멧길을 신나게 탔습니다. 제주책집을 자전거로 다니며 등짐은 가벼워지기는커녕 자꾸 묵직해만 갑니다. 이러다 보니 무릎하고 허벅지가 끙끙거려요. “넌 왜 이렇게 나(무릎·허벅지)를 힘들게 하니?” “잘못했어. 조금만 돌아가면 되나 봐. 조금만 더 달리고 쉴게.” “말은 그리 하면서 언제 쉬니?” “조금만 더 가고 쉬면 …….”


  하가에서 신엄을 갔다가 구엄을 지나 수산·장전으로, 상귀·하귀를 돌며 가문동으로, 동귀·외귀를 지나 이호테우에서 노형동으로, 이러다 도두 ·용담을 거쳐 하늘나루가 코앞에서 보이는 곳에서 한참 쉽니다. 용두암 바닷가를 지나 용연구름다리에 이르니 비로소 오늘 자전거길 끝이 보일 만합니다. 용담쉼터에 너럭바위가 있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손낯을 씻은 뒤 벌렁 눕습니다.


  나무그늘에 눕다가 앉아서 ‘길지 않은 길을 얼마나 빙그르르 돌았는가’를 헤아립니다. 빙그르르 돌았다지만, 자전거가 있기에 한결 신나게 골골샅샅 누비면서 마을살림을 보고 구름밭을 누리고, 바닷바람에 땡볕을 머금었구나 싶습니다. 너럭바위를 끼고 한참 쉰 다음 일어납니다.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을 마시자고 여기며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천천히 갔는데 이레끝(주말)은 쉰다는 알림판을 봅니다. 오호라, 오늘이 흙날(토요일)이로군요. 이레끝은 누구나 쉴 만한 때라고 생각해요. 책집도 찻집도 쉬어야지요. 이제 오늘은 자전거는 그만 탈 테니, 〈바라나시 책골목〉 앞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햇볕을 머금으면서 허벅지랑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지난 닷새 동안 이고 지고 다닌 책 하나를 꺼내어 넉줄글을 씁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에 제가 쓴 책을 으레 등짐에 얹어 챙깁니다. 지난 닷새 동안 짊어진 책을 오늘 비로소 내려놓습니다. 팔이나 붓으로뿐 아니라, 다리랑 등허리로 쓰고, 빨래하고 아이 돌보는 손으로 쓰고, 햇볕에 바닷바람으로 쓴 책 한 자락입니다.


ㅅㄴㄹ


《우리말 글쓰기 사전》(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19.7.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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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 안전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강상구 지음 / 알마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책읽기 2021.7.20.

인문책시렁 195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강상구

 알마

 2015.10.10.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강상구, 알마, 2015)를 읽는 내내 ‘안전’하고 ‘살아남기’란 두 낱말이 걸립니다. 이 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길을 ‘안전·살아남기’라는 눈으로 보면서 줄거리를 풀어냅니다. ‘안전·안전하지 않은’으로 하나를 가르고 ‘살아남기·살아남지 못하고 죽기’로 둘을 갈라요.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은 늘 ‘안전’을 외쳤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안전 제일”이란 말을 내붙이는 곳이 많았고, 다치거나 떨어지거나 아프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들 말해요. 푸른배움터에서는 “안전 지원”을 하라고들 말하지요. 안 떨어질 만한 곳에 넣으라고 합니다. 푸름이 스스로 꿈꾸는 길로 가도록 북돋우거나 이끌지 않아요. 그저 ‘안전’입니다.


  흔히들 ‘안전 = 걱정할 일이 없음’으로 바라보지만, 여태 이 나라에서 살아오며 느끼기로 ‘안전 = 생각하지 않겠음’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말 ‘생각 = 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안전 = 생각하지 않는 길 = 새길이 아닌 낡은길에 맞추어 스스로 꿈을 버리고 사랑을 잊기’라고까지 할 만합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참말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고픈 일을 하다가 안 되면(실패) 어떡하지요? 다시 하면 되지요. 새로 하고 거듭 하면 돼요. 숱하게 하다가 안 되어 그만둘 수 있습니다만, 꿈길이기에 즐겁게 새로 부딪히고 또 부딪힙니다.


  이 나라에서 말하는 ‘안전’은 언제나 “생각을 스스로 안 하는 채, 남(권력자)이 말하는 대로 따르면서 먹이를 받아먹는 짐들뜰(동물원) 굴레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른바 “안 다치려면(안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해야지요. 어떻게 나아가거나 할 적에 스스로 바라는 대로 이룰는지를 차근차근 짚기에 “안 다치면서 뜻을 이루는 길”을 엽니다. “안 다치기”만 바랄 적에는 외려 “안 다치기(안전)”하고 멀어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남(권력자)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종살이(로봇)”로 치닫습니다. 그러니까 ‘안전’을 말하는 모든 목소리는 우리 스스로 굴레살이로 갇히도록 이끄는 눈속임이자 눈가림입니다.


  우리는 “안 다칠 길”이 아닌,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노래하고 즐기는 길을 갈 노릇입니다. 라면을 먹으니 죽을까요? 아니에요. “라면 = 나쁜밥”이란 생각을 머리에 집어넣기에 몸이 다칩니다. 우리 몸에 이바지하는 밥은 ‘빗물·샘물·바닷물’이 첫째요, 빗물·샘물·바닷물을 머금는 바람이 둘째이며, 빗물·샘물·바닷물하고 하나되어 노는 몸짓이 셋째이고, 빗물·샘물·바닷물로 자란 숨결이 막째입니다. 사랑으로 차려 즐겁게 나누는 라면 한 그릇은 사람을 살리지만, 아무 사랑이 없이 영양소만 따진 모든 밥은 우리를 굴레에 가둡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씨앗을 심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말도 글도 펴지 말아야지요.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놀이하는 웃음빛으로 ‘살면’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가 나쁜 책은 아니지 싶으나, 오직 머리로 쓴 책이고, 손발로는 쓰지 않은, 더구나 사랑이나 생각이나 마음이 없이 ‘이론에 갇힌 이론에 고여’ 쓴 책이로구나 싶어 안쓰럽습니다.


ㅅㄴㄹ


그러니까 결국 제가 병든 닭과 돼지, 아픈 소를 먹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것도 항생제와 호르몬제와 찌든 고기들을요. 이제 제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34쪽)


지금 제도가 그래요. 그리고 어묵 같은 경우에는 워낙 이런저런 물고기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원산지 표시가 의미가 없어요. (73쪽)


맞아요. 똑같은 과자를 먹어도 어떤 아이는 아토피가 심해지고 어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104쪽)


아이요? 오늘 아침에는 어젯밤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 좀 치우라고 했더니 대충 구석에 밀어놓더라고요. “짜증나”가 입에 붙었어요. 학교 가는 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내내 툴툴거리더라고요. (162쪽)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겠네요. 명절날 하루 종일 수십 명분 식사를 준비하고 나면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거든요. (255쪽)


#비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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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걷다 - 인문학자 김경집이 건네는 18가지 삶의 문답
김경집 지음 / 휴(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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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7.20.

인문책시렁 194


《생각을 걷다》

 김경집

 휴

 2017.10.30.



  《생각을 걷다》(김경집, 휴, 2017)를 읽으며 글님이 스스로 무엇을 바꾸고 싶어하는가를 밝히는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속내를 다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글님 스스로 너무 바쁘게 삽니다. 돈을 버는 일을 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이야기(강의)와 글(집필)’을 왜 해야 할까요? 이웃한테 들려줄 이야기나 글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눈빛으로 길어올려 스스로 살아내는 몸짓으로 펼 적에 스스로 즐거울까요?


  책을 읽는 사람은 책에서 얻은 이야기하고 글을 폅니다. 바람을 읽는 사람은 바람하고 나눈 생각하고 숨결을 폅니다. 흙을 읽는 사람은 흙하고 주고받은 하루를 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은 아이가 가르치고 들려주고 보여주고 노래하고 나누는 사랑을 폅니다. 《생각을 걷다》를 내놓은 글님은 하나부터 열까지 책을 읽고서 얻은 이야기를 다시 글로 엮는구나 싶습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을 읽어서 얻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아름책이나 사랑책이 아닌 인문책만 읽고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언제나 ‘이론에 갇힌 이론으로 그치기’ 마련입니다.


  등짐을 짊어지고 두 다리로 걸어서 저잣마실을 하면 좋겠어요. 아이들 밥자리를 차리면 좋겠어요. 손으로 빨래하고 걸레질을 하면 좋겠어요.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아닌 자전거로 다니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구름하고 비하고 바다하고 풀꽃나무가 들려주는 “종이에 글로 안 적힌 숱한 이야기”를 듣고서 글을 쓰면 좋겠어요.


ㅅㄴㄹ


여행이란 건 어쩌면 목적지가 정해졌다는 점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의 대표적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여행은 단지 공간이라는 포괄적 대상만 정해졌을 뿐이고, 그 공간조차 못으로 박은 듯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더 설레고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23쪽)


적성에 맞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능력에 맞는 직업을 얻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적성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공부만 했다. (43쪽)


수십 년 살아오면서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재고 따지고 짐작하고 판단하며 속으로는 우월과 열등의 가늠자로 재단했다. 늘 목적이 개입했다. (77쪽)


거대한 불의와 폭력 앞에서 혼자 싸우는 것은 어렵다. 두렵다. 그 비겁이 사회를 타락시키는 데 한몫을 했고 우리의 비겁이 악의 세력에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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