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 약방
박혜선 지음, 이승원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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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8.4.

그림책시렁 743


《할머니의 사랑 약방》

 박혜선 글

 이승원 그림

 크레용하우스

 2018.10.5.



  마음으로 바라보고 읽으면 누구나 모두 알기 마련입니다. 마음으로 안 보고 안 읽으면 누구도 모르기 마련입니다. 용한 돌봄이(의사)나 대단한 꽃물(약)이 있어야 아픈 곳을 달래지 않습니다. 언제나 따사로이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랑스러운 말 한 마디가 모든 아픈 곳을 달래거나 씻습니다. “할머니 손은 사랑손(약손)”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대단한 꽃물을 쓸 생각이 없습니다. 수수한 들풀을 건네기도 하지만, 늘 살살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레 말합니다. “할머니 손은 포근손”이라지요. 할머니는 어마어마한 돈을 쓸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몸도 마음도 포근하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할머니 손은 꽃손”입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망울이 맺고 꽃송이로 터지기까지 모든 푸나무가 앓기 마련이듯, 아이도 앓는 몸을 고이 맞아들여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며 쓰다듬어요. “할머니 손은 빛손”입니다. 따뜻할 뿐 아니라 빛나지요. 즐겁게 웃음짓고 노래하는 빛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할머니의 사랑 약방》은 모처럼 잘 빚은 우리 풀꽃 이야기 그림책입니다. 풀꽃은 풀꽃대로 그리면 됩니다. 풀꽃은 풀꽃으로 누리면 됩니다. 할머니도 아이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언제나 풀꽃입니다. 누구나 풀꽃이요 풀잎이며 풀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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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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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친구 - 제2회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대상 웅진 모두의 그림책 22
사이다 지음 / 웅진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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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8.4.

그림책시렁 744


《풀친구》

사이다

웅진주니어

2019.7.26.



오래오래 흘러온 ‘동무’란 말은 한때 총칼에 짓밟혀 ‘어깨동무·소꿉동무’ 같은 자리에서만 겨우 목숨을 이었습니다. 요새는 조금씩 기지개를 켜지만 아직 숱한 어른들 입에는 ‘친구’라는 한자말이 찰싹 붙어요. 총칼로 괴롭히던 우두머리하고 벼슬꾼은 왜 우리말 ‘동무’를 짓밟았을까요? 북녘에서 쓰기 때문이지는 않아요. ‘동무’는 동그라미처럼 티도 모도 없이 동글동글하게 어울리며 아끼고 맞아들이는 사이를 가리키는 이름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서로 동무가 되기를 바라지 않은 총칼나라(군사독재)였기에, 사람들이 서로 눈을 부라리며 ‘간첩신고’를 하고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하려고, 동무를 비롯한 살림말을 없애려고 애썼습니다. 《풀친구》는 골프터 탓에 밀려나거나 사라지거나 짓밟히는 풀밭을 이야기합니다. 한 가지 풀만 줄줄이 심는 곳은 골프터뿐일까요? 공을 차는 너른터도 한 가지 풀만 빼곡하게 심습니다. 납작하게 자라는 토끼풀이며 제비꽃이며 질경이에 괭이밥이 얼크러진 골프터나 공놀이터를 꾸밀 수 있어요. 이따금 삐죽 올라오는 들꽃이 있어도 재미있어요. 틀에 가두려니 풀죽임물(농약)을 씁니다. 틀에 갇히면 쉽거나 살갑거나 삶이 묻어난 말씨를 버리고 딱딱한 틀박이 말씨로 흐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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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생명의 날갯짓 - 2019 학교도서관저널 추천, 2019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8 학교도서관저널 추천 바람그림책 70
스즈키 마모루 지음, 김황 옮김, 황보연 감수 / 천개의바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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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8.4.

그림책시렁 745


《철새, 생명의 날갯짓》

 스즈키 마모루

 김황 옮김

 천개의바람

 2018.10.26.



  어른이 되면 글이나 그림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들 말하던데, 어쩐지 그런 이야기는 내키지 않습니다. 삶·살림·사랑을 헤아리는 글그림이 아닌 나이·겉모습·이름값을 살피는 글그림이라면 껍데기만 번지르르하지 싶습니다. 1988년에 푸른배움터에 들어가니 “너흰 이제 아이가 아니니 ‘세모’가 아닌 ‘삼각형’이라 해라.” 하고 가르칩니다. 쉽고 수수하게 쓰던 말씨는 버려야 하고, 배움수렁과 나라틀에 맞추도록 길들입니다. 꽃·새·나무를 담은 글그림이 부쩍 늘지만 어쩐지 어지럽습니다. 어린이 소꿉살림을 생각하는 글그림은 드물고, 서울틀(도시문화)에 맞춘 나이든(어른스럽다기보다) 글그림이 넘치거든요. 《철새, 생명의 날갯짓》은 푸른별을 두루 날아다니는 싱그러운 이웃인 새를 다룹니다. 일본·영국·미국을 넘나드는 숱한 철새를 보여주는데, 이야기나 그림결이 어린이스러워서 따사롭습니다. 새(철새·텃새 모두)는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새는 먹잇감이 아닙니다. 새는 노리개가 아닙니다. 새는 그림감이 아닙니다. 새는 ‘새앓이(조류독감)’가 아닙니다.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숨결”입니다. 새는 “바람과 별 사이를 흐르는 숨빛”입니다. 새는 “숲과 사람 사이에서 노래하는 숨짓”입니다.


ㅅㄴㄹ

#鈴木まもる #わたり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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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8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2004년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Maria Sibylla Merian)’ 님 책 가운데 하나(Das Insektenbuch)를 추린 《곤충·책》이 우리말로 처음 나옵니다. 한 해 앞서 이녁을 다룬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가 우리말로 나오나 쉬 판이 끊어집니다. 2011년에 이녁을 다룬 그림책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이, 2021년에 《나비를 그리는 소녀》가 나오는군요. 이제서야 읽히나 싶지만, 아직 제대로 읽히기는 멀었지 싶습니다. 이이는 “꽃과 나비를 그렸다”기보다 “풀벌레와 풀꽃밭을 사랑하며 그렸다”고 해야지 싶어요. 둘레에서 “돈이 될 그림만 겉멋을 부려 그리던 무렵”에 “풀벌레하고 풀꽃나무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그림으로 옮겨서 널리 알리려고 온품과 온돈을 바쳤다”고 보아야지 싶고요. 풀벌레하고 풀꽃이 어떤 사이인가를 읽고, 풀꽃나무하고 사람하고 숲이 어떻게 얽히는가를 차분히 밝히고 글을 함께 썼구나 싶어요. 우리가 짓는 하루를 글그림으로 옮기면서 우리가 나눌 사랑을 붓끝으로 펴며 우리가 가꿀 생각을 북돋았다고 느껴요. ‘곤충학자·화가’도 ‘여성 곤충학자·화가’도 아닌 ‘숲사람’으로서 이 푸른별이 참말로 푸른숲이 되기를 꿈꾸는 사랑을 한 땀씩 여미었다고, 오직 푸른사랑으로 스스로 숲이었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

동판화가이자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서지학자로 이름을 날린 ‘마테우스 메리안’이 낳은 딸. 그렇지만 ‘마테우스 메리안’ 빛살(후광)은 집안사람한테 조금도 퍼지지 못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낳은 어머니는 ‘마테우스 메리안이 나중에 얻은 가시내’였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자 그 집안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자리(신분)에 하잘것없는 살림에 아무것도 없는 몸으로 스스로 모든 삶을 일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독일 마르크돈 500마르크짜리에 얼굴을 새기기도 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이이가 조그마한 벌레 삶을 헤아리며 그림으로 남기던 때에는,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여겼다지. 마녀로 도장찍혀 죽을 수 있었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오랜 삶길과 지켜보기로 빚어낸 책과 그림을 놓고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서 쓴맛을 견디어내야 했다. 그러나 언제나 즐겁고 꿋꿋하며 사랑스레 온누리 벌레붙이를 사랑했고, 글하고 그림으로 벌레살이를 아로새겼다. 어마어마하다 싶은 가시밭길을 온몸으로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일흔 해를 살았다. (숲노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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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7 졸업장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초등학교) 버금어른(교감 선생님)으로 일할 무렵부터 교육대학교 밤배움(야간학부)을 다니며 ‘열린배움터 마침종이(대학교 졸업장)’를 따냅니다. 이윽고 교육대학원까지 다니며 마침종이를 더 땁니다. 아버지는 으뜸(수석)으로 마치시던데, 여든 살에 접어든 오늘 돌아보면 마침종이는 무슨 뜻일까요? 마침종이를 얻기에 어린이를 더 헤아리거나 사랑할까요, 아니면 마침종이가 없더라도 어린이를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만할까요? 마침종이가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글님 배움자취’를 안 따집니다. 남들이 많이 보는 책이 아닌, 스스로 마음으로 헤아리는 책을 만납니다. 얼굴을 안 꾸미고, 꽃가루(화장품)를 안 바르고, 옷차림을 안 따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도, 널리 알려진 책을 굳이 안 건드려요. 속살이 아름다운 책에 흐르는 사랑을 살펴서 하루를 노래합니다. 지난날 헌책집지기는 거의 다 배움끈(학력)이 없거나 얕았지만, 책사랑 하나만큼은 으뜸이었어요. 오늘날 책집지기 가운데 열린배움터(대학교)를 안 다니고 홀가분히 ‘고졸·중졸·무학’인 분은 몇 안 됩니다. ‘마침종이나라(학벌사회)’를 부드러이 녹여 아름나라·사랑나라로 가려면 삶자리부터 어떻게 가다듬으면 좋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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