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 - 세상을 바꾸는 생활 속 디자인 여행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7
배성호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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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1.8.19.

맑은책시렁 249


《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

 배성호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21.7.12.



  《선생님, 착한 손잡이가 뭐예요?》(배성호, 철수와영희, 2021)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빠르게 달리면서 잊고, 바쁘게 사느라 잃는 이웃하고 동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문득 돌아보면 “착한 초콜릿”이라는 이름부터 ‘착한’을 앞에 붙였지 싶어요. 이윽고 “착한 나들이(여행)”를 말하는 분이 늘었으나 한자말 ‘공정(公正)’을 말하는 분도 꽤 많습니다.


  낱말을 어떻게 가리거나 고르느냐도 대수롭습니다. “착한 손잡이”라 할 적하고 “공정 핸들”이라 할 적은 사뭇 달라요. 아무것이 아닌 낱말 하나일까요? 둘레에서 흔히 쓰는 말씨이면 된다고 여기는가요? 익숙한 대로 쓰면 된다고 생각하나요? 어른한테는 쉽거나 익숙하다고 여기면서 아이들한테 함부로 밀어붙이거나 외우도록 내몰지는 않나요?


  세모하고 네모를 예전에는 열네 살 즈음부터 ‘삼각형·사각형’으로 고쳐서 말해야 똑똑하다고 여기는 배움터였는데, 어쩌면 요새는 어린이한테 처음부터 ‘세모·네모’를 안 쓸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착한 말씨”가 자취를 감춥니다. 말을 ‘말’이라 안 하고 ‘-어(語)’라 하는 어른이 참으로 많아요. 왜 말을 말이라 못 하거나 안 할까요? 말을 말이라 안 하는 어른들 모습은 얼마나 ‘착하’거나 ‘참할’까요?


  아주 조그맣다고 여기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지나칩니다. 손잡이 하나뿐 아니라 말씨 하나도, 삶터 곳곳도, 나라지기나 벼슬아치도, 배움터 길잡이나 여느 어버이도, 그냥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아요. 이제 좀 그만 바쁘게 살면 어떨까요? 이제는 제발 그만 빠르게 달리면 어떤가요? 빠른길을 치우고 아늑길을 놓기를 바라요. 빠른밥은 그만두고 사랑밥을 짓기를 바라요.


  씨앗 한 톨처럼 조그마한 살림살이하고 말씨를 사랑스레 아끼거나 돌볼 줄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어른이라고 봅니다. 씨앗 한 톨만큼 자그마한 일을 등진다면 어느 자리에 있건 나이가 몇 살이건 모두 철딱서니없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착하다’는 ‘참하다’하고 말밑이 같고, ‘차다(가득차다)’하고 잇닿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숨빛이기에 착하고 참한 오늘 하루를 짓습니다.


ㅅㄴㄹ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손잡이라 ‘착한 손잡이’라고 부른답니다. 덕분에 우체국을 비롯해 점점 더 많은 공공기관과 업체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14쪽)


당장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병들게 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립니다. (24쪽)


이 인간공학은 뜻밖에 ‘전쟁’에서 시작했답니다. 전쟁터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와 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줄이려는 연구가 인간공학의 출발점이었어요. (32쪽)


지금은 불편을 참지 말라고 말합니다. 불편함을 참는 태도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는 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전에는 책상 높이가 낮으면 억지로 맞춰 가며 썼지만, 지금은 책상 높이를 조절하도록 디자인을 바꾸는 식으로 환경을 바꿉니다. (43쪽)


사람들이 이곳의 의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료이기 때문이에요. 주위에서는 이처럼 앉아서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음료를 사거나 자릿값을 내야 했습니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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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8.18.


《에밀, 위대한 문어》

 토미 웅거러 글·그림/김영진 옮김, 비룡소, 2021.3.19.



두이레 앞서 조촐히 펴기로 한 책수다 자리가 사라졌다. 책수다 자리는 그림책 지음이님하고 둘이 함께 펴기로 했는데,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 모두 여러모로 그날에 맞추어 이야깃감을 챙겼는데 뜬구름이 되었다. 사노라면 온갖 일이 있기 마련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부천마실을 그렸고, 오늘 새벽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언제나 늦잠이던 두 사람이 일어나서 배웅한다. 늘 일찍 일어나는 작은아이까지 세 사람 배웅빛을 받으니 새롭다. 고흥서 인천 마을책집 〈문학소매점〉까지 여덟 시간 길을 달렸다. 이윽고 부천 〈용서점〉으로 전철을 탔다. 고흥에서 서울을 가려 해도 길에서만 일곱 시간을 보낸다. 지난달에 《에밀, 위대한 문어》를 장만했으나 아이들이 영 시큰둥하다. 얄궂은 옮김말을 모두 고쳐 놓았어도 “문어가 바다에서 보내는 이야기가 없어요” 하면서 심심하단다. 아이들 말마따나 문어한테서 바다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문어가 사람살이로 스며들어서 사람처럼 지내는 줄거리를 담아내는 짜임새이지. 사람처럼 굴 줄 알기에 ‘대단한(위대한)’ 문어일까? 바다를 알고,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돌보고, 바다를 누릴 줄 알기에 ‘즐겁고 아름다운’ 문어이지 않을까? 문어를 문어 그대로 그리는 손길은 어디 있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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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8.17.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어슐러 K.르 귄 글/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21.1.29.



바지런히 집을 짓는 거미를 본다. “곧 사다리를 움직여 무화과나무 곁에 둘 생각인데, 며칠 기다려 줄까?” 거미가 움찔하는 듯하지만 이내 집을 마저 짓는다. 이튿날에도 다음날에도 집을 짓는다. 이러다가 빈 거미줄이 후줄근하게 바람에 날린다. 새가 거미를 낚았을까? 빈 거미줄이 바람에 날린 지 이틀 뒤 거미가 다시 나타나서 집을 손질한다. “어라? 너 어디 다녀왔니?” 이제는 풀벌레 노래가 그윽하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개구리가 제법 많은데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는 좀처럼 못 듣는다. 철은 바야흐로 훅훅 넘어간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고서 곁님하고 큰아이한테 건네 보았으나 둘 다 “재미없어!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 하면서 물렸다. 옮김말부터 영 아리송했고, 글님이 다른 책에 붙인 머리글은 우리 삶하고 많이 먼 이야기 같기도 했다. 뜻깊은 책인 줄 알겠지만 무척 아쉽다. 글님은 ‘야히겨레 이쉬’ 삶자취를 갈무리한 이녁 어버이가 남긴 책을 읽지 않았을까? 《어스시의 마법사》하고 글결이 너무 다른 《찾을 수 있다면 ……》인데, 《마지막 인디언》이나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떠올릴수록 어슐러 르 귄 님 글자락이 더더욱 아쉽다. 《마지막 인디언》을 다시 읽어야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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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8.16.


《나무 정령 톰티》

 니나 블라존 글·카린 킨더만 그림/이명아 옮김, 여유당, 2021.6.10.



빨래터를 큰아이하고 치우다가 생각한다. 나는 왜 하고 많은 시골 가운데 전라남도 고흥을 골랐을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에서 열한 해째를 보내다가 돌아본다. 요 몇 해 사이에 만난 여러 ‘여성운동가 아주머니’는 이녁 집안 딸아이한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도록 하고, 아들아이한테는 집안일을 시킨다고 들었다. 그동안 이 나라에서 억눌리고 짓밟힌 굴레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은 알겠는데, 그분 집에서 ‘손에 물 묻히는 일’은 누가 할까? ‘집안일 도움이’를 부르면 될 일일까? 살림돈이 적은 집이라면 ‘집안일을 하나도 해본 적 없는 젊은 가시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다슬기 허물을 본다. 미꾸라지하고 가볍게 논다. 저녁에 자전거를 몰아 작은아이하고 구름밭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쐰다. 《나무 정령 톰티》를 혼자 읽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재미없다고 밀쳤다. 나무한테 깃든 숲님이라기보다 ‘그냥 서울내기 같은 사람’ 이야기로구나 싶다. 숲님(정령) 이야기를 왜 사람한테 빗대야 할까? 숲님은 숲님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마음으로 마주하며 그리면 될 텐데. 설거지도 밥짓기도 걸레질도 동생 돌보기도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아치(공무원)가 되면 어떻게 될까? 아!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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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8.15.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2002.11.25.



그제 아침에 매미 허물을 하나 더 만난다. 잘 익은 무화과가 있는가 하고 살피다가 “응? 매미 허물이 이쪽에 또 있네?” 했다. 모시풀에 매달렸구나. 잘 익은 무화과를 둘 따서 큰아이하고 작은아이한테 하나씩 건넨다. “그럼 토막으로 갈라서 어머니랑 아버지도 똑같이 먹으면 되겠네.” 하는구나. 다 먹으라고 주었으나 토막을 얻는다. 어제는 오랜만에 두 아이가 읍내로 함께 저잣마실을 다녀왔다. 큰아이는 즈믄나무(천수목)를 보더니 묻는다. “저 나무가 앞으로 천 해를 더 살까요?” “지난 즈믄해는 매캐한 바람도 잿빛집도 없는 곳이었기에 살았다면, 이제는 날마다 매캐하고 시끄럽고 어지럽고, 더구나 즈믄나무 둘레에 있는 가게에서 나뭇가지가 성가시다며 함부로 자르기까지 했어. 이대로라면 제대로 못 살고 죽을는지 몰라.” 《메리 크리스마스, 늑대 아저씨!》를 새삼스레 꺼내어 되읽었다. 나라를 보면 갈수록 ‘옳고그름(선악)’을 너무 따지면서 ‘우리 쪽에 안 서면 다 그르고 나빠!’ 하고 내치는구나 싶다. 늑대 아저씨도 돼지 아줌마도 함께 기쁘게 섣달잔치를 누리는 길을 헤아리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햇볕과 바람과 비는 누구한테나 고루 퍼지는데, 이 땅에서 사랑은 어디로 스러질까? 어깨동무도 나눔도 빛을 잃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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