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8 걸어서



  걸어서 다닙니다. 다리가 있어서 걷습니다. 스스로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도 합니다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은 걸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릉거리는(운전) 동안에는 글을 못 쓰고 못 읽기도 합니다만, 다리로 걸으며 길을 느끼고 땅을 헤아리고 마을을 돌고 바람을 쐬고 하늘을 보고 풀꽃나무한테 속삭이고 동무랑 나긋나긋 이야기하고 아이들 손을 잡으며 노래하지 않을 적에는, 우리가 무슨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까요? 걸어서 보는 사이에, 걷다가 겪는 틈에, 걸으면서 생각하는 짬에, 스스로 빛나는 눈길이 샘솟습니다. 걷고서 쉬면, 걷다가 멈추면, 걷던 아이를 안거나 업고서 토닥이며 재우면, 마음 가득 피어오르는 숨결이 어느덧 사랑으로 자랍니다. 서둘러 써야 한다면 글이 아니지 싶습니다. 서둘러 읽어야 한다면 책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이곳을 헤아리며 쓸 글이고, 늘 오늘을 살피며 읽을 글이고,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며 쓸 글이고, 서로서로 돌보며 읽을 글입니다. 뚜벅뚜벅 걷습니다. 느긋느긋 걷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없이 걷습니다. 아이처럼 통통 뛰며 걷습니다. 바람을 탄 새처럼 걷습니다. 갓 깨어난 나비처럼 춤추며 걷습니다. 온누리를 걸어서 누리기에 글이 깨어나고, 눈망울을 환희 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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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넋 2021.9.27.

나는 말꽃이다 51 갓벗·아이어른



  뒷간(화장실)을 가르는 그림을 보면 순이(여자)가 드나들 곳에는 치마차림·빨강이요, 돌이(남자)가 드나들 곳에는 바지차림·파랑입니다. 이 씨가름(남녀구분)은 옳을까요? 바지를 즐기거나 치마를 안 입고 머리카락을 짧게 치기를 즐기는 순이가 많습니다만, “긴머리 치마 차림”을 순이로만 못박아도 될까요? ‘긴머리’인 돌이가 부쩍 늘었고 “치마 차림”인 돌이가 있는데, 이제는 겉모습·옷차림으로 갓벗·순이돌이(남녀)를 가를 수 없습니다. 억지로 순이차림·돌이차림을 몰아세우면 부질없어요. 우리말 ‘아이’나 ‘어른’은 순이나 돌이 한 쪽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굳이 순이하고 돌이를 가르지도 않아요. 따로 ‘갓벗·가시버시’나 ‘순이돌이’처럼 갈라서 쓸 수 있습니다만, ‘사내아이·계집아이’처럼 앞말을 덧달기도 합니다만, 겉모습·겉차림으로 구태여 가를 마음이 없는 우리말 밑넋을 읽을 만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말결을 찬찬히 읽으면서 이웃을 마주하면 아름답습니다. 긴머리에 배롱꽃빛 옷을 즐기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를 애써 순이인지 돌이인지 가르기보다 ‘아이’라고만 하면 돼요. ‘어른’한테도 똑같아요. 뒷간을 비롯한 모든 곳에 ‘갓벗·순이돌이’를 가르는 그림·빛깔을 치우고 글씨만 크게 적으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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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1.9.26.

숲집놀이터 260. 뛰놀기



우리 집 아이들은 책집마실을 싫어하지는 않으나 아버지가 책집마실을 지나치게 오래한다고 여긴다. 아이들 말을 듣고서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맞다. 나는 책집마실을 끝없이 한다. ‘이제 좀 그만하면 좋겠는데’ 하고 쀼루퉁하도록 책집에 머문다. 그렇지만 모든 책집은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수록 더욱 새롭게 빛나는걸. 골짜기나 숲에 깃들 적에도 하염없이 머물 수 있고, 바다에서도 가없이 지낼 수 있다. 꼭 책집에서만 오래 지내지는 않는다. 다만 여태까지 살아온 자취를 본다면 서울·큰고장에서 살아남으려고 책집하고 보금자리 둘 사이만 오간 나날이었으니, 이 고리를 깨려고 아이들하고 시골살이를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큰아이가 태어나 주면서 아주 마땅히 책집마실이 확 줄었고, 작은아이가 태어나 주며 더더욱 책집마실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자주 많이 다닌다’는 핀잔을 듣는데 눈앞에서 만지작거려야 비로소 살 만한지 아닌지, 또 글님하고 펴낸님이 어떤 마음결이었는가를 느낀다. 2008년부터 두 아이들 힘으로 책집마실을 줄이고 또 줄이는 사이에 마음읽기를 새로 배우고 숲읽기를 새삼스레 익힌다. 이 아이들은 뛰놀 적에 넓고 깊이 스스로 배운다는 대목을 일깨운다. 맞아, 너희가 아름다워.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 신바람으로 뛰논 개구쟁이였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개구쟁이 눈빛을 건사하며 같이 뛰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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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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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1.9.26.

숲집놀이터 259. 알밤



네 손에는 네가 즐기는 모든 놀이가 반짝반짝 있다. 너는 무엇이든 노래로 바꾸고, 너는 언제나 춤으로 돌리고, 너는 한결같이 웃음꽃으로 피운다. 알밤은 해바람비를 먹고 자란다. 해바람비가 깃든 알밤을 손에 얹으면서 네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해바람비 기운이 퍼진다. 이 알밤을 아작 깨물면 네 이를 타고서 뼛속으로 고루고루 해바람비 숨결이 스민다. 밤나무는 아이들이 곁에서 뛰고 놀고 노래하고 춤추는 빛살을 머금으면서 한 뼘씩 큰다. 아이들은 밤나무한테 가을마다 찾아가서 둘레를 빙그르르 돌고 웃고 떠들고 반기면서 두 뼘씩 자란다. 어른들은 밤나무를 둘러싼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또 아이들을 포근히 안는 밤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어느새 석 뼘씩 마음을 밝힌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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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곧 사라져요 - 2023 ARKO 문학나눔 노란상상 그림책 85
이예숙 지음 / 노란상상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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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9.26.

그림책시렁 773


《우리 곧 사라져요》

 이예숙

 노란상상

 2021.8.17.



  곧 사라지려 하는 이웃은 참말로 사라집니다. 이곳을 떠납니다. 푸른별에는 그야말로 온갖 숨붙이가 어우러져 왁자지껄하면서 재미난 놀이터였는데, 어느새 틀에 박히고 고달플 뿐 아니라 사나운 발톱이 너울거리는 싸움터로 뒤바뀝니다. ‘나라’란 이름을 붙인 터를 다스리는 이들치고 싸움연모(전쟁무기)를 치우는 손길이 여태 없습니다. 자, 보셔요. 어른조차 스스로 살기 팍팍하고 숨쉴 틈이 좁으며 앞길이 까마득하다고 느낀다면, 아이는 어떨까요? 갈수록 아이가 확 줄어드는 까닭을 생각해야 합니다. 살섞기나 살부빔 아닌 사랑이어야 아이를 낳을 텐데, 오늘날 배움터는 사랑을 등진 채 성교육만 해요. ‘조각(지식)’이 아닌 ‘살림’을 가꿀 적에 사랑으로 가지만, 한결같이 낭떠러지로 밀어대는 판입니다. 《우리 곧 사라져요》는 푸른별에서 사라지는 이웃 숨붙이를 그리는데, 곧 “아이가 사라지고 늙은이만 남은 별”이 되겠지요.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사라진 채 늙은이만 남은 별이라면, 바로 사람이 사라질 때란 뜻이겠지요. 이웃 숨붙이가 이 별을 떠나도록 내몬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길로 치달은 셈입니다. 찻길을 늘려야 하나요? 서울을 넓혀야 하나요? 아이가 뛰놀 빈터와 들과 숲과 바다가 짙푸러야 아이가 안 떠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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