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2 아이는



  아이는 스스로 어디에서나 빛(보물)을 보고서 하나하나 곁에 두며 숨결을 받아들이는구나 싶어요. “무엇을 보니?” “응, 여기 좀 봐.” “무엇이 있어?” “잘 봐. 안 보여?” “알았어. 잘 볼게.” “잘 보면 다 보여.” 글씨를 몰라도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배우는 아이입니다. 글씨가 적힌 종이꾸러미를 보아야만 ‘읽기’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을 가만히 보면서 속빛하고 속내하고 속사랑하고 속숨을 느끼고 알아차려서 받아들인다면, 더없이 멋진 ‘읽기’이지 싶어요. 책에 적힌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이웃사람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만, 이웃사람을 마주하는 오늘 이곳에서 마음으로 삶을 읽으면 한결 빛나요. 책으로 옮기고 나서야 들여다보는 삶이 아닌, 책에 안 적혔어도 언제나 삶을 읽을 줄 안다면, 바람하고도 얘기하고 별님하고도 속삭이고 풀벌레랑 새하고도 조곤조곤 수다를 할 테지요. 모든 아이는 늘 입과 손과 마음으로 《파브르 곤충기》도 쓰고 《초원의 집》도 쓰고 《반지의 제왕》도 씁니다.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 쪼그려앉거나 함께 나무를 타거나 들판을 맨발로 뛰놀면서 함께 삶읽기·숨읽기·빛읽기·오늘읽기·사랑읽기·숲읽기를 누리면서 눈길을 확 틔울 만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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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곁말 6 걷는이



  저는 부릉이(자동차)를 거느리지 않아요. 부릉종이(운전면허)부터 안 땄습니다. 으레 걷고, 곧잘 자전거를 타고, 버스나 전철이 있으면 길삯을 들여서 즐겁게 탑니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걷는이’입니다. 걸으니 ‘걷는사람’입니다. 걸으며 삶을 누리고 마을을 돌아보는 사람은 ‘보행자’이지 않아요. 걷다가 건너니 ‘건널목’일 뿐, ‘횡단보도’이지 않습니다. 아이랑 걷든 혼자 걷든 서두를 마음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거님길 귀퉁이나 틈새에서 돋는 풀꽃을 바라봅니다. 어디에서나 매캐한 부릉바람(배기가스) 탓에 고단할 테지만 푸르게 잎을 내놓는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걷기 때문에 풀꽃나무하고 동무합니다. 걸으니까 구름빛을 읽습니다. 걸으면서 별빛을 어림하고, 걷는 사이에 아이들한테 노래를 들려주거나 함께 뛰거나 달리며 놀기도 합니다. 걷는 아이들은 재잘조잘 마음껏 떠듭니다. 이따금 꽥꽥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사람 많은 데에서는 뛰지도 달리지도 외치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걷고 뛰고 달리면서 실컷 앙금을 텁니다. 즐겁게 걸으며 둘레를 맞이하는 아이는 가끔 부릉이를 얻어탈 적에 반길 줄 알아요. 그러나 스스로 걸을 적에 가장 신나고 새로우며 멋진 나날인 줄 새록새록 느끼며 자랍니다.


걷는이 (걷다 + 는 + 이) : 걸어서 오가는 사람이기에 ‘걷는이’입니다. 달리면서 오가는 사람이라면 ‘달림이’일 테지요. 헤엄을 즐긴다면 ‘헤엄이’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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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0.19.

곁말 5 빛



  쟤가 주어야 하는 ‘빛’일 수 있지만, 쟤가 주기를 바라기만 하면 어느새 ‘빚’으로 바뀝니다. 내가 주어야 하는 ‘빛’이라고 하지만, 내가 주기만 하면 너는 어느덧 ‘빚’을 쌓습니다. 하염없이 내어주기에 빛인데, 마냥 받기만 할 적에는 어쩐지 ‘빚’이 돼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가없이 사랑빛을 받습니다. 아이가 받는 사랑은 빚이 아닌 빛입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 끝없이 사랑빛을 보내요. 어버이가 받는 사랑도 빚이 아닌 빛입니다. 오롯이 사랑이 흐르는 사이라면 빚이란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옹글게 사랑이 흐르기에 언제나 빛입니다. 사랑이 아닌 돈이 흐르기에 빚입니다. 사랑이란 티끌만큼도 없다 보니 그냥그냥 빚일 테지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돈은 ‘살림’이란 이름으로 스밉니다. “가엾게 여겨 내가 다 베푼다”고 하는 몸짓일 적에는 “받는 사람이 빚더미에 앉도록” 내몹니다. 똑같이 건네지만 한쪽에서는 ‘빛’이고 다른쪽에서는 ‘빚’입니다. 돌려받을 생각을 하면서 아이·동무·이웃이 빚에 허덕이기를 바라나요? 너른 품으로 포근한 사랑이 되어 아이·동무·이웃이 빛을 반기며 활짝 웃기를 바라나요? 굳이 빚쟁이가 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어요. 저는 서로서로 웃음꽃을 피우는 빛님이 되겠습니다.


빛 : 바라보면서 밝게 느끼거나 맞이하는 기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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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작다기보다 재미난 (2021.9.24.)

― 인천 〈북극서점〉



  으레 ‘작은이·작은사람’이란 낱말을 쓰지만, 몸이나 키나 살림돈이나 이름이나 뜻이나 마음이나 사랑이 작다는 뜻은 아닙니다. 씨앗 한 톨 같다는 뜻으로 ‘작다’라는 낱말을 즐겨씁니다. 마을책집은 큰책집에 대면 틀림없이 ‘작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마을책집이 ‘작은책집’이라고 할 적에는 다른 뜻입니다. 스스로 자그마한 마을에서 조그맣게 씨앗이 되고 징검돌로 책살림을 지핀다는 얘기예요.


  저한테 찾아온 아이들을 말할 적에 ‘큰아이·작은아이’처럼 가르는데, 저한테는 언니가 있어 언제나 ‘작은아이’란 이름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작은아이를 보며 작은아이라는 말을 혀에 얹으면 늘 “아이를 바라보며 나를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큰아이를 마주하며 큰아이라는 말을 혀에 올릴 적에는 “나는 작지도 크지도 않지만, 아이들 곁에서 슬기로이 사랑인 어버이로 살자”고 되뇝니다.


  인천 〈북극서점〉은 작은 마을책집이기보다는 재미나고 즐거운 마을책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을 빚는 김휘훈 님하고 이곳 〈북극〉에서 함께 이야기꽃을 펴기로 하면서, 김휘훈 님은 그림을 놓고 저는 글을 놓습니다. 스스로 지은 이야기에 스스로 그림을 담아 그림 한 자락은 꽃으로 핍니다. 스스로 살아온 나날에 스스로 노래를 얹으니 글 한 줄은 꽃으로 피어요. 그림하고 글을 여미는 책집은 사이에서 새삼스레 꽃으로 피지요.


  하루를 어떻게 그리면서 놀 적에 신날까요? 스스로 꿈꾸는 길을 그리면서 놀기에 신날 테지요. 남들처럼 놀 까닭이 없습니다. 남들이 보아주기를 바랄 일조차 없습니다. 노는 어린이는 오직 스스로 어떤 마음빛인가 하나만 생각합니다. 노는 어른은 오롯이 스스로 어떤 사랑빛인가 하나만 품겠지요.


  우리 집 작은아이 산들보라 씨는 아버지하고 인천까지 함께 마실합니다. 오늘 저녁에 일산 이모네로 건너갈 생각입니다. 아버지가 이모저모 바깥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책집지기님한테서 그림꽃책(만화책) 하나를 받습니다. 말 한 마디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엮는 책을 받은 산들보라 씨는 전철길에 즐거이 읽습니다. “집에 가져가서 누나한테 보여주면 재미있어 하겠네요.” “네가 재미있다면.”


  아이가 어버이를 바라보며 하는 말은 올망졸망 물결치는 노랫가락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마주보며 받는 말은 알뜰살뜰 너울대는 춤가락입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내는 하루는 아이한테서 살림을 배우고 사랑을 헤아리면서 함께짓는 길입니다. 마을책집에서 이웃 숨결을 책으로 만나고 책집지기 숨빛을 느끼는 하루란, 오늘을 춤노래로 새삼스레 엮는 꾸러미를 누리는 길일 테지요.


ㅅㄴㄹ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고레에다 히로카즈/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2021.7.23.)

《너와 나》(김광주 엮음, 구문사, 1961.2.18.)

《환상의 동네서점》(배지영, 새움, 2020.9.22.)

《ROBOT dreams》(사라 바론, 세미콜론, 2010.1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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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아침에서 낮으로 (2021.10.16.)

― 제주 〈금요일의 아침 조금, 한뼘책방〉



  비가 오는 밤입니다. 새벽에도 가랑비가 마당을 가볍게 적십니다. 등짐을 비가리개로 싸고서 자전거를 탑니다. 우리 집 푸른씨는 “아버지 잘 다녀오셔요.” 하고 배웅합니다. 저는 “우리 푸른씨는 집에서 즐겁게 노셔요.” 하고 얘기합니다.


  빗길은 오르막이 가볍고 내리막이 빠릅니다. 다만 빗물이 끝없이 튀기에 빨리 달리지는 않습니다. 시골마을 새벽녘에는 오가는 부릉이(자동차)가 드뭅니다. 호젓이 비내음을 맡고 숲빛을 머금으며 바다노래를 맞이합니다. 어느 분은 “이런 날씨에 무슨 자전거를?” 하고 묻지만 “이런 날씨에는 이런 날씨를 누려요. 돌개바람이 칠 적에는 돌개바람이란 이렇구나 하고 누리려고 탑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녹동나루에서 제주나루로 네 시간 즈음 뱃길을 가르는 사이에 노래꽃을 씁니다. 때로는 손님칸에 드러누워 눈을 감습니다. 제주에 닿습니다. 빗줄기는 굵습니다. 빗방울을 동무삼아 천천히 오르막을 타고서 〈금요일의 아침 조금, 한뼘책방〉에 이릅니다. 골목에 깃든 포근한 샘터 같습니다. 〈한뼘책방〉이, 또는 〈금요일의 아침 조금〉이 깃든 마을에서 살아가는 분은 이 마을에 책집 하나가 싹트면서 얼마나 싱그러운가를 천천히 느끼면서 맞이할 테지요.


  등짐을 내려놓고 생강내음이 감도는 잎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꽃종이로 고이 싼 책을 하나 고르고, 〈금요일 한뼘〉에서 크게 짖으며 놀래킨 개를 마주보다가 개를 그린 노래책을 더 고릅니다. 어른 몸집만 한 개는 놀고 싶어서 짖는구나 싶습니다. 저를 놀래킬 적에는 ‘개를 그린 노래책’을 집을 때였는데, 큰개는 “얌마, 내(개) 책이잖아. 네가 왜 만져?” 하는 눈치예요. “응, 네 책 맞아. 그런데 이 책을 이곳 지기님이 새로 들여놓을 수 있단다. 난 이곳에서 네 눈빛을 보고서 이 노래책을 장만해서 읽을 생각이란다.” 하고 마음으로 속삭입니다.


  빗줄기는 그대로 굵습니다. 이런갑다 생각하지만 저만 비를 긋고 자전거는 시월비를 고스란히 맞습니다. 하루 내내 비를 쫄딱 맞는 자전거를 이따가 길손집에서 말끔히 닦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낮이 깊고, 구름이 새하얗게 덮은 하늘은 바람이 가볍게 춤춥니다. 둘레에서는 날이 매우 춥다고들 하지만, 시월이란 워낙 이런 철인걸요. 낮볕은 아직 후끈하고 밤이슬은 서늘하되, 빗물결로 “이제 곧 겨울이란다. 너희는 겨울맞이를 어떻게 하니?” 하고 묻는 시월입니다. 저녁에 설문대어린이책숲에서 만날 이웃님을 그리면서 다시 등짐을 멥니다. 온몸을 뜨끈하게 어루만졌으니 새길을 나설 때입니다. 아침에서 낮으로 한 뼘 움직입니다. 이 낮은 곧 별밤으로 걸어가겠지요.


ㅅㄴㄹ


《개를 위한 노래》(메리 올리버/민승남 옮김, 미디어창비, 2021.3.15.)

《쇼리》(옥타비아 버틀러/박설영 옮김, 프시케의숲, 2020.7.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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