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19.


《호동이랑 호동이랑》

 다카도노 호코 글·니시무라 아츠코 그림/계일 옮김, 계수나무, 2008.7.14.)



제주에서 바깥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로 제주를 더 돌아볼까 했는데, 아침에 함박비가 온다. 비가 멎을 때까지 더 길손집에 머물자고 생각하다가 열 시 무렵 우체국에 찾아가고, 글붓집(문방구)에 들러서 〈책밭서점〉에 간다. 엊그제 사려다가 미룬 책을 장만한다. 배를 타기까지 짬이 있어 〈한뼘책방〉에 가서 살짝 다리를 쉬는데, 또 빗방울이 듣는 듯해서 일찌감치 제주나루로 간다. 다시 자전거를 접는다. 앉아서 노래꽃을 더 쓰다가 꾸벅꾸벅 졸고, 배에 타서 하루쓰기를 마저 하다가 가만히 누워서 쉰다. 녹동나루에 닿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다. 밤자전거를 타려다가 그만둔다. 제주하고 사뭇 다르게 아늑하면서 짙푸른 고흥 시골인데, 군수도 벼슬아치도 이러한 고흥을 고흥답게 가꾸는 길에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 《호동이랑 호동이랑》를 읽었다. 사람 아이랑 어우 아이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곳에서 사람 어른하고 여우 어른도 살갑게 어우러지는 삶터를 그린다. 구경(관광)이 아닌 살림이라는 눈으로 볼 줄 안다면, 온누리가 모두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구경(관광)에 목을 매달면서 돈을 끌어들이려 하니 돈에 눈이 먼 나머지 마음빛을 스스로 잃거나 잊는다고 느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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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0.25.

숨은책 562


《增補 內鮮書簡文範》

 大山 壽 엮음

 三中堂書店

 1944.2.28.



  일본바라기(친일부역)를 하던 이들 발자취는 1945년 뒤로 감쪽같이 사라졌을까요, 감추었을까요? 알면서 모르는 척했을까요, 없는 듯이 눈가림이었을까요? ‘반민특위’가 있었으나 잘못값을 치른 이는 없다시피 합니다. 돈바치·이름바치·글바치는 저마다 요모조모 빠져나갔을 뿐 아니라, 따르는 이(추종자·제자)를 잔뜩 키워서 감싸거나 치켜세웠어요. ‘大山 壽’라는 사람이 쓰고 엮었다는 《增補 內鮮書簡文範》은 ‘내선일체 글쓰기’를 알려줍니다. 어떻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해야 일본 우두머리를 섬기는 매무새인지 들려주고, 일본스러운 몸차림을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大山 壽’은 “국경의 밤”이란 노래를 쓴 김동환(1901∼1958)이란 사람이 고친 이름(창씨개명)이요, ‘三中堂書店’은 서재수(徐載壽)라는 사람이 1931년에 열고, 뒷날 ‘삼중당’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京城府鐘路區寬勳町一二三番地’에 있었다는 그곳에서 어떤 책을 냈는지, 또 이곳에서 1945년 뒤에 어떤 책으로 돈을 벌었는지 안 궁금해요. 다만, 글꾼 몇몇뿐 아니라, 글을 책으로 묶은 숱한 책마을 일꾼도 일본바라기를 함께했고 돈·이름·힘을 함께 누렸습니다. 이들 가운데 잘잘못을 환히 밝히거나 뉘우친 사람이 몇쯤 있었는지도 그닥 궁금하진 않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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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0.25.

숨은책 561


《現行朝鮮語法》

 鄭國采 글

 宮田一志 펴냄

 宮田大光堂 1926.12.25.



  1917년에 한힌샘 님이 편 ‘한글모죽보기’를 550사람 즈음 들었고, 이때 함께 들은 정국채 씨는 1926년에 《現行朝鮮語法》을 일본글로 써내는데, “전라남도 광주 금계1리 133번지”에 살면서 썼고, “光州 弓町六五番地”에 있는, 일본사람이 꾸리는 출판사에서 펴냅니다. 책 앞자락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李軫鎬)이 ‘訓民八週丙寅’란 글씨를, 전라남도지사(石鎭衡)가 ‘言海指針’란 글씨를 남겨요. 첫머리는 조선총독부 ‘視學官’이라는 현헌(玄櫶)이라는 사람이 쓰는데, 이때 ‘시학관’은 오늘날 ‘교육감’입니다. 현헌 씨는 경성고등보통학교·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교유(敎諭)를 하다가 1921년부터 조선총독부 시학관을 맡는데, 이이 아들 현영섭(창씨개명 天野道夫아마노 미치오)은 “내선일체를 위해선 조선말을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고 외쳤다지요. 어떤 이는 홀로서기(독립)를 꿈꾸며 한글을 익히고, 어떤 이는 일본바라기(친일부역·내선일체)를 꾀하려고 조선글을 일본사람한테 가르칩니다. 그나저나 《現行朝鮮語法》은 ‘カケハシ書店’에서 팔린 자국이 있어요. “山口市 下立小路(혼슈 야마구치시 오리타테에おりたてえ)”에 있던 작은 책집이라는데, 조선사람이 사서 읽었습니다. 글 하나를 놓고 다 다른 삶과 길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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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럽고 품격 있는 방귀 사전
스틴 드레이어.헤나 드레이어 지음, 마리아 버크만 그림, 최지영 옮김 / 노란돼지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책 2021.10.25.

그림책시렁 797


《방귀 사전》

 스틴 드레이어·헤나 드레이어 글

 마리아 버크만 그림

 최지영 옮김

 노란돼지

 2021.6.25.



  점잔을 떨어야 하면 갑갑합니다. 갑갑하면 속이 더부룩합니다. 속이 더부룩하면 뭔가 내보내야 하는데, 입으로도 뒤로도 내보내지 못하면 괴롭습니다. 곰곰이 보면 점잔을 빼야 하는 자리는 사람들 속을 태우는 짓이로구나 싶어요. 가볍게 놀고 부드럽게 어울리고 신나게 뛴다면 점잔을 뺄 까닭이 없어요. 함께 땀흘리고 같이 씻으며 나란히 노래하는 자리에서는 겉치레가 덧없습니다. 놀지 않고 일하지 않으니 겉멋으로 흐르고, 이러면서 방귀를 꺼리거나 놀리거나 나쁘게 보는 눈까지 생기지 싶어요. 《방귀 사전》은 여러 가지 방귀를 이야기합니다. 재미나게 엮었구나 싶으면서 어쩐지 아쉬워요. 거의 점잔쟁이하고 얽힌 방귀가 흐르는 꾸러미인데, 어른 사이에서 피어나는 방귀보다 어린이 사이에서 놀이하는 방귀를 다루면 훨씬 재미날 만하리라 봅니다. 더구나 어른 사이 점잔빼기 이야기나 그림이 많다 보니, 이 그림책에서 다루는 말씨도 꽤나 어른스럽게 점잖구나 싶어요. 어린이 말씨로 손본다면 한결 방귀스럽게 방귀다운 이야기를 펼 만하다고 봅니다. 속을 가꾸면서 살면 홀가분하면서 즐거워요. 속을 밝히면서 살림을 노래하면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하하호호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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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위의 주먹 - 2023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엘리즈 퐁트나유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 외 옮김, 이경신 감수 / 오후의소묘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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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10.25.

그림책시렁 799


《섬 위의 주먹》

 엘리즈 퐁트나유 글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

 2019.4.29.



  시골 할매나 할배 가운데 제법 배움터를 다닌 분이 있으나, 배움턱은 아예 못 디딘 분이 있습니다. 글씨를 빼어나게 쓰는 어른이 있고, 글씨를 못 읽는 어른이 있습니다. 다만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하나같이 손이 굵고 얼굴이 까맣습니다. 흙하고 나무하고 돌하고 물을 늘 만지는 사람은 손이 단단하면서 흙빛입니다. 해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누리는 사람은 까마잡잡한 숲흙 같은 낯빛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시골에서조차 흙배움터(농업학교)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기 좋도록 북돋우는 배움터로 바뀝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흙한테서 흙을 배우고 바람한테서 바람을 배우고 풀꽃나무한테서 풀꽃나무를 배웠다면, 어느새 배움터하고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흙짓기를 배우는 흐름이 됩니다. 《섬 위의 주먹》에 나오는 두 사람을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배움턱을 디딘 적이 없이 스스로 흙이랑 하나가 되어 흙을 알아요. 다른 사람은 배움턱을 디디면서 흙을 아직 모르지만, 할배 곁에서 노래하고 놀면서 소꿉을 하면 즐겁습니다. 오늘날 흙할매나 흙할배 곁에서 흙을 배우는 어린이는 몇이나 될까요? 오늘날 풀밭에 드러눕거나 숲을 달리며 푸른빛을 스스로 누리며 익히는 푸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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