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자면 맞춤법
박태하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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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3.

읽었습니다 32



  맞추어서 나쁠 일은 없습니다. 맞추기에 좋다고 합니다. 옷을 맞추어 입고, 자리에 맞고 차린다고 합니다. 듣는 쪽에 맞추기에 서로 부드러이 흐른다고 해요. 가만히 보니, 저는 으레 아이들하고 눈을 맞춥니다. 키높이도 맞추고, 손힘도 맞춰요. 아이들한테 안 맞춘다면 아이들이 힘들거든요. 아이들이 힘들면 저도 덩달아 힘듭니다. 그렇다면 ‘맞춤길(맞추는 길)’은 어느 눈을 살필 적에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이름으로는 ‘맞춤’이지만, “틀에 맞추는” 분이 있고 “삶에 맞추는” 분이나 “사랑이며 어린이한테 맞추는” 분이 있어요. “어른한테 맞추”거나 “서울에 맞추”는 분도 많습니다. 《책 쓰자면 맞춤법》은 나쁜 책일 수 없습니다. 좋은 책일 테지요. 그러나 이 ‘좋은’ 책이 “글을 쓰는 사랑”을 다루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맞추어서 좋은 길”을 짚습니다만, “사랑으로 맞추고 숲이며 놀이에 맞추는 아이들 맑은 눈빛”이라면 참 아름다울 텐데요.


《책 쓰자면 맞춤법》(박태하 글, 엑스북스, 201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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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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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 - 함께 사는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요즘문고 1
우엉, 부추, 돌김 지음 / 900KM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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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3.

읽었습니다 24



  우리말 ‘짓다’하고 ‘만들다’는 결이며 길이 다릅니다. 요즈음 두 낱말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가리는 분을 좀처럼 못 만납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리면, ‘만들다’란 낱말을 함부로 쓰면 마을 할배가 점잖게 타이르면서 “얘야, 그럴 적에는 ‘만든다’고 하지 않아. ‘짓는다’고 하지.” 하고 짚어 주었습니다.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을 읽으면서 세 사람이 서로 다르지만 비슷하게(그리고 똑같이) 어우러지는 하루를 돌아봅니다. 하나가 아닌 셋이니 세 목소리에 세 살림에 세 눈빛이기 마련입니다. 부딪히거나 다툴 일이 생길 만하고, 사이좋게 얼크러지면서 신나는 잔치를 펼 만해요. 집짓기란 뚝딱뚝딱 빨리 올리는 길하고 멀다고 느껴요. 집짓기란 삶짓기하고 살림짓기를 더한 하루짓기이지 싶습니다. 밥을 더 많이 먹어야 배부르지 않듯, 집을 더 크게 지어야 넉넉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기울여 즐겁게 수다를 펴면서 차근차근 짓기에 비로소 ‘살림집’으로 섭니다.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우엉·부추·돌김 글, 900KM, 2020.7.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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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9월 15일부터

마음수다를 씁니다.

이 마음수다는

‘소설’이라고 하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소설’이거든요.

날마다 하루 한 바닥씩

옮겨적으라는

마음소리를 듣고서

그야말로 바지런히

옮겨적는 나날입니다.

“숲노래 소설”이란 이름을 붙여 봅니다.

“글수다”란 이름도 붙입니다.

다시 말씀을 여쭙지만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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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소설


“어제는 어떠했니?” “응? 어제?” “그래, 어제이지, 뭐 다른 날이니?” “아, 네가 목소리로 찾아온 어제?” “그래.” “그게, 글쎄,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데,” “뭐, 아직 모를 수 있고, 앞으로도 모를 수 있어. 그러나 네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 “…….” “네가 안 하기로 생각하면 안 할 테고, 네가 못 한다고 생각하면 못 하겠지. 네가 하기로 생각하면 바로 그곳부터 할 테고, 네가 즐겁다고 노래하면 언제나 그곳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하루를 열지.”  “…….”


2021.9.16.나무.


두 가지를 물어본다. “네 아이가 무엇을 영 못하는구나 싶으면 넌 아이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하고 “네 아이를 언제까지 어떤 눈빛·마음·몸짓·말씨로 지켜보거나 기다리겠는가?”를.


이렇게 묻더니 “너는 네가 영 못하는구나 싶을 적에 너 스스로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묻더니 “너는 너 스스로 언제까지 어떤 눈빛·마음·몸짓·말씨로 너를 지켜보거나 기다리겠는가?” 하고 더 묻는다. 모두 네 가지이지만, 곰곰이 보면 한 가지를 묻는다고 느끼지만 도무지 아무 말을 못하고서 멍하다.


우리 아이나 곁님이 무엇을 영 못한다면 억지로 이끌거나 가르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길을 가 보라고 얘기하겠구나 싶고, 그래도 스스로 더 해보고 싶다 하면 스무 해이든 마흔 해이든 백 해이든 이백 해이든 즈믄 해이든 그저 즐거이 지켜보고 기다리겠구나 싶다.


그런데 아이들하고 곁님이 아닌 나라면? 나는 나를 차분히 지켜보면서 기다릴 줄 알까? 나 스스로 부드럽거나 상냥히 다독일 줄 알까? 더 느긋이 천천히 해보라고 스스로 마음한테 속삭일 줄 알까? 누가 나한테 무엇을 왜 아직 못 하거나 안 하느냐고 물을 적에 ‘남’이나 ‘아이들’이나 ‘곁님’한테 말하듯 ‘나’한테 말할 줄 알까?


꿈에서 만난 사람은 자꾸자꾸 묻다가 빙그레 웃는다. 이 네 가지이자 한 가지 물음을 얼른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잊어도 된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대로, 이 꿈이야기는 꿈에서 깨고 곧바로 거의 잊었다. 떠올리려 해도 영 안 떠올랐다. 이러다가 붓을 쥐니 비로소 새벽녘 어지럽던 꿈모습을 조금 옮길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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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9월 15일부터

마음수다를 씁니다.

이 마음수다는

‘소설’이라고 하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소설’이거든요.

날마다 하루 한 바닥씩

옮겨적으라는

마음소리를 듣고서

그야말로 바지런히

옮겨적는 나날입니다.

“숲노래 소설”이란 이름을 붙여 봅니다.

“글수다”란 이름도 붙입니다.

다시 말씀을 여쭙지만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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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소설


꿈자리에서 겪은 일이 생생하다. 꿈자리를 되새기자니 마음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 “잘 봤니? 잘 봤으면 옮겨 봐.” “어. 누구?” “누구냐고?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네가 누구인지 궁금해 할 노릇 아닐까?” “어? 어? 어.” “네가 꿈에서 겪고 보고 듣고 느낀 모두를 그대로 옮기렴.” “그래, 알았어. 그럴게.” “자, 오늘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들려줄 테니 마음을 기울여서 받아적으렴.”


글수다 2021.9.15.물.


어느 곳에서 돌봄이(의사)라는 일을 한다. 꿈으로 간 몸을 입던 나는 “내가 이런 일도 했나?” 하고 생각한다.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 다 나았습니다.” 하고 알려주지만, 돌봄터(병원)에 들어온 사람은 안 나가려고 한다. “나갔다가 또 아프면요?” “이제 안 아픕니다.” “또 아플 텐데요.” “그때에는 여기 바로 오시기보다 스스로 몸을 다스려 보세요. 여기 오가느라 힘들고 돈도 많이 쓰시잖아요? 집에서 느긋이 풀꽃을 쓰다듬고 하늘과 해를 보시면 튼튼합니다.” “아녜요. 여기가 가장 좋아요.”


돌봄터에는 이런 사람이 가득하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서 돌봄삯(병원비·치료비)을 다 대주니 ‘돈걱정’은 안 한다. 그러나 ‘몸생각’도 안 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지 않기에, 배움터(학교)를 오래오래 다니고, 일터(회사)를 오래오래 다니며 길든 탓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간다. ‘돈과 일자리를 주는 남’이 하는 말은 고분고분 듣되, 마음에서 퍼지는 빛살은 바라보지 않는다.


나라(정부)는 돌봄터를 더 크게 자꾸 짓는다. 젊은이는 돌봄이(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좋다고 여긴다. ‘나라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득하다. 스스로 삶을 생각하고 지으면서 제 빛을 찾거나 보려는 사람을 찾을 길이 없다.


이런 판이고 보니,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다 잊거나 할 줄 모른다. ‘남이 꾸며서 우습게 보여주는 이야기(연속극·영화·공연)’에 넋이 빠진다. 보임틀(TV·영상)에 넋을 잃고 빠져들면서 이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 나는 이 일 ‘돌봄이’를 그만둘 수 있는가? 나부터 이 쳇바퀴를 스스로 내려놓고서 떠날 수 있는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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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0.30.


《밥상 아리랑》

 김정숙 글/차은정 옮김, 빨간소금, 2020.3.27.



서오릉 이웃님이 가꾸는 꽃밭집에 찾아갔다. 이곳에 발을 디디기는 처음인데, ‘서울 바깥’이라고 한다. 이쪽에 ‘배다리’가 있단다. 인천에도 ‘배다리’가 있지. 나라 곳곳에 ‘새마을·새터’나 ‘꽃골·밤골’ 같은 이름이 흔하듯 ‘배다리’도 너른 이름이다. 서오릉 이웃님하고 얘기하다가 “이웃님 스스로 늘 듣고 싶은 이름을 우리 아이한테 알려주셔요. 우리는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만 써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늘 듣고 말하면서 즐거울 이름은 스스로 지으면 돼요.” 하고 여쭈었다. 서오릉 이웃님은 ‘바다처럼’이란 이름을 쓰겠노라 하신다. 잘 놀고 잘 얘기하고서 전철로 서울로 들어서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간다.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달릴수록 소리하고 바람빛이 다르다. 읍내에 닿아 마침내 집에 이르니 아이 낯빛이 풀꽃나무처럼 싱그럽게 풀린다. 《밥상 아리랑》을 즐겁게 읽으면서 옮김말만큼은 아쉽다. ‘교수님 눈높이 옮김말’이 아닌 ‘밥짓는 어버이 눈높이 옮김말’로 가다듬으면 훨씬 나았으리라 본다. 그러나 책을 쓰거나 옮기는 분은 으레 ‘교수님·작가님·예술가’이기 마련이니 말씨가 참 어렵고 딱딱하다. 아이들하고 삶을 노래하듯 글을 쓰고 옮기면 더없이 눈부신 책이 태어날 텐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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