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그 많은 책집을



  “그 많은 책집을 어떻게 다 다녔어요?” 하고 여쭙는 분이 많으나 “아직 저한테는 제가 발을 디딘 책집보다 발을 디디려는 책집이 더 많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네?” “다시 말하자면, 다닌 곳보다 못 다닌 곳이 훨씬 많아요.” “…….” “주머니가 닿는 대로 다녔습니다.” “주머니가 닿는?” “책집마실을 하자면 책값을 치러야 하고, 길삯을 치러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틈만 낸대서 책집을 다닐 수 있지 않아요. 책집마실을 할 수 있도록 책값부터 신나게 벌어야 합니다.” “…….” “설마, 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안 사고 그냥 나올 생각인가요?” “…….” “책집마실을 한다면, 책집으로 가서 기꺼이 온갖 책을 돌아보다가 즐거이 두 손이나 가슴 가득 책을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아!” “다시 말하자면, 돈(책값)을 실컷 모아서, 또는 ‘없는 돈을 박박 긁어’서 책집마실을 했기에, 저는 ‘주머니가 닿는 대로 다녔다’고 말합니다.” “아!” “그래서 저는 ‘산 책’보다 ‘못 산 책’이 훨씬 많아요. 적어도 열이나 스무 자락쯤 서서 읽습니다. 이 책도 저 책도 다 장만할 만큼 주머니가 된다면 굳이 ‘서서읽기’를 안 할 텐데, 앞으로는 ‘앉아읽기’를 할 만큼 살림돈을 건사하자고 생각해요.” “…….” “누가 보면, 제가 책을 참 많이 산다고돌 하는데, 제 눈으로 보자면 저는 책을 되게 적게 삽니다.” “…….” “‘주머니가 닿는 대로’ 사야 하기에, 책집에서 눈물을 머금고서 제자리에 꽂는 책이 수두룩해요.” “…….” “어느 모로 본다면, ‘주머니가 닿는 대로’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을 장만해서 읽다 보니, 저절로 책눈(책을 보는 눈)을 스스로 키운 듯해요. 주머니가 가볍기에 ‘서서읽기’로 빨리 읽어내야 하고, 주머니가 가볍기에 ‘눈물을 머금으며 내려놓을 책’하고 ‘눈물을 짜내어 꼭 살 책’을 솎아야 하거든요.” 저는 아직 ‘그 많은 책집’을 얼마 못 다녔으나, 그래도 즈믄(1000) 곳은 넘게 다녔습니다. 10000에 이르는 책집을 다녀 보아야 비로소 “책집마실을 다녔습니다” 하고 말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사진 : 서울 골목책방. 2003


사흘치 밥값으로 장만한 새뜸(신문)꾸러미.

"사흘쯤 굶어도 안 죽잖아?" 하고 생각했다.

숲노래가 책을 사는 길은 이렇다.

뭐, 며칠 굶고서 책을 사서 읽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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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고무신



  저는 고무신을 꿰고서 책집마실을 다닙니다. 아니, 저한테는 고무신만 있습니다. 꼼꼼히 따지자면 ‘고무’가 아닌 ‘플라스틱’이라서 ‘플신(플라스틱신)’입니다. 2010년 언저리까지는 고무로 찍은 고무신이 있었습니다만, 뒷굽이 쉽게 까져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으로 가볍게 찍는 ‘플신’을 ‘고무신 모습’으로 내놓을 뿐입니다. 고무로 찍는 고무신은 중국에서만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서울·큰고장 이웃님은 “요새도 고무신을 파느냐?”고 묻습니다만, 시골 할매할배는 다 고무신을 뀁니다. 그런데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 사는 이웃님도 “아직도 고무신이 있나요?” 하고 묻더군요. 고무신은 시골 저잣거리나 신집에서도 팔고, 서울 저잣거리나 신집에서도 팝니다. 다만 서울·큰고장에서는 ‘신집’에서 팔 뿐, ㄴ이나 ㅇ처럼 큰이름을 붙이는 데에서는 안 팔지요. 적잖은 분들은 “요새도 헌책집을 다니는 사람이 있느냐?”나 “아직도 헌책집이 있나요?” 하고 묻는데, 헌책집은 서울이며 나라 곳곳에 튼튼하고 의젓하게 있습니다. ‘알라딘 중고샵’이 아닌 ‘헌책집’은 신촌에도 홍대에도 있고, 여러 열린배움터(대학교) 곁에도 있으며, 안골목에 가만히 깃들어 책손을 기다립니다. 새로 나와서 읽히는 책이 있기에, 이 책이 돌고돌 징검다리인 헌책집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무신도 헌책집도 ‘흘러간 옛날 옛적 살림’이 아닌 ‘오늘 이곳 살림’입니다. 서울·큰고장 이웃님은 “요새도 흙을 짓는 사람이 있나요?”나 “아직도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묻지는 않겠지요? 어쩌면 이렇게 물을 만한 분이 꽤 늘었다고도 할 텐데, 숲·들·바다가 있어야 서울·큰고장에서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새책집 곁에 헌책집이 있어야 책이 돌고돌 뿐 아니라, 오랜책으로 새롭게 배우는 살림길을 탄탄히 다스립니다. 발바닥이 땅바닥을 느끼기에 어울리는 고무신입니다. 오늘 이 터전을 어떻게 이루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적에 아름다운가 하는 실마리하고 밑바탕을 ‘헌책·오래책·손길책’으로 되새기기 마련입니다.


ㅅㄴㄹ


* 사진 : 서울 숨어있는책. 2005


한창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무렵,

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간 헌책집.

충북 충주부터 서울 신촌까지.

내 신(고무신)은 자전거를 달려 주느라

엄청난 책등짐을 짊어진 몸을 걸어 주느라

언제나 가장 밑바닥에서

온힘을 다해 주었다.


땀하고 먼지에 전 고무신을 헹굴 적마다

이나라 책마을 밑자락에서

조용히 땀흘리는 헌책집지기를

가만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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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집 언저리 2021.11.10.

책집이라는 곳



  책집은 대단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책집도 헌책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숲(도서관)도 매한가지예요. 책이 있는 곳이라서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저마다 새롭게 빛나는 숨결인 터라 모든 사람이 아름답고, 저마다 새롭게 빛나는 숨결로 꾸리는 책집은 저마다 아름다우니, 어느 곳이 대단하다고 하거나 어느 것은 덜 대단하거나 안 대단하다고 가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쉰 해 넘게 ‘만화책집’을 꾸린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 할머니는 “책집지기 예순 해”를 앞두고 책집을 닫았습니다. ‘인문사회과학책집’도 아닌 ‘만화책집’은 그만 꾸리기를 바라는 딸아들 목소리가 컸고, 지팡이로 절뚝거리면서 ‘손님도 거의 안 찾는 작은 만화책집’에 날마다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혼자 드시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집에서 푹 쉬기를 바랐다지요. 거의 예순 해에 이른 ‘만화책집지기 할머니’가 일을 그만둔 때는 2004년 언저리였지 싶은데, 그 뒤로 열 몇 해가 흐른 오늘날, 우리는 ‘인문사회과학책집지기’나 ‘그림책집지기’가 아닌 ‘만화책집지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책을 다루는 곳은 모두 책집이지 않을까요? 만화책이나 어린이책은 아이들만 보는 ‘유치한 책’일까요? 책집은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집은 아름다우면 넉넉하다고 생각해요. 번쩍번쩍한 겉모습이 아닌, 책 한 자락으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속삭이는 즐거운 쉼터이자 이야기터라면, 모든 마을책집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책집이 아닌 살림집도 이와 같아요. 조촐히 이야기터이자 쉼터이자 삶터이자 숲터로 오늘 하루를 돌보면 모든 살림집은 아름집으로 나아가는 아름길일 테지요. 우리는 모두 ‘지기’입니다. 집지기이면서 마을지기요 숲지기에다가 아이지기(어른으로서는)에 어른지기(아이로서는)입니다. 스스로 즐거이 하루를 노래하는 지기이기에 책집지기라는 이름을 새록새록 보듬으면서 이웃하고 이야기꽃을 지피는 어깨동무를 하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사진 : 서울 신촌헌책방 2005.

이제는 닫은 곳.


책집지기님이 날마다 적던 '팔림적이'.

누구한테도 안 보여준다고 하셨는데

딱 하루 이날 한 자락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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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1.11.10.

오늘말. 후지다


갇힌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어쩐지 구리터분합니다. 닫힌 생각에서는 낡거나 추레하구나 싶은 말이 흐르지 싶습니다. 스스로 막지 않는다면, 스스로 환히 틔운다면, 이때에 비로소 예스러우면서 멋스러운 말이 피어나고, 새로우면서 빛나는 말이 자라나지 싶어요. 우리가 펴는 모든 말은 씨앗입니다. 묵은 말을 한다면 해묵은 씨앗을 심는 셈이고, 밝게 말한다면 밝은 씨앗을 심는 삶입니다. 때로는 불씨가 되는 말을 하겠지요. 말 한 마디가 디딤돌이 되어 고인물을 걷어내면서 낡은버릇을 씻습니다. 말 한 마디가 다릿돌이 되지 않는다면 후지거나 삭거나 허접한 버릇이 자꾸 튀어나오지 싶어요. 밑뿌리를 어떻게 다스릴 적에 아름다울까요? 바탕을 어떻게 다질 적에 즐거울까요? 빛없는 말은 씨앗도 밑틀도 발판도 되기 어렵구나 싶어요. 판박이처럼 말할 적에는 징검돌도 다리도 아닌, 싸우는 빌미가 되면서 스스로 고단하지 싶습니다. 이 말을 하기에 뒤처지거나 앞서가지 않아요. 손때가 묻은 말을 가꾸는 사람은 허름하거나 한물가지 않아요. 먼먼 옛날부터 쓰던 말 한 마디에 스민 숨결을 읽기에 이 하루를 살찌우는 밑싹이 된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다리·다릿돌·징검다리·징검돌·까닭·탓·발판·빌미·밑싹·밑뿌리·밑거름·밑틀·밑·바탕·디딤돌·디딤판·불씨·씨앗 ← 기폭제, 촉매, 발단


갇히다·막히다·닫히다·고리다·고린내·고린짓·고리타분하다·구리다·구린내·구린짓·구리터분하다·구닥다리·고이다·고인물·손때·추레하다·해지다·낡다·낡아빠지다·닳다·삭다·묵다·케케묵다·해묵다·낡은것·낡은길·낡은버릇·낡은넋·낡은생각·낡은물·낡은틀·뒤떨어지다·뒤처지다·한물가다·허름하다·허접하다·오래되다·예스럽다·옛날스럽다·예전·옛날·옛길·옛틀·빛없다·빛깔없다·빤하다·뻔하다·후지다·후줄근하다·지키다·틀박이·판박이 ← 고답적(高踏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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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3.


거기서 일하는 무스부 씨 1

 모리 타이시 글·그림/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0.1.31.



인천 주안에서 일어나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간다. 〈메종인디아〉에 들러서 숨을 돌린다. 며칠째 서울에서 머무느라, 또 ‘가루가 안 녹고 미지근한 코코아’를 마시고서 뱃속 부글거리느라 힘든 몸을 어느 만큼 달랜 뒤에 〈서울책보고〉로 간다. 다음달 12월부터 ‘헌책집 사진잔치’를 어떻게 꾸려서 열면 즐겁게 빛날까 하는 이야기를 한다. 책집을 찍은 사진을 여태 조촐히 선보이기만 했는데, 오랜만에 큼지막하게 선보이면서 책빛을 나누는 길을 열겠구나. 시골집 아닌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니자니 기운이 쉬 빠진다. 한참 걸으며 새삼스레 땀으로 폭 젖는다. 둘레 사람들은 “안 춥냐?” 하고 묻지만, 내 등짐과 어깨짐을 생각한다면, 또 내내 걸으며 움직이는 줄 살핀다면, 이마랑 등판에 흐르는 땀을 본다면, 그런 말은 쑥 들어갈 테지. 합정나루 곁 ‘보보호텔’에 41259원에 깃든다. 누리그물로 길손집을 잡으니 참 값이 눅다. 《거기서 일하는 무스부 씨 1》를 읽었다. 살까 말까 한 해 남짓 망설이다가 첫걸음은 읽어 보자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줄거리로도 새삼스레 그림꽃책을 엮는구나. 눈썰미가 확 다르다. 다만 뒷걸음은 밀고당기는 풋타령으로 흐를 듯하다. 어제오늘 장만한 책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다가 곯아떨어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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