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67 멋



  낱말책은 이 낱말을 저 낱말로 풀어내는 책입니다. 낱말책은 멋을 부리지 못합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하다 싶은 길을 갑니다. 더 멋스럽다는 낱말을 올리지 않고, 안 멋스럽다면서 자르지 않아요. 모든 말을 수수하게 바라보면서 다룹니다. 어느 낱말을 돋보이도록 멋부린 뜻풀이나 보기글을 붙이지 못해요. 모든 낱말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며 값어치가 있기에, 모든 낱말을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건사해요. 우리 살림자리도 말꽃짓기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다스린다면 외려 멋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멋을 안 부려야 오히려 멋스럽지 싶어요. 꾸미면 꾸밈결일 뿐입니다. 치레하면 치레일 뿐이에요. 삶과 살림과 사랑이라는 숨결을 수수하게 담아내기에 그저 삶과 살림과 사랑이면서 시나브로 멋이 피어납니다. 글멋을 부릴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옮기는 글이면 넉넉합니다. 글치레를 할 일이 없습니다. 살림을 담는 글이면 즐겁습니다. 멋을 부리려 하기에 멋이 사라진다는 대목을 읽는다면, 맛깔나는 글이기를 바라면서 자꾸 꾸미려 들기에 맛깔나는 길하고는 도리어 동떨어지는구나 싶어요. 투박하게 짓는 살림이 참으로 맛깔나기 마련입니다. 오늘 누리고 짓고 가꾸는 삶을 그저 즐겁게 수수하면서 투박한 눈빛으로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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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하늘길 창비시선 63
양성우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책 2021.11.11.

노래책시렁 200


《그대의 하늘길》

 양성우

 창작과비평사

 1987.10.10.



  삶이란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삶이란 스스로 서는 자리에 따라 좋기도 하고 궂기도 합니다. 삶이란 언제 어디에서 입을 벙긋하며 이야기를 터뜨리느냐에 따라 빛도 되고 어둠도 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두머리 노릇도 하고, 이명박을 나라지기로 힘껏 밀기도 했던, 떠난 노무현한테 재떨이를 던져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던, 우리말(국어)을 가르치는 노릇을 하다가 박정희한테 찍히기도 했던, 이제는 고양시에서 조용히 글만 쓴다는 분이 1987년에 쓴 《그대의 하늘길》을 읽고서 이녁 발자취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몸이 있으니 뛰고, 손이 있으니 글을 쓴다는데, 어떤 눈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서 움직이는 몸이요 쓰는 손이었을까요? 모든 말글은 언제나 스스로 돌려받으려고 내놓기 마련입니다. 거친 말씨도 고운 말씨도 늘 스스로 비추는 거울입니다. 수수한 삶길도 겉치레 삶길도 노상 스스로 짓는 하루입니다. 노래님은 스스로 ‘브리지’가 되겠노라 자주 읊었는데, 우리말 ‘다리’도 한자말 ‘교두보’도 아닌 영어 ‘브리지’를 굳이 골라서 읊조리는 노래라면 “당신의 친미주의”일까요? 아니면 ‘내멋남못(내가 하면 멋있고 남이 하면 못나다)’일까요? 핑계는 노래하고 멉니다.


ㅅㄴㄹ


사람이 남들을 티없이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 그렇지만 그대 지금까지 늘 빈손일 뿐이고 / 오직 하나 숨어서 사랑하는 재주밖에 가진 것이 없으니, (다시 친구에게/57쪽)


굿모닝 웰컴. 식사 전에 환담을 나누시지요. 커피와 함께 여송연도 피우시구요. 국제어로 말씀하시고, 오케이 오우케이 무조건 고개를 주억거리십시오 ……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실 때는 개 죽는 소리로 신호를 보내시지요. 끼잉낑낑 끼잉낑낑. 당신의 헌신적인 친미주의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땡큐 때앵큐. (당신의 친미주의/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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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나루책집



  마을책집으로 찾아가다 보면 그 마을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분들이 오히려 그곳 마을책집을 잘 모르시곤 했습니다. “거기에 책집이 있다고요? 그런데 그 책집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요?” 하고 되물으시지요.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분조차 마을책집을 잘 모르셔서 놀랐습니다. 커다란 책집만 다니기에 모를는지 모르고, 헌책집으로 책마실을 다닌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아서 모를는지 모릅니다. 진주 고속버스나루 곁에 〈소문난서점〉이 있습니다. 어느덧 고속버스나루 ‘곁’에서 ‘2층’으로 옮겼는데, 예전에는 고속버스를 내리면 바로 ‘곁’에서 헌책집이 방긋방긋 손을 흔든 얼거리입니다. 이제는 버스나루나 기차나루 곁에 찻집·술집·밥집만 줄잇지만, 지난날에는 버스나루하고 기차나루 곁에 으레 헌책집이 줄지었습니다. 버스나루하고 기차나루 곁에 새책집은 이따금 있고, 참말로 헌책집으로 골목이나 거리를 이루곤 했어요. 1995년 무렵에 가게를 닫은 여러 ‘기차나루 곁 헌책집지기’님이 곧잘 “옛날에는 손님 많았지. 옛날에는 기차가 요새처럼 잦았나? 몇 시간이고 기다리기 일쑤였거든? 그러면 이 둘레에서 그때까지 보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서울이고 나라 어느 곳이건 헌책집에서 책을 보면서들 기다렸지. 헌책집이니까 가볍게 찾아오고, 가볍게 이 책 저 책 만지작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사는데, 옛날 기차가 오죽 느렸어? 그러니 기차에서 심심하잖아. 옛날에는 기차 손님이 책을 참 많이 사갔어. 그리고 책을 참 많이 팔았지.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손님이 기차에서 책을 다 읽고서 서울에서 책을 팔아. 또 서울에서 대전에 가는 손님은 기차에서 책을 다 읽고서 대전에서 책을 팔지. 그런데 이제는 기차 손님이 책을 안 사더라고. 그러니 우리 가게도 곧 닫으려고.”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차나루나 버스나루 곁에 헌책집이 줄잇던 모습을 그려 보았고, 참말로 그럴 만했구나 싶더군요. 오늘날에는 서울하고 부산 사이를 2시간이 채 안 되어도 휙 달리는 기차가 있습니다. 이렇게 휙 달린다면, 기차에서 느긋이 책 몇 자락 읽으면서 마음을 달랠 일도 줄거나 사라지겠지요. ‘느리게 달리던 기차나 버스’여서 책을 읽은 지난날이라기보다, ‘느긋하게 삶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책에서 찾던’ 지난날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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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진주 소문난서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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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책집고양이



  이제는 개나 고양이가 곁벗(반려동물)으로 책집에 함께 있기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개나 고양이가 섣불리 함께 있기 힘들었습니다. 반기거나 좋아하는 사람 못지않게 꺼리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서울 용산 〈뿌리서점〉 지기님은 길짐승한테 밥을 줄 생각도, 책집에 곁짐승으로 들일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러던 2003년 어느 날 길고양이가 책집 구석에서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는 모습을 보았다지요. 처음에는 얼른 내쫓으려 했지만, 젖을 물리는 어미 고양이, 또 젖을 빠는 새끼 고양이를 보고는 차마 내쫓지 못했답니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종이꾸러미로 집을 마련해 주고, 새뜸(신문)을 깔아 줍니다. 길고양이가 아무 데에나 똥오줌을 누면 책이 다치고 책에 냄새가 밸까 몹시 걱정스러웠지만, 새끼가 다 커서 떠날 때까지 고이 건사해 주었습니다. 이런 뒤에는 책집 바깥에 길고양이 밥그릇을 마련해 놓았어요. 〈뿌리서점〉을 날마다 찾는 단골이 묻습니다. “어, 여보게 김 사장, 자네 고양이 싫어한다고 안 했나?” “내가 언제 싫어한다고 했나.” “허허, 말 바꾸는 것 보소.” “저런 젖먹이를 어떻게 내보내. 여기서 새끼를 낳았는데 다 클 때까지는 밥을 줘야지.” “허허, 이제 동물애호가가 다 되셨구만.” “동물애호가라니. 누구라도 젖먹이 새끼를 보면 그냥 두고 밥을 줘야지.” 이때부터 여러 해 동안 길고양이가 헌책집을 드나들었는데, 문득 어느 해부터 발길을 끊습니다. 밥그릇을 내놓아도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얘들이 잘 사는가, 죽었는가 걱정이 되네. 여보 최 선생, 최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나? 얘들이 살았을까, 죽었을까? 밥을 먹으러 안 온 지가 한 달이 넘네.” 석 달 동안 밥그릇이 비지 않자 길고양이 밥그릇을 치우셨습니다. 이때 뒤로 〈뿌리서점〉 지기님한테 길고양이 이야기를 묻는 사람도 사라졌습니다. 아주 가끔 다른 길고양이가 책집 앞을 스치면 바삐 일하시다가도 한동안 이 모습을 지켜보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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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뿌리서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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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1.10.

헌책집 언저리 : 굴다리 헌책방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서울 공덕동 ‘굴다리’ 곁에 헌책집이 조그맣게 있었습니다. 굴다리 곁에는 ‘갈매기살 고기집’이 줄지었고, 이 끝자락에 골마루 하나만 있는 무척 좁은 헌책집이 있었지요. 헌책집이 있다고 할 적에는 그곳을 찾는 책손이 있다는 뜻입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마을에서 찾는 발걸음이 있으며, 먼걸음으로 찾는 나그네도 있기 마련입니다. 부릉이(자동차)를 몰지 않기에 늘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볼일 때문에 지나가든, 다른 헌책집을 돌다가 지나가든, 일부러 골목 안쪽이나 마을 한켠을 걷습니다. 헌책집이 큰길가에도 있을 수 있지만, 웬만한 곳은 호젓하거나 조용한 데에 있어요. 공덕동 굴다리 곁에 있는 헌책집은 2000년 어느 날 처음 만났습니다. 그무렵은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지내며 잔심부름을 도맡았는데, 새로 나온 책을 한겨레신문사에 가져다주고서 돌아나오다가 “공덕동 골목에도 헌책집이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다가 만났어요. 고기집이 아닌 헌책집에 책을 보러 온 젊은이를 놀랍게 바라보는 책집지기님한테 “사장님, 이곳은 책집 이름이 뭔가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리? 우리는 이름이 없는데? 그냥 ‘이름없는 책집’이야.” 이무렵까지 따로 알림판을 안 세우고, 전화번호도 없이, 조그맣게 꾸리는 마을 헌책집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북동 이름없는 헌책집’이라든지 ‘북가좌동 이름없는 헌책집’이라든지 ‘애오개 이름없는 헌책집’처럼 ‘이름없는 헌책집’ 앞에 그 책집이 깃든 마을이름을 붙이곤 했어요. 저는 이무렵 새로 만난 공덕동 ‘굴다리’ 곁 헌책집이 사랑스럽고 반가워서 혼자 〈굴다리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장수갈매기 고기집’ 사장이자 ‘공덕동 이름없는 헌책집’ 사장인 분은 나중에 제가 붙인 이름을 여러 책손한테서 듣습니다. 공덕동 작은 헌책집을 찾아가는 길을 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둘레에 돌리니, 여러 이웃님이 이곳을 찾아가서 “여기가 〈굴다리 헌책방〉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이곳을 찾아간 어느 날 저녁, ‘공덕동 이름없는 헌책집’ 지기님이 넌지시 묻습니다. “자네가 우리 가게를 〈굴다리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말했는가?” “아! ‘이름없는 헌책집’이라고만 하기에는 이 예쁜 곳을 제대로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함부로 붙여서 잘못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우리 가게 이름도 지어 주었는데, 저기 옆(장수갈매기)에 좀 가서 앉으시지? 책이야 나중에 또 와서 봐도 되잖아?” 이때 〈굴다리 헌책방〉 지기님이 ‘장수갈매기’ 지기인 줄 처음으로 알았고, ‘책값으로 살림돈을 늘 다 쓰느라 밥값이 없이 하루하루 살던 가난뱅이 책마실꾼’은 ‘고기에 밥에 술까지’ 푸짐하게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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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서울 굴다리헌책방.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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