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5.


《도서관을 구한 사서》

 마크 앨런 스태머티 글·그림/강은슬 옮김, 미래아이, 2007.5.15.



‘헌책집 빛잔치(사진전시)’를 다음달부터 열기로 하면서 빛꽃(사진)을 그러모으고 글을 새롭게 쓰느라 한참 땀을 뺐다. 이제 빛꽃도 글도 마지막으로 추슬러서 띄웠다. 더 선보이고픈 빛꽃이 한가득이지만, 언젠가 차근차근 선보일 자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두를 일은 없다. 더구나 예전에만 찍지 않고 늘 새로 찍고 다시 찍고 거듭 찍으니까. 그동안 찍은 ‘책집 빛꽃’을 선보이는 자리가 징검다리가 되기를 빈다. 마을에 깃든 책집이 저마다 어떻게 빛나는가를 이웃님이 눈여겨보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먼먼 커다란 책집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마을에서 조촐하면서 살뜰히 빛나는 책집을 만나는 길에 빛꽃 몇 자락이 징검돌을 맡아 주기를 꿈꾼다. 《도서관을 구한 사서》를 읽으며 찡했다. 이 그림책도 이야기하지만, 나라(정부)나 고을(지자체)이 책을 지키거나 돌보거나 품지 않는다. 언제나 ‘작디작은 한 사람’이 지킨다. 기꺼이 이야기를 쓰는 사람, 기꺼이 책으로 묶는 사람, 기꺼이 책을 장만하는 사람, 이렇게 조그마한 사람들 손길이 모여 책밭이 되고 책숲이 되며 책누리가 된다. ‘책지기(사서)’가 책숲(도서관)을 살린다. 벼슬자리(공무원) 아닌 ‘지기’라는 이름으로 일어설 적에 이 나라·삶터가 바뀐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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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14.


《안녕, 내 마음속 유니콘》

 브라이오니 메이 스미스 글·그림/김동언 옮김, 상상의힘, 2021.2.25.



어제부터 날씨가 풀린다. 날씨가 풀리고 나면 언제 찬바람·찬비가 갈마들었느냐는 듯이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잠든다. 구름 한 조각조차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늘도 참 장난꾸러기인걸.” 하고 속삭인다. 장난꾸러기인 하늘이라. 가만히 보면 하늘·바람·비·해 모두 개구쟁이라 할 만하다. 풀·꽃·나무도, 개구리·새·뱀도, 잠자리·나비·벌도 언제나 개구쟁이라고 느낀다. 개미·풀벌레·지네도 개구쟁이일 테지. 《안녕, 내 마음속 유니콘》을 읽었다. 그림책에만 담는 이야기로 여길 이웃도 있고, 뿔말(유니콘)이란 이 별에서 언제나 조용히 함께 살아가는 숨결이라고 여길 이웃도 있겠지. 어떻게 여기든 대수롭지 않다. 이 별에 없다고 여긴다고 해서 ‘이 별에 있는 숨결’이 사라지거나 없지 않으니까. 하얀 뿔말도 아름답고, 공벌레나 쥐며느리도 아름답다. 하얀 뿔말도 눈부시고 땅강아지나 길앞잡이도 눈부시다. 곁에서 피어나는 숨결을 바라볼 때에 먼발치에서 날아오르는 숨결을 알아본다. 둘레에서 자라나는 숨빛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저 먼먼 고장에서 날갯짓하는 숨빛을 못 보기 마련이다. 빛은 너머에만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이 빛이다. 저놈이 못된짓을 일삼더라도 저놈 마음밭에서 숨죽이며 우는 빛씨앗을 볼 수 있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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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노래 2021.11.24.

곁말 20 글발림



  “남한테 읽힐 뜻”이 아닌 “스스로 되읽을 뜻”으로 씁니다. 스스로 되읽으면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여길 만할 적에 비로소 이웃이며 동무이며 아이들한테 건넵니다. 둘레에서 “그만큼 손질하면 되지 않나요?” 하고 물어도 “제가 보기에는 아직 더 손질하고 보태어야 합니다” 하고 고개숙입니다. “남 보기에 부끄러운 글”이란 처음부터 남한테 보여주려고 치레한 글입니다. 스스로 삶을 적고 살림을 그리고 사랑을 노래한 글이라면 “남 보기에 부끄러울 턱”이 없습니다. ‘글발림’을 하는 분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니, 배움터부터 아이들한테 글발림을 시킵니다. 해마다 나라에서 치르는 셈겨룸(시험)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를 글(지문)이 가득하더군요. 읽고서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뜻을 펴도록 이끄는 배움판이 아니라, 눈가림·눈속임이 넘실대는 발림판 같아요. “꿀맛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고들 합니다. 글발림이란 ‘주례사비평·립서비스·감언이설·포퓰리즘·형식적·요식행위·레토릭·사탕발림·인기영합’인 셈입니다. ‘글발림 = 겉발림’이거든요. 바른 대서 안 바뀌어요. 사랑을 담고 살림을 얹고 삶을 녹이기에 바뀝니다. 꽃으로 피어날 글꽃을, 씨앗으로 삼을 글씨를 생각합니다.


ㅅㄴㄹ


글발림 (글 + 발림/바르다) :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받아들이기 좋게 바른 말. 흉·허물·티·잘못·민낯은 모두 가리거나 치운 채 좋게 쓰거나 높이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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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걸까? - 2022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2021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1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113
기쿠치 치키 지음, 김보나 옮김 / 천개의바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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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11.24.

그림책시렁 815


《왜 좋은 걸까?》

 기쿠치 치키

 김보나 옮김

 천개의바람

 2021.7.30.



  누가 “왜 좋을까?” 하고 물으면 “마음에 드니까.” 하고 쉽게 말합니다. 좋거나 나쁜 까닭은 쉬워요. 누가 “왜 사랑할까?” 하고 물으면 한동안 생각에 잠기고, 때로는 며칠을 지나고, 여러 해를 보내기도 하며, 서른∼마흔 해 내내 “왜 사랑할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 좋은 걸까?》를 펴면서 눈부신 그림꽃을 누립니다. 어떤 분은 “아이 같은 그림이 뭐가 눈부셔?” 할는지 모릅니다만, 저는 “아이 같은 그림이니, 아니, 어른인 몸이면서 아이 눈빛으로 그리니 눈부시지요!” 하고 말합니다. 저는 ‘어른스러운 그림’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어른스러운 글’을 읽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른스럽다’고 하는 틀이 참말로 어른스러운지부터 아리송해요. 나무를 볼까요? 나무나이로 치면 사람나이는 ‘어른스러운’ 자리에 끼지도 못합니다. 풀을 으레 한해살이로 여기지만, 풀뿌리는 대단히 깊을 뿐 아니라, 해마다 씨앗을 두루 퍼뜨려 가없이 살아요. 사람은 풀포기에 대도 아장걸음입니다. “왜 좋니?” 하고 물으면 “마음에 들어.”입니다. “왜 사랑해?” 하면 아직 뾰족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랑이고 싶어서.”라고는 말합니다. 스스로 사랑이고 싶고, 늘 사랑으로 노래하고 싶으며, 오늘도 사랑으로 열어요.


ㅅㄴㄹ

#しろとくろ #きくちち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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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사자춤
유승정 지음 / 초방책방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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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1.11.24.

그림책시렁 818


《봉산탈 사자춤》

 유승정

 초방책방

 2007.3.20.



  춤은 남한테 보이려는 몸짓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남한테 보이려고 선보이는 몸짓은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나 내 춤을 내 넋이 보고, 내 말을 내 넋이 듣습니다.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 따라 바람을 가르는 어깻짓이 춤이라고 느낍니다. 한바탕 놀이를 즐기면서 땀방울을 빗방울처럼 날리는 몸짓으로 활짝 웃기에 춤이라고 느낍니다. 《봉산탈 사자춤》을 읽다가 이 춤사위를 편 마당을 가만히 그립니다. 탈춤은 누가 추었을까요? 탈춤은 누가 구경했을까요? 탈을 쓰고서 나리(양반)를 익살스레 나무랐다고 합니다만, 탈을 썼어도 임금이나 벼슬꾼을 건드리거나 짚은 일이란 없습니다. 나리(양반)쯤이야 건드릴 만해도, 벼슬을 쥐거나 임금이란 자리에 있는 님(또는 놈)을 건드렸다가는 뼈를 못 추릴 뿐 아니라 바로 죽었을 테니까요. 오늘 우리는 옛날하고 달라 ‘누구나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거짓말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 목소리가 새뜸(신문)에 나오나요? 웃기지 마요. 푸름이 목소리가 새뜸(방송)에 나오나요? 얼어죽을 일이죠. 시골 목소리가 새뜸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른붓을 놀렸다가는 주둥이가 날아갑니다. 탈춤은 ‘익살스러운 춤짓에 흐르는 눈물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탈춤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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