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페달 21
와타나베 와타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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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2021.12.3.

책으로 삶읽기 714


《겁쟁이 페달 21》

 와타나베 와타루

 이형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2.6.15.



《겁쟁이 페달 21》(와타나베 와타루/이형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2)를 펴면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는 이야기가 흐른다. 내리막에서는 자전거가 부릉이보다 빠를 때가 있다. 가볍게 내리꽂으면서 휙휙 튼달까. 그런데 자전거가 내리막을 내리꽂기까지 오르막을 오르지. 오르막을 오를 줄 아는 다릿심이 있다면 내리막을 내리꽂는 팔심이 있다. 오르기만 하지 않고, 내리기만 하지 않는다. 오르내리면서 다른 바람맛을 누리는 자전거이다.


ㅅㄴㄹ


“연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매일 쌓은 노력은 반드시 형태가 된다.” (42쪽)


“나는 네가 우습게 본 자전거의 힘을 보여줄 수 있어서 만족한다. 이 이상 할 말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여기부터 그 다음은 타지 않으면 모른다.” (59쪽)


“자전거에는 엔진이 달려 있지 않아. 나가는 것도, 멈추는 것도, 네 마음대로다. 나가지 않는 것은 네가 나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만 봐라. 모든 걸 사용해서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면.”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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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25.


《아버지의 연장 가방》

 문수 글·그림, 키위북스, 2021.11.5.



조용히 집일이며 글일을 잇고 싶으나, 자꾸 읍내를 다녀와야 한다. 법무사한테 찾아가느라, 우체국을 들르고 읍사무소를 거치느라, 걷고 또 걷고 자꾸 걷는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벼슬집(관청)은 허울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벼슬’이라서, 닭처럼 겉멋으로 자랑하려 들지 싶다. 왜 크게 드러내려 할까? 왜 점잖은 척 차려입고서 거들먹일까? 아이들 곁밥을 장만하고서 또 걷고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도 밤에 별을 보고서 누웠다. 《아버지의 연장 가방》을 조금씩 읽었다. 아버지하고 제대로 말을 섞은 적이 없다는 삶을 되새기면서 ‘아버지란 사람이 일을 하며 걸어온 나날’을 곰곰이 생각했고, 이 생각을 그림으로 옮겼다고 한다. 반갑다. 이제는 먼먼 곳이 아니라, 보금자리를 볼 노릇이다. 글감도 그림감도 빛꽃감(사진감)도 언제나 우리 보금자리에 있다. 더 들여다보고, 더 기다리고, 더 생각하고, 이리하여 더더 사랑하면서 어느덧 푸르고 곱게 녹아든 손빛으로 차근차근 옮기면 된다. 말없이 일만 하던 아버지라는 자리는 왜 말이 없었을까? 앞으로는 아버지도 일돌이도 수다쟁이가 되기를 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속살속살 소근소근 같이 일하고 같이 떠들고 같이 놀고 같이 쉬면서 같이 삶을 짓는 새길을 열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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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24.


《농적 삶을 위한 사유》

 서성열 글, 좋은땅, 2021.4.28.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려는데, 이웃 면소재지를 지날 무렵, 이 마을 어린배움터 아이들이 시끄럽고 자잘한 말소리로 떠든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아니다. 거칠고 막된 말씨가 잔뜩 섞여 시끄럽다. 이 아이들은 이 말씨를 누구한테서 듣고 왜 고스란히 따라할까? 거칠고 막된 말씨를 쓸수록 잘난척이 아닌 갉아먹기가 되는 줄 하나도 모르지 싶다. 아마 배움터 길잡이나 집안 어른 누구도 이 말씨를 다스려 주지 못하지 싶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가? 시골아이뿐 아니라 서울아이도 말이 찌들고 죽는다. 배움터를 다닐수록, 또 일터를 다닐수록, 사람들 말씨는 상냥하거나 아름답기보다는 미움과 짜증이 가득 담긴 사납말로 흐른다. 나라지기가 되겠다는 이들뿐 아니라, 감투를 쓴 모든 어른이란 이들을 보라. 아름말이 어디에 있는가? 《농적 삶을 위한 사유》를 읽으며 여러모로 한숨이 나왔다. 책이름을 이렇게 붙여서야 누가 읽을까? 배운 티를 내서야 배운 사람일까? 배운 티는 고개숙이는 벼처럼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은, 배울수록 어린이한테 더 다가서고 시골 할매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로 간다는 뜻이다. 별이 흐르는 밤에 별빛을 보며 생각을 다스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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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23.


《길》

 주나이다 그림, 비룡소, 2021.9.30.



집에서 조용히 쉰다. 아니, 언제나처럼 집에서 조용히 일한다. 글을 쓰는 삶길을 걷자고 생각한 1994년 1월부터 여태까지 하루를 쉰 적이 없다. 나한테 ‘쉬다’란 오직 “숨을 쉬다”이다. 숨을 쉬니까 ‘늘 쉬’기에, 따로 쉼날을 둘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 만하다. 이 별에 태어난 몸이 코가 몹시 나빠서 아기 적부터 ‘숨쉬기’가 가장 어렵고 힘들며 지치고 고단한 일이었기에, 나로서는 ‘쉬다’를 늘 ‘숨쉬다’로 바라볼밖에 없었다. 팔다리가 부러질 적보다 코로 숨을 쉬기가 어려워서 숨이 막힐 적에 훨씬 아팠으니, 하루 내내 늘 아픈 채 살아온 셈이다. 숨쉬기가 멀쩡한 사람은 ‘쉬다’를 헤아리지 못하리라 느낀다.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는다면 참말로 숨쉬기가 뭔지 못 느끼지 않을가? 《길》을 장만해서 읽고 아이들한테 건네는데 어쩐지 시큰둥하다. 굳이 다시 들추거나 더 읽지는 않네. 주나이다 그림책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서울살림(도시문화)’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주나이다 그림에는 ‘쉴’ 틈이 없어 보인다. 나무 한 그루가 자랄 틈이나 들풀 한 포기가 씨앗을 퍼뜨리며 돋을 틈도 없지 싶다. 서울이란 곳은 안 나쁘다. 다만, 아직 온누리 서울(도시)은 온통 잿빛이 가득해서 숨쉴 구멍이 없을 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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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1.22.


《책방뎐》

 이지선 글, 오르골, 2021.11.22.



바람을 쐰다. 구름을 본다. 샛노랗게 구름을 물들이며 멧기슭으로 나란히 퍼지는 노을빛을 온몸으로 받는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혼자서 누린다. 얼마 앞서까지 작은아이랑 같이 달렸고, 그러께까지 큰아이도 함께 달렸으나, 두 아이가 스스로 자전거를 배우지 않으면 이제는 혼자서 누릴 바람이요 구름이며 노을이다. 이웃님이 누리글집에 남긴 글하고 빛꽃(사진)을 보다가 짤막하게 석줄글을 적어 보았고, 일본글로 옮겨 보았다. 전주 마을책집 〈잘 익은 언어들〉 지기님이 쓴 《책방뎐》을 읽었다. 생각보다 덜 춤스러운, 그러니까 춤사위가 적으면서 얌전한 글이어서 ‘춤사위를 글로 옮길 적에는 다르네’ 하고 생각했다. 글도 춤추듯 신나게 쓴다면,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 시골아이뿐 아니라 골목아이(도시아이)도 널뛰기를 놀면서 까르르 웃었듯, 홀가분히 목소리를 내는 글이라면 한결 빛났으리라 본다. 나도 널뛰기를 놀았지만, 다들 어디에선가 널을 주워 오고, 받침으로 삼을 돌이 없어도 이래저래 꾸려서 널을 뛰었다. “설도 아닌데 무슨 널뛰기냐?” 하고 나무라는 마을 할배 말을 듣고도 헤헤 웃으면서 잘도 놀며 살았다. 모든 길은 노래하는 놀이로 나아가기에 미움도 창피도 시샘도 없이 환하게 사랑에 살림에 삶으로 피어나지 싶다.


날씨가 흐려도 바깥에서 거닐면

하늘을 느끼고 구름을 보면서

마음이 한결 넓게 자라지 싶습니다


天氣が曇っても外を?いたら

空を感じて雲を見ながら

心がひときわ廣く育ってほしいです。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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