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2021.12.22.

책하루, 책과 사귀다 78 제비



  지난날에는 우리나라 우체국 그림이 ‘제비’였습니다. 어느 돈터(은행)는 ‘까치’를 얼굴(상징)로 삼았습니다. 제비나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던 새입니다만, 시골이 줄고 서울이 자라는 사이에 차츰 잊히거나 미움받는 숨결로 바뀝니다. 이러던 어느 날 우체국도 돈터도 제비 그림하고 까치 그림을 슬그머니 치웠고,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봄이 되면 찾아오는 반가운 새인 제비처럼, 우리한테 반가이 글월이 찾아든다는 이야기를 제비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제비보다 빠른 누리길(인터넷)에 밀린 셈입니다. 묵은 우편번호부를 들추다가 ‘우편 도령’이라는 이름을 보았어요. ‘도령’은 ‘도련님’처럼 오랜 우리말입니다. 우체국에서 제비 그림을 치우는 동안 ‘우편 도령’뿐 아니라 ‘도령’ 같은 이름도 이 삶자리에서 스러지거나 잊힙니다.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많이 쌓아올려야 한다는 오늘날이기에 ‘도령’은 시골스럽거나 예스러워서 느리고 작고 적다고 여길 테지요. 책은 더 빨리 더 많이 읽어야 할까요? 더 훌륭하거나 더 좋거나 더 이름난 책을 읽어야 할까요? 마음을 담아 차근차근 손글씨로 글월을 나누는 길은 낡았을까요? 마음을 담아 찬찬히 여민 책은 ‘이름이 안 났’으면 읽을 값이 없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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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0


《우편번호부 1971》

 체성회 엮음

 체신부

 1971.3.1.



  요새는 우체국에서 우편번호부를 안 나눠 줍니다. 길이름(도로명 주소)을 요즈음처럼 가르기 앞서는 우편번호부가 단출했으나, 이제는 깨알글로 두툼한 책 석 자락입니다. 예전에는 글월을 자주 많이 쓰는 사람한테 작고 단출한 우편번호부를 나누어 주었어요.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우체국 일꾼한테 “새해 ‘우표발행계획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봄에는 “우편번호부가 새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편번호부 1971》는 제가 태어나기 앞서 나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다녀오며 얻은 우편번호부도 1971년치처럼 얇고 작았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도 이렇게 작다가, 2000년을 넘어서며 크고 두툼했는데, 하도 사라지는 골목이 많고 새로 올리는 잿빛집(아파트)에 큰집이 늘다 보니 우편번호를 촘촘히 가르는 판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따금 우편번호부를 들추면서 낯선 고장을 하나하나 떠올렸어요. “아, 이곳에 가 볼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면서 마음으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우편번호를 따라 인천에서 강원도로, 경상도로, 전라도로, 제주도로, 충청도로 넘실거렸습니다. 나들이는 들숲바다를 품고 해바람비를 마주하는 느릿느릿 느슨한 길입니다. 요새는 길이 너무 크고 많고 빠르기까지 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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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599


《환경 가계부》

 혼마 미야코 글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

 시금치

 2004.12.10.



  사람은 나날이 발돋움할까요, 나날이 길들까요?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길들고, 스스로 생각해서 하면 발돋움합니다. 누가 가르치기에 즐겁지 않아요. 스스로 배우려고 나서기에 즐거워요. 둘레를 보면 온통 배움거리입니다. 배움거리란 삶입니다. 풀꽃을 배우고 구름을 배웁니다. 벌나비를 배우고 풀벌레를 배워요. 이따금 책으로도 배우는데, 스스로 몸을 놀려 해보기에 비로소 배웁니다. 어린 날 어머니 어깨너머로 살림길을 배웠는데, 어머니는 늘 “왜 나한테서 배우려고 해? 학교에서 안 가르치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배움터는 삶·살림·사랑을 안 가르쳐요. 배움책(교과서)에 따라서 틀(지식)을 외우도록 이끄는 배움터입니다. 《환경 가계부》가 처음 나올 무렵에는 큰고장에서 살며 여러모로 배웠습니다. 시골로 삶터를 옮긴 뒤에는 이 책을 들출 일이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서울·큰고장에서 푸르게 살자면 이모저모 마음을 기울이면서 바꿀 길이 잔뜩 있어요. 빠르거나 크거나 많이 누리는 터전인 서울·큰고장이거든요. 이 책은 ‘햇볕불(백열등)’이 나쁘고 ‘반짝불(형광등)’이 좋다고 적으나, 반짝불은 ‘형광물질’이 있어 끔찍해요. 햇볕불은 ‘햇볕을 옮긴 빛’이요, 다 써도 유리·쇠붙이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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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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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1.12.21.

읽었습니다 72



  ‘혐·혐오’는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한자말입니다. ‘여성 혐오’는 “순이 까기·순이 깎기”입니다. 까고 깎아내리는 못난짓입니다. “순이 까기”란 순이 마음이며 몸을 “칼이나 도끼로 깐다”는 소리로, 사납게 굴어 몸이며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며 피가 철철 흐르도록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오직 사랑일 적에만 아기를 낳을 수 있는데, 돌이는 왜 바보짓에 몹쓸짓에 허튼짓을 일삼았을까요? 우두머리(지도자·권력자)가 서고, 우두머리가 싸울아비(군인)를 곁에 둘 적에 이 “순이 가기”가 불거집니다. 우두머리·싸울아비가 없던 무렵에는 순이돌이가 오순도순 지냈어요. 숲살림·시골살림을 짓는 들꽃은 어깨동무였습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바보에 멍청한 돌이를 찬찬히 짚습니다. 돌이는 “돌이 까기”를 겪어야 뉘우칠까요? 아니에요. “돌이 까기”는 새롭게 “순이 까기”로 더 불거집니다. 우리는 함께 우두머리·싸울아비를 몰아내어 포근한 보금숲을 지을 노릇입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2012.4.2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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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타서전 역사하는 신문 1
정일영.황동하 엮음 / 그림씨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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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2.21.

읽었습니다 73



  2021년은 전두환 씨가 숨을 거둔 해입니다. 이이는 더 오래 살아남을 만했는데, 그만 미리맞기(백신)를 한 탓에 올해에 죽었을 수 있습니다. 안 아프고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오히려 일찍(?) 죽었달까요? 전두환 씨 아들이 ‘시공사’를 차려서 꾸립니다. 저는 시공사에서 낸 책을 《백귀야행》을 빼고는 새책으로 살 마음이 터럭조차 없습니다. 《백귀야행》은 1999년부터 판을 끊기지 않고 꾸준히 옮겨 주기에 이 대목은 손뼉칠 만하다고 봅니다. 나라밖 아름다운 그림책도 기꺼이 옮기니 이 대목도 훌륭하다 할 만하지요. 그러나 ‘전두환 집안’을 스스로 털지 않는다면 그곳은 달라질 길이 없으리라 느껴요. 《전두환 타서전》을 읽고서 제자리에 꽂았습니다. 뜻깊은 책일까 싶더니, 그냥 새뜸(신문)을 옮겨붙일 뿐, 새뜸글에 담지 못한 숱한 이야기 가운데 한 줄조차 붙이지 않는데 무슨 ‘타서전’인지 아리송해요. 글바치(지식인)는 글바치다우려면 ‘옮겨붙이기’ 아닌 ‘말’을 해야지요.


《전두환 타서전》(정일영·황동하 엮음, 그림씨, 2017.5.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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