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4.


《영등할망 제주에 오다》

 이승원 글·그림, 한림출판사, 2021.11.5.



작은아이하고 순천마실을 한다. 읍내 우체국에 먼저 들렀고, 순천으로 가는 버스때에 맞추어 바지런히 걸었다. 사람들이 돌림앓이로 두려움하고 걱정을 흩뿌리기 앞서는 곧잘 순천마실을 했다만, 요새는 뜸했다. 틈새두기도 미리맞기도 엄청난 호들갑인 줄 알아차리는 이웃이 늘지만, 먹고살아야 한다는 말을 앞세워 나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다. 으뜸길(헌법)하고 어긋날 뿐 아니라 사람길(인권)을 깡그리 짓밟는데, 목소리를 안 내고 그저 숨죽이고 구경하는 판이다. 참소리를 내는 글바치나 길잡이는 어디 있는가? 어느새 박정희·전두환 때처럼 ‘국민신고 + 허수아비 + 갈라치기’가 춤춘다. 《영등할망 제주에 오다》를 읽고서 두 달쯤 책상맡에 두었다. 땀흘려 일군 그림책인 줄 느끼면서도 여러모로 아쉽다. ‘인문지식백과’ 같은 그림책이 아닌, ‘이웃이 조곤조곤 일구는 마을이랑 어깨동무하는’ 그림책으로 길을 잡으면 어땠을까? 어버이가 아이랑 제주마실을 하는 틀로 ‘이곳은 어떻고 저곳은 저떻고’ 하고 풀이하는 줄거리는 나쁘지 않되, 그저 가만히 바람을 쐬고 나무 곁에 서고 바다랑 한몸이 되고 구름을 타고 노니는 하루를 살며시 담으면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한다. 삶은 삶일 뿐 역사도 문화도 인문도 예술도 아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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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23.


《수어》

 이미화 글, 인디고, 2021.8.1.



읍내 우체국에 다녀온다. 가벼운 바람하고 포근한 볕을 누린다. 일찍 해가 지기에 오래오래 일렁이는 별을 누린다. 날이면 날마다 밤빛을 누리다가 생각한다. ‘왜 여름별보다 겨울별이 훨씬 반짝인다고 느낄까?’ 밤이 깊으니 별빛이 오래오래 반짝이고, 밤이 얕으니 별빛이 덜 반짝일 테지. 겨울밤에 별을 보면 그야말로 쏟아진다. 다만 고흥 같은 두멧시골에서나 별이 쏟아진다. 어릴 적 인천에서는 일곱별(북두칠성)을 가까스로 어림했는데, 오늘 이곳 고흥에서는 일곱별 둘레나 사이에 얼마나 다른 별이 함께 반짝이는지 모른다. 《수어》를 장만할 적에 ‘이 두께에 손말을 어떻게 담았을까?’ 싶었고, 다 읽고 덮으면서 여러모로 아쉬웠다. 무엇보다 손말을 누가 왜 어떻게 쓰는가 하는 줄거리가 없고, 이웃을 바라보는 눈망울을 느끼기 어렵다. 어쩌다가 손말을 배운 글님 이야기를 조금 쓰기는 했되, 이렁저렁 흐르다가 맺었다. 짧고 굵게 어느 글감을 다루려는 듯 책을 묶었구나 싶으나, 겉보기일 뿐이다. 손말을 훌륭히 할 줄 알고, 손말을 오랫동안 쓴 사람만 책을 써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이렇게 엮어서 종이에 얹는다면, 손말을 모르는 사람이 손말을 어떻게 품을까? 손말을 쓰는 사람이 이 책을 반길 만할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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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67 밑책



  낱말책에는 세 가지를 담습니다. 오늘(걸어가는 길)하고 어제(걸어온 길)하고 모레(걸어갈 길)입니다. 오늘은, 바로 우리 스스로 어떠한 삶이며 이웃은 어떤 삶인가를 읽고서 담아내는 말길입니다. 모레는, 앞으로 우리 스스로 어떻게 꿈을 지으려는 살림이며 이웃은 어떻게 꿈하고 사랑을 지으려는 살림인가를 그리는 말길입니다. 어제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사랑했으며 이웃은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돌아보는 말길이에요. “오늘 삶”하고 “모레 꿈”하고 “어제 사랑”을 낱말로 읽어내고 말마디(또는 글줄)로 엮기에 낱말책입니다. 이때에 우리가 스스로 쓰는 말씨가 가장 밑바탕인 책입니다. 종이에 적힌 글보다 우리가 입으로 주고받는 말씨를 찬찬히 봅니다. 그런데 말꽃지기(사전편찬자)가 아직 태어나지 않던 무렵이나 살아가지 않은 여러 고장에서 쓰던 말씨는 종이책으로 훑어야지요. 갓 나온 책부터 아스라히 예전에 나온 책까지 차곡차곡 살핍니다. 좋거나 나쁜 책을 안 가립니다. 옳거나 그른 책을 안 따집니다. 모든 자리에서 쓰는 모든 말씨에 흐르는 삶·꿈·사랑을 읽고서 이 ‘말씨앗’을 갈무리한 다음, 아이들이 물려받고 어른들이 물려줄 말빛을 여며요. 새책집·헌책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읽고 장만하는 나날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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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0 남편과 아내 사이



  《남편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나 《아내를 위한 식탁》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누구한테 해주는 밥보다는 “함께 짓는 즐거운 밥자리”가 가장 맛나면서 사랑스럽고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남한테 이런 말을 하기보다 스스로 할 노릇이기에, 지난 2017년에 ‘아버지 육아일기·전업주부일기’를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이름을 붙여서 내놓았습니다. ‘사내(돌이)’가 도맡아서 ‘해주는’ 집안일이 아닌, “함께 살림을 즐겁게 짓자”는 마음이 되도록 씨앗을 심는 길이 즐거우며 아름답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남편’이 아니고, 저랑 사는 사람은 ‘아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곁님’입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부양가족’이 아닙니다. ‘집님’입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네 사람은 서로 ‘곁님·집님’이면서 ‘살림님·사랑님’입니다. 이러면서 ‘별님·숲님·꽃님·이야기님’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해요. 어깨동무하는 곳에서 놀이가 태어나거든요. 손잡는 데에서 사랑이 싹트고요. 노래하는 곳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춤추는 곳에서 손을 잡습니다. 순이돌이(여남)를 가르기보다는 돌이순이(남녀)가 보금자리를 즐겁게 사랑으로 짓는 슬기롭고 푸른 눈빛이 되어 함께 노래하는 꽃둥지로 가기를 꿈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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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흔적 6
오시미 슈조 지음, 나민형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2.1.3.

읽었습니다 63



  오시미 슈조라는 분이 담아낸 그림꽃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이이는 무슨 생각을 어떤 마음으로 그려서 보여주려는가 하고 궁금합니다. 책을 덮고 몇 달 동안 가만히 생각하노라면, 민낯을 그리는구나 싶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민낯을, 굳이 가리거나 숨기지 않고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길을 그리지 싶어요. 《피의 흔적》은 여섯걸음에 이르도록, 그리고 앞으로도 더더욱 민낯을 ‘사랑이 없는’ 또는 ‘사랑을 잊은’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도록 그리겠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잊기에 사랑을 잃고, 사랑을 잃기에 사랑이 없으면 무엇이 남을까요? 허울뿐인 사이(관계) 하나가 남습니다. 일본을 비롯해 우리나라도 사랑이 아닌 허울뿐인 사이로 어우러지지 않나요? 서로 사랑이라는 속빛으로 마주하나요? 더 생각해 보니, 그림님은 우리가 이녁 그림꽃을 펴면서 우웩우웩 게우기를 바라지 싶습니다. 우리 민낯이란 그만큼 추레한 바보짓을 꽁꽁 숨긴 채 껍데기로 빙글빙글 웃기만 하니까요.


《피의 흔적 6》(오시미 슈조 글·그림/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21.2.2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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