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웅진 세계그림책 219
맥 바넷 지음, 카슨 엘리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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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2.1.23.

그림책시렁 879


《사랑 사랑 사랑》

 맥 바넷 글

 카슨 엘리스 그림

 김지은 옮김

 웅진주니어

 2021.10.1.



  우리말 ‘삶·사랑·살림’을 영어 ‘live·love·life’로 옮길 만해요. 우리말을 더 헤아리면 ‘삶·사랑·살림’ 곁에 ‘사람’이 있고, 사람은 ‘새’롭게 나아가면서 ‘생각’을 합니다. “What Is Love?”라는 그림책을 《사랑 사랑 사랑》으로 옮겼더군요. 뜻도 결도 엉뚱하게 적었습니다. ‘틀리지는 않’되 ‘알맞지도 않’습니다. ‘네이버 번역기’에만 넣어도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고 나옵니다. 어린이도 볼 그림책으로 엮는다면 “사랑 사랑 사랑”이 아니라 “사랑은 뭘까?”나 “사랑은 뭐지?”쯤으로 붙여야 어울려요.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어느 누구도 알려주거나 가르칠 수 없는 사랑을 스스로 묻고 생각하면서 새롭게 찾아내어 환하게 웃는 줄거리를 다루거든요. 우리한테 “사랑 사랑 사랑”은 떠난 김현식 님이 부른 노래입니다. “What Is Love?”는 ‘삶(live)·사랑(love)·살림(life)’이 맞물린 수수께끼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우리말이라면 ‘ㅅ’으로, 영어라면 ‘L’로 잇는 밑자락을 천천히 파헤치면 시나브로 슬기로운 눈빛이 환하게 터지면서 저마다 새삼스레 꽃으로 나아갑니다. 사랑이 왜 꽃빛으로 번질까요? 그림책 “What Is Love?”는 왜 겉을 꽃차림으로 가득 채웠을까요? 스스로 찾고 생각하면 압니다.


ㅅㄴㄹ

#WhatIsLove #MacBarnett #Carson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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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고 시선집
최종고 지음 / 와이겔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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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23,

노래책시렁 215


《法 속에서 詩 속에서》

 최종고

 교육과학사

 1991.10.20.



  부러우면 진다고들 말합니다. 길(법)을 다루는 길잡이로 일한 최종고 님은 노래님을 부러워해 마지 않습니다. “詩集이 팔린다”는 글을 쓰며 대놓고 부러워하는데, 《法 속에서 詩 속에서》에 담은 모든 글은 ‘부러움노래’입니다. 살다 보면 부러워할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글쎄, 왜 부러워해야 할까요? 부러움은 잘못도 나쁨도 아닙니다만, 부러움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빛을 잃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펼쳐서 누리는 길로 나아가면 남을 부러워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안 즐겁기 때문에 부러워합니다. 스스로 노래하지 않으니 부러워해요. 자, 봅시다. 모든 새가 꾀꼬리나 종달새여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새가 독수리나 매여야 하지 않습니다. 꾀꼬리만 노래하지 않아요. 직박구리도 참새도 딱새도 딱따구리도 노래합니다. 오리도 왜가리도 거위도 노래합니다. 모든 새가 똑같은 날개를 달아야 할까요? 모든 나비가 똑같은 무늬나 크기여야 할까요? 모든 꽃이 똑같은 빛깔에 똑같은 날 피어야 할까요? 노래를 노래로 여기지 못하니 길을 길로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法’이랑 ‘詩’라는 굴레에 갇히려 하면 어떤 노래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옛말에 “법 없이도 산다”고 했어요. 슬기로우면 ‘길’이요, 억지라면 ‘틀’입니다.


ㅅㄴㄹ


詩集이 팔린단다. / 팔려도 많이 팔린단다. / 詩集이 팔려도 되는 것일까? / 그럼에도 시집이 팔린다니 / 한국은 詩的인 나라인가? / 아니면 하두 따분하다 보니 / 어디 詩나 읽자하는 세상인가? … 아무튼 詩가 팔린다니 詩人은  좋겠다. / 땀빼어 두꺼운 硏究書를 내어도 / 1년에 몇권도 안 팔리는 法學界와는 달라 (詩集이 팔린다/7쪽)


내 경상도에서 태어나 / 무슨 행운인지 서울法大 교수가 되어, // 관악 캠퍼스에 연구실 하나 차지하고 / 매일마다 관악산 봉우리를 쳐다보며 산다. / 돌 山, 惡山이라 혹평해도 / 10년을 넘어 바라보니 / 그런대로 情같은 것도 들어 (冠岳傳說/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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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창비시선 33
김지하 지음 / 창비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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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23.

노래책시렁 216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6.5.



  1941년에 태어나 서슬퍼런 나라에서 서슬퍼런 글을 살을 깎으며 쓴 사람은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읊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이를 내쫓고 ‘변절·배신·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노래님 김지하는 왜 마흔 살에 “죽음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외쳤을까요? 그동안 제대로 안 밝혀진 뒷이야기는 지난 서른 몇 해 사이에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간추리자면 ‘운동권·진보문인’은 “김지하가 박정희 군사독재 감옥에서 목숨을 빼앗겨 ‘열사’가 되어야 민주·평화·통일을 빨리 되찾는다”고 여겨 숱하게 “자살하라”고 괴롭혔”으며, “끝까지 스스로죽기(자살)를 손사래친 김지하를 끝없이 괴롭히고 따돌릴 뿐 아니라, 가시어머니 박경리 님까지 나란히 괴롭히고 따돌렸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헤아리고 나니 왜 박경리 님이 조용한 시골로 터전을 옮겨 손수 호미질을 하고, 딸이랑 사위가 시골로 가서 지내도록 그렇게 애썼나를 알겠어요. 《타는 목마름으로》를 서른 해 만에 천천히 되읽었습니다. 이름팔이·돈팔이가 아닌 ‘사랑’이라는 길을 찾아서 노래하고 싶은 푸른숨결이 피어나는 글입니다. 이 사랑노래를 글힘꾼(주류문단·기득권 진보문인)은 깔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들 무리는 참사랑이 아니니까요.


ㅅㄴㄹ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 언젠가는 터져나올 그 함성을 /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1974년 1월/11쪽)


눈은 내린다 / 술을 마신다 / 마른 가물치 위에 떨어진 / 눈물을 씹는다 / 숨어 지나온 모든 길 / 두려워하던 내 몸짓 내 가슴의 / 모든 탄식들을 씹는다 / 혼자다 (바다에서/25쪽)


저 청청한 하늘 / 저 흰구름 저 눈부신 산맥 / 왜 날 울리나 / 날으는 새여 / 묶인 이 가슴 // 밤새워 물어뜯어도 /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 피만이 흐르네 /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새/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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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부르조아 세계
이상화 / 창비 / 198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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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3.

읽었습니다 97



  1923년에 태어나 2014에 숨을 거둔 나딘 고디머 님은 199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1988년에 《가버린 부르조아 세계》가 우리말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막 푸른배움터를 마친 1994년에 처음 이 책을 쥘 적에는 도무지 뭔 소리인지 모르겠고 어려웠습니다. 그때에는 종이책 아니고서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알 길마저 없는데, 이를 다루는 책마저 드물었고, 찾기도 어려우며, 무엇보다 ‘배부른 집안(부르주아)’이 어떤 살림인지 겪은 적이 없어 더더욱 뜬구름 같았어요. 스물 몇 해가 지나는 사이에 ‘갈라치기’가 무엇인지 또렷이 지켜보고 느끼기에 이제는 줄거리를 헤아릴 만하면서 다른 대목에서 갸우뚱합니다. 우리나라 책마을에서 ‘나딘 고디머’는 까맣게 잊힙니다. 갈수록 싸움판(군대)은 늘어나고, 이 작은 나라조차 ‘싸움연모(전쟁무기)’를 이웃나라에 내다판다며 자랑하는 판인데, 삶넋을 일깨우는 글은 파묻힙니다. 가만가만 보면 높은집(고층아파트)이 늘수록 삶이 푹 꺼집니다.


《가버린 부르조아 세계》(나딘 고디머 글/이상화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8.5.25.)


ㅅㄴㄹ

#NadineGordimer #TheLateBourgeois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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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과 다리의 가격 - 지성호 이 사람 시리즈
장강명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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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3.

읽었습니다 79



  북녘사람이 보기에 남녘은 살 만할까요? 남녘사람이 보기에 북녘은 살기 좋을까요? 아무리 굶주림판인 곳이라 해도 배부른 사람이 있고, 아무리 번쩍거리는 곳이라 해도 쳇바퀴에 수렁에 갇혀 힘겨운 사람이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북녘도 남녘도 ‘살기 좋은’ 곳이나 ‘살 만한’ 데라고 섣불리 말 못하겠다고 느낍니다. 얼핏 보면 고흥처럼 두멧시골은 바람 말고 물 싱그러울 듯싶으나, 곰곰이 파면 고장지기(군수)나 벼슬아치(공무원)가 짬짜미로 벌이는 뒷짓이 허벌납니다. 남·북녘은 서로 갈린 채 오래오래 서로 다른 틀을 잇는 동안 우두머리·벼슬아치에 글바치까지 한통속이 되어 와락 집어삼켰다고 느껴요. 《팔과 다리의 가격》은 북녘 민낯을 드러낸다기보다 숱한 북녘사람 가운데 ‘한 사람 집안과 자취’를 더듬습니다. 굳이 북녘을 통틀어 말할 까닭은 없습니다. 모둠(집단·국가)으로 보면 ‘사람’을 잊습니다. 우리는 ‘나(하나)’를 보면서 삶을 말해야 비로소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팔과 다리의 가격》(장강명 글, 아시아, 2018.7.31.)


ㅅㄴㄹ


다만 뭔가 쓰다 만 듯한,

북녘살림과 남북녘사람 삶길을

그리다가 만 듯한,

아쉬운 줄거리와 끝맺음.


이야기를 더 써서

제대로 맺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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