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9.

숨은책 456


《ドイツ式 自然建康法》

 アルフツド·ブララウフフレ 글

 西謙一郞 옮김

 新知社

 1932.9.10.



  새책집을 다니며 새로 나온 반짝이는 생각을 만나고, 헌책집을 다니며 오래도록 흐른 숨은빛을 만납니다. 어느 날 어느 헌책집에서 《ドイツ式 自然建康法》을 장만했습니다. 일본사람은 그들 스스로 ‘숲살림길(자연건강법)’을 일찍부터 닦아서 나눈 줄 아는데, 이웃나라 숲살림길도 살피면서 새롭게 배우는구나 싶더군요. 문득 우리나라를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는 어떤 숲살림길이 있을까요? 누구나 읽기 쉽도록 우리글로 풀어낸 돌봄이나 길잡이가 있을까요? 1932년 무렵에 ‘한글만 알아도 읽도록 글을 써 놓자’고 생각한 글바치가 있나요? 우리 나름대로 예부터 가꾼 숲살림길이라면 어떤 이야기일까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우리한테는 아직 쉽고 부드러이 스스로 푸르게 살림길을 짓자는 글을 남기는 어른이 드물지 싶어요.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좀처럼 안 보입니다. 풀죽임물(농약)하고 죽음거름(화학비료)하고 비닐을 안 쓰는 흙살림을 우리 손으로 갈무리한 일은 드뭅니다. 이 땅에 푸르게 일렁이는 숲을 우리 손으로 사랑하는 길을 적은 글도 드뭅니다. 비록 어제는 푸른글이나 숲글을 못 썼다면, 오늘은 우리 스스로 어떤 글을 쓰는 길일까요? 이제부터 아이들한테 새롭게 물려줄 푸른숲을 노래하고 갈무리하는 글은, ‘과학·학문·종교·교육·예술·문화·문학’이 아닌 ‘이야기’는 누가 어느 만큼 쓸까요?

  

Lexikon der Naturheilkunde

Adolf Oertel·Eduard Bauer


#LexikonderNaturheilkunde #AdolfOertel #Eduard B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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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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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9.

숨은책 612


《佛敎 第三十七號》

 권상로·최남선 엮음

 불교사

 1927.7.1.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들려주던 어른들이 영 마뜩찮은 어린 나날입니다. 지난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이름을 남길 일을 해야 사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굳이 ‘이름을 남길 사람’이 되어야 하나 싶어 쀼루퉁했고, 범 같은 숲짐승을 고작 가죽붙이로 여기는 눈길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 옛말은 잊히지 않아요. 어린 나날 듣던 옛말을 다시 새겨 본다면 ‘우두머리(권력자)만 이름을 남기는 판’이 아닌, ‘아이하고 숲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서로 이름을 부르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지으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합니다. 《佛敎 第三十七號》는 1927년 아닌 ‘昭和二年’에 나온 작은 달책(잡지)입니다. ‘大正十三年’에 첫걸음을 떼었다지요. 겉도 속도 온통 새까맣게 한자에 한문입니다. “崔南善 先生 解題, 海東高僧傳·大東禪敎考”라 적은 벼리(차례)를 보건대, 서슬퍼렇던 지난날 권상로·최남선 두 사람이 절빛(불교)을 일구려던 땀방울이 밴 자취가 이름으로 남은 셈이기도 하겠으나, 흙을 짓고 아기를 돌보며 젖을 물리던 수수한 사람들은 도무지 읽을 길이 없는 글짓기를 하던 모습을 엿볼 만하기도 합니다. 어쩔 길이 없어 ‘昭和·大正·大日本’이란 이름을 꼭 써야 했을까요?


“다만大東禪敎考는 大日本續藏經에入刊되엇스나 누에게드려서던지 朴永善(竹尊)의撰이라한것은 誤니라.”(32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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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71 몸



  견디기 힘들다고 느낀 그때 그곳에서 어떻게 견디었는가 하고 이따금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둘레에서 나이 있는 사람들이 어린(여덟∼열세 살) 저한테 엉큼짓(성폭력)을 일삼던 때에 어떻게 견디었는지, 사내라면 끌려갈밖에 없는 싸움판(군대)에서 높이(계급)를 밀어붙이면서 똑같이 엉큼짓(성폭력)을 해대는 판에 어떻게 견디었는지 돌아보면, 마음속으로 “난 여기에 없어. 이 몸은 내가 아니야. 나는 빛나는 넋으로 저 너머(우주)에 있어.” 하고 생각했더군요. 제 몸을 갖고 노는 사람들(성폭력 가해자)은 탈(인형)을 붙잡을 뿐이라고 여겼어요. 싫어하는 일이나 꺼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낸 사람일까요. 비록 엉큼짓을 견디어야 했어도 이 짓을 모두 녹여서 앞으로 다시 안 일어나도록, 아니 사라지거나 멈추도록 조그맣게 씨앗을 심는 일을 그 어린 날과 젊은 날에 한 셈이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내키지 않거나 못마땅하더라도 억지로 해내야 하던 일이 아닌, 그들(가해자)이 하는 짓이 온누리에서 싹 사라지기를 꿈꾸면서 마음속으로 새빛을 지으려고 했던 작은 몸놀림이었나 하고도 생각해요. 몸에 매인다면 겉모습에 매입니다. 마음을 본다면 마음을 사랑합니다. 말글은 늘 마음에 생각을 심으며 태어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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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4 티끌


아주 작은 먼지요, 이보다 작은 티끌입니다. 티끌이 있어 손사래치기도 하지만, 티끌은 매우 작은데 굳이 흉을 잡지 말고서 봐주어야 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두 길은 틀리지 않습니다. 티끌 탓에 얼마든지 손사래칠 만합니다. 머잖아 스스로 티끌을 털고서 거듭나리라 믿으면서 품을 만합니다. 다만, 우리는 생각해야지요. 티끌이 왜 티끌일까요? 그렇게도 조그마한데 티끌은 왜 보일까요? 바로 ‘아주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물들거나 찌들거나 더럽기 때문에 티끌이 생겨요. 티끌이 생기기에 나쁘지 않아요. 티끌이 생기는 까닭을 읽어내어 차분히 마음을 다스리거나 갈고닦으면서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티끌을 느끼거나 보기에 한결 단단하면서 아름답게 피어날 만합니다. 풀벌레가 갉은 일이 없이 꽃을 피우는 푸나무는 없습니다. 바람에 안 흔들린 푸나무도 없습니다. 안 넘어지거나 안 다치고서 자라나는 어린이는 없습니다. 티끌은 누구한테나 낄 만합니다. 티끌이 생기는 까닭이란, 우리 스스로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꿈이나 사랑하고 멀어지는 줄 보여주려는 뜻이라고 느껴요. 티끌을 사랑해 봐요. 티끌한테 “고마워. 사랑해. 이제 넌 네 나들이를 떠나 보렴. 여기 말고 저 하늘로 날아가 봐.” 하고 속삭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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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2022.1.28.


사람들을 옭아맨 틀을 내려놓은 덴마크, 입가리개를 씌우는 일을 이제 안 하겠다는 영국, 우두머리(대통령) 뜻이 참길(헌법·인권)에 어긋나기에 막짓(백신강제접종)하고 입가리개는 틀렸다(위헌 판결)고 밝히는 미국이 제대로 가는 길일 테지요. 이러한 모습 사이로 지난 몇 해 동안 뒷놈(백신커넥션·백신재벌 빌게이츠)이 큰붓(빅테크)과 손잡고 벌인 두려움 북돋우는 새뜸(언론보도), 새로운 전자신분증 감시제도인 큐알코드·백신패스는 히틀러가 했던 짓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굴레일 테고요. 나라(정부)는 사람들을 지킬 뜻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정부·지식인)한테 사람들은 종(노예)일 뿐이니까요. 나라 없는 푸른별이어야 비로소 사람들 누구나 아늑하다(평화·평등)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은 새만금 22조를 했다지만, 박근혜를 끌어내린 이들은 ‘남해안 관광벨트 20조 원’으로 전라도 경상도 글바치(지식인·문인·교수)한테 돈(홍보비)으로 재갈을 물려 놓았고, ‘해상태양광풍력발전’으로 서해 남해 동해를 쓰레기 판·바람개비로 220조가 넘는 돈을 퍼부었는데, 누구 주머니로 갔는가요. 오늘날 이 나라 뒷모습입니다. 해상태양광풍력발전은 다도해국립공원에 벌써 버젓이 때려박았으니, 아는 분은 진작에 꼬막이나 굴을 안 먹습니다.


ㅅㄴㄹ


마땅하지만, 

전남 고흥에서 살며

바닷고기를

날살(회)로도 구이로도

안 먹은 지 오래됩니다.


이 나라(정부)가 

바다에 무슨 짓을 했는지

지난 몇 해 동안

뻔히 보았으니까요.


민낯을 안 보려고 

눈을 돌리는 분이 많더라도

민낯은 안 사라집니다.

그저 민낯이기 때문에.


전남 광주에서 왜 

멀쩡한 '공사중 아파트'가

무너질까요?


전라도 '글바치(지식인)'는

다들 무슨 뒷돈을 잔뜩 먹었기에

입을 꾹 다물까요?


전라남도 지자체는 

벌써 열 몇 해째

'공무원청렴도'가 하나같이

밑바닥인데

열 몇 해째뿐 아니라

스물 서른 마흔 해 넘게

내내 '공무원청렴도 최하위'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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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앞둔 글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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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무엇 생각하는 분홍고래 17
레자 달반드 지음, 김시형 옮김 / 분홍고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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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2.1.28.

그림책시렁 878


《검은 무엇》

 레자 달반드

 김시형 옮김

 분홍고래

 2020.6.10.



  모른다면 그저 모를 뿐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줄 알기 때문에, 어느덧 알아가는 길에 섭니다. 안다면 그저 알 뿐입니다. 알기 때문에, 아는 줄 알기 때문에, 어느새 새로 배우는 길에 서요. 모르는 이도 아는 이도 나란히 배워요. 아는 이도 모르는 이도 함께 가르쳐요. 모르는 만큼 듣고 겪고 보고 배웁니다. 아는 만큼 새롭게 나서면서 듣고 겪고 보고 배워요. 《검은 무엇》은 책이름처럼 “검은 무엇”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검은 무엇”은 무엇일까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여러 숨결은 ‘저마다 아는 대로 바라보려고 하’는데, 검은 무엇은 ‘저마다 아는 틀을 넘어섭’니다. 그렇다고 하나도 모른다고 하기 어려우나,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어요. 다들 섣불리 ‘모른다’고 말하지 못해요. 왜 ‘모름’을 스스럼없이 안 받아들일까요? 모르기에 나쁠 일이 없어요. 몰라서 잘못이지 않아요. 모르니까 배우고, 배우니 알고, 알기에 새롭게 나아가고, 새롭게 나아가며 모르는 무엇을 새삼스레 만나요. 되풀이하는 삶이 아닌, 새롭게 한 걸음씩 내딛는 살림길입니다. 씨앗 한 톨이 어떻게 뿌리를 내려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로 서는지 누가 알까요? 모든 숲은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하고, 모든 숨결은 바로 씨앗인 줄 누가 아나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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