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한 오라기의 혁명 - 자연농법 철학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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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2.5.

읽었습니다 70



  흙을 만지면서 생각한다면 ‘흙생각’인데, 우리나라 글바치는 ‘흙’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채 일본말 ‘농사상(農思想)’이나 ‘농철학(農哲學)’을 그대로 씁니다. ‘녹색평론’이란 이름도 우리말 아닌 일본말입니다. 프랑스말 ‘똘레랑스’를 한자말 ‘관용’으로 옮긴들 우리 삶으로 스미지 못합니다. 우리말 ‘넓음·너그러움·넉넉’으로 풀어낼 노릇입니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은 틀림없이 값진 줄거리를 담되, 우리말 아닌 일본말투성이입니다. 시골지기는 ‘혁명’을 안 하고 ‘갈거나 엎거나 갈아엎’습니다. 짚 한 오라기로 갈아엎기에 ‘흙살림’입니다. 이제는 책상맡에서 붓대만 쥐는 글잔치가 아닌, 맨손으로 호미·낫·삽을 쥐고서 천천히 찬찬히 차근차근 차곡차곡 참하고 착하게 흙빛을 담아내는 흙넋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혁명’하지 맙시다. 그저 ‘갈아엎’읍시다. ‘사상·철학’도 하지 맙시다. 아이들하고 숲에서 함께 노래하며 ‘생각’합시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후쿠오카 마사노부/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2011.9.9./2014.12.8.여섯벌)


ㅅㄴㄹ

#福岡正信 #わら一本の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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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이규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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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2.5.

읽었습니다 107



  장 그르니에 님이 알베르 카뮈 님을 그리면서 쓴 《카뮈를 추억하며》는 포근하게 다독이는 이야기가 물씬 흐릅니다. 참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읽다가 176쪽에 나오는 이야기 “또 다른 질문에 그(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튼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펜은 어느 당에도 어느 국가에도 봉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라고 적은 대목이 카뮈라는 사람을 잘 드러낸다고 느낍니다. ‘어머니하고 나라’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머니를 고르겠다는 마음이기에 글에 힘을 실을 테고, 이 힘은 주먹다짐이나 총칼이 아닌 사랑으로 뻗을 테지요. 글바치라면 ‘학교·종교·나라·정당·단체·기관’ 어디에도 깃들지 않는 홀가분한 날개로 살아가면서 ‘아름답게 사랑하는 즐거운 길’ 한 줄기만 밝힐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바치는 ‘직업(전업작가)’일 수 없습니다. 글바치는 오직 ‘홀가분님(자유인)’이기에 손에 붓을 쥐어 삶을 그립니다.


《카뮈를 추억하며》(장 그르니에 글/이규현 옮김, 민음사, 1997.8.30.첫/2020.10.23.고침)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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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2.2.4.

오늘말. 켜구름


하늘을 고요히 흐르다가 휘감아치는 구름입니다. 하늘에 한 조각조차 없다가 그득그득 덮는 구름이에요. 어릴 적부터 구름바라기를 즐겼습니다. 늘 다르게 피어나는 구름을 보면서 어머니한테 “저 구름은 무슨 이름이야?” 하고 끝없이 물었어요. 꽃이름하고 풀이름하고 나무이름을 묻듯 어머니는 어린이 물음을 모조리 받아주는 듬직한 어른이었어요. 어머니는 “뭉게구름이네. 양떼구름이야. 새털구름이구나. 비구름이지. 먹구름이야.” 하고 들려주다가 “아이, 이젠 몰라. 네가 스스로 생각해서 붙여 봐.” 하면서 손사래를 쳤어요. 날씨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구름을 열 갈래로 나눈다고 해요. 그런데 구름은 스무 가지를 넘고 쉰 가지를 넘으며 온(100)이나 즈믄(1000)도 훌쩍 넘는다고 느껴요. 썰물구름이 있고, 조각구름이 있고, 덩이구름이 있어요. 그득구름에 겹구름에 날개구름이 있어요. 나비구름에 범구름에 미르구름도 있는데, 소용돌이구름이나 젓가락구름도 재미난 무늬입니다. 우리는 구름한테 이름을 어떻게 붙여 주나요? 구름은 우리가 어떻게 이름을 붙이려나 하고 지켜보거나 기다리지 않을까요? 차분히 하늘을 봐요. 즐겁게 구름빛을 노래해요.


ㅅㄴㄹ


뭉게구름·봉우리구름·쌘구름 ← 적운(積雲)

몽실구름·양떼구름·높쌘구름 ← 고적운(高積雲)

비늘구름·조개구름·털쌘구름 ← 권적운(卷積雲)

햇무리구름 ← 권층운(卷層雲)

높구름·높켜구름·잿빛구름·잿구름 ← 고층운(高層雲)

안개구름·켜구름 ← 층운(層雲)

두루마리구름·두툼구름·켜쌘구름 ← 층적운(層積雲)

새털구름·털구름 ← 권운(卷雲)

비구름 ← 난운(亂雲)

먹구름·먹장구름·매지구름·검은구름·검구름 ← 난층운(亂層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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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4.

숨은책 621


《보내지 않은 편지》

 아델 꾸뚜이 글

 김하 옮김

 연변교육출판사

 1955.2.첫/1955.12.석벌.



  북녘 ‘조선녀성사’에서 1954년에 처음 나온 《보내지 않은 편지》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벌마다 2만 남짓 찍어 석벌에 이르렀다는데, 그 뒤로 더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숱하게 읽혀 해진 책은 ‘쏘련 각시’가 ‘마음에 든 사내’한테 글월을 쓰기는 했으나 차마 보내지 못한 이야기를 소설 얼거리로 다룹니다. 이른바 ‘사랑 이야기(연애소설)’일 텐데, ‘혁명을 바라보고 이루려고 땀흘리는 순이’가 어떤 매무새여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줄거리라 할 만합니다. 아직도 이런 글이 읽히지는 않겠지요. 모든 사람을 톱니바퀴로 여기면서 ‘나라에 한몸 바치라’고 부추기는, 또한 ‘삶을 짓는 손길’이 없는 글은 누가 왜 써서 읽히려 했을까요?

.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어요. 단지 아오모리 현만 하여도 그러한 계약서가 천여개나 되며 부르죠아 출판물들이 전하는 바에만 의하여도 일본에는 오늘날 현재로 공식적 수속을 밟은 매음부들이 五만 三백 五十三명이 된다는 거예요. “네게는 녀편네 노릇 밖에 더 없다. 너는 공부도 하지 않고 직장에도 다니지 말라. 너의 일은 부엌 살림에, 례배당에, 침대에 있다”, 이렇게 파시스트들은 떠들고 있지요.” (93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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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2.4.

숨은책 620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오쓰뜨롭쓰끼 글

 편집부 옮김

 연변인민출판사

 1978.11.



  “그런 책을 어디서 찾았어?” “어디서 찾다니? 뻔히 눈앞에 있잖아?” “눈앞이라고?” “봐, 여기 있었지, 어디 있었니?” 둘레에서 저더러 ‘숨은책’을 잘 찾는다고 말할 적마다 책이 숨은 적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익숙한 책’이 아닌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하는 책’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책이건 눈에 뜨일 일이 없이 ‘숨어버린다’고 얘기했어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는 헌책집에서 곧잘 보았으나 ‘소설’은 읽고 싶지 않아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다가 《보리 국어사전》 짓는 일을 하면서 북녘말을 살펴야 했기에 비로소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윤구병 님이 어느 날 물어요. “야, 너 그 책 어디서 찾았어?” “헌책집에 흔하게 있는데요?” “흔하다고? 그럼 나도 좀 사 줘.” “책값만 주시면 사 드리지요.” 너덧 분한테 똑같은 책을 다 다른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건네었습니다. “너 참 재주도 좋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찾아내니?” “재주 아닌데요? 읽으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보여요. 읽을 마음이 없으면 코앞에 놓아도 못 알아보잖아요.” 묵은 책을 스무 해 만에 되읽습니다. 우리는 ‘무쇠’나 ‘톱니’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나’여야 합니다.


ㅅㄴㄹ


이제 스무 해도 훌쩍 넘은 이야기이니

좀 홀가분히 말하려 한다.

다만, 이따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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