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2.5.


《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글·애니 데이비드슨 그림/김현수 옮김, 알피코프, 2020.9.25.



작은아이가 아침저녁으로 따끈빵을 굽는다고 한다. 아침에는 설거지가 잔뜩 나왔다. “오늘 따끈빵을 구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하실 적에는 설거지도 함께 해보셔요.” 하고 들려주었는데, 저녁에 다시 따끈빵을 반죽을 해서 구운 뒤에 설거지까지 해놓는다. 해낼 줄은 알되 아직 손에 착 붙지는 않았구나. 저녁부터는 별바라기를 한다. 별을 한참 바라보다가 ‘별바라기’란 낱말을 언제부터 썼는가 하고 돌아보는데 잘 모르겠다. “천체 관측”이라 할 까닭 없이 ‘별바라기’라 하면 된다. 쉽고 알아듣기에 좋다. 새를 볼 적에 ‘새바라기’라 하면 수월하고 어울린다. 굳이 ‘탐조’라 할 일이 없다. 비가 내리기를 바라면 ‘비바라기’라 하면 되지. 애써 ‘기우제’라 해야 할까? 작은아이는 ‘눈바라기’를 하는데, 눈을 바라려면 고흥 아닌 좀 북쪽으로 가야 하리라. 《나무처럼 살아간다》를 읽으며 이 대목을 생각했다. ‘나무바라기’나 ‘풀꽃바라기’나 ‘숲바라기’를 했다면 글·그림이 사뭇 달랐으리라. 그저 바라보면 된다. 고요히 바라보면 넉넉하다. 사랑으로 바라보면 즐겁다. 모든 배움길(학문)은 ‘바라보기(관찰)’부터라지만, 막상 숱한 사람들은 책읽기부터 달려든다. 먼저 오래오래 바라보면 다 풀 수 있는데.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운 오리 새끼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별천지 제리 핑크니
제리 핑크니 글.그림, 윤한구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숲노래 그림책 2022.2.19.

그림책시렁 852


《미운 오리 새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제리 핑크니 그림

 윤한구 옮김

 별천지

 2010.5.10.



  요즘은 거의 “미운 오리 새끼”로 쓰는데, 제가 어린이로 살던 1980년에는 “미운 새끼 오리”란 이름이 맞다고 바로잡아 주는 어른이 많았습니다. 이원수 님이 우리말로 옮긴 책도 “미운 새끼 오리”입니다. “새끼 염소”나 “새끼 새”나 “새끼 코끼리”처럼 ‘새끼’를 앞에 붙입니다. “어린 오리”에 “어린 염소”에 “어린 새”인걸요. 제리 핑크니 님이 눈부시게 담은 《미운 오리 새끼》를 가만히 읽으면, 고니뿐 아니라 오리도 아름답습니다. 마땅하지요. 고니만 눈부신 깃털이 아닙니다. 오리도 눈부신 깃털입니다. 제비도 비둘기도 참새도 매도 꿩도 저마다 눈부신 깃털입니다. 새끼 고니가 새끼 오리보다 못생길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 오리도 어른 고니보다 못생길 일이 없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멋이요 빛이자 숨결입니다. 우리가 숲이라는 터전에서 살림을 짓는다면 ‘잘남·못남’이나 ‘잘생김·못생김’으로 금을 안 긋겠지요. ‘왼·오른(좌파·우파)’도 어느 쪽이 낫거나 옳지 않으며, 어느 쪽이 나쁘거나 틀리지 않습니다. 새가 날려면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있어야, 하고 몸통이 튼튼하게 복판에 설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끼 오리”란 우리말조차 제대로 못 쓰고, 생각을 못 추스를 만큼 눈길이 뒤틀렸습니다.


ㅅㄴㄹ

#TheUglyDuckling #JerryPinkne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그림책 2022.2.19.

그림책시렁 862


《뱀이 와싹!》

 강복자

 책여우

 2016.12.4.



  사람한테 뱀이 무서울 까닭이 없습니다. 거꾸로 뱀이 사람을 무서워할 만합니다. 알고 보면, 사람하고 뱀은 서로 꺼리거나 무서워할 일이 없습니다. 저마다 다른 터전에서 스스로 새롭게 삶을 지으면서 이웃으로 지낼 뿐입니다. 제주 할머니가 지은 그림책 《뱀이 와싹!》을 읽었습니다. 뱀을 만난 이야기도 담고, 제주라는 고장을 구경터(관광지) 아닌 삶터로 지으면서 시골빛을 물씬 누린 나날을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할머니 그림책으로도 엿볼 만한데, 온누리 어느 곳도 구경터일 수 없습니다. 나라(정부)에서는 목돈을 들여서 자꾸 구경터를 때려짓는데, 우리가 즐거이 마실을 갈 만한 곳이란 ‘이웃이 사랑으로 살림을 지어서 가꾼 삶터’입니다. 또는 ‘풀꽃나무를 비롯한 이웃숨결이 푸르게 돌보며 어우러지는 숲터’로 마실을 즐겁게 갈 만해요. ‘관광자원·관광산업’이란 이름은 참으로 무시무시하지요. 삶터도 숲터로 짓밟는 길인 ‘자원·산업’이거든요. 우리는 할매할배한테서 삶터를 물려받습니다. 우리는 풀꽃나무랑 뭇이웃한테서 숲터를 이어받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먼먼 옛날부터 한어버이한테서 비롯했고, 우리 오늘은 예나 이제나 숲빛으로 환한 푸른터에서 자랐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칸트의 동물원 민음의 시 132
이근화 지음 / 민음사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7


《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민음사

 2006.4.25.



  우리 집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나이가 들수록 큰고장(도시)을 힘들다고 느낍니다. 큰고장은 무엇보다 뛰놀 곳이 없습니다. 느긋이 해바라기를 하며 쉴 곳이 없고, 별바라기를 넉넉히 하면서 고요히 잠들 곳이 없습니다. 새랑 노래하거나 풀벌레하고 사귈 곳이 몹시 드물고, 바람하고 물을 맑게 마실 데는 없습니다. 《칸트의 동물원》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여러 벌 되읽어 보는데 어쩐지 숨이 좀 막힙니다. 노래님은 숨막히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 듯합니다. 숨막히는 큰고장에서 스스로 새롭게 숨통을 틀 조그마한 불빛을 찾아내는 하루를 그리는구나 싶어요. 먼 옛날 글바치는 으레 두 가지 글감으로 노래했습니다. 첫째는 임금붙이를 기리는 노래요, 둘째는 풀꽃나무를 그리는 노래입니다. 오늘날 글바치는 어떤 글감으로 삶을 노래할까요? 아무래도 스스로 집을 얻어서 살아가는 터전에서 늘 마주하는 하루를 글로 옮길 테지요. 그렇다면 서울·큰고장이라고 하는 터전은 사람한테 얼마나 사람스러운가요? 사람한테 사람스럽지 않게 짠 서울·큰고장에서 어떻게든 수수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길에 적는 글일는지, 스스로 즐겁게 굴레를 내려놓고서 홀가분하게 새길을 나아가며 노래할 글일는지, 저마다 찾아나서야겠지요.


ㅅㄴㄹ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 어느 맑은 날에는, // 낮잠을 자고 /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 나는 또 나인 듯이 / 외출을 한다 (지붕 위의 식사/30쪽)


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 / 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날 때 / 새벽이 밀려왔다 이 거리는 얼굴을 바꾸고 / 아주 천천히 사라질 것이지만 (따뜻한 비닐/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으로 엮은 방패 창비시선 454
곽재구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8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

 2021.2.19.



  일곱 해쯤 앞서 ‘넋·얼·마음·숨’이 어떻게 다른 결인가를 풀어낸 적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새삼스레 이 네 낱말을 짚으면서 어떻게 태어난 결인가를 풀어냅니다. 곰곰이 보면 거의 쉰 해를 들여 네 낱말을 살피고 풀어낸 셈입니다. 이처럼 말뜻풀이·말밑풀이를 해내면 덤덤해요. “아, 이제 끝이네?” 같은 혼잣말이 나옵니다. 해내기 앞서까지는 온생각을 그러모아 바라보고, 해내고 나서는 온마음을 부드러이 풀어놓고서 앞으로 새롭게 바라볼 낱말을 그립니다. 《꽃으로 엮은 방패》를 되읽다가 곽재구 님이 스스로 안 놓으면서 둘레 사람한테는 놓으라고 말하는 결을 새록새록 느낍니다. 〈세월〉 같은 노래는 첫 다섯 줄은 좋으나 다음 줄부터는 군말이네 싶어요. 첫 다섯 줄로 노래가 끝났습니다.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창비시선 454’에 이름을 ‘올리’고 ‘산문’을 매우 길게 붙였습니다. 칙폭이(기차)는 칙폭이대로 달리면 됩니다. 노래는 노래대로 부르면 됩니다. 회오리바람이 산들바람처럼 불어야 할까요? 더 빠르거나 더 느린 결은 없습니다. 저마다 다를 뿐입니다. 노래란, 소리에 얹는 가락이자 생각이 흐르는 마음입니다. 노래란, 목소리가 아닙니다. 목소리만으로는 ‘외침’일 뿐입니다.


ㅅㄴㄹ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 냉이꽃 곁에 제비꽃 / 제비꽃 곁에 산새콩 / 산새콩 곁에 꽃다지 / 꽃다지 곁에 바람꽃 // 소년 하나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네 (세월/11쪽)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 /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