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고화질] 노부나가의 셰프 30 노부나가의 셰프 30
카지카와 타쿠로 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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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2022.3.19.

책으로 삶읽기 731


《노부나가의 셰프 30》

 카지카와 타쿠로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2.2.28.



《노부나가의 셰프 30》(카지카와 타쿠로/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2)을 읽으며 이 그림꽃책이 마무리를 어떻게 지으려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내가 이 그림꽃책을 굳이 읽는 뜻을 꼽자면 ‘우두머리’ 이야기를 다루되, 줄거리는 ‘마을사람’이 바탕이다. 우두머리가 지난날 일본이란 나라를 어떻게 세워서 이끌려 했느냐를 얼핏 다루는 듯 보이지만, 막상 모든 줄거리는 ‘우두머리 한 사람’이 아닌, ‘나라를 이루는 밑바탕인 수수한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하루를 맞이하고 삶을 사랑하려는가 하는 대목을 짚는다. 작고 수수하기에 이 작고 수수한 손빛이 모든 길을 바꾸어 낸다는 속뜻을 끝까지 고이 이어가기를 빌 뿐이다. 발자취(역사)는 우두머리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우두머리 이야기도 발자취에 조금 넣을 만하다. 그러나 참말로 제대로 갈무리하는 발자취라면, 어느 해에 어떤 우두머리가 뭘 어떻게 했느냐고 적는 글자국이 아닌, 사람들이 저마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랑 어울리면서 오늘 하루를 어떠한 보람과 눈빛으로 살림하면서 노래했느냐 하고 적는 글자국이리라.



‘누가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문화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전란과 폭력의 이 시대에!’ (44쪽)


‘전쟁만 하지 않으면 본래 풍요로운 국토로군. 국토의 풍요로움은 국력이다.’ (62쪽)


“모든 것을 알기보다 조금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 있는 편이 더욱 끌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83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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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 6 - 개정증보판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2022.3.19.

책으로 삶읽기 732


《도토리의 집 6》

 야마모토 오사무

 김은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5.1.20.



‘지적 장애, 농아, 뇌성마비. 의료보조로 Y시의 ○○정신병원 입원 결정’ 그렇게 해서 네 살밖에 안 된 가네다는 어린 시절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12쪽)


가네다는 힘들게 기어가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 속에는 누군가가 대량의 고춧가루를 넣어 놓았었다. 그런데도 어린 가네다는 그것을 먹었다. 그곳에 사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기어갈 수밖에 없었고, 무엇이든 먹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병원이 폐쇄되기까지 4년 동안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15쪽)


이 나라는 그런 나라이다. 입으로는 복지를 외치면서도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제도로 묶어온 것이다. (25쪽)


“이제 겨우 깨닫게 됐어요. 전 지금까지 노부오가 제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노부오 덕분에 미도리와 게카루, 그리고 선생님들과 만날 수 있었고, 오사카와 교토 분들과도 만날 수 있었어요.” (84쪽)



《도토리의 집 6》(야마모토 오사무/김은진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5)을 되읽었다. 이 그림꽃책이 처음 우리말로 나오던 무렵을 떠올리자면 ‘나랑 너’라는 사이가 매우 멀었다. 예전에는 《사랑의 집》이란 이름으로 나왔는데, ‘특수교육’이란 이름으로 길잡이가 되려는 이들조차 “만화책은 안 봅니다” 하면서 손사래를 쳤지. 이제는 ‘비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일 만큼 나라가 조금 바뀌는데, ‘비장애인·장애인’이란 이름을 쓰더라도 바탕은 ‘장애’를 바라본다. ‘사람’을 바라보는 이름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갓난아기가 장애인인가? 어른이 되면 비장애인인가? 사람을 오롯이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채 이름을 붙이면 골은 그저 깊어갈 뿐이다. ‘장애인 통합교육’이란 말이 우습다. ‘억지로 통합’을 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무 울타리가 없이 함께 놀고 일하고 배우고 어우러지는 길’을 갈 적에 아름답고 알맞다. 《도토리의 집》 여섯걸음에서는 ‘몸이 힘든 아이’를 맞이한 나라(일본 정부)가 아이를 우격다짐으로 정신병원에 집어넣어 괴롭힌 줄거리로 첫머리를 연다. 정신병원이란 이름인 곳은 왜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하는 데일까? 떨어뜨리기(격리)를 왜 할까? 우리는 저마다 다르기에, 누구는 무엇을 제법 하고 누구는 무엇을 도무지 못 한다. 아무리 해도 밥을 못 짓거나 바느질을 못 하는 사람이 있고, 달리기가 느린 사람도 수두룩하다. 금을 긋는 모든 일은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금긋기(차별)로 나아간다. 장애도 비장애도 없다는 삶을 바라볼 때라야 제대로 바뀐다. 아기를 안고 걸어가는 어버이를 헤아리면서 거님길을 살피면, 바퀴걸상으로 걸어다닐 사람이건 두 다리로 걸어다닐 사람이건 모두 홀가분하다. 오늘날 이 서울나라(도시공화국)는 온통 “난 장애가 아니야” 하는 생각을 심으면서 우루루 쏟아지는 물결로 ‘돈·이름·힘’만 바라보는 사나운 죽음터라고 느낀다. 배움터(학교)가 참말로 배움터라면 배우려는 사람을 막아야 할 일이 없고, 다음 배움터로 나아갈 발판이 아닌, 살림을 손수 짓는 삶을 스스로 그리도록 북돋우는 ‘삶·살림·사랑 배움터’여야 맞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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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이디 Q.E.D 22 - 증명종료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만화책 2022.3.19.

책으로 삶읽기 733


《Q.E.D. 22》

 카토 모토히로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05.12.25.



“그렇게 나쁜 계획을 꾸미고 있다면 가나를 끌어들일 리 없죠. 쿠로시마 씨는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오고 싶었던 거예요.” (83쪽)


평화로운 삶을 살려고 했어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하지만 그건 끝내 허락되지 않았죠. 봄이 와 초록이 무성하고 따뜻해져도 겨울의 물줄기가 겨울의 추위를 잊지 못하듯.” (100쪽)


“그럼 받아두지. 당신에겐 필요 없을 것 같으니. 당신은 돈으로 사물을 재는 것이 특기인 것 같은데, 일단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런 식으론 가늠할 수 없어. 이걸 되찾고 싶지 않다면, 이런 건 영원히 필요가 없지.” (142쪽)



《Q.E.D. 22》(카토 모토히로/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05)은 돈을 둘러싼 실타래를 다룬다. 돈에 눈이 멀어 사람을 잃은 사람을 보여주고, 돈을 앞세우느라 사람을 잊을 뻔한 사람을 얘기한다. 한 사람은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 채 치달리다가 사람을 잃을 뿐 아니라 이녁 숨결까지 잃는다. 다른 한 사람은 도움말을 들려줄 동무를 불러서 곰곰이 생각해 볼 뿐 아니라, ‘나 혼자’ 나아갈 길인지 ‘내가 사랑하는 님하고’ 걸어갈 길인지 돌아볼 틈을 얻어, 조금씩 생각을 바꾸어 나아가려고 한다. 나는 나를 바꿀 수 있을까? 스스로 바꿀 생각이라면 바꾼다. 나는 나를 못 바꿀까? 스스로 못 바꾼다고 여기면 못 바꾼다. 틀은 남이 아닌 내가 만들고, 굴레나 쳇바퀴도 남이 씌우지 않고, 늘 스스로 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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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78 불길



  불은 여러 쓰임새입니다. 활활 태워서 재를 남깁니다. 태우기에 따뜻하거나 뜨겁고, 밥을 끓이거나 국을 익힙니다. 태워서 재가 남기에, 재로 빨래를 하거나 이를 닦거나 똥오줌을 재워 거름으로 거듭나도록 다스립니다. 불을 피우니 밝습니다. 불빛이 되니 길잡이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 불길이 치솟으면 그만 스스로 까맣게 타면서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죄다 사라지고 말아요. 마음에 왈칵하고 불을 지피면 어느새 스스로 일구던 살림이며 삶을 모조리 잿더미로 바꾸고 말지요. 불(화·분노·증오)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불길과 불빛이라는 결에 따라 쓰임새가 있습니다. 들불처럼 일어나기에 확 갈아엎지만, 모두 태우지요.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합니다. 마음에 일렁이는 불길을 잠재우거나 다스린다면, 태워서 잿더미로 바꾸는 숨결이 아닌, 스스로 기운을 끌어내는 따스한 빛살이 될 만합니다. 버럭버럭 성을 내며 쓰는 글이라면 이웃이며 동무를 불사르는 무시무시한 씨앗이 퍼집니다. 차근차근 눈을 밝히며 쓰는 글이라면 둘레에 포근하면서 상냥하고 어진 씨앗을 심습니다. 낱말책에 담을 낱말·뜻풀이·보기글·보탬말은 ‘타오르는 불길’보다는 ‘환한 햇빛’이라는 마음이 될 적에 차근차근 달래며 가꿀 만합니다.


성난 아이 마음에 부디 불씨가 아닌 꽃씨가 자라나면 좋겠어요.

怒っている子供の心にどうか火種ではなく、花の種が育ってほしいです。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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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94 낱낱과 꾸러미



  긴 꾸러미(장편·연작)를 첫걸음부터 끝걸음까지 차근차근 읽기도 하지만, 사이에 하나를 골라 읽기도 하고, 끝걸음 하나만 읽기도 합니다. 이웃님한테 긴 꾸러미를 알릴 적에 통째로 건네기보다 첫걸음이나 끝걸음이나 사잇걸음 가운데 하나만 뽑아서 건네기도 해요. 마무리를 지은 판이나 오래도록 잇는 발걸음으로 본다면 “긴 꾸러미”입니다만, 지음이는 낱낱을 따로 헤아리면서 여미기 마련입니다. “긴 꾸러미에 깃든 낱책 하나”이기도 하지만 “40부작 가운데 5권”이 아닌 “마흔걸음 가운데 닷걸음”인 ‘오늘’을 읽는다고 하겠어요. 다 다른 걸음이 모여서 “긴 꾸러미”를 이루거든요. 하루를 ‘새벽 + 아침 + 낮 + 저녁 + 밤’으로 모두어서 읽어도 되고, 새벽이나 낮만 떼어서 읽어도 됩니다. 새벽 가운데 한때만 떼어서 읽어도 되고, 밤 가운데 아주 짤막한 틈만 떼어서 읽어도 돼요. 하루를 보아도 다 다른 때를 모읍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한길’이면서 ‘온길·새길·꽃길’이거나 ‘눈물길·고빗길·에움길’이거나 ‘노래길·웃음길·푸른길’이기도 합니다. 모두(긴 꾸러미)를 이루는 하나(낱낱)에서 첫걸음을 보고, 다 다른 빛줄기를 만납니다. 솔솔 부는 바람처럼 아이를 쓰다듬고, 살살 춤추는 들꽃처럼 스스로 돌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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