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5.17.


《몽실 언니》

 권정생 글, 창작과비평사, 1984.4.25.



광주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내 책짐이 많다면서 부릉이 짐칸에 실어 준 이웃님이 이튿날 함께 고흥 ‘숲노래 책숲’으로 가자면서 그대로 떠나셔서 밤부터 새벽까지 글을 안 쓰는 한때를 보낸다. 글쓰는 사람은 책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언제나 바리바리 싸안고 살아야 한다고 다시 깨닫는다. 난 내 책짐이 안 무거운걸. 부피는 많을는지 모를 뿐. 아침에 광주에서 고흥으로 빠른길(고속도로)을 거쳐 달리는데, 시외버스가 아니기에 주암호를 안 낀다. 빠른길 곁에는 부릉물결하고 잿빛더미. 부릉이(자가용)만 몰면서 다니면 풀꽃나무도 해바람비도 볼 일이 없고 생각할 겨를이 없겠구나. 한국국학진흥원이란 데에서 ‘1945년 앞서 나온 책’하고 ‘1980년 앞서 나온 글꾸러미’를 모으려고 한다기에 이런 갈래에 드는 책을 한참 보여주었다. 어제오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뻗었다. 어스름에 부시시 일어나 처마밑에 앉으니 ‘우리 집 제비’가 찾아왔다. “이제 둥지를 새로 지으면 어때?” 하고 속삭인다. 《몽실 언니》를 새삼스레 읽었다. 1998년에 처음 읽었고 이따금 다시 읽는다. 몽실이도 권정생 할배도 수수한 순이돌이 누구나 어깨에 뭔가 짊어지고 걸어가는 길이다. 짐일 수도, 살림일 수도, 멍에일 수도 있으나, 곰곰이 보면 사랑이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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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5.16.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글, 작가, 2004.5.3.



몸이 아직 덜 풀렸으나 광주마실을 간다. 달날(월요일)에는 쉬는 광주책집이 많다. 이태 만에 찾아가려는 책집은 이제 닫는다고 한다. 전라남도하고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책을 가장 덜 읽는 고장이다. 둘은 늘 꼬랑지에서 누가 더 꼬랑지인가 하고 겨룬다. 전남에 순천이 없다면 아마 전남이 가장 꼬랑지이리라. 〈일신서점〉부터 들른다. 89살 할아버지는 얼추 예순 해를 책집지기로 살아오셨다지. 이다음에 들른 〈광일서점〉도 오래 이은 책집으로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이분들이 일군 쉰∼예순에 이르는 책살림길을 전라남도도 광주도 못 알아본다. 저녁에 뵙기로 한 곳에 가기까지 틈이 길어 길에서 조금 헤매다가 〈ㅊ의 자리〉로 찾아간다. 이곳은 미리 여쭙고 깃들어야 하는 곳인데 미처 몰랐다. 시골내기는 이럴 적에 씩씩하게 “책 보러 고흥에서 왔어요.” 하고 둘러댄다. 이다음에는 미리 여쭙자. 《내가 만난 하나님》을 뜻깊게 읽었다. 김승옥 님이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는 나도 비슷하게 겪었기에 눈을 반짝였고, 얼마 앞서 흙으로 돌아간 김지하 님하고 얽힌 이야기는 애틋하면서 가슴이 저린다. “죽음굿판”을 다룬 글을 왜 썼고, 이 글을 쓰기까지 이녁이 ‘운동권·지식인·작가’한테 얼마나 시달렸는가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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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5.15.


《혼불 1》

 최명희 글, 한길사, 1996.12.5.



어제는 ‘우람’을 풀었다. 오늘은 ‘키·칼’을 푼다. 이 낱말이 어떻게 왜 태어나서 여러모로 가지를 뻗어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거의 짚는다. 처음 글종이에 낱말 하나를 적으면 둘레가 텅 빈 채 덩그러니 있는 듯하지만, 어느새 하나둘 실마리를 찾는다. 하나씩 하면 차근차근 나아간다. 한꺼번에 안으면 무거워 주저앉는다. 작은아이랑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망설이다’를 놓고 글을 한 자락 써서 건넨다. 망설여도 되지만 굳이 망설여야 할까? 바람이 부드럽고 꽃내음이 짙다. 구름이 물결치고 제비가 하늘을 가른다. 《혼불 1》를 되읽었다. 예전에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하나도 안 떠오른다. 워낙 오랜만에 되읽은 탓일 수 있고, 예전에는 ‘인천살이’를 했기에 ‘전주살이·전라살이’를 보낸 삶길을 읽기가 만만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혼불》을 처음부터 새롭게 읽고 보니 《태백산맥》하고 《토지》에 없는 대목이 도드라진다. 최명희 님은 조정래·박경리 두 분과 달리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려’고 몹시 애썼구나. 두 분은 일본말씨·옮김말씨하고 일본스런 한자말을 꽤 자주 썼고, 최명희 님은 이런 말씨를 되도록 걷어내려 했다. “우리말로 글쓰기”를 생각한다면 《혼불》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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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5.14.


《에코의 초상》

 김행숙 글, 문학과지성사, 2014.8.18.



밤새 무릎·팔다리·등허리가 후끈후끈하다가 새벽에 이르러 잦아든다. 아무래도 어제 한나절을 함박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자전거를 터덜터덜 끌며 집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로구나 싶다. 걷기랑 자전거를 사랑하는 삶이니, 앞뒤 바퀴가 모두 터진 자전거를 비실비실 끌었다고 느낀다. ‘걷기 + 자전거’인 셈이다. 새벽 세 시부터 하루를 연다. 아침 여덟 시 즈음 비로소 일을 쉬고서 잠든다. 구름 하나 없이 별빛이다가 햇빛인 하루이다. 이불말리기를 하기 좋다. 어제 바닷길에서 노래꽃 ‘빗길’을 썼다. 오늘은 ‘자전거’를 쓴다. 주디스 커 님을 헤아리며 ‘주디스 커’ 삶길을 노래꽃으로 써 본다. 빗길을 자전거를 끌며 보낸 터라 두 가지 노래꽃을 쓸 뿐 아니라, 한참 걸으며 주디스 커 님이 가싯길을 웃고 노래하며 보낸 밑힘을 떠올렸다고 느낀다. 《에코의 초상》을 읽으면서, 오늘날 숱한 어른노래(시문학)를 읽다가, 왜 이리 벼랑끝에 서는 말재주에 갇히는지 돌아보았다. 틀림없이 나라(정부)가 꽉 막힌 탓이 크고, 배움수렁(입시지옥)이 사람들 머리를 갉아먹고, 나눔살이 아닌 돈벌이(경제성장)만 앞세우는 바보짓 탓도 크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노래(시)는 더더욱 허물을 벗고서 나비로 깨어나는 사랑을 그릴 노릇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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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누가 읽는가 (2022.4.20.)

― 대전 〈노란우산〉



  대전 기차나루 곁에 있는 〈중도서점〉에서 〈노란우산〉으로 시내버스를 타고서 찾아가려 했습니다. 버스나루에 서서 기다리자니 제가 탈 버스는 한참 뒤에야 올 듯싶습니다. 이러면 택시를 타야지요. 택시는 가볍고 빠르게 마을책집 어귀로 실어 줍니다. “책방에 가신다고요? 허허, 책방 가려고 택시를 타는 손님이 다 있네요. 대전에서 갈 만한 책방이 있습니까? 대전도 이제 옛날 같지 않을 텐데요.”


  옛날이 좋았는지 오늘이 나쁜지 잘 모릅니다만, 저는 늘 오늘 만날 새로운 책을 생각하면서 새책집도 헌책집도 마실합니다. 새책집으로 마실하기에 갓 나온 책을 살피지 않습니다. 헌책집으로 나들이하니까 오래된 책을 둘러보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늘 읽고 새길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헤아립니다.


  그림책을 품는 〈노란우산〉은 호젓한 골목에 있고 볕이 대단히 잘 듭니다. 사람들 발걸음이 잦은 길목도 책집을 하기에 좋을 수 있고, 사람들 발걸음이 뜸한 골목도 책집을 하기에 어울릴 수 있습니다. 큰책집하고 작은책집이 함께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큰책집은 온갖 갈래 더 많은 책을 품고, 작은책집은 마을을 살찌울 슬기로운 책을 어진 눈길로 솎아서 품으면 즐거워요.


  큰자리에 넉넉히 책을 품기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책바다를 누립니다. 작은자리에 조촐히 책을 품기에 마을사람이 도란도란 책밭을 즐겨요. 북적이는 큰책집에서는 숱한 책을 휘둘러보면서 ‘온누리가 이렇게 넓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작은책집에서는 몇 가지 책을 조용히 들여다보면서 ‘이 별이 이처럼 깊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바다가 있고 샘물이 있어요. 함박비가 쓸어 주고 가랑비가 달래 줘요.


  우리는 아직 모르기에 새롭게 찾아나서면서 배웁니다. 스스로 모른다는 생각이 없으면, 안 배울 뿐 아니라, 이웃하고 동무를 얕보거나 괴롭히는 길로 가는 듯해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모르기에 배우는” 사람으로 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묻는 말 가운데 이미 아는 이야기라면 나긋나긋 들려주고, 아직 모르는 대목이라면 “함께 찾고 생각해서 알아보자.” 하고 속삭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삶이고, 생각없는 사람이기에 죽음이에요. 곰곰이 생각하면, 맞춤길(맞춤법)이란 ‘즐겁게 틀려 보라’고 있지 싶습니다. 따박따박 틀에 가둘 맞춤길이 아닌, 신나게 사투리를 쓰면서 얼거리를 새롭게 짤 말길이지 싶어요.


  옛날부터 들려주면서 오늘도 듣고 앞으로도 들려줄 옛이야기이듯, 예전에도 읽고 오늘도 새롭게 읽는 헌책이자 아름책이라고 느낍니다. 책읽기란 놀이인걸요. 꾸역꾸역 머리에 넣을 부스러기가 아닌, 눈빛을 새록새록 밝히는 생각나래입니다.


ㅅㄴㄹ


《오로라의 아이들》(인그리 & 애드거 파린 돌레르 글·그림/정영목 옮김, 비룡소, 2020.2.10.)

《올라의 모험》(인그리 & 애드거 파린 돌레르 글·그림/정영목 옮김, 비룡소, 2020.12.9.)

《구름보다 태양》(마시 캠벨 글·코리나 루켄 그림/김세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2.2.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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