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어른스럽다 2022.12.23.쇠.



“어른같지 않은 모습”을 자꾸 보는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싫다.”고 여길 만해. “어른답지 않은 짓”을 으레 보는 푸름이는 “어른은 다 싫다.”고 말할 만해. “어른스럽지 않은 마음”을 흔히 보는 사람은 스스로 “어른이 안 될래.”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 그런데 너희는 ‘어른’이 어떤 모습·몸짓·마음인 줄 아니? “어른같지 않고, 어른답지 않고, 어른스럽지 않은 = 어른이 아닌 = 나이만 먹은 = 늙은·낡은·고리타분한·고약한·고린·고단한·괴로운”이란다. 너희가 보는 모든 “나이만 먹었을 뿐 도무지 어른이라 하기 어려운 모습·몸짓·마음”은 ‘늙은이·낡은이’란다. 그러니 제대로 보고 느끼고 알아서 생각하기를 바라. 너희는 “어른이 되어”야지. 너희는 “어른같이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눠”야지. 너희는 “어른답게 굴고·일하고·쉬고·놀고·살아”야지. 너희는 “어른스럽게 말하고 꿈꾸고 하루를 누려”야지. 너희는 ‘어른’으로 갈 노릇이야. 아이일 적에는 실컷 아이로서 놀고 뛰고 달리면서 새길로 나아가는 꿈을 그리렴. ‘어른’은 “씨앗을 심는 어진 사람”이야. 다만 그냥 심거나 마구 심으면 ‘어른 아닌 늙은이’란다. “씨앗을 오직 사랑으로 심으면서 마음을 어질게 다스리는 사람”이기에 ‘어른’이야. 둘레에 어른스러운 사람이 안 보인다면 네가 스스로 나서서 먼저 어른으로 서면 돼. 꽃씨도 말씨도 마음씨도 숨씨도 솜씨도 늘 어질게 사랑으로 심으렴. 그런데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지는 않아. 그렇다고 오래 걸리지도 않아. ‘철’을 보고 느끼고 맞아들이면서 철빛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오늘을 누리는 사랑이기에, 천천히 어른스러이 반짝이는 길을 온몸·온마음으로 연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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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넋 2022.12.26.

책하루, 책과 사귀다 151 코우노 후미요 こうの史代



  2017년에 나온 그림꽃(만화책) 가운데 《이 세상의 한 구석에 상·중·하》가 있습니다. 열두어 살부터 읽을 수 있다고 여기고, 매우 아름다우면서 슬픈, 더없이 사랑스러우면서 포근한 그림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그림책 석 자락을 ‘2017년 숲노래 올해책’ 가운데 으뜸으로 뽑았습니다. 둘레에서는 “무슨 만화책이 올해책이냐?” 하고 핀잔을 하고, 사서 읽는 이웃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었습니다. “만화책이라면 아무리 좋더라도 안 사고 안 본다”는 이웃님이 많아, 마을책집지기라든지 글이웃 여럿한테 이 그림꽃을 곧잘 사서 건네곤 했는데, 하도 안 팔려서 판이 끊어졌고, 고작 다섯 해 만인 2022년에 헌책으로 25만 원이니 15만 원이니 하고 올리는 분이 있더군요. 헌책으로 값어치를 알아주는 분이 있는 셈이려니 싶지만 쓸쓸합니다. 아무리 아름책이라 하더라도 판끊긴 지 다섯 해가 채 안 되어 25만 원 값이라니요? 그러나 우리 곁을 돌아보면 참말로 ‘갓 나온 뒤 몇 해 동안 사랑도 손길도 눈길도 못 받으며 사라지는 아름책’이 수두룩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왜 그때그때 알아보지 않으려 할까요? 왜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소비’에 기울고 말까요? 아름책을 품고 읽으면 누구나 아름길을 볼 수 있을 텐데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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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지방방송



 지방방송 끄고 모두 주목해라 → 잔말 말고 모두 들어라

 지방방송은 자제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

 그쪽 지방방송이 시끄럽구나 → 그쪽이 시끄럽구나


지방방송(地方放送) :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지역방송 : x



  낱말책에 ‘지방방송’을 실으며 시끄러운 소리를 얕잡는 낱말로 풀이합니다만, 이런 풀이만 실어도 알맞을까요? 아무래도 서울만 헤아리면서 쓰는 얄궂은 말씨라 여길 만한 ‘지방방송’이기에, 지역(지방)에 차린 방송국을 가리킬 적에만 ‘지역방송·지방방송’이라 하면서, 시끄러운 소리는 ‘잔소리·잔말·잔얘기’나 ‘자잘소리·자잘말·자잘하다’로 고쳐쓸 노릇입니다. ‘딴소리·딴말·딴얘기’나 ‘딴청·딴짓·딴전’이나 ‘시끄럽다·어수선하다·어지럽다·왁자하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지역방송이란 낱말을 손질하고 싶다면 ‘마을새뜸·마을소리·고을새뜸·고을소리’나 ‘작은새뜸·작은소리·작은목소리’처럼 새말을 여밀 수 있어요. ㅅㄴ



시끄러! 지방방송 끄지 못해!

→ 시끄러! 입다물지 못해!

→ 시끄러! 조용히 못해!

→ 시끄러! 딴청 그만해!

→ 시끄러! 딴소리 그쳐!

《밤토리야 장영실을 잡아라》(조항리, 파랑새어린이, 2001)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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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숨은책 / 숲노래 어제책 2022.12.26.

헌책읽기 2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은 뻔질나게 ‘나라사랑·겨레사랑(애국·애족)’을 해야 한다고 외쳤고, 아이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시켰어요. ‘반공 웅변·글짓기’를 시키고, 툭하면 길거리에 어깨띠나 머리띠를 한 채 한나절을 땡볕이나 눈바람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도록 시켰습니다. 제가 태어난 1975년에 ‘박정희 유신헌법 개헌 국민투표’가 불거졌고, ‘긴급조치 9호’로 온나라를 더 차갑게 짓밟았습니다. 1952년에 태어난 박근혜 씨로서는 1975년이면 스물네 살인데 ‘아버지가 하는 짓’을 막거나 말릴 만한 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이녁은 이런 사납짓을 막은 적이 없고 잘못이라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왔다고 느껴요.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은 박근혜 씨가 마흔두 살에 내놓은 책입니다. 책이름처럼 “수수한 집”에서 태어났기를 바란다고 내내 밝히지만, 정작 ‘보임틀(텔레비전) 구경’으로만 시골살이를 그릴 뿐, 막상 스스로 서울을 떠나 오두막이나 텃밭일로 삶을 지을 생각은 안 했습니다. 박근혜 씨는 내내 ‘아버지 박정희를 꼭두(영웅)로 세우기’를 했고 ‘아버지 박정희만큼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누가 했느냐’고 사람들한테 따지거나 가르치려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배부른 돼지”로 살면 즐겁거나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총칼에 주먹질로 윽박지르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땀흘려 얼마든지 넉넉히 나누고 어깨동무하는 ‘두레·품앗이·울력’으로 살아왔습니다. 꼭두에 서서 꼭두각시를 휘두르는 짓이 나라사랑일 수 없어요. 맨발로 논밭에 서고, 맨손으로 풀꽃을 쓰다듬고, 맨몸으로 나무를 품을 줄 아는, 그야말로 수수한 하루야말로 푸른별사랑이요 나라사랑이며 겨레사랑일 테지요. 아직 안 늦었습니다. 이제라도 임금집(궁궐)을 버리고서 ‘열댓 평 작은 시골집’으로 옮기시기를 바라요. 작은 시골집에서 나무를 심고 멧새랑 노래하는 ‘작은살림(평범한 가정)’을 살아내시면 조금이라도 허물씻이를 할 만합니다.


ㅅㄴㄹ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박근혜, 남송, 1993.10.30.첫/1994.8.6.7벌)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는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 도저히 능률을 내지 못해 다른 자리로 옮기라고 하니까 반발하고 속좁은 얘기들을 쏟아놓는다. (12쪽)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기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38쪽)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중상이 또 시작된 것을 보면 역시 기념 사업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실컷 왜곡을 애써 벗겨 놓으면 또다시 새로 만들어 왜곡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 품으셨던 그 원대한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피땀 흘리셨던 노고, 이 모든 것은 제대로 계승되지도 못하고 내팽개채져 있는 것이다. (53쪽)


어제 ‘세계의 어린이’ 프로에 등장한 터키 소녀 말이 인상에 남는다. 그곳은 여성들이 주로 밭일을 하며 목화도 따고 하는데,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하니까 17세에 결혼해서 평생 밭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같이 복잡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에겐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로 들리지만 그 소녀가 누리는 소박한 꿈과 행복이 부러웠다. (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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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 전4권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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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느낌글을 비로소 썼고

2022년에 느낌글을 손질해서

새로 걸쳐 놓습니다.

《하니》도 다시 나와서

오늘날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새롭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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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만화책

살아갈 힘을 북돋우는 한 가지



《달려라 하니 1》

이진주 글·그림

드림필드

1996.10.27.



  1985년에 〈보물섬〉에 실리고, 1989년에 만화영화로 나온 《달려라 하니》(드림필드, 1996) 첫자락을 새삼스레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느덧 스무 살도 먹고 서른 살도 먹는, 차츰 마흔 살까지 먹는 《달려라 하니》는 ‘오래된’ 이야기로구나 싶으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깃든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마음을 요즈음에는 둘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를 예쁘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하니나 하니를 둘러싼 사람들은 예쁜 모습이나 예쁜 얼굴이라기보다 따스한 모습이나 얼굴이라 할 만하고, 조금 더 찬찬히 보면, 하나같이 동글동글한 모습에 수수하거나 투박한 모습입니다. 하니하고 맞잡이로 서면서 불꽃이 튀는 몇몇 푸름이나 어른은 좀 뾰족하거나 모가 났다고 느끼지만, 이들도 나중에는 동글동글하면서 투박한 매무새로 거듭납니다. 도드라질 대목이 없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며, 남다른 빛깔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도드라질 대목이 없으면서 재미나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면서 아름다우며, 남다른 빛깔이 없이 착합니다.


  오늘날 숱한 그림꽃에서는 한결같이 ‘도드라져 보이려는 줄거리’에 ‘눈부시게 보이려는 모습’에 ‘남달리 보이려는 그림’이 가득합니다만, 썩 재미나거나 아름답거나 착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겉보기로는 대단할는지 모르나, 두고두고 되읽거나 다시 보면서 즐길 만한 맛과 멋을 헤아리지 못하는 오늘날이라고 느끼요.


  저는 어린배움터(국민학교) 4학년 무렵에 《달려라 하니》를 처음 읽으면서 하루에도 서너 벌씩 되읽었습니다. 이튿날에도 서너 벌을 또 되읽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새삼스레 서너 벌 되읽었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 이레마다 이틀씩 찾아오는 ‘책 빌려주는 짐차’가 있었는데, 〈보물섬〉을 빌리는 날이면 사흘에 걸쳐 아홉열 벌은 거뜬히 읽었어요. 온마음으로 그림꽃책을 통째로 빨아들였습니다.


  한 벌 보고 다시 안 볼 만한 그림꽃이라면 처음부터 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심부름이나 집안일, 또 온갖 짐(공부·숙제)을 안 해도 된다면, 아마 하루에 열 벌이나 스무 벌씩 되읽었겠다고 돌아봅니다.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는 푸른배움터(중학교) 1학년 나이에 홀로 하늘집(옥탑방)을 얻어 밥을 하고 김치를 담급니다. 그렇다고 살림을 잘 해내지는 못하지요. 하니를 맡은 길잡이(담임선생) 홍두깨 씨가 하나하나 도와줍니다만, 열네 살 나이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제 길을 걸으려는 하니예요.


  다만, 열네 살에 홀로서기를 하지만 ‘엄마 품’을 늘 그리워합니다. ‘잃어버린 엄마’가 아닌 ‘엄마를 빼앗겼다’고 여기면서 늘 불길처럼 마음을 불태우는데,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며 겨우 이 불길을 잠재우는 나날이지요.


  열네 살에도 ‘엄마 품’을 못 잊는다니 철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철이 덜 들면 철이 덜 든 대로 아름다이 살아가면 돼요. 철이 더 들었으면 철이 더 든 대로 참다이 살아가면 되지요.


  어떤 틀에 박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틀(규율·규칙)이 있다지만, 어떤 틀이든 사람들이 누구나 저마다 다르게 사람다이 살아가기 좋도록, 곧 사람이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빛내도록 이끌거나 돕는 틀일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짜맞추어야 할 틀이라면 사납거나 고약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른 사람입니다. 달리는 빠르기가 다르고, 밥 먹는 부피가 다르며, 몸으로 쓰는 힘이 달라요.


  어린 하니는 빛처럼 빨리 달린다지만, 하니랑 나란히 서는 짝꿍 창수는 어영부영 느립니다. 어린 하니는 응어리진 생채기로 괴롭지만, 창수는 포근한 집안에서 따스히 사랑을 받으면서 외로운 하니한테 이 따스한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홍두깨 씨는 어릴 적부터 가난과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시달렸지만, 이 모든 아픔이며 응어리를 품고 살지 않아요. 늘 누가 따돌리고 괴롭히며 고단한 가시밭길이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남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데에 마음을 쏟지 않아요. 이 모든 아픔을 이녁 이웃과 동무를 새록새록 따사로이 보듬는 착한 넋으로 북돋우고 가꿉니다.


  달리기 솜씨를 뽐내는 나애리는 ‘솜씨’ 하나를 타고났으나, 이 타고난 솜씨로 마음씨를 곱게 갈고닦는 데에 끌어올리지는 못 합니다. 타고난 솜씨를 끌어올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지요. 아니, 찾지 못 하며 찾을 뜻이 없습니다.


  《달려라 하니》는 이렇게 다 다른 사람들이 한 마을에서 얼크러지며 툭탁툭탁 쌓아올리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설퍼도 기쁘게 사랑을 쌓아올리고, 모자라도 너그러이 사랑을 쌓아올리며, 슬프기에 눈물로 어루만지는 사랑을 쌓아올립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내는 기운은 꿈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꿈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냅니다.


  돈이 있기에 살아가지 않습니다. 든든한 일자리가 있대서 살아내지 않습니다. 부릉이(자가용)가 없으면 걷거나 버스·택시를 타면 됩니다. 자전거룰 타도 즐겁습니다. 집이 없으니 다른 사람 집에서 얻어 지내거나 조그맣게 칸 하나 얻어 함께 살아갑니다. 돈이 없으면 돈이 있는 사람한테서 얻습니다. 땅이 없으면 땅이 있는 사람한테서 한 뙈기를 빌려 흙을 일굽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나눌 수 있습니다. 돈이나 땅이나 힘이 더 있으면 돈이나 땅이나 힘을 나눌 수 있고, 마음이며 생각이며 꿈이 있으면 이 마음이랑 생각이랑 꿈을 나눌 수 있어요. 글 한 줄을 써서 나눌 수 있어요. 이야기꽃을 펼 수 있어요. 바람처럼 흐르는 노랫가락을 들려줄 수 있어요. 신명나는 춤사위를 선보일 수 있어요.


  하루가 저물면 어느새 저녁이 찾아들고 별이 돋습니다. 밤이 흘러 어느덧 별은 흐릿하고 머잖아 새벽이 희뿌윰하게 밝겠지요. 온갖 풀벌레는 거침없이 웁니다. 풀벌레들은 저희 삶을 오롯이 누리면서 새벽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울음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저는 이 풀벌레 울음소리를 받아먹으면서 가을날을 실컷 누립니다. 결이 고운 노랫소리는 귀로도 살갗으로도 가슴으로도 스밉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한테도 스미고, 곁에서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는 짝꿍한테도 스밉니다. 작은 살림집에 건사하는 책한테도 스밀 풀벌레 노랫소리이고, 우리 보금자리를 둘러싼 풀꽃나무한테도 스밀 풀벌레 울음소리입니다.


  가을날 풀벌레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우면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가을날 자리맡에 《달려라 하니》를 얌전히 꽂아 놓고서 새삼스레 꺼내어 다시 들춥니다. 따사로이 품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언제가 가장 빛나는 살림살이요 노래입니다.


ㅅㄴㄹ


“이 악바리야! 졌지? 별거 아닌 것이 사나이 앞에서 까불고 있어! 앞으로는 내 앞에서 까불지 마! 알았지? 이 키 작은 못난이 계집애야!” (24쪽)


악바리라 불리워 버린 소녀. 부릅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 키 작은 몸으로 무서운 스피드를 내는 소녀. 그러나 그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 그 애 이름은 하니! (26∼27쪽)


아직은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 부릅뜬 두 눈이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펑펑 쏟아져내릴 것 같은 아이. 악바리라 불리는 아이, 하니! (33쪽)


“잔소리 말고 가서 두부나 두 모 사 와!” “칫! 매일 나만 시키고. 명화 누나는 왜 안 시켜요?” “누나는 대학생인데다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피아노 연습하지 않니?” “아빠는요?” “쿨! 드르렁!” (50쪽)


놀림을 받아도 또 한 번 쳐다보게 되는 아이. 그렇게 좋은 감정. 사춘기가 오는 소리. (61쪽)


“하니!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소꿉장난 하냐?” “김치요.” “에라! 이 녀석아! 이리 내놔! 김치란 이렇게 담근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 음식 맛이란 손끝에서 우러나는 정성과 양념 양에 따르는 거란 말야. 마늘과 파, 중요한 거야. 난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며 자취하기 때문에 죄다 알아. 그래서 나는 어려서 혼자도 살아 보고 고생하며 크는 걸 찬성하는 사람이란다. 물론 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안 되지. 그런 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하니! 너를 보고는 안심했다. 넌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지낼 놈이야. 자! 간이 어떤지 맛 좀 봐라!” (76∼78쪽)


“너 달리기 좋아하니? 그, 뭐냐, 육상이란 거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뛰는 거요? 저도 가끔 한 번씩 힘차게 달려 봤음 하고 생각해요. 숨이 차도록! 특히 엄마 생각이 날 때면 엄마 품까지 내처 달려 보고 싶어요. 하늘 끝까지라도.” (80쪽)


‘엄마는 그저 하니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돼! 난 엄마에게 아무것도 안 바랄 거야.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가슴의 기억만 있으면 돼.’ (130쪽)


‘그 집은 처음부터 내가 살던 집이야. 자기들 멋대로 팔아버렸지만 내 집이야. 그 집, 거기엔 엄마의 기억이, 그 집 거기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우리 엄마의 체취가 남아 있는 집을 빼앗은 계집애! 다음에도 까불면 가만 안 놔둘 거야. 조심해! 가만 안 놔둘 테니까!’ (15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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