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얼굴 없는 2023.1.8.해.



얼굴이 있으면 이름이 있어. 얼굴이 없으면 이름이 없어. 이름은 네 ‘얼빛’을 나타내. ‘네가 너로서 너답게(내가 나로서 나답게)’ 살아갈 적에 너(나)는 네(내) 이름이 있어. 네(내)가 너다움(나다움)을 잊다가 잃으면, 네 얼굴은 빛을 잃고, 네 몸짓은 너 스스로 피어나지 않아. 네가 네 이름으로 네 ‘얼빛’을 누리고 펴기에 네 숨결이 싱그러이 흘러서 삶(살림)이란다. 네가 네 이름을 잊은 채 네 빛을 잃으면, 너는 스스로 생각하는 길이 아닌, 남이 시키는 틀에 따라가면서 꼭두각시나 허수아비 노릇을 한단다. 눈을 봐. 반짝이는 눈망울이라면 얼빛이 살아숨쉬고 이름이 있으며 이름을 편다는 뜻이야. 흐리멍덩한 눈망울이라면 얼빛을 잃고 이름을 잊은 채 길을 헤매지. 길을 잊은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일삯을 받아서 먹고산단다. 길을 찾는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 그래서 일자리가 아닌 삶자리를 찾고 살림자리를 짓고 사랑자리를 가꾸고 숲자리를 품고 하늘자리로 나아가는 하루를 그리지. 네가 얼굴이 있다면, 얼굴에 아무것도 안 씌우고 안 덮고 안 바르고 안 붙여. ‘얼굴 없는 몸’이기에 얼굴을 꾸미려 든단다. ‘이름 없는 몸’이기에 이름을 꾸미려 들지. 글을 꾸미거나 집을 꾸미는 사람들은, 집이 없거나 글이 없어. 너한테는 무엇이 있니? 너는 얼빛이 있니? 너는 무슨 자리를 찾니? 이름자리·힘자리·돈자리를 찾는다면, 죽음자리로 간다는 뜻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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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굶다 2023.1.9.달.



굶는 사람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 있니? 푸른별에서 나는 먹을거리로는 모자라기에 굶을까? 먹을거리는 적은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굶을까? 이 푸른별에서 굶는 사람이 나올 까닭이란 없어. 보렴. 굶는 사람 둘레에 헤픈 사람이 잔뜩 있어. 넘치는 먹을거리를 버리는 사람이 엄청나단다. 얄궂지 않나? 이쪽에서는 없어서 굶고, 저쪽에서는 넘쳐서 버리는구나. 곰곰이 보기를 바라. 넘쳐서 버리는 이는, 힘·이름·돈을 쥐었고, 없어서 굶는 이는 힘·이름·돈이 없구나. 그렇다면 누구나 힘·이름·돈을 누리는 터전이라면, 따로 힘·이름·돈을 부려야 할 까닭이 없는 터전이라면, 굶거나 헤픈 사람이 없을 테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누리는 사람이라면, ‘넘쳐서 버릴’ 만큼 마구 거두지 않아. 스스로 안 짓는 사람이기에 ‘넘쳐서 버릴’ 만큼 ‘빼앗’는단다. 임금·벼슬아치·글바치는 ‘빼앗는’ 자리야. 잘 봐. 힘·이름·돈을 틀어쥔 이들은 임금·벼슬아치·글바치란다. 요새는 여기에 장사꾼이 붙었지. 그리고 ‘임금·벼슬아치·글바치·장사꾼’한테 붙어서 부스러기나 콩고물을 얻는 꼭두각시·허수아비도 ‘비슷하게 헤프게 써서 버리는’ 나날을 보내는 장난을 하더구나. 숲이나 시골이나 들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숨결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고 어우러진단다. 서울(도시)에서는 스스로 지을 틈이 없어.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판이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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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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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숲노래 만화책 2023.1.14.

만화책시렁 498


《페르세폴리스 2》

 마르잔 사트라피

 최주현 옮김

 새만화책

 2008.4.15.



  누구나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고, 다르게 마주합니다. 이 다른 발걸음을 헤아리기에 어우러지면서 하루를 노래합니다. 이 다른 오늘을 헤아리지 않기에 으레 툭탁거리거나 치고받거나 다툽니다. 《페르세폴리스 2》를 읽던 2008년에 푹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림꽃님은 왜 이렇게 뒷걸음질을 하며 달아나려 애썼을까요? 그림꽃님 곁에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림꽃님은 ‘굴레(히잡)를 씌우는 이란’만 아니면 된다고 여기면서 귀를 닫았습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또 마을 이웃이며 동무도 여러모로 삶을 들려줄 수 있고, 이 삶말에서 새길을 찾을 수 있는데, 이 모두한테서 등을 돌리고서 프랑스로 떠났어요. 오늘날 우리나라를 보면 ‘시골·작은고장’에서는 뜻을 못 펴리라 여겨 서울(대도시)로 떠나는 젊은이가 수두룩합니다. 시골하고 작은고장에서 천천히 스스로 꽃으로 피어나는 길을 등돌리는 마음이라면, 서울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숱한 순이도 이란에서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못 가지만, 숱한 돌이도 매한가지입니다. ‘나만 아프고 힘들다’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못 느끼고 못 보면서 서울굴레에 새롭게 갇힙니다.


ㅅㄴㄹ


그리고 파티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란에서 파티할 때는 모두 춤추며 음식을 즐겼다. 빈에서는 누워서 마리화나 피우는 것을 더 좋아했다. 게다가 공공장소에서 하는 그들의 성적인 행위는 나를 난처하게 했다. 전통주의 국가에서 온 내게 대체 뭘 기대한단 말인가. (35쪽)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고, 나의 과거를 없애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의식이 그걸 다시 불러왔다. 급기야 국적을 속이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어느 파티에서, “넌 어디서 왔어, 마리-잔느?” “난 프랑스인이야.” “아, 그래? 프랑스인치곤 재미있는 억양이구나.” 당시엔 이란은 ‘악의 전형’이었고, 이란인이라는 것은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이었다. 거짓말하는 게 그 짐을 지는 것보다 더 쉬웠다 … 그리고 저녁에 집에 와서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언제나 네 존엄성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 (45쪽)


#Persepolis #MarjaneSatrapi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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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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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1.14.

날개는 늘 네 마음에 있어



《페르세폴리스 1》

 마르잔 사트라피

 김대중 옮김

 새만화책

 2005.10.5.



  《페르세폴리스 1》(마르잔 사트라피/최주현 옮김, 새만화책, 2005)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한글판이 처음 나온 2005년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바야흐로 낡은 굴레가 하나둘 걷히면서 뭇목소리가 조물조물 터져나올 즈음이라 여길 만합니다. 들불(민주화운동)은 1980∼1990년에 그야말로 온나라를 덮었습니다만, 들불은 일어나더라도 다 다른 목소리를 다 다르게 받아들일 만한 터전은 아니었어요. 들불이 번지고서 열 몇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온갖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은 마당이 깨어났습니다.


  이란에서 순이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길이 얼마나 갑갑한가를 드러내는 《페르세폴리스 1》입니다. 그린이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낡고 고약하고 케케묵은 이란을 새롭게 바꾸어 내려고 온힘을 쏟았지 싶습니다. 두 어버이는 이란을 떠나지 않습니다. 두 어버이는 이란을 사랑하기에, 갖은 굴레하고 몽둥이에도 굽히지 않으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그립니다.


  그린이는 어버이 품에서 걱정없이 자라다가 이웃나라로 떠납니다. 굴레(히잡)를 씌우는 곳에서는 배움길이 없이 그저 굴레만 판치는 터라, 목소리뿐 아니라 생각도 마음도 살림도 없다고 여길 만했어요. 그런데 날갯짓(자유)을 그리며 이웃나라로 떠난 아이는 이웃나라에서 날갯짓이 아닌 엉뚱짓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요. 곰곰이 보면 ‘혼자 빠져나왔다’는 마음에 스스로 멍울을 새긴 셈입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한 이란사람’이 떠올라 날갯짓이 아닌 엉뚱짓으로 ‘늙어가는’ 하루였다고 할 만합니다.


  새롭게 살아가고픈 마음이었으나, 몽둥이 굴레에서 벗어나자 외려 고리타분하게 늙어가고 만 셈이랄까요. 2005년에 처음 읽을 무렵에도 2023년에 되읽는 오늘에도,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작은이웃’을 그닥 안 만나거나 안 눈여겨보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참나(참다운 나)’를 바라보면서 눈을 뜰 노릇인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겉나(겉몸을 입은 나)’만 쳐다보느라 참나도 이웃도 아닌 수렁길을 헤맨 나날이었네 싶어요.


  이런 대목은 그린이가 뒤이어 내놓은 《자두 치킨》이나 《바느질 수다》에서 또렷이 느낄 만합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날갯길을 찾아나서고 새롭게 짓는 하루가 아닌, 스스로 굴레에 사로잡혀서 눈도 마음도 닫는 노닥질에 빠져요. 이란이라는 나라를 고리타분한 바보짓으로 억누르는 고약한 웃사내하고 비슷한 매무새라고 여길 만합니다.


  날개는 늘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날개가 있는 줄 스스로 안 쳐다보기에 날개가 없다고 여기고 맙니다. 그린이 할머니가 얼마나 어질고 슬기로웠는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꽁무니를 빼야 할 적에는 뺄 만하되, 옆에 있는 이웃하고 동무를 바라보지 않고서 자꾸 달아나기만 한다면, 함께 태어나고 자라나던 마을 이웃하고 동무를 돌아보지 않고서 ‘프랑스사람처럼’ 살아간다면, 그 길이 나쁠 까닭은 없되, 늘 그린이 스스로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채 헤매는 모습일밖에 없습니다.


  13살이면 달아날 수조차 없는 어린 돌이는 나라(이란 정부)가 시키는 대로 쳇바퀴에 갇혀 싸울아비(군인)가 되어야 하는데, 이 가녀린 돌이한테 날갯길하고 참길을 들려주거나 보여줄 이웃이나 동무가 모두 달아나고 없다면, 이란은 앞으로도 바보스런 굴레에 그저 허덕이리라 봅니다.


ㅅㄴㄹ


부모님은 날마다 데모에 나갔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진다. 군인들은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들은 군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하루 종일 행진과 돌 던지기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면, 부모님은 온몸이 쑤신다고 했고, 머리까지 아파했다. (24쪽)


“너네 아빠는 살인자지만, 그게 네 잘못은 아니지. 그래서 널 용서하기로 했어.” “아빠는 살인자가 아니야! 아빤 공산주의자를 죽인 거야. 공산주의자들은 악마라구.” (52쪽)


대학은 사라졌다. 난 화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마리 퀴리처럼 되고 싶었다. 난 교육받은 자유로운 여성이 되고 싶었다. 만약 지식을 추구하는 게 암을 유발한대도, 차라리 그게 나아 보였다. (79쪽)


“두 놈이, 그 수염 난 두 놈이! 그 근본주의자 개자식들이, 개자식들, 개자식들, 놈들이.” “진정해, 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놈들이 날 욕했어. 나 같은 여자는 벽에 대 놓고 강간하고 쓰레기장에 던져 버려야 한다고. 그리고 싶지 않으면, 베일을 써야 한다고.” (80쪽)


엄청나게 긴 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있었다. 특히 어린 남자애들이. 미래의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자는 13살 이후엔 외국에 나갈 수 없었다. (157쪽)


#Persepolis #MarjaneSatrapi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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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애장판 6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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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숲노래 푸른책 2023.1.14.

덧살이와 함께살기 사이



《기생수 6》

 이와아키 히토시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10.25.



  《기생수 6》(이와아키 히토시/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3)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누구나 매한가지인데, 잘 하는 일이나 못 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어요. ‘하는’ 일만 있습니다.


  우리말 ‘하다’를 알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이 삶을 모르는 굴레에 갇혀서 헤맬 뿐입니다. 밥을 하고 말을 합니다.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노래를 하고 살림을 합니다. 사랑을 하고 절을 합니다. 같이 하거나 혼자 해요.


  하기에 살아요. 무엇이든 하기에 삶이 있어요. 무엇이든 안 하면 삶이 없습니다. 잘 했구나 싶어도 못 했구나 싶어도 고스란히 배우는 자취입니다. 좋아할 까닭도 싫어할 까닭도 없습니다. 반길 까닭이나 꺼릴 까닭이 없어요. 그저 하면서 보면 되고, 오롯이 하면서 언제나 하나로 다스리면 넉넉합니다.


  한자말 ‘기생’은 흔히 ‘기생충’처럼 쓰곤 하는데, ‘거머리’나 ‘붙어먹다’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덧살이·더부살이’나 ‘묻어살다·들러붙다’이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스며들어 더부살이를 하는 작은 짐승이니 ‘덧짐승(기생수)’일 텐데, 사람하고 별(지구)을 나란히 놓고서 헤아려 봐요. 별이 없이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사람이 있기에 별이 별다울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참말로 사람빛이나 사람됨이 있는가요? 서로 치고박거나 죽이거나 괴롭히는 끔찍한 총칼질(전쟁)이 참말로 푸른별에 이바지하거나 사람다운 길일까요?


  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바보짓인 총칼(전쟁무기)을 목돈을 들여 만든 다음에, 목돈을 받고서 팔아치울 수 있으면 나라살림에 이바지하는 셈인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더 세고 더 놀라온 총칼을 만드는 데에 언제까지 목돈을 들여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이 나라에도 ‘국방과학연구소’란 데가 있어 돈을 펑펑 써대는데, 참말로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짓’에 ‘과학’이란 이름을 붙여도 어울릴까요?


  이제는 저마다 마음을 열고서 스스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나라에서 뒷배를 하는 곳에서 목돈을 받고서 일하는 숱한 사람들은 살림길이 아닌 죽음길에 온힘을 쏟는 판입니다. 나라일(정치)을 한다는 숱한 벼슬아치는 참말로 나라일을 하는 듯싶지 않지만, 우리는 때가 되면 뽑기(선거)를 자꾸 하며, 이런 뽑기에 허벌난 돈을 펑펑 써댑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라면, ‘돈벌이’가 아닌 ‘살림’을 배우고 나누며 어깨동무할 노릇입니다. 바느질을 배우고, 길쌈을 배우고, 아기돌봄을 배우고, 손빨래를 배우고, 밥짓기를 배우고, 풀꽃나무랑 마음으로 속삭이는 눈빛을 배우고, 해바람비를 읽는 눈썰미를 배우고, 별빛을 품고 이슬처럼 맑은 숨결로 살아가는 하루를 배울 노릇입니다.


  그림꽃 《기생수》에 나오는 덧짐승(기생수)은 사람한테 깃들며 두 갈래 길을 갑니다. 첫째는 스스로 생각하며 함께살기를 배우려 합니다. 둘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몸에 끄달려’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길을 갑니다. 우리는 첫째처럼 함께살기라는 길을 가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둘째처럼 사람끼리 물어뜯고 잡아먹는 굴레에 갇힌 살덩이인가요?


ㅅㄴㄹ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한 짓이야. 알겠어? 너와 나는 협력관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 다른 생명체다. 각각의 종이 갖는 성질을 되도록 존경하고, 자기 측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후, 우리의 공동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 그건 우선 ‘살아남는’ 거야, 안 그래?” “그래.” (13쪽)


‘타무라 레이코. 어찌됐건 순간적으로 느꼈다. 달라. 다른 ‘동족’들과 다르다! 위험해. 위험하다! 우리 ‘동족’들에게!’ (56쪽)


‘신비해. 이 아이는 너무 신비스럽다. 이 세계는 불가사의한 것이 너무 많아. 어째서 우리는, 기생생물은 왜 태어났을까?’ (57∼58쪽)


“설마, 거기까지 계산하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인간답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124쪽)


“인간의 감정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지. 하지만 우리는 극히 약한 존재.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포체일 뿐이야. 그러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 (183쪽)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나는 뭣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한 가지 의문이 풀리면 또 다음 의문이 솟아올랐지. 기원을 찾아, 꿈을 찾아, 생각하면서 그저, 계속 걸어왔어.” (219쪽)


“지난번에 인간의 흉내를 내며, 거울 앞에서 큰소리로 웃어 봤어. 기분이 무척이나 좋더군.” (2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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