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와 독일 1
나가라 료코 지음, 박연지 옮김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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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2023.1.21.

만화책시렁 499


《고양이와 나와 독일 1》

 나가라 료코

 박연지 옮김

 시리얼

 2020.10.25.



  우리 하루는 무언가 대단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흘러야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흐르면 넉넉합니다. 땅밑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스스로 서거나 있거나 사는 자리에서 스스로 일구면서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둘레를 봐요. 어버이를 알아보는 아기가 방긋 웃습니다. 대단한 어버이라서 웃지 않아요. 어버이라서 웃습니다. 아기를 안은 어버이가 빙그레 웃습니다. 대단한 아기라서 웃지 않아요. 아기라서 웃습니다. 《고양이와 나와 독일 1》를 읽었습니다. 그림꽃 이름처럼 ‘고양이 + 나 + 독일’을 엮는 수수한 하루를 담으려나 여겼는데, ‘독일 밥살림이 일본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다루되 어쩐지 따분합니다. ‘고양이랑 노는 하루’를 ‘독일이란 이웃나라’에서 여미면 ‘뭔가 다르리라’ 여기면서 그렸구나 싶으나, 가게에서 사다 먹는 밥하고 나들이를 한다며 서울(도시) 한켠을 거니는 얼거리를 못 벗어납니다. 힘을 빼야 글이나 그림이 살아난다고 합니다만, ‘힘빼기’란 ‘겉치레 하지 않기’요, ‘부스러기(지식·정보)를 다루지 않기’이며, ‘내 마음을 고스란히 노래하기’입니다. “아, 좋다!” 하고 말하기보다는 ‘말없이 이 하루를 적으면 될’ 텐데 싶어 아쉽습니다.


ㅅㄴㄹ


“음∼ 어서 와∼! 배불러서 잤어!” “무기가 어쩐지 무거워졌네?” “겨, 겨울이라서 털이 쪄서 그래!” (76쪽)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팁 문화. 그러나 독일에서는 친절하거나 마음에 드는 가게에 돈을 더 내는(팁을 주는) 행동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1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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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김성호 지음 / 포르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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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21.

인문책시렁 273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김성호

 포르체

 2023.1.11.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김성호, 포르체, 2023)를 읽으며 ‘글바치’라는 길을 돌아봅니다. 둘레에 흐르는 모습을 보고서 그대로 적는 사람은 ‘기자(記者) = 적는 + 이’입니다. 이야기를 스스로 짓거나 엮는 사람이라면 ‘짓는이(작자·作者)’요, 삶자리에서 보고 느끼고 받아들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쓰는이(필자·筆者)’입니다. ‘적는이·짓는이·쓰는이’를 가른다면, ‘적는이’는 구경하는 둘레 모습을 담고, ‘짓는이’는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지어서 담고, ‘쓰는이’는 스스로 살아내면서 마주하는 하루를 담습니다.


  적거나 짓거나 쓰는 사람에다가, 이웃말(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사람을 아울러 ‘글바치’라 합니다. 얼핏 보면 그저 글이지만, 글을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다루는 매무새는 저마다 다릅니다.


  새뜸(신문)에 글을 싣는 ‘적는이(기자)’는 되도록 이녁 마음이나 뜻이나 생각을 안 밝힙니다. 보고 들은 대로, 또는 구경한 대로, 또는 둘러본 대로 담는 길입니다. ‘짓는이(작자)’는 언제나 이녁 마음이며 뜻이며 생각을 밝힙니다. 보고 듣거나 구경한 모습이 아닌, 스스로 짓는 삶을 담으니 언제나 제 마음하고 뜻이며 생각을 담는 글입니다. ‘쓰는이(필자)’는 스스로 배우거나 갈고닦은 대로(만큼) 글에 삶을 담습니다. 그때그때 그날그날 새삼스레 보고 느껴서 받아들인 하루를 가만히 되새기거나 짚으면서 글을 씁니다. ‘옮긴이(번역자)’는 이웃말을 읽으려면 이웃살림(외국문화)을 널리 헤아릴 노릇이면서, 우리말로 옮기려면 우리말하고 우리살림을 깊이 새길 노릇입니다. 두 말이며 살림을 고르게 추스르는 매무새에 몸짓일 적에 비로소 이웃말을 우리말로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글바치는 얼마나 제몫을 할까요? 제대로 적는 일꾼인 적는이일까요? 사랑으로 짓는 일꾼인 짓는이일까요? 슬기롭게 쓰는 일꾼인 쓰는이일까요? 고르게 옮기는 일꾼인 옮긴이일까요?


  네 갈래 글바치 가운데 시골에서 사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작은고장에서 사는 글바치는 조금 있습니다. 큰고장(대도시)하고 서울에서 사는 글바치가 아주 많습니다. 거의 모두 큰고장하고 서울에 깃드는 글바치입니다.


  새뜸에 흐르는 이야기는 거의 큰고장이나 서울 모습입니다. 시골이나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하늘이나 별 이야기를 새뜸에서 거의 못 보고 못 찾습니다. 흔히 ‘정치·사회·경제·문화·세계’에 ‘스포츠·연예·교육·부동산’에 ‘자동차·종교·주식·영화’를 가르곤 하지만, 하나같이 서울살이에 얽매여요. 사람이 살아가며 이루는 살림을 두루 짚는 길이 아닌, 서울·큰고장에 얽매인 적는이(기자)라면, 이들 적는이가 보거나 듣는 이야기는 한 줌밖에 안 되게 마련입니다. 또한 마을사람하고 나란히 살면서 보거나 듣지 않는 적는이인 터라, ‘출입기자’라는 틀에 매여 스스로 ‘장삿글(광고기사·애드버토리얼)’에 머무릅니다.


  스스로 돈을 들여 사들인 책을 천천히 읽고서 느낌글(서평)을 쓰는 적는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보도자료를 안 넣는 펴냄터가 제법 있습니다. 적는이가 미덥지 않을 뿐더러, 몇몇 펴냄터 책만 다루거든요.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를 쓴 김성호 님은 어느 곳에서 적는이로 일하다가 그만두었고, 어느 누리새뜸에 글을 쓴다고 합니다. 책이름처럼 오늘날 적는이는 하나같이 부끄러워할 노릇입니다. 서울을 안 벗어나고, 이웃을 안 만나고, 구경한 모습을 찔끔 담을 뿐이니, 부끄럼을 넘어 창피한 꼴입니다.


  퍽 오래도록 우리나라 새뜸은 사람들 ‘눈귀입’ 구실을 안 하거나 못 했습니다. 새뜸이 ‘새롭게 눈을 뜨는 길을 틔우는 글을 담아서 나누는 길’이라는 구실을 하자면, 적는이부터 서울을 떠나 작은고장하고 시골에서 살아야겠지요. ‘정치’가 아닌 ‘들숲바다’를 다루고, ‘사회’가 아닌 ‘풀꽃나무’를 다루고, ‘경제’가 아닌 ‘살림살이’를 다루고, ‘문화’가 아닌 ‘아이 곁’을 다루고, ‘세계’가 아닌 ‘별과 이웃’을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장삿길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동차’ 아닌 ‘자전거’를 다루고, ‘부동산’ 아닌 ‘풀벌레’를 다루고, ‘스포츠’ 아닌 ‘놀이’를 다루고, ‘연예’ 아닌 ‘삶이야기’를 다루고, ‘교육’ 아닌 ‘마음읽기’를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글바치가 글바치다우려면, 손수 밥옷집 살림을 짓는 즐거운 일꾼으로서 보금자리부터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이 곁에서 배우고, 풀꽃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별빛이 흐르는 밤하늘을 헤아리는 눈빛이라면, 적는이·짓는이·쓰는이·옮긴이 어느 자리에 서더라도 어진 글빛을 담으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우리는 너무나 자주 비싼 밥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때로는 선물과 상품권도 받았습니다. 보도 가치도 없는 행사는 어찌나 잦았는지, 그런 행사가 끝난 뒤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9쪽)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리로 나서지 않았고, 나가서도 그런 사람들과는 얘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불편하고 지저분하며 시끄럽고 정돈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90쪽)


기자로 일하며 만난 기자 열 중 아홉은 듣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105쪽)


기사가 나간 뒤 다시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저를 막아선 그를 찾아 면담을 신청했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시종일관 저자세로 나오며 다시는 기사를 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종일 참회 기도를 했다고 말합니다. (191쪽)


사건을 다루며 답답했던 건 제가 진실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겁니다. (24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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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59 불빛



  옛사람이 집을 지을 적에는 먼저 스무 해 남짓 터를 살폈습니다. 스무 해 남짓 터를 살피면서 스무 해 남짓 나무(베어서 쓸 나무)를 살펴요. 그리고 나무를 심어요. 스무 해 남짓 뒤에 나무를 베어서 쓰면 그만큼 숲이 비는 터라, 나무를 베어난 자리에 새롭게 나무가 자라게끔 스무 해쯤 앞서부터 나무를 심어 놓습니다. 오늘날은 나무로 집을 안 짓고 잿더미(시멘트)로 뚝딱 올려세웁니다. 이 잿집은 기껏 쉰 해를 버티지도 않기에, 쉰 해쯤 뒤에는 그냥 잿쓰레기예요. 오늘날은 터도 숲도 땅도 안 살필 뿐 아니라, 쓰레기를 얼마나 내놓는지조차 헤아리지 않아요. 나라 곳곳에서 새로짓기(재개발)를 한다면서 마을을 통째로 밀어내기 일쑤입니다. 나라가 어리석으니 마을불빛을 잠재우는 꼴인데, 나라지기·벼슬꾼에 앞서 우리 스스로 어리석기에 나라지기·벼슬꾼이 바보짓을 하도록 풀어놓았습니다. 옛사람은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면서 집·밥·옷 살림을 일구었는데, 오늘 우리는 쓰레기만 잔뜩 물려주면서 돈을 벌기만 합니다. 별빛을 잃은 불빛으로 흐르는 서울살림을 붙잡으면서 책만 읽는다고 안 바뀔 나라요, 책조차 안 읽으면 더 망가질 나라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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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58 벼락비



  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시원하고 맑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몇 달씩 가뭄이 들 적에는 바람이 슥 지나가기만 해도 얼마나 하늘이며 들을 정갈하게 털어내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고요히 숲에 깃들며 아이들하고 살림을 지을 적에는 빗날은 빗방울로 살고, 해날(쨍쨍 볕이 내리쬘 적)에는 햇살로 살아갑니다. 문득 귀를 열어 둘레 목소리를 듣노라면, 갈수록 숱한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은 밀려서 길이 막히잖아!” 하고 투덜댑니다. 이러다 비가 오래도록 안 오면 “가물어 타들어 가잖아!” 하고 투덜거려요. 비는 비대로, 볕은 볕대로, 모두 사랑스러우면서 고마이 맞아들이려는 목소리는 가뭇없이 사라졌을까요? 날씨새뜸(일기예보)에 길들면서 하늘읽기하고 바람읽기를 잊고, 흙읽기하고 풀꽃읽기하고 등져요. 글읽기나 책읽기를 하더라도 정작 숲읽기를 놓치면서, ‘눈앞에 펼친 숲을 보며 스스로 숲을 읽기’보다는 ‘눈앞에 펼친 숲을 책에는 어떻게 담았는가’를 따지느라 바쁩니다. 책숲·책집(도서관·서점)이 커야 나라가 아름답지 않고, 책을 많이 읽어야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글줄에 깃든 속내를 읽는 눈빛으로 우리 터전을 스스로 슬기로이 읽고 맞아들이며 나누기에 사람·마을·숲을 고이 품는 하루를 짓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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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123 서울말



  서울에서 살면 서울말을 씁니다. 서울말을 쓸 적에는 서울이란 고장에 따라서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나눠요. 시골에서 살아 시골말을 씁니다. 시골말을 쓸 적에는 시골이란 터전을 살펴서 헤아리고 맞이하고 지으면서 나눠요. 서울은 높지도 낮지도 않습니다. 시골은 낮지도 높지도 않습니다. 삶빛이 달라 말빛이 다르고, 숨빛이 새로워 글빛이 새삼스러울 뿐입니다. 서울사람은 서울이란 고장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아끼면서 돌보아야 서울말과 서울글과 서울책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은 ‘높이기·낮추기’가 모두 아닌, 오롯이 ‘사랑’입니다. 나라말(국가표준어)이 아닌 마을말을 바라보기로 해요. 틀말(계급언어)이 아닌 살림말을 가꾸기로 해요. 오늘날은 서울이 잿빛집으로 가득하지만, 워낙 서울도 푸른숲으로 아름다우면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어우러진 고장이었습니다. 집이 가득하고 부릉부릉 찻길이 넘치는 오늘날 모습이 아닌, 풀꽃나무가 그윽하면서 생각도 이야기도 살림살이도 넉넉히 나누던 사랑어린 서울빛을 그려서 서울말로 담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비닐하고 풀죽임물(농약)하고 틀(기계)이 아닌, 아이들이 신나게 맨발로 뛰놀고 나무를 타는 싱그러운 놀이빛을 그려서 시골말로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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