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왕자 - 오스카 와일드 동화집 재미있다! 세계명작 9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지민 옮김, 홍선주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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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동화책 / 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82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12.25.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이지민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3)를 아이들하고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만한 책은 뜻밖에 매우 적으나, 아예 없지는 않고, 또 이래저래 찾아보면 제법 있습니다.


  왜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지필 책이 적을까 하고 돌아보면, 아이들은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어른들도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몸으로 뛰놀고, 마음으로 이야기하면 넉넉해요. 몸으로 함께 살림을 짓고, 마음으로 같이 사랑을 그리면 즐겁습니다.


  굳이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까닭은 있어요. 이 아름다운 삶빛을 씨앗으로 남겨서 언제 어디에서나 되돌아보고 아로새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애써 글을 쓰거나 책으로 엮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이 남긴 씨앗 가운데 돋보이는 ‘제비’하고 ‘큰사람(거인)’ 이야기가 있어요. 이녁은 ‘임금’이라는 자리가 ‘자리·이름·허울·힘’을 쳐다보려 할 적에는 고약할 뿐 아니라 스스로 좀먹어 죽음길로 가는 줄 꿰뚫어보고서 글로 남겼습니다. 이녁은 ‘아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빛나면서 상냥하고 즐겁게 뛰놀면서 꿈꾸는 이야기로 잇는 길인 줄 알아차리고서 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분들은 “행복한 왕자”로 이름을 붙였으나,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즐거운 아이”나 “기쁜 아이”쯤이면 돼요. 우리는 ‘왕·왕비·왕자·왕녀’ 같은 허울을 이제 버릴 때입니다. ‘아이’라는 숨빛을 바라볼 때입니다. 겉멋을 부리는 말씨인 ‘행복’이 아니라 ‘기쁨·즐거움’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고서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노릇이에요.


  글을 읽고 싶다는 아이가 있다면, 저마다 어른스레 어진 눈빛을 밝혀 먼저 열 해쯤 날마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면 됩니다. 열 해쯤 신바람으로 집살림을 가꾸고 나면 저절로 글길을 열 수 있어요.


  글을 쓰고 싶은 이웃님이라면, 오늘부터 열 해 동안 붓종이를 치워버리고서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됩니다. 열 해쯤 기쁘게 집안일을 도맡으면 바야흐로 스스로 샘솟는 사랑으로 글자락을 여밀 수 있어요.


  글쓰기란 쉽습니다. 그저 삶을 쓰면 되는데, ‘그냥 삶’이 아닌 ‘스스로 사랑으로 짓는 살림을 푸르게 품은 삶’을 쓰면 돼요. 다들 ‘그냥그냥 쳇바퀴로 맴도는 삶’만 너무 서둘러 조바심으로 얼른 써내고서 ‘작가·예술가’란 이름으로 겉멋을 부리려 하니 망가질 뿐입니다.


  제발 “행복한 왕자”가 되지 맙시다. “기쁜 아이”로 살고 “즐거운 아이”로 오늘을 노래해 봐요. 이렇게 하면 누구나 글님이요 그림님이자 삶님이고 살림님으로 빛나다가 문득 사랑님으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직조공은 날카롭게 소리질렀습니다. “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지요. 다만 내가 누더기를 입고 다닐 때 주인은 좋은 옷을 입고 있고, 내가 배가 고파 기운이 없을 때 그는 좀 너무 먹어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 말고는 그와 나 사이에는 차이가 없지요.” “이 나라는 자유로운 땅이고 너는 노예가 아니잖아?” 하고 왕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조공은 대답했습니다. “전쟁 때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만들지만, 평화시에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종으로 만들지요.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살아갈 수도 없을 만큼 아주 적은 임금밖에 주지 않아요.” (43쪽)


“너는 높은 나무 꼭대기를 날 수 있으니 온 세상을 볼 수 있지? 말 좀 해줘. 우리 어머니가 보이니?” 그러자 방울새는 “네가 장난삼아 내 날개를 부러뜨렸는데 내가 어떻게 날 수 있겠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아이는 전나무 속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다람쥐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시니?” 그러자 다람쥐는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제 네 어머니도 죽이려고 찾는 거니?” (127쪽)


“사랑은 지혜보다 낫고 보물보다 귀중하고, 인간의 딸들의 발보다 좋은 것이라오. 불은 사랑을 파괴하지 못하고 물도 사랑을 식히지 못하도다.” (201쪽)


#OscarWilde #TheHappyPrinc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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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 - 변화의 시대 조선 후기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이광희 지음, 장선환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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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3.1.30.

맑은책시렁 277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

 손주현·이광희 글

 장선환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17.12.13.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손주현·이광희, 책과함께어린이, 2017)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던 무렵 저잣거리하고 나라살림을 엮어서 들려주려는 얼거리입니다. 고려가 어떤 나라였는지 얼핏 엿보려 하지만, 내내 조선이 새롭고 더 살기 좋다는 줄거리가 흐릅니다. 그러나 고려나 조선이나 오늘날 우리나라 어느 쪽이 더 살기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라이름이 바뀌고, 나라지기가 바뀌고, 벼슬꾼이 바뀔 뿐입니다. 나라지기는 으레 그들 스스로 가장 낫거나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나라지기나 벼슬꾼이라는 자리에 서면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안 섞입니다. 아니, 나라지기나 벼슬꾼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에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바쁘다든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서 성가시다든지 이러저러해서 ‘사람들 사이’에 아예 없는 나라지기나 벼슬꾼이 많아요. 붓바치(작가·예술가)도 매한가지요, 이름꾼(연예인·유명인·스포츠 스타)도 ‘사람들 사이’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없는 나라지기·벼슬꾼’이 나라틀을 짜고, ‘사람들이 맡을 몫이나 낼 낛(세금)’을 따지고 갈무리하고 거두어서 씁니다. 나라지기·벼슬꾼은 나라돈(예산)을 써서 나라일(행정)을 한다고들 하는데, 정작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않는 그들은 ‘사람들 살림새’를 모르는 터라, 나라돈을 함부로 쓰거나 빼돌려요. 고려이든 조선이든 오늘날이든 똑같습니다. 남녘·북녘도 똑같아요. 우두머리 자리에 있건 벼슬을 거머쥐었든 그들은 똑같이 ‘사람들 사이’가 아닌 ‘끼리끼리 담벼락을 쌓아서 못 넘보’도록 틀어막고 채찍을 휘두르지요.


  어린이한테 우리 옛자취를 들려주는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인데, 조선 무렵에 나리(양반)가 흙지기(농민)를 어떻게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업신여기거나 짓밟거나 가로채거나 우려먹거나 죽이거나 놀렸는지를 조금 더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 대목을 풀어내려고 했다면, 고려뿐 아니라 조선도 허울스러운 나라틀이라는 대목을 밝혔으리라 봅니다. 고려는 신라보다 낫지 않았고, 조선은 고려보다 낫지 않았으며, 오늘날 남북녘은 조선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매한가지인 사슬이자 굴레입니다.


  우리가 돌아볼 옛자취하고 오늘자취는 ‘우두머리가 세운 나라틀’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저마다 손수 짓는 보금자리 살림새’여야 슬기롭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조선왕조실록은 이제 걷어치우고, ‘글로 안 남았으나 몸마음에 남은 수수한 사람들 살림빛’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하고 어른책이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요즘 청의 간섭이 덜해져싸고 해도 도망친 포로 문제만은 길길이 뛰며 돌려보내라고 하니 조정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오. 작년에 단체로 도망친 포로들을 모두 붙잡아 돌려보내지 않으면 또 쳐들어오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우린들 어쩌겠소.” (35쪽)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부자가 된 농민은 땅을 사들이며 떵떵거리며 산다. 반면 고향을 떠나야 하는 농민도 생겼다. 예전에는 죽으나 사나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데 말이다. 이들은 농사일을 그만두고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품을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가 되었다. (77쪽)


이처럼 돈 주고 양반이 된 상민과 노비들이 많아지며 한때 조선 인구 절반을 차지하던 노비 수는 확 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반의 권위는 툭 떨어졌다. 양반이라도 돈 없고 벼슬 얻지 못하면 양반 대우 못 받는다. (143쪽)



* 아쉬운 말씨 하나 (아쉬운 말씨는 많으나 하나만 골라서 손질해 놓는다)

그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장 중앙통을 능숙하게 걸어가는 한 조선 소년이 있다

→ 그 고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저잣길을 슬슬 걸어가는 조선 아이가 있다

→ 그 고을 저잣길 한가운데를 요리조리 걸어가는 조선 아이가 있다

《이제부터 세금은 쌀로 내도록 하라》(손주현·이광희, 책과함께어린이, 2017) 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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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이 힘찬문고 10
임길택 글, 유진희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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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숲노래 동화책 2023.1.30.

맑은책시렁 278


《수경이》

 임길택

 우리교육

 1999.12.15.



  《수경이》(임길택, 우리교육, 1999)를 가만히 되읽었습니다. 199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금조금 읽히는구나 싶은데, 이 작은 이야기꾸러미에 흐르는 시골빛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웃도 조금조금 늘려나 하고 어림해 봅니다.


  멧골마을에서 멧골아이 곁에 서면서, 멧골어른으로 같이 살면서, 살림빛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은 《수경이》입니다. 이 책이 나오던 무렵에도, 임길택 님이 글을 쓰던 무렵에도, 또 그때부터 스무 해가 훌쩍 지난 때에도, 시골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면서 시골빛을 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나날이 줄면서 사그라드는 시골빛이되, 서울을 떠나 시골에 깃들면서 시골노래를 글로 여미어 책을 내는 분은 조금조금 늘어납니다. 다만, 시골에서 조금 더 느긋이 풀꽃나무를 돌아보고 들숲바다를 품어 보고서 천천히 시골노래를 여미면 한결 나을 텐데, 다들 너무 서둘로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고 느껴요.


  시골사람이 서울로 옮겨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이나 책으로 여민다고 생각해 봐요. 서울에서 한두 해 살아 보고서 서울살이를 글이나 책으로 여미면 얼마나 엉성하거나 서툴까요? 적어도 서울살이 열 해쯤 하고서 글이나 책으로 여미어야 ‘서울맛’을 조금 담아낼 만합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옮긴 사람들도 매한가지예요. 적어도 ‘철갈이’라고 하는 ‘열 해’를 묵혀 보아야 이야기가 무르익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열 해면 들숲이 바뀐다(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얘기합니다.


  멧골내기로 살아가는 꿈을 키우다가 흙으로 돌아간 임길택 님은 누구보다 시골아이랑 시골어른을 바라보면서 글을 여미었고, 시골아이랑 시골어른하고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려는 마음을 키울 서울아이랑 서울어른을 그리면서 글을 써냈다고 느껴요.


  시골에서 짓는 시골빛이든, 서울에서 일구는 서울빛이든, 먼저 우리 스스로 살림빛으로 나아가는 사랑길일 적에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빛’이란 사랑으로 녹여서 새롭게 가꾸려는 숨결입니다. 이와 달리, 서둘러 선보이면서 팔아치우려 하거나 자랑하려 들거나 내세우려고 하는 자랑길로 간다면 ‘빚’이지요. 텅 빈 수레예요. 빈수레가 시끄럽다고 하듯, 무르익히지 않고서 내놓는 모든 글은 겉으로만 시끌벅적합니다.


  하느님은 틀림없이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마음에 빛나는 사랑이 흐르는 하느님입니다. 우리 겨레 이름이 ‘한겨레’인 뜻을 돌아봐요. ‘한 = 하늘 = 하나 = 큰 = 우리 = 해 = 오늘’인 얼거리입니다. 남(서울내기)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논밭을 지을 수 없어요. 스스로(시골내기) 오늘 하루를 사랑하려고 논밭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수경이는 들숲을 헤치면서 들꽃을 그러모아 소한테 꽃걸이를 씌워 줍니다. 조그맣게 피어나는 사랑꽃을 속삭이는 작은 이야기꽃인 《수경이》입니다.


ㅅㄴㄹ


“우리가 그렇게 농사짓는다고 도시놈들이 알아주기나 할 줄 아는가?” “그들이 알아주라고 농사를 지어선 안 되지요. 하느님이 주신 우리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농사를 지어야지요.” “하느님 같은 소리 말게. 하느님이 밥 먹여 주는 게 아니여. 하느님이 있었다면 이날 이때까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걸세.” (28쪽)


책을 떠듬떠듬 읽고, 가지고 온 사탕을 동무들과 나누어 먹으며 금주는 오학년을 마치고 육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금주는 ‘하느님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느 날 / 어머니랑 아버지랑 싸우실 때 / 나는 하느님한테 /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 싸우지 못하게 말려 주세요 하고 / 말씀드렸다.” (94쪽)


수경이는 잡목을 타고 오르던 댕댕이덩굴을 뜯어 둥그렇게 만들었다. 머루알 같은 댕댕이덩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거기에 찔레 열매도 꺾어서 꽂고 억새꽃도 끼워 꽃다발을 만들었다. 노란 마타리꽃은 한쪽에 따로 꺾어 놓았다. 소 목덜미를 긁어 주면서 수경이는 그 꽃다발을 소뿔에다 씌워 주었다. 소는 꼬마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라도 하듯이 그 꽃다발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수경이가 마지막으로 마타리꽃을 꽂으니 소는 금방 들판의 왕이 되었다. (16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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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의 기술 - 트럼프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The Art of the Deal 한국어판
도널드 트럼프 지음, 이재호 옮김 / 살림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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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30.

인문책시렁 272


《거래의 기술》

 도널드 트럼프

 이재호 옮김

 김영사

 2004.11.1.



  《거래의 기술》(도널드 트럼프/이재호 옮김, 김영사, 2004)을 진작에 읽고 새겨 보았습니다. 미국 우두머리로 서기도 했던 분이 어떻게 밑바닥부터 맨손으로 치고 올라가서 스스로 금빛을 이루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곰곰이 살필 대목이 많습니다. “The Art of the Deal”을 “거래의 기술”로 옮겨야 했을까 아리송합니다만, 우리나라는 영어도 우리말도 아직 이만큼밖에 못 쓰는 굴레로 여길 노릇이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는 눈’이라든지 ‘힐리리·오바마·바이든이 얽힌 군산의학복합체 커넥션을 보는 눈’에 따라서 ‘저쪽 먼나라 이야기’ 아닌 ‘바로 우리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길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장사꾼으로 일하던 트럼프는 언제나 민주당·공화당에 목돈을 뒷배(정치후원금)로 내놓았습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려면 두 곳에 똑같이 뒷배를 안 하면 길을 열 수 없다고 합니다. 두 곳에 목돈을 주더라도 이 목돈을 껑충 뛰어넘는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미국은 어떤 나라이기에 민주당·공화당으로 스스로 갈려서 쌈박질을 할까요? 둘이 갈라서 쌈박질을 하기에 셋쨋길이나 새길을 열 틈바구니를 아예 틀어막는 얼거리이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둘로 갈라 쌈박질을 하는 얼개를 둘이 일부러 마련해 놓기에 미국사람 스스로 ‘우리 무리만 옳다’는 마음으로 밀어붙이면서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길드는 굴레’를 뒤집어쓰지는 않을까요?


  트럼프란 사람이 미국 우두머리이기 앞서 쓴 책을 읽는다면 몇 가지를 느낄 만합니다. 첫째, 미국 민낯뿐 아니라 우리 민낯을 새록새록 들여다볼 만합니다. 둘째, 숱한 새뜸(언론)이 눈속임으로 뒤집어씌우면서 우리 스스로 눈먼이로 갇히도록 하는 까닭도 엿볼 만합니다. 셋째, 배움터(학교)가 참말로 배움터 노릇을 하는지, 아니면 착한 종(노예)이 될 톱니바퀴를 똑같이 짜맞추는 노릇을 하면서 허울을 씌우는지도 살펴볼 만합니다.


  트럼프는 ‘Deal’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Deal’을 한 사람입니다. 영어 ‘Deal’은 ‘돌림(돌리다)’입니다. 돈을 돌리고(움직이고), 삶을 돌리고(움직이고), 생각을 돌리고(움직이고), 마음을 돌리는(움직이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차곡차곡 풀어낸 《거래의 기술》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보고, 찾고, 배우고, 새롭게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쌈박질이나 갈라치기가 아닌 ‘마음에 꿈씨앗을 심고서 가꾸는 나날을 살아갈’ 노릇입니다. 겉(언론플레이)으로 드러나는 허울(언론보도)이 아닌, 눈을 고요히 감고서 마음으로 민낯(진실)을 알아보려고 하는 몸짓을 일으켜서 이 터전을 바라볼 일입니다. 바라기(팬덤)로는 아무것도 못 바꾸고 길든 채 종이 됩니다. 누구나 스스로 ‘나다운 나를 나부터 날갯짓하기’로 일어날 적에 비로소 ‘사람·어른·사랑’으로 솟아날 수 있습니다.


ㅅㄴㄹ


나의 9살 난 아들 도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시쯤 집에 들어오겠느냐는 전화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아이들 전화는 항상 받는다. 도니 말고도 6살 난 이반카와 3살 난 에릭, 두 아이가 더 있다. 그 애들이 앞으로 나이를 먹게 되면 아빠 노릇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29쪽)


땅을 살 생각이 있으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학교는 어떤지, 도둑은 없는지, 장보러 다니기는 편리한지 물어본다. 내가 사는 지방이 아닐 경우에는 택시를 집어탄 뒤 운전사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묻고 묻고 또 물어서 의문을 해결한 뒤에야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신통하게도 아무에게든 직접 물어서 얻게 되는 결론이 항상 자문회사의 조사 결과보다 유용했었다. (80쪽)


나는 아주 운이 좋아서 최고의 건물을 지으면서 최소의 비용을 들였다. 트럼프 타워의 단점을 선전으로 덮기도 했으나 결론은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90쪽)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회사의 경우 최고위층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단지 고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고용인은 타인의 거래를 위해서 싸움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162쪽)


내 어머니는 일생을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 그러나 나는 중요한 일자리에 여성들을 다수 고용했고 그들은 매우 일을 잘해냈다. 사실 그들은 주위 남자들보다 더 능력 있는 경우가 많았다. (2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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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늬 있는 경성미술여행
정옥 지음 / 메종인디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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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30.

인문책시렁 264


《터무늬있는 경성미술여행》

 정옥

 메종인디아

 2022.10.27.



  《터무늬있는 경성미술여행》(정옥, 메종인디아, 2022)을 읽었습니다. 72쪽에 나오는 ‘하얀빛’을 ‘한겨레빛’으로 덮어씌우는 보기를 들자면 ‘구본창’이 있어요. 일본에서는 구본창을 깍듯이 높이고, 일본에서 깍듯이 높이는 구본창은 이 나라에서도 힘이 셉니다.


  그런데 ‘하얀빛 = 한겨레빛’이기는 합니다. 다만, ‘하양·흼’이 왜 ‘한겨레’하고 맞물리는가를 제대로 읽고 살펴서 그리는 사람이 드물 뿐이고, ‘하얌 = 한겨레’라는 얼거리를 나라(정부)가 앞장서서 숨기려 할 뿐 아니라, 숱한 바치(전문가)는 이 대목을 모르거나 엉뚱한 길로 빠질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이룬 옛사람을 아울러 ‘한겨레’라 합니다.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부여 옥저 발해 같은 나라이름이 아닌, 그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한겨레’입니다. 피붙이로 여기는 이름이 아닌 ‘한겨레’입니다. 왜 한겨레가 ‘한겨레’이냐 하면 ‘한 = 하늘·해’이거든요. “하늘에서 온 겨레”이기에 ‘한겨레’입니다.


  하늘은 ‘하나이면서 큰 우리(울타리·너와 나)’를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한(하·하나) = 해’이기도 한데, 해는 하나이면서 크고 밝고 하얀빛으로 여깁니다. 해가 뜨고 질 적에는 다른 빛살로 바라보되, 바탕은 “하나 + 큼 + 밝음 + 하양 = 해”인 얼개입니다. 그래서 ‘한겨레·한나라·한누리·한사람’으로 맞물려서 헤아려야 알맞습니다. 우리 이름은 ‘한국’이 아닌 ‘한누리·한뉘’입니다.


  또는 ‘해누리·햇뉘’요 ‘해사람·해님’이라 할 만하지요. 이 땅에서 하얗게(밝고 크며 하나로 아우를 줄 아는 너른 마음이자 사랑인) 사람이기에, 누구나 ‘해님’입니다. 《터무늬있는 경성미술여행》을 읽으면 “야나기 무네요시도 조선의 미를 ‘비애(悲哀)의 미’로 정의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나약한 관점을 추가했다고 할 수 있다(71쪽)”고 적는데,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모든 한빛(한겨레 빛)을 낱낱이 읽어내지는 못 했을는지 모르나, 적잖은 한빛을 밝혔고 들려주었고 첫머리를 열었습니다. 비록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더 나아가지 못 하기는 했되, 우리가 스스로 한빛인 해님인 줄 느끼고 살림살이를 사랑하는 실마리를 찾기를 바라는 ‘이야기씨앗’을 심어 주었어요. 이 이야기씨앗을 북돋우고 가꾸면서 숲을 이룰 몫까지 야나기 무네요시 님한테 바라며 아쉬워하기보다는, 우리가 새롭게 가꿀 일이요, 이분이 사납고 매몰찬 총칼나라(군국주의 식민지)에서 씩씩하게 내놓은 목소리는 귀여겨들을 일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전남 고흥이란 고장에서 살아가는데, 이 고흥을 돌아보면 ‘나혜석 발자취’도 ‘천경자 삶자취’도 깡그리 없습니다. 벼슬꾼(군수·공무원·지역예술가) 입맛에 안 맞거나 바른소리를 내면 몽땅 짓밟는 나리(양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고흥 한 곳만 이러지 않아요. 다른 고장도 서울도 매한가지입니다. 밟히고 찢기고 얻어터지면서 고단하거나 지칠 만한데, 나혜석 님이든 천경자 님이든 밟히고 찢기고 얻어터지면서도 으레 붓을 들었어요.


  글붓이든 그림붓이든, 붓잡이는 벼슬이나 감투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안 쳐다봅니다. 스스로 붓꾼으로 서는 길에는 온누리를 포근하게 감싸려는 마음을 일으켜 샘물빛으로 솟아나는 사랑으로 흐릅니다. ‘서울그림마실’을 하듯 나라 곳곳에서 저마다 푸른그림마실을 헤아리는 이웃이 하나둘 늘 수 있기를 바라요. 돈이 되는 글이나 그림을 움켜쥐려 하는 모든 허울이나 껍데기를 걷어치우거나 녹여낼 어진 글님하고 그림님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미술작품 감상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지만, 그것은 문인 취미를 지닌 사람들이나 서화를 소장한 사람들에 국한되었다. (66쪽)


1970년대 중반에 부상하여 현재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강력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단색화의 권위도 일제가 한국의 미로 설정한 “백색”에 초점을 두고 일본에서 개최한 전시의 성공을 통해서 획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72쪽)


‘동양화’는 조선총독부가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하면서 사용한 용어로서, 우리 미술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96쪽)


그러고 보면 미술계는 참 우스운 곳이다. 작가가 스스로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을 구입한 미술관은 끝까지 진작(眞作)이라고 우기니 말이다. (111쪽)


하지만 가장 확실한 차별화 방법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114쪽)


일제강점기에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다. 군부독재 시절에 예술의 피안으로 도피하여 관념적 정신성만을 추구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민주화가 쟁취된 이후에 “침묵도 일종의 저항”이었다며 자신들을 변호한다.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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