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아기 2023.3.10.쇠.



누구나 ‘맑은 마음’이야. 마음이 맑지 않은 사람은 없어. ‘맑은 마음’을 어둡게 덮어씌우거나 매캐하게 가리려는 사람은 있지. 얼룩지게 하거나 지저분하게 물들이려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마음을 못 더럽혀. 마음은 늘 맑은 채로 고요히 있단다. 그래서 누구나 ‘맑은 마음’에 담은 씨앗 그대로 거두지. 슬프고 싶으니 슬픔씨를 마음에 심어 한동안 슬플 텐데, 마음을 슬픔으로 아무리 물들이려고 해도 조금 뒤에는 다 걷히고 사라져서 ‘맑은 마음’으로 있지. 그래서 ‘슬퍼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왜 안 슬플 수 있느냐며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갉으려고 하지. 누구나 ‘맑은 마음’이기에 “마음을 맑게 할” 수 없어. 이미 맑고 언제나 맑은 마음에 ‘스스로 하며 누리고 나눌 삶’을 생각해서 놓으면 될 뿐이야. 언제나 누구나 마음이 맑은 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어지러운 마음’이나 ‘뒤죽박죽인 마음’을 흉내내려고 하지. 너희가 ‘훈련’을 해야 한다면, 네가 늘 스스로 하늘빛(신)인 줄 바로보고 깨닫고 느껴서 살아가는 마음인 줄 알아차리도록 하는 길일 텐데, 네가 왜 ‘스스로 하늘인 줄 잊은 하늘(신)’이겠니? ‘맑은 마음’이지 않은 사람이 없는 줄 잊었잖니. 너도 남도 참말로 모두 ‘맑은 사람’인 줄 느끼고 받아들이렴. 이 배움길이 좀 어렵거나 잘 모르겠으면 아기를 봐. ‘아기보기’를 하면 넌 스스로 아기였는 줄 깨닫고 배운단다. 왜 사람들이 아기를 낳겠니? ‘아기보기’를 하면서 스스로 늘 ‘맑은 마음’이었구나 하고 깨달으려 하거든. ‘아기보기’를 하는 순이(여성)는 새몸이 되고 빛몸으로 거듭났지. 아기보기를 안 한 돌이(남성)는 어떤 몸으로 오늘을 사는지 돌아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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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2023.3.12.

오늘말. 윗놈


위아래가 있다면 위쪽하고 아래쪽이 있을 테지요. 얼핏 본다면 윗몸하고 아랫몸을 가르듯, 윗도리랑 아랫도리가 있듯, 윗사람하고 아랫사람이 있을 만합니다. 오늘날 터전은 윗분하고 ‘아랫놈’으로 갈라요. 윗내기랑 아랫내기 사이는 까마득합니다. 함께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결이 아닌, 아득히 벌어진 높낮이입니다. 서로서로 윗자리에 서려고 겨룹니다. 높은벼슬을 얻지 못 하면 풀이 죽고, 높은이가 되면 우쭐거려요. 겉으로는 모든 일은 뜻있고 값있을 뿐 아니라, 높일·낮일로 가르지 말아야 한다지만, 막상 이 나라는 윗놈이랑 ‘아랫님’이 멀디멀리 떨어진 채 안 만나는구나 싶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끼리 놀아요. 우리는 우리끼리 놀고요. 높이 솟는 나무는 뿌리가 그만큼 깊습니다. 가지를 뻗는 나무는 뿌리가 그만큼 넓게 퍼집니다. 한 사람을 높이 세운다면, 한 사람을 그만큼 바닥에 깔아뭉갠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높일 적에는 누구를 낮추고 마는 얼거리인 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껍데기가 아닌 숨결로 바라보고, 모든 목숨붙이를 이름값이 아닌 숨빛으로 헤아릴 노릇입니다. 꼭두도 으뜸도 아닌 꼴찌도 못난이도 아닌 삶을 바라봅니다.


ㅅㄴㄹ


멀다·멀디멀다·머나멀다·멀리·먼길·머나먼길·멀디먼길·먼곳·먼데·먼발치· 멀찌가니·멀찌감치·멀찍이·멀리가다·까마득하다·까마득길·아득하다·아득길·아스라하다·아찔길 ← 원거리(遠距離), 천리만리, 천만리


위·위쪽·윗길·윗사람·윗내기·윗님·윗분·윗놈·윗자리·윗줄·윗벼슬·으뜸자리·꼭두자리·꼭두벼슬·높은곳·높곳·높은자리·높자리·높은벼슬·높은분·높은이·높은님·눞님·분 ← 상관(上官)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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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의 재발견
김상욱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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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3.12.

인문책시렁 291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김상욱

 창비

 2006.11.15.



  《어린이문학의 재발견》(김상욱, 창비, 2006)은 ‘창비사단’이라 일컫는 무리가 드러내는 속마음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비사단’은 우리나라 어린이책을 그들이 이끌거나 퍼뜨리거나 가르치거나 키운다고 하는 자랑이 꽤 드높습니다. 어른책이건 어린이책이건 ‘몇 자락을 팔았는가?’로만 바라본다면 ‘창비사단’이 읊는 목소리가 어느 만큼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비사단’에서 북돋우거나 추켜세우는 어린이책을 보면 종잡을 길이 없습니다. 그저 많이 팔리는 책이고, 그들 울타리에 깃든 글꾼이라면 다 좋기만 하다고 여기는 물결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문학 비평’이라고 하면 어린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미기 일쑤입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른이 내려보내는 책(문학)만 읽으면 되기 때문일까요? 어린이가 스스로 어린이책을 말할(비평할) 까닭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2020년대로 접어든 배움책(교과서)은 이제 배움책이 아니라 ‘웹툰 캐릭터 도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린배움터 배움책에 ‘창비사단’을 비롯한 곳에서 우르르 엮고 펴내어 팔아치웁니다.


  배움터에 다니는 어린이는 이 어린이대로 배움책 아닌 ‘웹툰 캐릭터 도감’을 펼칩니다. 배움책 옆에 두는 어린이책은 ‘학습 보조도구’ 노릇을 하는 책이거나 심심풀이 노릇을 하거나 ‘머잖아 불수렁(입시지옥)에 쓰일 만한 인문책’을 조금 쉽게 풀어낸 책이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어린이책은 ‘어린이 현실세계’를 그린다면서 ‘학교·학원·게임·다양성 존중·이주노동자·학교폭력·젠더갈등·이성친구……’라는 틀에 뻔하게 얽혀드는 줄거리에서 오락가락한다고 느낍니다. 꿈(상상력)을 그리는 어린이책이 요즈음 몇이나 있다고 여길 만할까요? 좋아함(연애)을 다루는 책은 수두룩하지만, ‘좋아함이 아닌’ ‘사랑’이 무엇인지 찬찬히 짚을 줄 아는 책은 있기는 있을까요?


  어린이 자리에 서지 않을 뿐더러, 어린이 곁에 없이 허울(대학교수·비평가·작가)만 쓰고 싶은 분들은 《어린이문학의 재발견》 같은 책을 쓰고 읽는다고 느낍니다. 어린이 자리에 서거나, 어린이 곁에 있다면, “숲한테서 얻은 종이로 아름책을 여미지 못하여 잘못했구나” 하고 먼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릴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말로 ‘어른’이라면, 나이만 잡숫는 늙은이가 아닌, 어질고 슬기로워 이슬받이로 나아가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온갖 자질구레한 쓰레기로 망가뜨린 어린이책 민낯부터 엎드려 빌고 눈물로 씻을 일이 아닐까요?


  오늘날에는 ‘일하는 아이들’에 앞서 ‘일하는 어른들’부터 잘 안 보입니다. 돈벌이를 해야 ‘일’이지 않습니다. ‘일’이란 우리말은 ‘일다’가 바탕입니다. 스스로 일으키면서 삶을 빛내는 몸짓이 ‘일’입니다. 집일을 할 줄 아는 어른이 요새 얼마나 있나요? 집일을 넘어 마을일·품앗이를 헤아리는 어른이 얼마나 있지요? 아이들한테서 소꿉놀이랑 빈터랑 숨쉴 풀밭을 빼앗은 수렁에 잠긴 ‘어른 아닌 늙은이’들이 온누리를 망가뜨리는 판에, 어린이책이 이러쿵저러쿵 비평을 해본들 참으로 덧없는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습니다.


ㅅㄴㄹ


특히 동화는 자본의 시대와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문학 장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자본의 시대와 동화는 불화가 아닌 깊은 친연성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기묘한 상생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16쪽)


그러나 상상력이란 ‘기발함’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판타지의 근간을 이루는 상상력이란 언제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투영해 보기 위한 장치이지, 현실에서부터 자유분방하게 멀어져도 좋은 착상의 기발함이 아닌 것이다. (76쪽)


고통 자체를 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던 역사적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높이 평가받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134쪽)


이 동시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로부터 아이들의 삶이 변모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모든 것들이 하나로 원환을 이룬 채, 아름다운 한 세상의 풍경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동시 한 편으로 이원수의 동시는 깊은 사색과 성찰을 어떻게 동시 속에서 풀어놓을 수 있는지 그 전범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 어떤 동시로 달성하지 못한 정교함과 풍부함, 깊이와 폭을 한꺼번에 입증하고 있다. (296쪽)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아이들에게는 더이상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구체적인 노동이 없다. 어렵게 발견한 것은 다만 이오덕의 길일 뿐, 그의 뒤켠에 남겨진 우리의 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아이들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갑자기 솟구쳐나오지도, 떨어져내리지도 않는다. 지금껏 힘겹게 이어온 길을 벗어날 수 없다. (34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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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이현아 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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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인문책 2023.3.12.

인문책시렁 292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이현아와 여덟 사람

 카시오페아

 2020.12.29.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이현아와 여덟 사람, 카시오페아, 2020)을 읽었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저마다 어떤 삶을 보내는가 하고 밝히려는 줄거리 같지만, 이보다는 ‘어느 모임을 함께 꾸려’ 나가면서 삶을 어떻게 바꾸었다고 하는 ‘모임 알림글’ 같은 얼거리입니다.


  책 하나로 글을 여민 아홉 사람이 아홉 가지 눈길로 그림책을 바라보는 줄거리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림책에 마음이 끌려서 삶을 새삼스레 바라본다고 하는 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책도 나쁜책도 없기에 어느 책을 읽건 스스로 눈뜨는 징검돌로 삼으면 즐겁습니다. 굳이 좋은책을 들 까닭이 없고, 애써 나쁜책을 나무라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아이어른이 나란히 앉아서 어느 책에서건 어떤 삶과 눈길과 몸짓과 마음이 흐르는가 하고 곰곰이 짚으면 됩니다. 지은이·펴낸곳 이름값을 다 지우고서, 그저 그림책으로만 바라볼 노릇입니다.


  어느 지은이나 펴낸곳을 좋아하다 보면, 그만 이름값에 스스로 사로잡혀서 그림책이건 글책이건 어떤 속내이자 밑뜻인지 놓치게 마련입니다. 그림책을 잘 읽어내는 길은 없습니다. 그림책을 잘 읽어내야 하지도 않습니다. 그림책을 잘 뜯어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이 들려주는 가르침이나 이야기를 높이거나 낮출 까닭도 없습니다.


  서울에서 살며 시골을 이따금 놀러다니는 얼거리가 드러난 그림책은 이런 얼거리를 고스란히 느끼고 말하면 됩니다. 모든 어린이가 배움터(학교)에 다니지 않으나, 배움터에 안 다니는 어린이는 아예 생각조차 않는 그림책은 이런 얼개를 그저 그대로 느끼고 말하면 됩니다.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그림책을 찬찬히 보면, 굳이 ‘배움터(학교생활)’를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나라 그림책, 이른바 창작그림책에는 너무나 많은 그림책이 배움터(학교생활 + 학원생활)를 발판으로 삼고, ‘일하는 어머니 + 술먹는 아버지’란 틀에 갇힙니다.


  무엇을 그리고 바라보기에 저마다 삶을 새롭게 가꾸는 징검돌로 삼을 만할까 하고 처음부터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겉(현실로 드러나는 사실관계)’을 옮기기에 그림책일까요? ‘속(앞으로 이루려는 꿈을 사랑으로 참답게 담는 길)’을 담기에 그림책이지 않을까요? ‘일하는 어머니’를 아름답게 담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닭들이 이상해》라든지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 같은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있어요. 바보스런 아버지를 자꾸 보여주면 사내란 놈은 그저 바보일 뿐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사로잡히기 좋습니다.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이라든지 《닉 아저씨의 뜨개질》 같은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어요. 순이돌이가 저마다 어떤 살림빛을 지으며 나눌 적에 어깨동무라는 보금자리를 꾸릴 만한가 하고 상냥하게 넌지시 밝히기에 비로소 ‘그림책’이란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레오 리오니 님이 여민 《내 꺼야》 같은 그림책도 더없이 아름답지요.


  그림책을 ‘창작그림책’이나 ‘유명작가 그림책’이란 굴레를 씌우면서 들여다보는 ‘테라피 자격증 수업’은 이제 그만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이번에는 아이의 빈틈없는 진로 준비를 위해 아이의 학교와 학원 스케줄에 맞춰 자신의 하루를 계획하는 것은 엄마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지만, 그다음에는 손주를 대상으로 그 긴 레이스를 또다시 시작하신 분들을 자주 보았다. (23쪽)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되고 난 뒤, 나는 내가 학생 시절 당했던 폭력을 똑같이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47쪽)


30대 중반이 된 내 몸은 10년 전의 내 몸과는 사뭇 달라 고집이 한껏 세져 있었다. 똑같은 양의 밥을 먹어도 쉽게 살이 쪘고, 며칠 스파르타식으로 연거푸 달린다고 해도 하루에 500그램씩 빠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때 먹히던 방법이 왜 이젠 안 듣지?’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96쪽)


파리에 머무는 마지막 날, 그날은 눈부신 햇살이 거리를 청아하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시간을 내어 다시 어베이 서점을 찾았다. 선물처럼 우연히 발견한 이 매혹적인 책 공간에서 파리와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46쪽)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던 여름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처음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 엄마는 창문 밖 살구나무의 안부에 제일 많은 관심을 보였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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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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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작은책이 싹튼 밑힘 (2023.3.9.)

― 청주 〈중앙서점〉



  오늘은 새벽 세 시 무렵 하루를 엽니다. 청주로 책숲마실을 갈 참이라 이래저래 글살림을 여미고 부엌을 갈무리하고 짐을 꾸립니다. 아침 첫 시골버스로 고흥읍에 가고, 전남 광주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탄 뒤, 대전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서, 이제 청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청주에서 내려 한참 걷습니다. 이 고장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고 읽다가 등판에서 땀이 흐를 즈음 시내버스를 타고서 충북도청 곁에서 내려 ‘청주 책골목’으로 갑니다.


  2023년에 충북 청주에는 〈대성서점〉하고 〈중앙서점〉이 곧게 헌책집살림을 잇습니다만, 스무 해 앞서만 해도 헌책집이 열 곳을 아우르는 고장이었고, 서른∼마흔 해 앞서는 더 많았습니다. 청주에는 청주교대에 충북대처럼 배움빛을 헤아리는 젊은이가 꾸준히 물결쳤기에 새책집도 헌책집도 꽤 많았어요. 이제는 예전같지 않으나, ‘교대가 있는 작은고장’은 새책집·헌책집이 나란히 북적이면서 삶빛을 알뜰히 여미려는 숨결이 흘렀습니다.


  겉이 허름해 보이거나 데께가 내려앉은 모습만으로 ‘헌책’이라 여긴다면, 책을 모르는 셈입니다. 손길을 닿아 즐거이 읽힌 뒤에 새롭게 닿을 손길을 기다리는 하늘빛을 품은 속빛으로 ‘헌책’을 마주할 적에, 비로소 책길을 열 만합니다.


  헌책집을 드나들기에 ‘책을 알지’ 않아요. 새책은 아직 읽히지 않으며 기다리는 책이요, 헌책은 새롭게 읽히며 빛나려는 책입니다. 새책은 이제 막 태어나서 싹트려는 책이고, 헌책은 이미 씨앗이 트면서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오르려는 책입니다. 책마을이 아름드리로 우거지자면 ‘책 = 새책 + 헌책’이라는 얼거리를 곰곰이 짚으면서 알뜰살뜰 북돋울 노릇입니다. ‘새책 : 새로 지은 손길이 새로 읽을 이웃한테 흐르는 책’이요, ‘헌책 : 이미 지은 손빛이 새로 가꿀 눈빛으로 퍼지는 책’입니다.


  청주에도 ‘알라딘중고샵’이 있고, 이런 누리책집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굳이 손에 책먼지를 안 묻혀도 말끔한 책을 손쉽게 찾고 사고 되팔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알라딘중고샵’은 ‘바코드 없는 책’을 다룰 줄 모르고, 살필 길이 없어요. 온누리 헌책집은 마을에서 마을빛으로 지은 작은책(비매품·독립출판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서 오래도록 나누고 알린 책터입니다. 헌책집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마을책집(동네책방)은 싹조차 틔우지 못 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도 다루되, 거의 안 팔렸지만 뜻깊게 되읽으며 배울 어진 삶빛을 담은 책을 품은 헌책집을 잇는 밑힘을 청주시는 앞으로 얼마나 살리거나 키울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ㅅㄴㄹ


《맨발의 겐 2》(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이종욱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0.8.25.)

《맨발의 겐 9》(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익선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2.7.27.)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포올러스/김명순 옮김, 두풍, 1987.10.20.첫/1989.1.30.중판

《어둠의 속》(조셉 콘라드/나영균 옮김, 자유교양사, 1989.7.15.)

《大地의 딸》(아그네스 스메들리/타혜숙 옮김, 한울, 1993.5.29.첫/1993.7.5.2벌)

《유태인의 천재들》(유안진, 문음사, 1979.9.10.첫/1980.8.30.중판)

《파름문고 44 사랑의 물레방아 下》(로렛타 깁슨/유종숙 옮김, 동광출판사, 1984.4.15.)

《지성문고 38 결혼》(알베르 카뮈/이재하 옮김, 동천사, 1988.7.15.)

《太白山脈 1》(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3.10.25.62벌)

《太白山脈 2》(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4.4.4.57벌)

《왕따 리포트》((주)가우디 엮음, 우리교육, 1999.5.15.)

《구름》(구드룬 파우제방/김헌태 옮김, 일과놀이, 2000.11.23.첫/2004.1.103.2벌))

《휴지 하나 시 하나》(윤상화, 푸른숲, 1992.7.10.)

《삼부경》(金水寺 이법홍 엮음, 안양암, 1964.)

《피안으로 가는 길》(제1군사령부 엮음, 제7지구인쇄소, 1977.)

《봄눈 개관기념, 詩의 여백이 있는 노트》(조희선, 꽃잠, 2016.9.24.)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유승희 옮김, 가나출판사, 1989.5.20.)

《문집 1호 우리 한 번 걸어 보자》(글다솜, 일터기획, 1994.3.31.)

《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현주, 삼민사, 1982.10.25.첫/1989.9.20.중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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