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서울엔 - 82년생 서울내기가 낭만하는 기억과 장소들
황진태 지음 / 돌베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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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18.

인문책시렁 293


《내 고향 서울엔》

 황진태

 돌베개

 2020.4.20.



  《내 고향 서울엔》(황진태, 돌베개, 2020)을 사 놓고서 한 해 남짓 지나고서야 비로서 다 읽었습니다. 어쩐지 읽기가 까다롭기도 했고, 글쓴이가 너무 어렵게 꾸민다고 느꼈습니다. 나고자란 곳이라면 ‘나고자란’ 이야기를 들려주면 될 텐데, 자꾸 ‘문화적·역사적’ 같은 꾸밈말을 붙이려 하니 뒤죽박죽이었고, 어쩌다가 들르거나 지나간 서울 한켠을 ‘역사·문화 해석’이라든지 ‘대중문화 분석’을 하려고 들기에, 뭔가 참 삶하고 동떨어진 줄거리로구나 싶더군요.


  서울은 너무 넓고 크며 사람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섣불리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습니다. 서울이라는 곳을 말하자면, 즈믄 사람쯤이 예순 해쯤은 살아낸 나날을 즈믄 가지로 듣고 새겨서 아주 두툼한 책으로 꾸리더라도 ‘서울을 제대로 못 짚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서울을 짚거나 다루고 싶다면, ‘온 서울’을 다 짚거나 다루려는 마음부터 지울 노릇입니다. 스스로 겪고 보고 살아낸 ‘서울 한켠’만 짚거나 다루려 해야, 비로소 ‘이런 눈길로 서울을 보기도 한다’는 꾸러미 하나가 나올 만합니다.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이름이지만, 정작 글쓴이로서 ‘나고자란 서울’ 이야기가 너무 짧고 얕고 몇 줄 안 됩니다. 어설프게 종로를 건드리려 하지 말고, 엉성하게 신촌을 다루려 하지 말고, 어정쩡하게 영등포를 쓰려 하지 말고, 섣불리 강남을 말하려 하지 않았으면, 이 책은 꽤 읽을 만하고 돌아볼 만했다고 느낍니다.


  차라리 이웃나라 사람이 서울에 나들이를 와서 쓴 글이 훨씬 나았으리라고도 느껴요. 왜 그러냐 하면, 서울마실을 하는 사람은 온몸으로 부대끼고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하루를 되새기면서 서울을 이야기하게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이 책을 쓴 분은 자꾸 ‘어디선가 듣고 본’이라고 하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씁니다. ‘서울에 있는 새뜸(언론)이라지만, 정작 서울이라고 여기지 않아 아예 안 다루다시피 했다’는 월계동하고 장위동 이야기를 쓰면 될 뿐입니다. 스스로 겪은 마을 이야기를 쓰고, 글쓴이 어머니 아버지가 겪고 보고 살아낸 마을 이야기를 담으면 돼요.


  저한테 서울 월계동이나 장위동은 1994∼95년하고 1998∼99년에 서울 이문동에서 살며 짐자전거를 몰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돌아다닌 곳이면서, 새롭게 만나고 싶은 마을책집을 찾으려고 골목골목 걸어다니던 곳입니다. 지난날 그 골목이며 마을을 짐자전거로 누비거나 두 다리로 걸으면서 “여기는 서울이면서도 바람이 제법 깨끗하고 길바닥이 퍽 정갈하구나. 서울이면서 꽤 고즈넉하기에 서울에서 뿌리를 내린다면 여기에서 살 만하겠네.” 하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서울빛’도 ‘살림빛’도 거의 다 스러졌겠지요.


  끝으로, 글쓴이는 어느 골목집이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집 안은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315쪽)”처럼 말하는데, 얼마나 골목집을 모르거나 겉으로만 훑었는가 하고 느낄 만합니다. 껍데기로만 슥 훑으면 속빛도 참빛도 모릅니다. ‘살아낸 이야기’가 아닌 ‘구경한 이야기’로 ‘대학교에서 학문·연구를 할’는지 모르나, 글이나 책이나 살림하고는 그저 멀 뿐입니다.


ㅅㄴㄹ


‘서울 같지 않은 서울(강북)’ vs ‘진짜 서울(강북 도심인 광화문, 종로 등과 강남)’이라는 이분화된 공간 인식에 따라 내가 사는 동네는 미디어에서 재현될 가치가 없고, 서울의 공식적인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서울 시민들에게 기억될 만한 공간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21쪽)


지금이야 편의점이 뭐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드라마 주인공들이나 가는 곳을 내가 가도 되나 싶어 괜히 쭈뼛쭈뼛했다. 지금은 흔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이지만 그때는 식당도 아닌 가게에 그런 게 비치되었다는 게 낯설고 심지어 고급스럽다고 생각해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부담스럽게 여겼다. (61쪽)


1982년생에게 1980년대의 서울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사’였다면, 1990년대의 서울은 실제 가 보진 못했더라도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현재’로 인식되었다. (193쪽)


물론 외재적 핑계만 있지는 않았다. 교사직이 내 적성에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내재적 요인이 여전히 집중을 방해했다. (267쪽)


다무라와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한 우리는 냉커피를 얻어 마시고, 그 집 반려견의 환대를 받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집 안은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31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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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사우 빛깔있는책들 - 고미술 22
이겸노 지음, 손재식 사진 / 대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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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18.

읽었습니다 221



  이제는 ‘문방사우’ 같은 말은 거의 안 씁니다. 낡거나 죽은 한문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예전 배움터에서는 ‘붓먹벼루종이’를 챙겨서 붓글씨를 하는 길을 가르치기도 하고, 셈값(점수)으로 매기기도 했습니다. 붓글씨가 나쁠 일은 없되, 지난날 ‘붓종이·붓살림’을 쥘 수 있던 무리는 ‘나리(양반)’나 ‘힘꾼·임금붙이’였습니다. ‘글붓’은 어깨동무가 아닌 위아래로 단단히 틀어막고서 억누르는 사슬이었어요.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은 모두 우리 살림을 비틀거나 쥐어짜면서 괴롭히는 ‘글굴레’였다고 할 만합니다. 《문방사우》는 옛 ‘글살림’을 돌아보는 줄거리를 들려주기는 하되, 지난날 ‘글붓살림’이 ‘글빛살림·글꽃살림’하고는 너무나 동떨어진 벼랑길이었다는 대목을 짚거나 건드리지는 못 합니다. 책 한 자락이 모든 수수께끼나 실타래를 풀 수는 없을 테지만, ‘먹물’이라는 이름이 왜 ‘안 나서는 글꾼(행동 안 하는 지식인·탁상공론)’을 가리키는지 알아야겠지요.


《문방사우》(이겸노 글, 손재식 사진, 대원사, 1989.5.15.)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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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재미 2021.12.14.불.



재미있지 않니? 손을 씻으려고 꼭지를 틀었더니 위쪽에서 솨아아 물이 쏟아지면? “아, 머리 좀 감으라는 뜻이구만?” 하고 여길 수 있니? “아하, 옷 좀 갈아입고 씻으란 뜻이네?” 하고 볼 수 있니? “이크, 아까 제대로 안 씻어서 새로 씻어야 하는구낭?” 하고 느낄 수 있어? 배고픈데 밥이 없으면 재미있지 않아? 너는 “밥이 없다니!” 하고 버럭할 수 있어. 전화를 걸어 밥을 시킬 수 있어. “그럼 밥을 할까?” 하면서 콧노래를 부를 수 있어. “밥이 없구나. 그러면 실컷 굶어 보자!” 하면서 기쁘게 몸을 다스릴 수 있어.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마음으로 그리는 대로 나아간단다. 깨닫는 길을 바라면 빨래하고 밥하고 치우면서 깨달아. 툴툴대는 길을 바라면 눈앞에 마주하는 모든 일에 골을 부리면서 벌컥·왈칵·화르르·바르르·부들부들…… 신나게 불태울 수 있어. 너는 너를 보려고 ‘그 몸’을 입고 태어났어. 너는 너를 ‘보아주(봐주)려고’ 태어났어. 네가 너를 봐주지 않는데, 누가 너를 봐줄까? 네가 너를 보며 눈을 홉뜨거나 치켜뜨는데 누가 너를 보며 웃을까? 네가 너를 보며 거친말·막말 잔뜩 쏘아붙이는데 누가 너를 폭 안을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면 잎물(차)을 우려서 마시렴. 활활 타오른다면 고구마를 놓아 구워서 먹으렴. 차갑게 얼어붙는다면 물을 얼려 여름을 식히렴. 네가 하면 돼. 네가 가면 돼. 네가 일어나면 돼. 네가 그리고 말하고 짓고 가꾸고 나누면 돼. 네 손은 네 입에서 ‘하자!’나 ‘해볼까?’ 하는 말이 터지기를 기다린단다. 아들은 아름답게, 딸은 따사롭게 그리렴. 둘은 아름답고 따사롭게 만나기에 즐거이 사랑으로 간단다. 스스로 찾는 아름다움으로, 스스로 짓는 따사로움으로, 스스로 노는 마음으로 가렴. 다 재미있게 가는 오늘이란다. 모두 즐거울 오늘이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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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솔직 2023.1.2.달.



“감추지 않음”이나 “거짓이 없음”을 가리킨다는 한자말 ‘솔직’이라지? 그래, 이 낱말은 나쁘지 않아. 다만, 생각해 볼까? 너희는 왜 “감추지 마”나 “거짓이 없이”라 말하지 않고, 굳이 ‘뜻을 한 꺼풀 씌우는’ 한자말 ‘솔직’을 쓰니? 처음부터 한 꺼풀도 두 꺼풀도 안 씌우는 말로 ‘고스란히’ 하면 될 텐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될 텐데? ‘꾸밈없이’ 하면 되고,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하면 될 텐데? 알다시피(아직 모른다면 모르다시피) ‘솔직’은 나쁜 말이 아니야. 그러나 ‘솔직’이라는 말은 너희 삶자리에서 ‘꺼풀을 씌운’ 말 가운데 하나이지. 너한테 ‘솔직’이 익숙하더라도 ‘누구한테나’ 익숙할까? 너는 ‘솔직’이라는 말을 쓴다지만, 어린이가 쓸 만한 말이니? 너희는 왜 말에 자꾸 꺼풀을 씌울까? 나라(정부), 마을(사회), 배움터(학교)는 왜 ‘쉽고 부드러우면서 누구나 마음을 넉넉히 그리는 말’이 아닌, ‘외워서 써야 하는, 한두 꺼풀씩 뒤집어씌우는’ 말을 붙잡을까? 꾸밈없이 겉속을 다 볼 수 있기를 바라. 꺼풀을 씌울수록 참을 가리지. 꺼풀을 내세울수록 마음을 쉽게 잊어. 그러니까 꺼풀이 없는 말은 마음을 환하게 펼치면서 둘레를 밝혀. 겉에 ‘두꺼운 방패나 갑옷’이 없는 홑몸인 ‘꾸밈없음’은 오히려 따뜻하고 가볍고 튼튼하지. 겉에 ‘두꺼운 방패나 갑옷’을 씌운 ‘꾸밈있음’은 으레 차갑고 무겁고 허술해. 보렴! 해바람비에 이슬에 풀꽃나무를 맨몸으로 그대로 머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튼튼하니? 쇳더미로 꺼풀을 씌우니 얼마나 무겁고 차갑게 죽어가는 꼴이니?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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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꾸미려면 꿈이려면 2023.1.1.해.



꿈이려면 미움도 두려움도 걱정도 시샘도 멍울도 아픔도 없어. 꿈이 아닌, 꾸미려 하면, 미움도 두려움도 걱정도 시샘도 멍울도 아픔도 골고루 있어. 꿈이려면 오직 하나를 본단다. 꿈이 아닌, 꾸미려 하면,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오락가락 헤매다가 늘 쳇바퀴를 돌면서 어느 자리에 고이거나 멈춘 채 앞으로도 옆으로도 뒤로도 못 가. 꿈이려면 어디를 가든 둘레를 넉넉히 보고 누리면서 네 갈 길에 고르게 서지. 꿈이 아닌, 꾸미려 하면, 네 갈 길을 잊거나 놓친 채 둘레를 구경하느라 바빠서 그만 넋을 잃고는 길까지 잃지. 꿈이려면 마음 가득 즐겁게 생각씨앗을 심으니, 네가 스스로 하루를 짓고 언제나 넉넉하면서 홀가분히 걷는 몸짓이 춤사위로 빛나니 노래가 가득하단다. 꿈이 아닌, 꾸미려 하면, 한 발 내딛기도 벅차고 한 걸음 뗄 적마다 무겁고, 온하루가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이라 여기면서 고단하니 지치지. 네가 무엇을 하든 힘들거나 아프거나 지치면 ‘꿈’이 아닌 ‘수렁·굴레·벼랑·쳇바퀴’라는 뜻이야. 얼른 이 수렁·굴레·벼랑·쳇바퀴를 너 스스로 내려놓으렴. 네가 언제나 하루를 꿈길로 여기고 가꾸면서 걸어갈 적에는 새롭게 노래가 흐르면서 웃을 테지. 오늘 보내는 하루에 이야기꽃이 가득하니? 오늘 맞이한 하루가 반가워서 웃음이 터져나오니? 심심하거나 따분해서 뭔가 다르다 싶은 것을 찾니? 네 마음을 보렴. 거울이 아닌 네 숨결마다 감도는 네 마음을 스스로 보아야 꿈씨가 자란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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