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3.3.21.

숨은책 818


《초록색 엄지소년 티쭈》

 모리스 드리용 글

 최윤경 그림

 배성옥 옮김

 민음사

 1991.3.20.첫.1996.8.25.7벌



  1994년부터 서울을 드나들기 앞서까지 인천도 ‘꽤 크다’고 여겼습니다만, 인천은 ‘백화점도 없다가 겨우 생겼으나 일찌감치 무너진’ 곳이고, ‘방송국이 없’다가 1997년에 ‘itv’가 태어났으나 몇 해 뒤 ‘서울방송국 짬짜미’에 밀려 닫아야 했습니다. 없는 투성이인 고장이지만, 매캐한 공장은 수두룩했고, 서울을 버티는 일개미(노동자)는 날마다 불수레(지옥철)를 이루며 오갔습니다. 서울내기 동무가 “그래도 광역시인데 백화점이 없다고?” 하고 물으면 “응, 다들 거의 서울로 새벽에 가서 밤에 돌아와 자는데 백화점에 갈 일부터 없지.” 하고 대꾸했어요. ‘잠고장(침대도시)’에 큰가게가 설 수 없겠지요. 그러나 서울도 백화점이 이따금 사라졌습니다. 예전 서울역에 있던 큰가게가 닫았고, ‘미도파백화점’도 가뭇없이 떠났어요. 판이 끊긴 《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를 어렵사리 헌책으로 찾아내었는데, ‘서울 미도파백화점 상계점 7F’에 있던 〈미도파문고〉에 깃든 자국이 고스란하더군요. 팔림쪽(전표)이 그대로 붙었다면, 안 팔렸다는 뜻일 텐데, ‘96.10.22.’에 책시렁에 꽂힌 뒤 얼마나 오래도록 손길을 못 받았을까요. 그래도 용케 서른 해 가까이 어디선가 살아남았습니다. ‘미도파’도 ‘미도파문고’도 이제 없으나 ‘미도파백화점 7층 미도파문고 책시렁’에서 잠자던 책은 제 곁에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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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네덜란드사람 (2022.10.19.)

― 서울 〈카모메 그림책방〉



  어제 하루는 책짐을 잔뜩 짊어진 채 서울 여러 곳을 휘휘 걷고 달렸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마을책집 한 곳만 들러서 책상맡에 앉아 얘기꽃(동화)을 쓰다가 고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앞서 들른 창신동 책집에 찾아온 다른 손님이 꽤 큰소리로 수다꽃을 한참 피웁니다. 일찍 일어나서 걷고, 또 걷고, 내처 걷습니다. 한참 땀을 빼고서 〈카모메 그림책방〉에 닿습니다. 가을볕이 따끈따끈 내려앉습니다.


  책시렁을 헤아리다가, 그림책을 읽다가, ‘자벌레’ 그림책을 오랜만에 되읽다가 ‘레오 리오니’ 님 삶길을 노래꽃(동시)으로 문득 적어 봅니다. 처음 ‘레오 리오니’ 님 그림책을 만난 해는 1988년이라고 떠오릅니다. 그무렵에는 그림님 이름을 몰랐어요. 책집에서 동무를 기다리며 문득 집어든 책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어요. 1994년에 네덜란드말을 배우는 배움터에 들어갔으나 그림님이 네덜란드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네덜란드말을 가르치는 이들은 이분 그림책을 알까요?


  모든 말은 어버이가 맨 처음 들려주면서 물려주는데, 어른이 되어 이웃말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한테는 그림책하고 노래책(동시집)이 어울립니다. 네덜란드말을 배우려는 이웃님이라면, ‘네덜란드말로 나온 레오 리오니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으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말을 배우고 싶은 이웃나라 사람한테는 어떤 그림책이나 노래책을 건넬 만할까요? 우리는 아직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사랑으로 여민 그림책이나 노래책’이 거의 없지 않나요? 무늬는 한글이되 우리말이 아닌 책이 수두룩합니다.


  잘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서두르려는 마음을 털어내고서 느긋하게 찬찬히 보는 눈빛을 밝히기를 바라요. 책집 골마루를 한나절쯤 천천히 거닐고 또 거닐면서 두리번두리번 되읽고 새로읽는 눈망울을 가꾸기를 바라요.


  봄에도 꽃이 피고 가을에도 꽃이 핍니다. 봄볕도 온누리를 살리고, 가을볕도 온누리를 살립니다. 봄바람도 싱그럽고 가을바람도 싱그럽습니다. ‘자연 예찬’이 아닌 ‘숲을 노래’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품을 적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문화 비평’이 아닌 ‘살림을 짓’는 손길을 아이들하고 누릴 적에 즐거운 어른이에요.


  풀씨를 돌보는 손길이 마을을 살린다고 느낍니다. 나무씨를 보듬는 손길이 나라를 살리는구나 싶습니다. 마음씨를 사랑하는 손길이 이 별을 빛낸다고 생각해요.


  다시 등짐을 짊어지고서 전철나루로 걸어갑니다. 버스나루에 닿아 꾸벅꾸벅 졸며 시외버스를 기다립니다. 시외버스를 한참 달리고서야 잠을 깹니다. 버스가 전라남도로 접어들 즈음 바깥으로 별이 보입니다. 머잖아 서울에도 별이 돋기를 빕니다.


ㅅㄴㄹ


《비밀의 숲 코끼리 나무》(프레야 블랙우드, 창비, 2022.9.30.)

《하나는 뱀이 좋아》(가니에 안즈/이구름 옮김, 나는별, 2022.9.17.)

《꿈틀꿈틀 자벌레》(레오 리오니/이경혜 옮김, 파랑새, 2003.11.15.첫/2007.5.28.3벌)

《곰인형의 행복》(가브리엘 벵상/이정기 옮김, 보림, 1996.8.30.첫/2009.2.20.1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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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름답게 (2022.10.19.)

― 서울 〈뭐든지 책방〉



  어제 어쩌다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라는 데를 아마 열다섯 해 만에 지나가 보는데, 이 앞에 선 ‘지킴이(경비원)’가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입가리개나 차림새를 꼬치꼬치 따지면서 윽박지릅니다. 어깨띠를 차면 스스로 대단하거나 잘난 줄 알며 ‘마름’질을 일삼는 허수아비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입가리개로 코를 옴팡 안 덮는 길손이 하나라도 있으면 〈교보문고〉에 큰일이라도 터질까요? 그런데 ‘교보문고 안쪽에 있는 찻집’에 바글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입가리개를 안 하면서 재잘재잘 큰소리로 수다를 떠는데요? 이들더러 왜 ‘입다물고 입가리개 똑바로 써!’ 하고 윽박지르지 않을까요?


  우리는 넋나간 나날을 보냅니다. 고작 1미터도 아닌 10센티미터 옆에서는 깔깔깔 떠들면서 입가리개를 안 합니다. ‘어깨띠를 두른 지킴이’는 저쪽은 안 쳐다보면서 이쪽을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이 말 저 말 무섭게 읊습니다.


  ‘좋은책’을 읽기에 ‘좋은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마음’이란 따로 없습니다. ‘좋은길’조차 없습니다. ‘좋음·나쁨’은 ‘옳음·그름’으로 가르는 굴레이자, 싸움(전쟁)을 벌이는 불씨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름책’을 읽을 마음을 품지 않고서 자꾸 ‘좋은책’을 읽거나 알리려(추천) 한다면, 그만 끝없이 싸움을 걸면서 ‘니 쪽 내 쪽’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불구덩이에 잠겨듭니다.


  아름다움에는 좋음도 나쁨도 없습니다. 사랑에는 옳음도 그름도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니 쪽 내 쪽’을 안 가릅니다. 언제나 어깨동무로 포근히 다독이면서 돌아보는 숨결이기에 아름다움이요 사랑이고, 아름책이자 사랑책입니다. 다만, 아름책이나 사랑책은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고전’도 ‘추천도서’도 아닙니다. 아름답기에 아름책이고, 사랑이기에 사랑책이에요.


  서울 바깥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려는 아침에 창신동 골목길을 걸어서 〈뭐든지 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오랜만에 이 골목을 거닙니다. 동대문 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만, 창신동은 작은집이 옹기종기 햇볕을 나누며 차분합니다. 바람도 별빛도 누구한테나 찾아듭니다. 가을도 겨울도 어디에나 스며듭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북돋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어질게 읽고 새기면서 스스로 사랑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있기에 이 별이 살아나고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마음빛을 되새기는 어른이 있기에 이 별에 노래가 흐르며 하루가 반짝입니다. 어린이로 살던 지난날을 잊은 사람은 ‘어른 아닌 늙은이’로 뒹구는 꼰대짓을 합니다.


ㅅㄴㄹ


《식물 심고 그림책 읽으며 아이들과 열두 달》(이태용, 세로, 2021.11.2.)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김장성, 이야기꽃, 2022.1.31.)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김영화, 이야기꽃, 2022.8.8.)

《곁책》(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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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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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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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2023.3.20.

인문책시렁 294


《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이야기장수

 2023.2.8.



  《헌책 낙서 수집광》(윤성근, 이야기장수, 2023)을 읽었습니다. 아직도 한자말 ‘낙서’를 그냥 쓰는 분이 많습니다만, 우리말로 보자면 ‘쪽글·조각글’이나 ‘놀이글·말놀이’이거나 ‘글꽃’이거나 ‘끄적임·깨작질’입니다. 책을 읽고서 깨작거리는 사람이 있으나, 차곡차곡 쪽글을 남기는 사람이 있고, 이모저모 생각을 밝혀 글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한자말로 여러 가지 뜻을 나타냈다고 여기지만, 곰곰이 본다면 숱한 삶과 살림을 한자말로 아무렇게나 묶거나 눌렀다고 여길 만합니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왜 글을 몇 줄 끄적일까요? 아무 생각이 없다면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글쓴이나 지은이하고 마음이 맞거나 어긋나기에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 귀퉁이에 몇 마디를 남깁니다. 새롭게 읽으며 새삼스레 배우기에 문득 생각을 해보면서 이야기를 넣습니다.


  《헌책 낙서 수집광》을 읽으면 《초인생활》이라는 책을 다루기도 하는데, ‘정신세계사’에서 내기 앞서 1978·1985년에 《히말라야 성자들의 초인생활》이란 이름으로 나왔으며, ‘정신세계사’ 판은 처음 새로 낼 적에도 옮김말이 틀렸다는 손가락질을 꽤 받고서 2020년에 새 옮김판을 내놓았으나 어설프거나 엉성한 옮김말씨는 썩 안 가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Life and Teaching of the Masters of the Far East”라는 이름이기에 ‘초인생활’로 옮긴 이름하고는 동떨어져요. 아무래도 일본판을 들여다보며 옮기던 낡은 버릇 탓에 우리말로 옮길 마음을 못 키웠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초인생활’이 아닌 ‘깨달은 삶과 가르침’이 무엇인지 짚고 밝히면서 나누려는 줄거리를 담은 책이 ‘초인생활이란 이름으로 나온 책’입니다.


  헌책이라는 이름은 ‘헌 : 손을 댄’을 밑뜻으로 삼습니다. 예부터 ‘새책’이란 말은 잘 안 썼습니다. 딱히 놀랄 일이 아닙니다. 모든 책은 그저 책일 뿐이니, 구태여 ‘새책’이라 안 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고서 책장사를 할 무렵에라야 비로소 ‘新刊·新書’ 같은 한자말이 쏟아졌고,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우리는 아직도 붙잡습니다. 적어도 ‘새책’으로 옮겨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굳이 ‘새책’ 같은 낱말을 잘 안 썼을 뿐 아니라, 2023년에 이를 무렵까지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헌책’만 올림말로 삼고 ‘새책’은 올림말이 아닐까요?


  낱말로만 보면 ‘헌책·새책’이 나란히 올림말이어야 하고, ‘헌책집·새책집’처럼 적어야 맞습니다. 아무튼 우리로서는 “모든 책은 그저 책이고, 모든 책은 손길을 닿아서 읽혀야 비로소 책이다.”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따로 ‘헌책’만 예부터 한 낱말로 삼아서 가리켰고, 가난하던 일제강점기에도 헌책집이 꽤 열었으며, 한겨레싸움(한국전쟁) 한복판에 나라 곳곳에 헌책집이 한꺼번에 잔뜩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헌책 = 손이 닿은 책 = 손길책’입니다. 손이 닿은 책이란 “읽힌 책”이니, “읽히는 책 = 손길이 닿아 빛나는 책 = 손빛빛”입니다.


  이 얼거리를 안 살핀다면, 언제까지나 ‘헌책은 구질구질하거나 지저분하거나 낡거나 케케묵거나 뒤떨어진 옛날 책’이라는 꼰대스러운 마음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헌책’은 낡은 책이 아닙니다. ‘낡은책 = 줄거리·이야기가 낡은 책 = 지은이 마음이 낡아빠져서 새길을 하나도 안 쳐다보거나 못 알아보는 책’입니다. 종이가 허름하대서 낡은 책이지 않아요. ‘헌책’이란 이름에 붙는 ‘헌’은 ‘한·하늘’하고 맞물리는 말뿌리입니다. ‘헌집·헌옷’을 가리킬 적에 쓰는 ‘헌-’은 모두 “손길을 받아 새롭게 쓰이고 빛나는 살림”을 속뜻으로 품어요. 이러한 말결은 바로 ‘하늘’하고 닮지요.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우리가 늘 ‘새롭게 마시고서 새삼스레 뱉은 숨(바람)’이 하나로 이룬 덩이입니다.


  《헌책 낙서 수집광》은 ‘낙서 수집광’처럼 부러 예스러이 한자말을 여미는 책이름에, 다룬 책이나 줄거리도 조금 예스러운 티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굳이 예스러운 티를 내야 할는지 아리송해요. 모든 책은 책이면서 헌책일 뿐이기에 새책인데, ‘새롭게 읽는 마음’으로만 바라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낙서 수집’을 하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담아 쪽글을 새로 넣고서 다시 헌책집 책시렁 한켠에 깃들도록 내놓아서 두고두고 되읽히는 책으로 나아가는 길’을 고즈넉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낙서 수집광’처럼 멋부리는 이름은 그만 내려놓고서, ‘기담 수집’처럼 멋내기는 이제 그만하면서, ‘이야기 찾기’하고 ‘이야기 새로짓기’에 마음을 둘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야기가 흐르기에 책이요 헌책입니다. 이야기가 없이 장사에 마음을 빼앗기기에 새책이자 낡고 고리타분한 꼰대책입니다.


ㅅㄴㄹ


솔직히 내가 상상으로 그리던 초인의 모습도 바로 이렇게 평범한 느낌이다. (46쪽)


사실 이 문장이야말로 책 탕진의 정석이라 부를 만하다. 우선 탕진은 무엇보다 충동적이어야 한다. (177쪽)


사실 사회과학서점에서 책을 싸주던 이유는 책을 보호하기보다는 그 책을 가진 사람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컸다. (191쪽)


어린이였을 때 나는 이미 어른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어른의 경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256쪽)


책을 빼앗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살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건 얼마나 맥빠지는 일인가. (3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 붙임

: 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쓴 책싸개는 ‘그 책을 가진 대학생을 보호하는 목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이 뜻만 있다고 할 수 없고, 이 뜻이 크다고 할 수도 없다. ‘대학교 앞 책집 이름이 깃든 책싸개’는 ‘그 대학 출신임을 자랑하려는 뜻’이 훨씬 컸다. 책싸개는 인문사회과학서점뿐 아니라 ‘대학 구내 서점’에서도 나란히 썼고, 대학 구내 서점은 1950∼60년대에도 있었는데, 그때에도 그 대학 구내 서점은 ‘책싸개’에 ‘대학교 이름’을 큼지막하게 넣었다. 틀린 이야를 함부로 쓰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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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작은도서관이 있습니다
박소희 지음, 전혜선 사진 / 책숲놀이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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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20.

읽었습니다 218



  ‘도서관’하고는 다른 곳으로 자리잡은 ‘작은도서관’입니다. 이름에 ‘작은-’을 붙여야 할 까닭은 없을 테지만, 나라(정부)에서는 벼슬꾼(공무원)들이 다루기(관리) 좋도록 ‘도서관·작은도서관·어린이도서관’처럼 이름부터 가릅니다. 그런데 왜 책숲을 크기로 갈라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봐야겠고, 따질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책숲은 크기가 아닌 ‘마루책숲(서재도서관)·마을책숲(지역도서관)·나라책숲(국공립도서관)·고을책숲(시군립도서관)·배움책숲(학교도서관)’으로 살피면서 ‘씨앗책숲·푸른책숲·그림책숲’처럼 갈래를 새로 뻗고, ‘빛책숲(사진책도서관)·말꽃책숲(국어사전도서관)’처럼 새록새록 여밀 만합니다. 《우리 동네에는 작은도서관이 있습니다》를 읽었습니다. 다 다른 마을책숲하고 씨앗책숲은 저마다 마을에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텐데, 책을 왜 읽고 스스로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더 느긋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뭉뚱그리지 말고서.


《우리 동네에는 작은도서관이 있습니다》(박소희 글·전혜선 사진, 책숲놀이터, 2019.11.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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