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 숲노래 우리말

나는 말꽃이다 135 꾸밈글



  “꾸미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처럼 생각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만, 낱말책에 담는 뜻풀이는 꾸며서 쓰면 어울릴까요? 한자말 ‘설명문’이란 이름을 붙일 적에는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풀어서 쓰는 글”이라고 하되, ‘문학’이라 하면 “보기에 좋도록 꾸며서 쓴 글”로 여겨 버릇합니다. ‘예술’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빛”이 아닌 “보기에 좋도록 꾸며서 나타내는 빛”으로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꾸밈’을 영어로 옮기면 ‘디자인’입니다. 똑같은 알맹이여도 겉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둘레에서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지니, 더 널리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꾸민다고들 합니다. 글(문학)도 살림(예술)도 꾸며야 좋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속을 가꾸지 않고, 겉만 꾸민다”고 한다면 “알맹이는 그대로인데, 겉모습으로 속이는 길”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낱말풀이뿐 아니라 모든 글은 구태여 꾸미기보다는 가꿀 노릇 아닐까요? 가꾸는 마음이 사라지고 꾸미는 손짓만 늘면서 허울좋은 글이 넘치지 않나요? “꾸미면 꾸밈글”이요, “삶·넋·생각·마음·사랑·살림·숲을 그대로 담으면 글”이라고 느낍니다. 꾸밈글은 돈을 꾸듯 억지로 빈자리를 채우는 눈가림입니다. 글은 그대로 사랑하는 참빛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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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넋 / 숲노래 말빛

곁말 102 짐나래



  둥그렇게 짓는 ‘둥지’입니다. 둥그렇게 엮어 서로 몸을 맞대어 함께 있는 ‘둥우리’입니다. 새는 곧바로 날아오를 만하도록 집을 짓습니다. 나무줄기에 구멍을 내어 깃든다면 담이나 지붕이 있는 셈이고, 나뭇가지나 우듬지나 굴뚝에 얼기설기 보금자리를 이루면 지붕이 없는 셈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에는 ‘지붕’이 있습니다. 지붕을 두며 살림을 짓고 이루며 있는 곳이 집이라고 할 만합니다. 일본말 ‘택배(宅配)’는 “집으로(택宅) 나른다(배配)”는 뜻입니다. 이 일본말을 뜯으며 ‘나르다’를 들여다봅니다. ‘나르다’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져다주는 몸짓을 나타내는데, ‘날’듯이 가볍고 부드러이 흐르는 결입니다. ‘옮기다’는 묵직한 것이 고스란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도록 하는 몸짓이에요. 힘을 들여 차근차근 가져다주거나 자리를 바꾸는 ‘옮기다’라면, 가볍고 부드럽고 빠르게 날듯이 흐르는 ‘나르다’입니다. 이런 말결을 헤아려, 짐에 나래(날개)를 달듯 징검다리 노릇을 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짐나래’ 같은 이름을 붙여 봅니다. 단출히 ‘나래·날개’라고만 해도 어울릴 테고요. “나래 왔습니다”나 “나래 보냅니다”나 “나래입니다” 하고 말하면 서로 날아오르듯 새로우리라 생각합니다.


짐나래 (짐 + 나래) : 짐에 나래(날개)를 달듯이 가볍고 즐겁게 띄우거나 잇거나 나르는 일, 또는 이 일을 하는 사람. (= 짐날개·짐꾼·짐벗·나름이. ← 포터, 운반, 운송, 운반원, 운송인, 배달부, 배달원, 택배, 택배기사, 집배, 집배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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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2 놀이



  어린이 누구나 집·골목·마을을 비롯해 들숲바다하고 멧골하고 냇물에서 놀던 무렵에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기쁘게 일하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신나게 놀면서 어우러졌어요. 어린이 누구나 어디에서도 뛰어놀 틈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거의 모두라 할 사람들이 걱정투성이입니다. 이제는 어른이며 어린이가 나란히 걱정꾸러기입니다. 어린이로서는 실컷 뛰놀 터전을 몽땅 빼앗기고, 어른으로서는 이웃하고 기쁘게 얼크러지며 땀흘리던 삶터를 잃었어요. 빈터를 차지하고 잡아먹는 부릉이입니다. 빈터에 들어서는 끝없는 가게입니다. 빈터마다 빼곡하게 박는 갖은 알림판(광고판)입니다. 눈을 느긋이 둘 틈이 없고, 숨을 가벼이 돌릴 틈이 없습니다. 서울도 시골도 온통 부릉부릉 시끄러워 멧새가 노래하고 바닷새가 춤추는 모습을 눈여겨볼 틈새가 없다시피 합니다. 예부터 어른들은 “책 좀 그만 읽고 놀아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종이꾸러미에 담은 줄거리가 알차더라도 먼저 몸뚱이를 바람한테 맡기고 들꽃한테 띄우고 해랑 눈비한테 보낼 적에 깊고 넓게 삶을 익혀 사랑에 눈뜬다고 여겼어요. 아이어른 모두 한 손에 책을 쥐려 한다면, 다른 손에는 신바람으로 놀이를 누릴 숲을 놓아야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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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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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9 구체적



  오늘날 우리가 쓰는 숱한 말은 ‘아직 얼마 안 된 말씨’이기 일쑤입니다. 200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 말씨는 1900년을 살던 사람들 말씨하고 더없이 달라요. 1800년을 살던 사람들 말씨하고 1900년을 살던 사람들 말씨는 조금 다르겠지만 이럭저럭 비슷할 만하고, 1700년이나 1600년이나 1500년을 살던 사람들은 1900년을 살던 사람하고 이럭저럭 생각을 나눌 만하다고 느낍니다. 1500∼1900년을 살아간 사람들은 말씨가 만날 수 있되, 2000년 사람들 말씨하고는 만나기 어려워요.


  더 들여다보면, 2000년을 살아가던 사람하고 2010년을 살아가던 사람하고 2020년을 살아간 사람하고도 어쩐지 울타리가 있습니다. 1990년이나 1980년으로 거스르면 더더욱 울타리가 있어요.


  더 살피면, 2030년이나 204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 말씨는 2020년을 살아간 사람들 말씨하고 제법 다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삶터가 바뀌는 만큼 말씨가 확 바뀌고, 살림살이가 달라지는 만큼 말씨는 훅훅 달라집니다.


구체적(具體的) : 1.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도록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는 2. 실제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담고 있는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구체적’이라는 낱말을 이처럼 풀이합니다만, 뜻풀이가 하나도 안 쉽습니다. 어쩌면 뜻풀이부터 두루뭉술합니다.


ぐたい-てき[具體的] : はっきりとした實體を備えているさま。個個の事物に卽しているさま。⇔ 抽象的。


  일본 낱말책에서 ‘具體的’을 찾아보면 “뚜렷한 실체를 갖춘 모양. 개개의 사물에 빠져 있는 모양”으로 풀이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쓰는 ‘구체적’은 무늬는 한글이되 알맹이는 일본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엮거나 지은 낱말이 아닌,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오던 즈음 스며서 퍼진 말씨예요.


  서슬퍼런 그날(일제강점기)이 지나갔어도 ‘구체적’이란 일본 말씨는 이 나라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글힘을 쥔 글바치·벼슬아치·나라님은 일본 말씨를 그대로 붙잡았습니다. 우리 마음을 우리 말글로 담거나, 우리 살림을 우리 말글로 옮기거나, 우리 삶터를 우리 말글로 그리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못 했어요.


 구체적 모습 → 속모습 / 제모습 / 온모습

 구체적 사례 → 보기 / 낱낱 보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면 ← 이를테면 / 보기를 들면


  무엇이 ‘구체적’일까요? 낱낱이 낱말을 살피지 못 하면서 뜬구름을 잡는 마음으로 쓰는 숱한 일본 말씨 가운데 하나일 ‘구체적’이지 않을까요? 뚜렷하게 밝힐 줄 모르고, 환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뭉뚱그리는 엉성한 말씨인 ‘구체적’이지 않나요?


 구체적 대안 → 뚜렷한 길 / 또렷한 길

 구체적 경위를 밝히다 → 까닭을 하나씩 밝히다

 구체적 근거가 없다 → 따로 들지 못하다 / 밑바탕이 없다


  콕 집어서 말하면 됩니다. 우리말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말은 다 콕 집어서 가리킵니다. 이 뜻도 담고 저 뜻도 나타내는 말이라고 에두를 일이 없어요. 이 자리에서는 이 뜻으로 쓸 말이요, 저 자리에서는 저 쓰임새로 다룰 말입니다.


  꾸밈없이 쓸 말이고, 구석구석 짚을 말입니다. 여러모로 헤아리면서 나눌 말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주고받는 말이에요.


 구체적인 내용 → 낱낱 이야기 / 여러 이야기 / 속이야기 / 알맹이 / 속살

 구체적으로 말하다 → 낱낱이 말하다 / 차근차근 말하다 / 뚜렷이 말하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논의하다 → 하나하나 따지다 / 작은 곳까지 다루다


  둘레에서 일본 말씨 ‘구체적’을 어느 자리에 쓰는지 하나씩 그러모으면서 손질을 해보는데, 이동안 여러모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2000년을 살거나 2020년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1950년이나 1900년이나 1850년이나 1700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낱말을 혀에 얹어서 ‘구체적’이란 일본 말씨로 가리킬 뜻을 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골똘히·곰곰이·꼼꼼히·촘촘히·빈틈없이

낱·낱낱·낱낱이

하나·하나하나·하나씩

콕·조금씩·조곤조곤

뚜렷이·환히·제대로·깊이

속·속깊이·속살·속알·알맹이

온·제·보기

고스란히·그대로·있는 그대로

찬찬히·차근차근·차분히·지긋이

여러·여러모로·여러 가지·따로·딱히

꾸밈없이·숨김없이·남김없이·구석구석

아주·무척·매우·몹시·잘

더·더욱더·더욱·좀더

덧붙이다·보태다·붙이다

그러니까·곧·이른바·이를테면

막상·정작

삶·살림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닿는”이라면 수수하게 “살갗에 와닿는”이나 “살가운”이라 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생활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라면 수수하게 “삶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라 하면 되어요. 살갗에 와닿을 적에는 이미 ‘낱낱(구체적)’으로 ‘깊게’ 닿는다는 소리입니다. ‘삶(생활)’에 뿌리를 내린다고 할 적에도, 삶이란 언제나 ‘낱낱’으로 ‘깊’고 ‘또렷’하고 ‘환하’게 드러나지요.


강수량은 구체적인 모델을 설계하기가 굉장히 까다롭지만

→ 비가 얼마나 내릴지는 헤아리기 몹시 까다롭지만

→ 비가 얼마나 올는지 내다보기가 참 까다롭지만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이라면 수수하게 “꼼꼼히 밝혀내지 못하는”이나 “빈틈없이 밝히지 못하는”이라 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는 “틀을 잘 세워야 좋다”라 하면 되지요. 꼼꼼히 하고, 곰곰히 하고, 골똘히 하면 됩니다. 잘 세우고, 하나하나 세우고, 빈틈없이 세우고, 찬찬히 세우고, 차근차근 세우면 되어요.


내려놓아라. 방하착放下着. 널리 알려진 이 불교용어가 나에게 구체적으로 찾아와 힘을 발휘한 것은

→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널리 알려진 이 불교말이 나한테 깊이 찾아와 힘을 낸 때는

→ 내려놓아라. 널리 알려진 이 불교말이 나한테 살갗으로 찾아와 힘을 낸 때는


  우리가 쓸 말이란, 삶을 그릴 말입니다. 우리가 주고받을 말이란, 서로 마음을 나타낼 말입니다. 어느 낱말을 골라서 써도 나쁘지는 않되, 우리 삶터는 우리가 살아온 이 땅에서 스스로 살림을 지은 마음하고 손길로 여민 낱말로 그리거나 나타낼 적에 어울립니다. 때로는 이웃말(외국어)을 들여올 수 있을 텐데, 처음에는 이웃말을 들이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녹여내어 새롭게 우리 말씨를 일굴 적에 넉넉하고 즐거우면서 쉽겠지요.


지금은 뜻이 달라진 말에 관해 구체적으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 이제는 뜻이 달라진 말을 거의 알 수가 없다


  오래도록 쓴 말씨에서 귀띔을 얻을 수 있어요. 누구나 쓰는 말씨에서 수수께끼를 풀 길을 엿볼 만합니다. 흔하게 쓰는 말씨에서 문득 깨달을 만해요.


  삶을 보면 말이 태어납니다. 살림을 지으면 말이 깨어납니다. 삶하고 살림이라는 길을 조곤조곤 다스리면서 차근차근 넋을 지피는 슬기로운 마음을 말 한 마디에 담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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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의 문학 - 구조 요청의 동역학 카이로스총서 55
김대성 지음 / 갈무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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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문학읽기 2023.4.1.

인문책시렁 302


《대피소의 문학》

 김대성

 갈무리

 2018.12.31.



  《대피소의 문학》(김대성, 갈무리, 2018)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저는 ‘대피소’ 같은 한자말을 안 쓰지만,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키거나 뜻하는지는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이 말을 쓸 일은 없되, 아이들하고 함께 읽는 책이나 같이 다니는 곳에 문득 이 낱말이 나오면 풀어내 줄 테니까요. 아이들이 이 말을 쓸 일이 없더라도, 책이나 길에서 얼핏 보고서 무엇인지 알도록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어요.


  한자말 ‘대피’는 ‘달아남·내뺌’이나 ‘비낌·떠남·감·등짐’을 나타냅니다. ‘대피 + 소’ 얼개로 바뀌면 ‘돌봄터·쉼터’로 바뀌지요. 앞뒤에 붙는 말씨에 따라 쓰임새가 바뀌곤 합니다.


  마흔 살이 넘도록 그냥그냥 ‘문학’이란 한자말을 썼으나, 이제는 ‘글’이라고만 하거나 ‘글꽃’이라고도 합니다. 한자말 ‘문학’을 일본사람이 총칼을 앞세워 이 나라를 집어삼키고서 훅 퍼뜨렸기 때문에 안 쓰지 않습니다. 열아홉 살을 넘어서던 무렵에는 ‘국어’ 아닌 ‘말·우리말·한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스물다섯 살을 넘어서던 즈음에는 ‘사회’ 아닌 ‘터·마을·삶터·집·나라’를 쓰자고 생각했고, 서른 살을 넘어서던 때에는 ‘학교’ 아닌 ‘배움터·집’을 쓰자고 생각했고, 서른다섯 살을 넘어서던 때에는 ‘정치·경제’ 아닌 ‘벼슬·다스림·길’하고 ‘살림·돈’을 쓰자고 생각했어요. 마흔 살 무렵에 ‘문화’ 아닌 ‘삶·꽃·살림·지음·오늘·집밥옷·길·밭·바탕·멋·놀이’를 쓰자고 생각했고, 마흔다섯 언저리에 비로소 ‘문학’을 내려놓고서 ‘글·꽃·글꽃·이야기·노래·수다’를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말 한 마디를 새로 품을 적마다 스스로 피어나게 마련입니다. 다만, 이 말을 품기에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저 말을 움켜쥐거나 붙잡는대서 못나거나 볼꼴사납지 않습니다. 이 말을 품는 사이에 스스로 피어나는 삶이 있고, 저 말을 틀어쥐는 동안 스스로 죽어가는 빛이 있을 뿐입니다.


  말이란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삶입니다. 삶이란 살림이고, 살림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넋이고, 넋이란 숨결이요, 숨결이란 빛인데, 빛이란 씨앗이고, 씨앗이란 꿈이면서, 꿈이란 밤이지요. 밤은 어느새 밤으로 갑니다. 이리하여 ‘말’을 받은 ‘밤’은 처음부터 새삼스레 꿈을 거치고 씨앗을 지나고 빛을 지나 새록새록 마음에까지 이르러요.


  우리는 밤이라는 곳에 고요히 있다가 문득 눈을 뜨면서 말을 터뜨립니다. 한달음에 ‘밤 → 말’로 나아간다고 여겨도 되지만, 이 한달음 사이에 거치거나 디디는 숱한 길을 차근차근 짚어도 됩니다. 눈을 뜨기에 나랑 너를 나누고, 나랑 너 사이에 흐르는 바람을 알아보며, 나랑 너가 우리이면서 남인 줄 깨닫습니다. 하나가 둘로 갈리면서 하늘이 열리고, 열린 하늘은 둘이자 여럿이자 모두이면서 울타리처럼 하나이기도 하기에 ‘한울’이요 ‘우리’인 줄 느낄 만합니다.


  “쉬는 글꽃(대피소의 문학)”이란 몸도 마음도 쉬는 글길이자, 바람을 마쉬는(들이쉬고 내쉬는) 글빛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글님은 부산 글판이며 서울 글판에서 맞닥뜨린 터무니없거나 얼척없거나 뜬금없는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새롭게 글씨앗으로 여미어 내놓았습니다. 엉터리스러운 짓을 일으킨 분들은 ‘나쁘지 않’되 ‘낫지 않’기도 합니다. 그저 그분들은 그분들 삶을 걸어가면서 그런 짓을 스스로 일으켜서 겪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나무랄 일도 다그칠 까닭도 탓할 이야기도 없어요. 그냥그냥 그분을 물끄러미 보면서 우리 스스로 새삼스레 여밀 오늘 이 글사랑을 헤아리고서 품으면 넉넉합니다.


  이름을 내세우려고 쓰는 글은 가엾습니다. 힘을 앞세우면서 내거는 빛꽃(사진)은 창피합니다. 돈을 벌어들이며 내놓는 그림은 불쌍합니다. 다만, 이렇게 느낄 뿐입니다. 그분들은 이름이랑 힘이랑 돈을 거머쥐면서 해낙낙하니까 그 길을 갈 뿐이에요. 우리는 이름·힘·돈이 아닌 삶·살림·사랑을 바라보기에, 시골에서도 서울(도시)에서도 숲빛으로 마음을 다독이면서 이곳에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어깨동무를 하면서 놀이를 하고 노래를 할 뿐입니다.


  삶·살림·사랑에는 숨이 흐릅니다만, 이름·힘·돈으로는 숨막힙니다. 글판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이름·힘·돈을 털어내고서 홀몸으로 가벼이 서면서 아이들 곁에서 수다꽃을 피우실 수 있다면, 우리나라 글꽃에서 술판이나 노닥판은 저절로 사라질 테고, 그 나물에 그 밥인 끼리질(커넥션)이며 돌라먹기는 눈녹듯 사그라들리라 봅니다.


ㅅㄴㄹ


중요한 것은 텅 빈 이곳을 무언가로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놓쳐버린 끈을 다시 그러잡는 것이며 닫힌 문을 두드려 막힌 통로를 뚫어내 안팎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67쪽)


신경숙 사태가 2000년대 초반의 문학 권력 논쟁의 반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건 신경숙과 대형 문학 출판사의 공모만이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까지 독점적인 방식으로 반복될 때 비평은 정체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116쪽)


‘선배’ 편집위원들이 대개가 어느 대학의 교수인 상황에서 젊은 비평가들 또한 대부분이 대학원 출신이어서 이들의 문단 활동이나 편집회의 참여는 단순히 글을 기고하거나 잡지를 만드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계와 직결된 경우가 많다 … 대학 강의가 문서상으론 초빙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정규직 교수가 ‘나눠주는 것’으로 관습화되어 있듯이 편집위원이라는 직책 또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할당’되는 것에 가깝다. (119, 120쪽)


오늘날의 한국 문학장은 하나의 성城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는 기이한 성 … 힘들게 시민권을 배당받아 성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성 밖으로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안은 실체 없는 ‘대의’로 넘쳐나고 혼자의 몸으로 그러한 ‘대의’를 거스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안의 대의’는 스스로 ‘서는 것’을 스스로 ‘걷는 것’을, 스스로 ‘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135, 139쪽)


‘문학의 곳간’을 연다는 것은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문학과 접속할 수 있는 다른 면들을 발명하고 실험한다는 것이다. (228쪽)


몰개성적인 케이블카는 대도시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그곳의 풍광을 마음놓고 감상하는 데 최적화된 관광 상품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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