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휴일 2
신조 케이고 지음, 장혜영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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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만화책 2023.4.3.

넌 오늘 꿈을 그렸니


《매일 휴일 2》

 신조 케이고

 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7.30.



  《매일 휴일 2》(신조 케이고/장혜영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2)을 읽으며 삶과 꿈 두 가지를 돌아봅니다. 삶이란, 우리가 몸으로 맞닥뜨리거나 맞이하는 오늘입니다. 꿈이란, 우리가 마음에 담아서 날마다 새롭게 지피는 생각입니다. 몸으로 삶을 치르거나 겪기에 하나하나 배웁니다. 마음으로 꿈을 그리거나 담기에 차근차근 자랍니다.


  삶만 있을 적에는 배울 수는 있되 늙기 쉽고, 꿈만 있을 적에는 머리만 쓰느라 몸이 시들어요. 삶 곁에 꿈을 나란히 두어야 비로소 한결같이 빛나는 오늘일 수 있어요. 꿈은 삶으로 올겨야 어느새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몸짓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살기에 쳇바퀴일 수 있으나, 시골에서 살더라도 톱니바퀴에 얽매일 수 있어요. 남이 시키는 대로만 일하면서 달삯을 꼬박꼬박 받다가 어느 나이가 찰 즈음 일터를 떠나야 한다면 쳇바퀴입니다. 스스로 심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논밭짓기가 아닌, 모든 씨앗을 나라(농협)에서 대주는 대로 해마다 다시 사서 심고 거두는데 나라(농협)에서 파는 틀(농기계)만 써야 하면서 나라(농협)에 팔기만 해야 하는 얼개라면 톱니바퀴에 갇혀요.


  나라(사회·정부·학교)는 사람들이 스스로 서는 길을 반기지 않습니다.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벼슬꾼(공무원)이 되거나 ‘나라하고 손잡는 일터’만 있기를 바라요. 그렇기에 곧잘 ‘스스로일꾼(자영업자·프리랜서)’을 쥐락펴락 흔드는 틀(정책)을 슬쩍 내놓습니다. 기름값이나 전기삯을 조금만 건드려도 스스로일꾼은 하나같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기름값이건 전기삯이건 아무리 건드려도 벼슬꾼이나 ‘나라하고 손잡는 일터’는 안 흔들려요.


  그림꽃 《매일 휴일》에 나오는 젊은이나 어르신은 ‘삶과 꿈’이라는 두 빛줄기를 나란히 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꾸 담벼락에 부딪히고, 또 울타리에 걸리고, 거듭 도랑에 빠집니다. 쉽게 흔들리고, 마냥 어지럽고, 알게 모르게 망설여요. 앞길은커녕 저녁에 어떤 밥을 차려서 먹거나 사다가 먹을는지부터 갈피를 잡기 쉽지 않습니다.


  아침은 날마다 찾아옵니다. 저녁은 날마다 다가옵니다. 밤은 날마다 흐릅니다. 하루는 멈추는 일이 없고, 늦게 가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하루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이 삶을 다스려야 웃을 만할까요? 모든 나날을 어떻게 맞아들이면서 우리 꿈을 씨앗으로 심어야 노래할 만할까요?


  저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나날을 보내는 내내 저녁에는 “이제 꿈을 그리면서 잠들렴.” 하고 속삭이고, 아침에는 “이제 하루살림을 그리면서 일어나렴.” 하고 읊습니다. 참말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꼬박꼬박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고, 제 마음에 대고 새록새록 되새기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 몸을 입고 살아가는 이곳에서 삶을 밝히며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 마음을 펴면서 꿈꾸는 한밤에 별빛을 품고서 쉬려고 합니다. 낮에는 낮새가 베푸는 노래를 싱그럽게 들으면서 꽃망울을 바라봅니다. 밤에는 밤새가 펴는 노래를 그윽하게 품으면서 땅기운이며 숲기운이며 별기운이 천천히 스미기를 바랍니다.


  바람소리는 바람노래 같아요. 빗소리는 비노래로구나 싶어요. 바다물결은 바다노래이고, 냇물결은 냇물노래입니다. 새가 펄럭이는 날갯짓도 다 다르게 퍼지는 노래입니다. 우리 하루도 나날이 새롭게 노래씨앗이 퍼지면서 반짝입니다.


ㅅㄴㄹ


“월말이라 돈이 없어.” “고기! 풍부한 단백질∼.” “그럼 너도 슬슬 아르바이트라도 하든가.” “윽.”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으윽. 알바하기 싫은데. 일하기 싫어.” (5쪽)


“도마를 깎고 있었어요. 너무 더러워서요.” ‘지금 그 말을 왜 해? 아아, 여전하네. 히로토 오빠는 옛날부터 흥분하면 묘하게 차분해져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으니까.’ (10쪽)


‘친구의 의외의 강단에 놀란 알바 첫날이었습니다.’ (45쪽)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피카소가 14살에 그린 데생을 보고 절망했다. 이런 재능은 나에게는 없어.’ (50쪽)


‘나츠는 참 좋겠다. 가까이에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59쪽)


“다치바나 씨, 저는 매년 칠석 축제날 밤에는 여기에 와요.” “왜요?” “여기서 보이는 축제날 풍경이 좋아서요.” (115쪽)


‘고향 집에 머물 때는, 속마음이 나오기 쉬운 법.’ (130쪽)


#ひらやすみ #真造圭伍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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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번역 飜譯


 우리말로 번역이 안 되었지만 → 우리말로 옮기지 않았지만

 직접 번역된 것은 없었다 → 바로옮긴 글은 없다

 국어로 번역하다 → 우리말로 바꾸다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다 → 이웃말로 담기는 쉽지 않다


  ‘번역(飜譯)’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 ≒ 수역·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옮기다·글옮기다’나 ‘풀다·담다·갈음’으로 고쳐씁니다. ‘바꾸다·고치다’나 ‘삭이다·곰삭이다’로 고쳐쓸 만하고, 때로는 ‘알아내다·알아듣다·알아맞히다·알아보다·알아차리다’로 고쳐씁니다. ㅅㄴㄹ



완전무결한 번역을 만나기란 아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 위해

→ 깨끔한 옮김말을 만나기란 아주 쉬운 일이 아닌 줄 다시 새기도록

→ 말쑥한 옮김말을 만나기란 아주 쉬운 일이 아닌 줄 되새기고자

《한국과 西洋》(정기수, 을유문화사, 1988) 190쪽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그 번역은 나의 아내가 했고

→ 우리 곁님이 우리말로 옮겼는데

《중고생을 위한 도올 선생의 철학 강의》(김용옥, 통나무, 1986) 99쪽


단행본으로는 나오지 않은 번역 등은 이 부록에서 제외되었다

→ 낱책으로는 나오지 않은 옮김글은 이 꾸러미에서 뺐다

→ 낱책으로는 나오지 않은 옮김글은 여기에 안 넣었다

《한국과 西洋》(정기수, 을유문화사, 1988) 279쪽


자신과는 이질적인 것을 번역문으로 읽고 있는 거라고 자각하기만 한다면 

→ 저와는 다른 삶을 옮김글로 읽는다고 스스로 느끼기만 한다면

→ 나와는 사뭇 다른 길을 옮김말로 읽는다고 깨닫기만 한다면

→ 우리하고는 동떨어진 살림을 옮김말로 읽는다고 스스로 알기만 한다면

→ 우리하고는 다른 삶을 옮김말로 읽는다고 스스로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번역과 일본의 근대》(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임성모 옮김, 이산, 2000) 34쪽


번역 과정에서 한국적 상황과 정보로 바뀌었다

→ 우리말로 옮기며 한겨레 결과 얘기로 바꾸었다

→ 한말로 옮기며 우리 흐름과 얘기로 바꾸었다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앨런 테인 더닝·존 라이언/고문영 옮김, 그물코, 2002) 6쪽


일상적 언어생활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번역어로 사용하려 했던 그의 배려였는지도

→ 여느 삶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을 옮김말로 삼으려고 마음을 썼는지도

→ 수수한 삶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말로 옮겨내려고 마음을 기울였는지도

→ 흔히 알 수 있는 말로 옮기려고 마음을 썼는지도

→ 쉽게 알 수 있는 말로 옮기려고 마음을 기울였는지도

《번역과 일본의 근대》(최경옥, 살림, 2005) 33쪽


번역을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번역 실력을 테스트 받는 것이 필요하다

→ 옮겨 보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아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옮김 솜씨를 다른 분이 살피도록 맡겨야 한다

→ 옮겨 보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아는데 그럴수록 옮김 솜씨를 다른 사람이 따져 보도록 맡겨야 한다

《지하철 헌화가》(이종인, 즐거운상상, 2008) 59쪽


그는 오늘도 예의 그 번역투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다

→ 그는 오늘도 바로 옮김말씨를 신나게 쓴다

→ 그는 오늘도 그 옮김말씨를 힘차게 쓴다

《우리말 소반다듬이》(권오운, 문학수첩, 2011) 45쪽


단, 운석이 네게서 떨어지면 번역자는 사라지는 거야

→ 다만, 별돌이 네게서 떨어지면 옮김이는 사라져

→ 그런데, 별똥이 네게서 떨어지면 옮김이는 사라져

《해수의 아이 5》(이가라시 다이스케/김완 옮김, 애니북스, 2013) 44쪽


번역 실력이 출중한 이분은

→ 훌륭히 옮기는 이분은

→ 옮김 솜씨가 뛰어난 이분은

《나는 어머니와 산다》(한기호, 어른의시간, 2015) 99쪽


하야카와의 직업은 번역가입니다

→ 하야카와는 옮김이입니다

→ 하야카와는 글옮김이입니다

→ 하야카와는 옮김빛입니다

→ 하야카와는 옮김일꾼입니다

《너의 곁에서》(마스다 미리/박정임 옮김, 이봄, 2016) 5쪽


번역문만으로는 완전히 느낄 수 없는 언어적 묘미를

→ 옮김글만으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말맛을

→ 옮긴 글만으로는 오롯이 느낄 수 없는 말결을

《오스카리아나》(오스카 와일드/박명숙 옮김, 민음사, 2016) 9쪽


우리가 나무의 언어를 번역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우리가 나무 말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다라 매커널티/김인경 옮김, 뜨인돌, 2021) 88쪽


번역가 노승영의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 옮긴이 노승영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책의 사전》(표정훈 글, 유유, 2021)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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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숲노래 숨은책 2023.4.3.

헌책읽기 10 두 민족의 접점에서



  안 읽히거나 사라지는 책에는 안 읽히거나 사라지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지은이가 잘 쓰지 못 해서 안 읽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눈먼 종살이를 하는 탓에 스스로 안 알아보거나 못 알아볼 뿐 아니라, 허물벗기나 날개돋이를 아예 생각조차 안 하는 탓이 대단히 큽니다. 《두 민족의 접점에서》는 일본에서는 제법 읽힌 책이고, 한글판이 가까스로 태어난 책이되, 고침판이 한 벌 나오기는 했으나 까맣게 잊힙니다. 글님은 예나 이제나 꾸준히 한·일(일·한) 두 나라 사이를 마음으로 잇는 징검다리라는 길을 천천히 가꿉니다. 노래님 이상은 씨는 글님이 도와준 손길에 힘입어 새길을 걸을 수 있었다지요. 잊혀진 헌책을 2022년에 문득 장만했고, 곰곰이 읽고서 열여섯 살 큰아이하고 함께 읽었습니다. 이 책이 갓 태어난 1989년부터 2023년에 이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안 바뀌는 굴레를 엿보면서, 두 나라뿐 아니라 ‘두 나라에 깃든 사람들과 벼슬꾼과 먹물꾼’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1961년에 태어난 글님은 두 이름을 품습니다. 하나는 ‘강신자’요, 둘은 ‘쿄 노부코’입니다. 글님은 으레 한자 ‘姜信子’로 적으면서 ‘강신자’ 아닌 ‘쿄 노부코’로 읽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면서 두 나라와 두 살림과 두 마음을 하나로 어우르면서 사랑이라는 빛길을 걸어가려는 뜻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한글·한말을 익히려고 무던히 애쓰셨다는데, 적잖은 한글책을 일본글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자이니치’라는 일본 말소리를 쓰는 분이 많고, 남녘에서는 ‘재일교포’라 하고 북녘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 합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라면 ‘일본한겨레’라 하면 될 텐데요. ‘중국한겨레·일본한겨레·한국한겨레·미국한겨레’처럼 쓰면 되리라 봅니다. 뿌리를 내린 터전이 다르되, 이 푸른별에서 이루려는 뜻은 다툼질 아닌 어깨동무라면 ‘한겨레’를 넘어 ‘한사람·한사랑’으로 바라보면 될 테고요.



《두 민족의 접점에서》(강신자/송일준 옮김, 밝은글, 1989.10.10.)



대학을 1년간 더 다녔다. 소위 ‘취직차별’이 원인이다. 최초로 나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로 ‘차별’이 대두된 것이다. 아직 젊고, 일본에서 살아갈 일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나에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에서 거부되었다는 사실이 생사를 가름하는 문제로 다가왔다. (18쪽)


조선반도에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갖고 한글공부를 하고 있던 그 사람조차도 이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국과 재일한국인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뭘 알고 있겠는가. (27쪽)


“소중히 여겨 주어야 할 것이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시 친척들 사이에서 이 아이가 고통스런 입장에 서게 될지도 몰라. 자네밖에 없어. 그런 때에 딸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철저하게 지켜주어야 해.” 조용하게 천천히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말씀하셨다. (31쪽)


“하지만 우리들은 일본인, 한국인을 말하기 전에 같은 인간 아닌가요?” 내 물음에 차별철폐운동을 하고 있는 40세 정도의 남성은 대답했다. “넌 너무 어수룩해. 그런 건 현실도피의 말에 지나지 않아. 우리들은 인간이기 이전에 조선인이다.” (37쪽)


시어머니는 참으로 평범한 일본 여인. 줄곧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 분으로서 집에 틀어박혀 있는 가정주부보다 시야는 넓을지도 모른다. 매일 신문을 읽고 있어서 사회에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재일한국인의 지문날인거부를 눈여겨본 적도 없고 그 의미도 알 바 아니다. 원래 재일한국인을 본 적도 없는데다 말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참으로 미지의, 아들과 결혼할 여자로서 ‘나’라는 재일한국인이 나타난 것이다. (43쪽)


“왜 우리 집에서는 하나마츠리를 안 해, 엄마?”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습관이 없단다.” 참 시시하다고 생각하면서 언니들과 셋이서 손으로 히나사마를 만들었다 … 어린 마음에 ‘이건 손해잖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론 한국인 어린이를 위한 즐거운 행사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이 없었다. (55쪽)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셨다. “선생은 안 돼. 공무원도 안 되고 보통 회사 같은 데도 안 되는 거야. 기술이라도 지니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어.” 냉정하게 설명해 주셨다. (61쪽)


이것으로 세 번째의 실수였다. 밖에 나갈 때는 외국인등록증을 잊지 말 것. 이것은 재일한국·조선인에게는 상식이다. (102쪽)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 그 두 개의 마이너스도 서로 곱셈을 하면 플러스가 된다. ‘민족’과 같은 딱딱한 의식이 아니라 ‘재일한국인다움’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149쪽)


아버지는 가와사끼고를 나와 쥬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법조인이 되려는 꿈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사법시험을 치를 자격이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일본 기업에서 재일한국·조선인을 고용하려는 곳은 없었다. (156쪽)


미싱기름 냄새가 나는 작업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어머니, 손톱이 기름에 까맣게 물든 채 반제품을 나르고 차를 운전하시던 아버지. (161쪽)


“저는 한국 국적입니다만, 입사 때 무슨 지장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가진 분이 입사한 예는 없읍니다. 귀화한 분은 있읍니다. 다만 전례가 없을 뿐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176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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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숲노래 숨은책 2023.4.3.

헌책읽기 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98년 무렵, 둘레에서 신영복 님 책을 읽으라고 하기에 문득 집었다가 놀랐습니다. ‘한자말’ 아닌 ‘한문’이 그득하더군요. 《엽서》(너른마당, 1993)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1988)도 영 손이 안 갔습니다. 이분 책을 찾아 주기를 바란 이웃이 많아 커다란 《엽서》이든 처음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든 헌책집에서 찾아 주기는 하되 여러모로 껄끄러웠습니다. 책을 찾아서 건네며 늘 여쭈었어요. “이분 글이 뭐가 좋나요?” “응? 글이 안 좋아?” “이분 글을 누가 읽을 수 있나요?” “왜? 글이 어려워?” “잘 보셔요.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먹물붙이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이런 글을 어떻게 좋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아무리 줄거리가 좋다고 한들 이런 낡은 한문결을 그대로 종이에 찍어도 되나요?” “그건 좀 그러네. 그 대목은 생각해 보지 못 했네.” 얼추 스무 해 만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펼치지만, ‘천수고 불감불국(天雖高 不敢不局)’이라느니 ‘막견어은 막현어미(莫見於隱 莫顯於微)’라느니 ‘일우(一隅)’나 ‘필신기독(必愼其獨)’이나 ‘모필 서간문(毛筆書簡文)’이라느니, 누가 읽으라고 쓴 글인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스럽고 일본스러운 낡은 말씨를 안 버린다면, 이 나라 이 땅 이 터 이 마을을 새롭게 가꾸면서 어린이한테 물려주는 길을 어질거나 슬기롭거나 참하거나 아름답게 일구지 못 하겠다고 느낍니다. 더구나 ‘구정·설’이란 낱말을 나란히 쓰면서 ‘민속의 날’이란 이름을 나무라는 대목은 좀 어이없습니다.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던 노태우만 겨레얼이 빠진 짓일까요? ‘신정·구정’이라는 뜬금없는 한자말이야말로 겨레얼이 빠진 먹물잔치 아닐까요? 책이름에 깃든 ‘-으로부터의 + 사색’은 그냥 일본말입니다.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 ‘생각’을 쓸 생각이나 엄두나 마음이나 빛이나 넋이나 얼을 틔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뜻만 좋은 글을 쓰더라도 스스로 굴레(감옥)에 갇히고 이웃도 가두는 셈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햇빛출판사, 1988.9.1.첫/1993.6.1.중판1쇄)



천수고 불감불국(天雖高 不敢不局), 하늘이 비록 높아도 머리룰 숙이지 않을 수 없으며, 막견어은 막현어미(莫見於隱 莫顯於微), 아무리 육중한 벽으로 위요(圍繞)된 자리라 하더라도 더 높은 시점에 오르고 더 긴 세월이 흐르면 그도 일식(日食)처럼 만인이 보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에게 주어진 이 작은 일우(一隅)가 비록 사면이 벽에 의하여 밀폐됨으로써 얻어진 공간이지만, 저는 부단한 성찰과 자기부정(自己否定)의 노력으로 이 닫힌 공간을 무한히 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 감으로써 벽을 침묵의 교사로 삼으려 합니다. 필신기독(必愼其獨), 혼자일수록 더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227쪽/1977.10.15.)


그뿐만 아니라 어머님께서 전에 써보내 주시던 모필 서간문(毛筆書簡文)의 서체는 지금도 제가 쓰고 있는 한글 서체의 모법(母法)이 되어, 궁체(宮體)와는 사뭇 다른 서민들의 훈훈한 체취를 더해 주고 있읍니다. 어머님은 붓글씨에 있어서도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280쪽/1983.9.21.)


오늘은 구정입니다. 달력은 29일 밑에다 ‘민속의 날’이라 적어 놓아서 설이란 이름에 담기어 오던 민중적 정서와 얼이 빠져버리고 어딘가 박제(剝製)가 된 듯 메마른 느낌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296쪽/1987.1.29.)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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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4.3. 젖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우리말 ‘자리’를 언제 곰곰이 생각했는가 하고 되새기면, ‘곳·데·자리·터’가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이라고 느끼던 무렵입니다. 처음은 아마 열 살 무렵이고, 열여덟 살 즈음 얼핏 다시 생각하다가 잊은 뒤, 스물다섯 살에 새롭게 짚어 보았고, 서른아홉 살에 가만히 가누다가 마흔여덟 살에 이르러 갈무리를 마칩니다. ‘자리’를 알려면 ‘자’를 알아야 했고, ‘자다’를 알아야 했으며, ‘잠그다·잠기다’를 알아야 했는데, 돌고돌아 ‘자주·자꾸’에 ‘잦다·젖다’를 지나 ‘잣·젓’까지 알아야 매듭을 짓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기를 살리는 밥은 ‘젖’이라는 ‘물’입니다. 따로 ‘자리’랑 ‘젖’을 놓고 보면 둘은 그저 동떨어질 뿐이지만, 말밑을 하나씩 짚으면 둘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살’을 입고서 ‘살아’가는데,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이를 못 낳습니다. 참 수수께끼이지 않을까요? 그러나 사랑은 ‘사르는’ 불꽃이지 않아요. ‘살리는’ 길일 적에 사랑이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모든 말하고 마음하고 몸짓은 ‘산들바람’처럼 ‘산뜻’할 노릇이면서 ‘생생·싱싱·시원’할 노릇인데, ‘시원’이나 ‘시골’은 ‘심다·심·힘’으로 맞물립니다. ‘심다·심’은 ‘기르다·기운·기름’하고 비슷하면서 다르지요. ‘기르다’는 ‘자라다·잠·잠기다·자리·젖’하고 비슷한 결이 있으나 다릅니다. 하나를 보아야 하나를 알 수 있되, 하나만 보아서는 하나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말은 다 다르면서 하나이고, 수수께끼이면서 실마리이자, 노래이면서 놀이입니다. 이 얼거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순이돌이(남녀)는 겉몸이 다른 하나인 숨빛인 사랑인 줄 깨달을 테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새로운 하늘빛(하느님)인 줄 눈뜰 만합니다. 종교·교육은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눈뜨는 길을 가로막는 굴레입니다. 굴레는 바퀴 사이에 이어서 굴리면 부드러이 굴러가는 바탕이지만, 아무렇게나 끼우면 못 굴러가게 가로막는 틀입니다. 틀은, 사랑으로 세우면 새롭게 틔우는 튼튼한 자리이되, 억지로 붙잡으면 꽉 막힌 고약한 고린내일 뿐입니다. 좋음하고 나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좋음하고 나쁨을 가르려 하면서 “저놈은 나빠. 이쪽이 좋아.”하고 갈라치기를 하는 모든 짓은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인 줄 못 보도록 억누르는 고약한 우두머리 뒷짓입니다. 왜 “쉬운 말”이 모든 사람을 깨울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쉬운 말”을 듣고 자라면서 눈을 뜨고 마음을 가꾸거든요. 아이들한테 “어려운 말”을 집어넣어 자꾸자꾸 졸업장을 들이밀려는 이들은 ‘어른’이 아닌 ‘늙은 권력자’입니다. ‘쉽다 = 수수하다 = 숲’입니다. ‘쉬운말’은 ‘숲말’이고, ‘숲말’은 ‘사람말·사랑말’입니다. 쉬운 말을 안 쓰는 이들은 스스로 사람답지 않게 갇히면서, 이웃도 사람빛을 잃고 나란히 갇힌 종(노예)으로 나뒹굴기를 바라는 괘씸한 짓일 뿐입니다. 다만, 스스로 종인 줄 잊은 채 이웃을 종살이에 가두는 짓을 하더라도 나쁜놈은 아닙니다. ‘나쁜놈’이 아닌 ‘철이 들지 않아 눈을 뜨지 않은 몸’일 뿐입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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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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