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04-05 19:04 

안녕하세요 작가님 사진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저의 부족한 이해로 작가님께 추가적인 질문을 남기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먼저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사진을 찍고 사진책을 낸다는 행위까지 이어지는 것이 어떤의미 이신지 궁금합니다. 둘째는 ... 마지막으로 ˝이제 ‘사진가 시대‘는 끝났습니다˝라는 문단 뒤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며 있어 보이는 듯한 글을 쓰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인가요?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으시다면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숲노래 빛꽃 / 숲노래 사진비평 2023.4.6.



‘누’가 ‘말’을 하는가

― 사진길에 접어든 이웃님한테



  시골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시골을 모릅니다. 시골에서 안 살면서 시골을 안다고 할 수 없겠지요? 시골에서 안 살더라도 시골을 자주 오간다면 얼핏설핏 시골빛을 느끼거나 누리면서 헤아릴 만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지만 시골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시골이라는 터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습니다. 또는 시골이라는 터전에서 돈·이름·힘을 거머쥐거나 돌라먹으려고 하는 뒷짓이며 검은짓이며 막짓을 일삼는 이도 시골을 모를밖에 없습니다.


  숲에서 안 살면 숲을 모르겠지요. 숲에서 살더라도 숲을 안 사랑하면 숲을 모를 테고요. 서울에서 안 살면 서울을 모릅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서울을 안 사랑하면 서울을 모를 테고요.


  그런데, 시골이나 숲이나 서울에서 안 살더라도 시골이며 숲이며 서울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왜 ‘그곳에서 안 살아도 그곳을 알’ 수 있을까요?


  실마리는 매우 쉽습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시골을 안 사랑하면 시골을 모르게 마련이듯, 시골에서 안 살더라도 시골을 사랑하면 시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숲이나 서울에서 안 살더라도 숲이며 서울을 사랑하면 숲이며 서울을 알 수 있어요.


  다만, 살지 않는 몸으로는 속속들이 알지는 않습니다. 살지 않을 적에는 ‘기운·숨결·빛·마음’으로 압니다. 몸을 깃들여서 살아갈 적에는 ‘삶·살림·사람·터전’을 알게 마련입니다.


  사진을 누가 알까요? 사진기를 쥐기에 사진을 알까요? 사진을 찍기에 사진을 알까요? 사진찍기를 서른 해나 쉰 해쯤 해왔으면 사진을 알까요? 사진을 찍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사진을 알까요? 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기에 사진을 알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진사랑’을 하는 분이 잘 안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진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여럿 있으며, 사진강의·사진강좌도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야기가 오가는 사진은 ‘사진사랑’보다는 ‘사진기술·사진예술·사진문화’와 ‘사진계 학맥·인맥’하고 얽힙니다.


  ‘기술·예술·문화’가 나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술·예술·문화’만 한다면 ‘사랑’하고 동떨어지거나 등지게 마련이니, 사진을 오래 했다지만 오히려 사진을 모르고 맙니다. 시골에서 아흔 해를 살았어도 시골을 모르는 분이 숱하고, 서울에서 여든 해를 살았어도 서울을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차근차근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모두 꿰뚫어볼 수 있고, 알아차릴 수 있으며, 삶을 지을 수 있고, 사진은 사진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글은 글대로 한껏 빛내면서 꽃피우는 길을 노래하고 춤추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진 가운데 ‘노래하고 춤추면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깃든 ‘작품’은 몇이나 될까요? ‘기술·예술·문화’를 뽐내는 사진은 흘러넘칩니다만, ‘즐겁게(노래하고 춤추며) + 사랑을 스스로 짓고 나누면서’ 꿈을 씨앗으로 심는 홀가분한 사진은 뜻밖에도 거의 모두라 할 웬만한 그림밭(갤러리·전시관)에 안 걸리더군요. 그림밭에 걸리는 사진을 보셔요. 다들 ‘작품’이나 ‘예술’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수수하게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붙이려 하지 않습니다. 수수하게 ‘삶’이란 말도 붙이지 않고, ‘살림’이나 ‘사랑’이나 ‘사람’이란 말도 못 붙입니다.


  사진찍기란, 그림그리기나 글쓰기하고 똑같습니다. 그저 찰칵이(사진기)를 손에 쥔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사진찍기란, 밥짓기나 빨래하기나 바느질하고 똑같습니다. 오직 찰칵이를 손에 잡은 몸짓이 다를 뿐입니다. 사진찍기란, 걷기나 자전거타기나 버스타기하고 똑같습니다. 오로지 찰칵이 하나가 다를 뿐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오직 사랑이라는 마음이 흐를 적에 아이를 사랑으로 품으면서 함께 보금자리를 아름답고 아늑하게 짓는 살림빛을 키웁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모든 어버이는 ‘살림꾼(살림님·살림지기)’입니다. 예부터 우리말로는 ‘살림꾼’이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바람에 갑자기 들어온 뜬금없는 ‘주부·가정주부’는 우리말 아닌 일본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보금자리를 짓고 가꾸는 ‘살림꾼’이라는 자리와 이름과 말과 몸짓을 스스로 잊거나 잃으면서, 사진찍기라는 길에서도 엉뚱한 샛길로 쉽게 빠져버리고 맙니다.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어버이는 수수하게 밥을 짓습니다. ‘집밥(가정식 백반)’이 아닙니다. 그저 ‘밥’입니다. 찰칵이를 손에 쥐어 사랑으로 눈뜨는 우리는 수수하게 찰칵 누릅니다. ‘기술·예술·문화’가 아닙니다. ‘삶·살림·사랑’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삶·살림·사랑’을 서울빛이 아닌 숲빛으로 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찰칵이를 손에 쥐어 스스로 새롭게 무언가 이야기를 짓고픈 마음을 일으킨다면, ‘숲빛으로 푸르게, 하늘빛으로 파랗게, 삶·살림·사랑을 그리는 꿈씨앗을 한 자락 심는 열매’를 문득 하나 옮겨내어 나눌 만합니다.


  후다닥 찍든 더디게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루 만에 다 찍을 수 있고, 쉰 해에 걸쳐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길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실타래를 읽고서 스스로 새록새록 여미어 본다면,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이란 어떻게 하고, 사진이란 누가 누구한테 이바지하고, 사진이란 스스로 어떻게 거듭나려는 몸짓이고, 사진이란 왜 하고, 사진은 어떤 삶인가’ 하는 아주 쉬우면서 즐거운 씨앗 한 톨을 손바닥에 얹을 만합니다.


  이제는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에 안 들어가도 사진을 찍습니다. 세 살 아이도 사진을 찍습니다. 여든 살 시골 할매도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나 할매는 누가 안 가르쳤어도 어찌저찌 손전화를 눌러 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동안 글밭이나 그림밭은 몇몇 예술가만 차지하는 얼거리였고, 사진밭도 몇몇 예술가끼리 나눠먹기를 하는 얼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지요. 그리고 누구나 글님이자 그림님이자 사진님인데, 기성 주류 기득권 집단은 ‘어깨동무하며 누구나 누리는 길’이 아니라, ‘그들이 거머쥔 돈·이름·힘을 안 빼앗기려는 마음’으로 더 단단히 틀어쥡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진밭은 하나도 안 발돋움합니다. 그나마 글밭은 조금 허물어졌으나 그래도 큰 출판사가 크게 거머쥔 틀은 안 바뀌었습니다.


  요새는 그야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내지요. 그런데 사진을 놓고 보면, ‘누구나 사진을 찍기’는 하는데 누구나 ‘사진책을 내지는 못하’고 ‘사진전시도 못합’니다. 사진은 찰칵이만 장만해서 스스로 찍어 보면 누구나 스스로 배웁니다. 그저 즐겁게 스스로 배우시기 바랍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사진계 인맥·학맥’을 얻기에는 좋습니다만, 대학교에 들어가는 젊은 분들이 하나같이 ‘윗사람(선배·교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를 못 하더군요. ‘내 빛’은 내가 나를 스스로 바라보고 사랑할 적에 가꿀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그림그리기도 사진찍기도, 대학교나 외국유학으로는 못 배웁니다. 스스로 쓰고 그리고 찍기를 삶으로 녹이고 살림을 하면서 하고 사랑을 담아서 할 적에 누구나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펴고 나눕니다.


  “‘누’가 ‘말’을 하는가”를 헤아리시기를 바라요. 누구나 말을 하지 않나요? 그런데 누구나 말을 하도록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몇몇만 말할 자리일 뿐이고, 언제나 비슷비슷한 무리인 사람들끼리 말을 한다면, 그곳은 고인물조차 아닌 썩은물입니다.


  집에서 아버지 혼자만 말하거나 어머니 혼자만 말한다면, 이 집에는 사랑도 어깨동무(평화)도 없습니다. 집에서 모든 사람이 도란도란 떠들고 웃고 이야기를 할 적에 비로소 사랑이자 어깨동무입니다. ‘사진가’란 이름을 붙이려 하거나 내세우려 하는 분들만 끼리끼리 모인 곳에서 ‘누가 말을’ 하는지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왜 고이다가 썩어가는지를 헤아리기 바랍니다. 우리는 고인물도 썩은물도 아닌, 샘물에 냇물에 바닷물에 빗물에 골짝물이라는 숨결로 다 다르게 빛나는 즐거운 물길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나아가면 넉넉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겨우내 시든 풀줄기에 앉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비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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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응칠 역사 - 비판정본 독도 길을 읽다 2
안중근 지음 / 독도도서관친구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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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환경책 2023.4.5.

읽었습니다 201



  굵짧게 한삶을 보낸 안중근(안응칠) 님입니다. 서른 안팎인 나이에 더는 삶을 펼 수 없었으니, 스스로 더 배우면서 새롭게 깨달아 언제나 빛나는 숨결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잃은 셈입니다. 옛사람 나이를 오늘사람 나이랑 섣불리 댈 수 없습니다만, 요새는 서른 언저리에 이르러도 아직 ‘대학교 울타리’에 기대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이름·힘이 없는 사내는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터라, 삶그림을 짓기 앞서 근심걱정부터 키웁니다. 《비판정본 안응칠 역사》를 새겨읽었습니다. 떠난 분을 먼발치에서 우러르기보다는 이분이 늘 우리 곁에서 ‘새롭게 되새길 말’을 들려주는 벗이나 어른이나 이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 터전이 사뭇 바뀔 만하리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별님입니다. 그래서 조선도 일본도 이 별빛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옆나라는 총칼로, 이 나라 우두머리와 먹물꾼은 위아래(위계질서·신분)로 억눌렀어요. 우린 이 모두를 걷어낼 수 있습니다.


《비판정본 안응칠 역사》(안중근, 독도도서관친구들, 2020.12.3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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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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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환경책 2023.4.5.

읽었습니다 216



  푸름이 곁에서 길잡이로 일하다가 밀양에 깃들고, 이윽고 녹색당 일꾼으로 지내고서 어느새 자취를 감춘 이계삼 님입니다. 이녁 책도 하나둘 책집에서 사라져 갑니다. 《변방의 사색》을 찾아내어 천천히 읽어 보는데, 글이 썩 안 쉽습니다. 외치는 마음은 ‘좋을’ 수 있으나, ‘누가 어떻게’ 듣고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하면서 스스로 움직이는 실마리나 밑길로 삼는 징검다리인지는 퍽 흐리다고 느낍니다. 바른나라가 아니라서 바른나라로 뜯어고쳐야 한다면, ‘바른말’이 아닌 말씨부터 뜯어고쳐서 ‘바른글’로 풀어내려는 ‘나보기(나부터 나를 스스로 바라보기)’를 하기를 바랍니다. 《변방의 사색》이란 무엇일까요? 책 좀 읽은 분이라면 이만 한 이름이 대수롭지 않겠으나, 책이나 글이 낯선 이웃한테는 너무나 동떨어집니다. 부디 ‘귀퉁이’에서 그야말로 ‘가난’하게 살아내기를 바라요. ‘구석’에서 천천히 ‘생각’하기를 바라요. 조약돌이 되어 생각하면 이 별을 바꿀 수 있어요.


《변방의 사색》(이계삼, 꾸리에, 2011.8.20.)


ㅅㄴㄹ


나의 사회적 경험으로, 또 지적 경험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74쪽)

→ 나는 살아오면서, 또 배워 오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나는 살면서, 또 익히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나는 살아가면서, 또 눈뜨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삶을, 학교교육 전체를 질곡으로 빠뜨리는 가장 커다란 사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조직에는 희망이 없다. (115쪽)

→ 아이들 삶을, 배움터를 통째로 가두는 가장 커다란 짓에 입다무는 무리에는 빛이 없다

→ 아이들과 배움터를 송두리째 옭매는 가장 커다란 짓에 모르쇠인 곳에는 꿈이 없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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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이야기
앤드류 로빈슨 지음, 박재욱 옮김 / 사계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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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환경책 2023.4.5.

읽었습니다 211



  ‘문자(文字)’는 “1. [언어] 인간의 언어를 적는 데 사용하는 시각적인 기호 체계 2. 학식이나 학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글’입니다. 그런데 글깨나 쓰는 분들치고 글을 ‘글’이라 일컫는 이가 드뭅니다. 말을 ‘말’이라 이르는 이도 드물어요. 아무래도 ‘글·말’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할 테고, 뭇사람이 ‘글·말’을 환하게 알아보기를 안 바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이루면서 마음을 닦고 다스리는 기운이 ‘말’입니다. 마음을 이루고 다스리는 기운을 그려내는 모습이 ‘글’입니다. 예부터 사납빼기가 우두머리에 들어앉아서 책을 불사르고 배움길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엉터리로 가르쳐서 길들이는 까닭이 있어요. 믿음길(종교)을 세워서 돌멩이를 섬기도록 몰아붙인 뒷뜻이 있습니다. 《문자 이야기》는 온누리 여러 나라 ‘글씨’를 놓고서 몇 가지를 짚되 겉훑기로 그칩니다. ‘훈민정음·한글’ 이야기는 아예 없습니다.


《문자 이야기》(앤드류 로빈슨/박재욱 옮김, 사계절, 2003.10.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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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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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환경책 2023.4.5.

숲책 읽기 194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숲하루

 스토리닷

 2022.12.13.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숲하루, 스토리닷, 2022)은 2022년에 태어난 ‘올해책’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만 한 책이 태어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풀꽃책(식물도감)을 들추어야 풀꽃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풀꽃을 지켜보고 돌아보고 살펴볼 적에라야 풀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교 농학과’를 다녔기에 풀꽃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수’쯤 해야 풀꽃을 알 수 있지 않아요. 풀꽃책(식물도감)을 쓰거나 엮은 적잖은 글꾼 가운데 ‘책에 이름을 담은 풀꽃’을 모조리 먹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스스로 먹어서 스스로 몸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느껴 보지 않는다면, 풀꽃이 어떤 보람(효능)이 있는지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먹어 보지 않은 풀꽃이면서 어떻게 풀꽃 보람(효능)을 글로 적을까요?


  풀꽃을 알려면 씨앗부터 누리면 됩니다.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가만히 기운을 느끼고, 씨앗을 밥으로 삼아 고마이 먹고, 이 씨앗을 땅에 놓아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고, 봄에는 봄잎을 여름에는 여름잎을 가을에는 가을잎을 나물로 삼을 노릇입니다. 그런데 봄나물이라 해도 새벽이슬이 내린 잎하고 낮볕이 따끈따끈 스민 잎하고 별빛이 살며시 내린 잎은 맛도 결도 숨도 다릅니다.


  쑥 하나만 알려고 해도 열 해로는 어림없습니다. 흔히 봄쑥·가을쑥처럼 말하지만 2월쑥·3월쑥·4월쑥·5월쑥이 다 다릅니다. 10월쑥·11월쑥도 다른데, 하루하루 더 다르기까지 합니다. 또한, 뜯는 때에 따라서도 달라요. 자라는 땅에 따라서도 다를 뿐 아니라, 쑥 곁에 어떤 나무나 풀꽃이 자라는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모과나무 곁에서 자라는 쑥이라면 모과빛을 살포시 담습니다. 뽕나무 곁에서 자라는 쑥이라면 뽕빛을 살몃살몃 담지요. 그러나 이런 결과 살림과 이야기를 찬찬히 짚은 풀꽃책(식물도감)은 여태 안 나왔습니다.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책이름처럼 풀꽃나무하고 놀던 어린 나날을 이야기로 여밉니다. 경북 의성 멧골자락에서 태어나서 자란 시골순이는 엄마아빠 사랑을 듬뿍 누리면서 하루하루 꿈을 키웁니다. 아직 고린틀(가부장제)이 단단하던 지난날이요, 시골은 고린틀이 더 세다고 하지만, 글님 아버지는 고린틀을 그다지 안 내세운 듯싶습니다. 앞장서서 바꾸기는 어려웠어도 고린틀이 그대로 흐르기를 바라지 않으셨구나 싶고, 이 마음이 들꽃씨앗으로 땅에 드리워 천천히 자라났구나 싶습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은 ‘참정권’ 같은 어려운 먹물말은 몰랐을 테지만 아이들한테 집안일과 흙일을 골고루 맡길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 시골에서는 순이도 돌이도 똑같이 집안일을 하고 흙일을 맡았습니다. 아이들도 어버이 곁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쉬고 함께 자고 함께 놀고 노래하면서 마음빛을 가꾸었습니다.


  흔히들 “아이들한테 자연을 물려주어야 한다”고들 말하는 듯싶으나 ‘자연’이란 뭘까요? 둘레(사회)에서 하는 말은 걷어치우고서 “아이한테 물려줄 숲을 어른부터 아름답게 누리면서 함께 사랑하자”고 새롭게 말을 할 줄 알아야지 싶어요.


  생각해 봐요. 왜 플라스틱에 담은 물을 사다 마셔야 하지요? 가뭄이라 물이 모자라다는 핑계는 씨알도 안 먹힙니다. 물은 안 모자랍니다. 몇몇 일터(기업)에서 땅밑물을 펑펑 뽑아내어 마구잡이로 돈벌이를 할 뿐입니다. 왜 제주물을 온나라 곳곳에서 플라스틱에 담아서 사다 마셔야 하나요? 이 얼뜬짓을 얼른 멈출 노릇 아닐까요? 그러나 온나라 곳곳은 땅밑물을 뽑아대는 무리가 퍼지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바보나라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땅밑물을 맑고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아름나라를 물려줄 일입니다. 누구나 마당에 나무를 심고 풀꽃을 누리는 즐거운 보금자리를 물려줄 일입니다.


  풀 한 포기하고 얽힌 사랑을 누구나 글로 여밀 수 있기를 바라요. 꽃 한 송이하고 맺은 살림을 서로서로 글로 담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나무 한 그루하고 마주한 삶을 스스로 글빛으로 밝힐 수 있기를 바라요.


  글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겉치레를 하는 삶이라면 겉글을 꾸밉니다. 속가꿈을 하는 삶이라면 속빛이 환한 글을 씁니다. 억지로 보기좋게 꾸미려 드는 몸짓이라면 ‘짜맞춤·만듦’으로 글을 내놓겠지요. 삶짓기(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품고 사랑하는 마음으라면 ‘마음짓기’라는 숨결로 글을 펼 테고요.



ㅅㄴㄹ


어릴 적 일인데, 마을을 막 벗어나 오빳골을 오를 적에 앞서간 마을 언니오빠를 따라잡으려고 막 뛴다. 마음은 바쁜데 뛰다가 돌에 걸려 고꾸라진다. 옷도 버리고 손도 따끔한데 윗길에서 보고 낄낄 웃는다. 나는 씩씩거리면서도 누가 한 짓인지 묻지 않았다. (가는잎그늘잔디12쪽)


한 벌 털고 나면 다시 네 단을 아버지가 묶어 두면 나는 밑으로 기어다니며 놀았다. 어머니는 한 톨이라도 깨가 땅에 떨어질까 싶어 살살 터는데 깨단 밑으로 지나가면서 흔들려 깨가 땅에 많이 떨어진다. (깨/37쪽)


골라 다니며 우리가 찾아다니던 돌나물은 이제는 길가까지 내려와도 뜯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숟가락을 부딪치며 떨거덕거리며 먹던 우리는 그곳을 떠났는데, 네가 남아서 골을 푸르게 지키네. 이제 마음껏 꽃을 피우렴. (돌나물/73쪽)


아홉 살에서 열세 살 적에 본 밤하늘과 여름밤은 어린 날 하나뿐인 책이다. 별을 헤아리면서 잠이 든다. 새벽이슬을 맞으면 방으로 옮기는데 찬기운에 새벽에 깨서 혼자 방으로 건너가기가 싫었다. 네 시가 되면 일어나는 아버지는 나를 안고 방에다 누인다. 내 몸이 뜨락을 오르는 줄 느낀다. 설핏 잠이 깨도 자는 척한다.(모깃불/109쪽)


오가는 길에 뒤가 마려우면 하나둘 보리밭 이랑에 들어갔다. 보리밭이 길가에 있어 아이들이 지나가면 몸을 숨기고 뒷일을 봤다. 우리 집은 땅이 얼마 없어서 보리를 얼마 뿌리지 못했다. 보리를 밟으면 좋다고 하면서도 우리 보리를 밟지 않고 어머니도 남일이 바빠 보리를 밟지 않았다. (보리/137쪽)


이 다래가 익어 다래꽃이 피었다. 찬바람이 불면 가시가 송송 난 밤이 쩍 벌어지듯 딱딱한 다래가 쩍 벌어졌다. 허옇게 벌어지면 다래를 밍(명)딴다. 손으로 쏙쏙 뽑듯 솜을 꺼냈다. 솜은 부드럽지만, 나무와 다래가 말라 딱딱했다. 솜을 뽑는 일이 재밌었다. (솜꽃/173쪽)


잔디는 배움터에서 시켰기 때문에 훑기도 했지만 팔려고 훑기도 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많이 훑었다. 재 너머 덥니미에 소풀을 먹이면서 잔디씨를 훑는다. 온집안이 훑어 한 되가 모이면 어머니는 저자에 가서 팔았다. 우리는 잔디씨를 온집안이 훑어서 파는데 배움터에서는 왜 거저로 잔디씨를 거두는지 못마땅했다. (잔디/201쪽)


어른이 되니 어머니처럼 호박죽을 쑨다. 호박을 갈고 밀가루 아닌 찹쌀가루를 넣고 콩 아닌 팥을 넣고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호박꽃/2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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