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2023.4.21.

오늘말. 탄탄하다


일터를 다니며 달삯을 벌 수 있습니다. 보금자리를 일판으로 꾸리면서 해삯을 스스로 벌 만합니다. 누구하고나 어깨동무하며 사이좋게 지낼 만합니다. 탄탄한 두 다리로 걷거나, 튼튼한 팔다리로 달리면서 들빛을 누리면 즐거워요. 우리는 사람하고도 동무하지만, 새랑 벌레랑 나비하고도 벗합니다. 풀꽃나무랑 다같이 한빛이 되어 숲터를 이룰 수 있습니다. 꼭 ‘나라’라는 얼거리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아낄 줄 알고, 나란나란 귀를 열면서 이야기를 잘 들으면 되어요. 한또래요 함살림을 펴면 넉넉합니다. 생각을 버무리고 마음을 맺고 뜻을 여미어 알뜰살뜰 꿈길로 나아가기에 아름답습니다. 거미줄을 보면 더없이 짜임새가 있어요. 가벼우면서 단단한 거미집을 짓듯 모든 사람이 함께 맑고 밝게 꿈씨앗을 품고서 두런두런 모임을 하고 살림터를 푸르게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햇볕을 받아들이고 빗물을 머금는 열매가 알차요. 아침에 뜨는 해님을 반기고, 저녁에 돋는 별님을 그리면서, 조촐히 수다판을 세웁니다. 빈틈이 있으면 여치가 찾아와서 노래합니다. 무당벌레도 딱정벌레도 잎벌레도 우글우글 무리짓습니다. 숲이라는 넋으로 다 다르게 뭉칩니다.


ㅅㄴㄹ


모임·무리·떼·같이·함께·다같이·다함께·동무하다·벗하다·어깨동무·하나되다·하나로·하나씩·한꺼번에·한몫에·한떼·한무리·한또래·한몸·한빛·한통·한통속·묶다·뭉치다·모이다·물꼬 터지다·섞다·버무리다·맺다·얽다·이루다·여미다·엮다·짓다·마련하다·만들다·모두·모조리·몽땅·다·송두리째·함살림·나라·-네·서로·서로서로·여러분·결·일집·일터·일판·단단하다·탄탄하다·튼튼하다·사이좋다·살뜰하다·알뜰하다·알차다·야무지다·와글와글·우글우글·물샐틈없다·빈틈없다·틈없다·잘 듣다·다 듣다·서다·세우다·짜임새·짜임새 있다·거미줄·판·틀·얼개·얼거리 ← 조직(組織), 조직적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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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2023.4.21.

오늘말. 잠자코


새봄에는 새빛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소리없이 지켜봅니다. 말을 안 해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봄이 무르익는 사월이 흐를 적에는 봄맞이새가 지저귀는 곁에서 개구리가 노래하고, 이 곁에서 드디어 풀벌레도 깨어나서 겨우내 잠자코 잠들던 숨소리를 훅 터뜨려요. 고요하고 그윽하던 겨울밤은 사라집니다. 밤새 온갖 봄노래가 곳곳에서 울려퍼집니다. 다만, 지난날에는 온나라 어디에서나 봄노래에 밤노래였다면, 이제 서울이나 큰고장은 시끌시끌 쇳덩이 소리가 그득해요. 바람이 흘러가도 느끼지 못 하고, 자그마한 풀벌레한테 휘파람으로 대꾸하는 사람이 드물고, 제비에 휘파람새에 소쩍새가 울 적에 가만가만 귀를 여는 이웃이 확 줄어듭니다. 봄에 봄빛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봄을 알까요? 달종이는 봄을 안 알려줍니다. 새뜸(신문)도 봄을 안 보여주어요. 틀에 갇힌 서울살림(도시생활)은 온통 입막음에 잿빛으로 뒤덮으면서 싱그러운 빛줄기를 눙쳐 버리는 듯싶습니다. 겨울 다음은 봄이듯, 봄 다음은 여름입니다. 여름 다음은 가을이고, 바야흐로 새로 찾아드는 겨울일 텐데, 다들 그저 건너가기만 합니다.


ㅅㄴㄹ


말없다·말하지 않다·소리없다·말하면 안 되다·말을 안 하다·말을 않다·모르는 척하다·모르는 체하다·모르쇠·밝히지 않다·밝히면 안 되다·아무말 없다·암말 없다·아무 대꾸 없다·안 드러내다·안 밝히다·안 보여주다·안 알려주다·가만히·가만·가만가만·얌전하다·고요하다·새근새근·잠자코·조용하다·건너가다·넘어가다·눙치다·흘러가다·다물다·닫치다·대꾸없다·덮다·뒤덮다·입닫다·입다물다·입막음·쉬쉬하다·쉿·쥐죽은 듯하다 ← 묵묵, 묵묵부답, 묵비(默秘), 묵비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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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2023.4.21.

오늘말. 돌돌적이


우리가 마시는 물은 늘 흐릅니다. 흐르는 물을 마실거리로 삼기에 우리 몸에 피가 흐르고, 숨이 돌며, 생각이 자랍니다. 모든 샘물은 빗물입니다. 비가 오면서 빗방울이 땅으로 스미고, 이 물줄기는 내를 이루고 가람이 되다가 바다로 만나요. 돌샘도 바위샘도 곰곰이 따지면 바닷물입니다. 바닷물이 아지랑이로 하늘로 날다가 구름을 이루다가 톡톡 떨어지기에 모두를 살려요.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느긋이 쉽니다. 일도 쉬고 짬도 누리고 틈을 둡니다. 물 두 모금을 마시면서 돌돌적이를 꾸며 봅니다. 동무한테 돌림적이를 건네려 해요. 이웃하고 두루마리로 글월을 주고받을 생각입니다. 우리 먹을물이 되는 바다로 글을 띄워 볼까요? 찰랑찰랑 튕기는 물방울도 바닷일을 하는구나 싶어요. 끝없이 물결치고 춤추는 모든 물방울은 언제나 물질로 온누리를 싱그러이 보듬는구나 싶어요. 옷사람이나 탈사람이라면 물을 안 마실는지 모르나, 숨쉬는 우리는 누구나 물을 마십니다. 쉴참을 마련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러 다녀와요. 쉴틈을 내어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쐬어요. 돌돌돌 돌고도는 물빛은 다 다른 숨빛에 깃들면서 언제나 새롭게 흐드러집니다.


ㅅㄴㄹ


믈·마실물·먹을물·마실거리·샘·샘물 ← 용수(用水)


돌샘·돌샘물·바위샘·바위샘물 ← 석간수(石間水)


낚다·낚시·고기낚기·고기잡이·물일·물질·바다질·바닷일·잡다·거두다 ← 어로(漁撈), 어로기술, 어렵


두루마리·돌림적이·돌돌적이·돌림종이·돌돌종이·고루적이·두루적이 ← 롤링페이퍼


사람꼴·사람탈·꼭두각시·꽃사람·옷사람·옷아이·탈꾼·탈사람 ← 마네킹


놀다·놀이·놀음·놀이하다·쉬다·쉼·쉼꽃·쉴참·쉴틈·쉬는때·말미·짬·겨를·틈·틈새·틈바구니·일을 쉬다·숨쉬다·숨돌리다·바람쐬다 ← 휴가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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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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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헌책읽기 11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람이 누릴 땅은 새가 내려앉고 풀벌레가 노래하고 벌나비가 춤추고 거미가 집을 짓고 뱀이랑 개구리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이따금 들고양이가 슬슬 지나갈 만한 너비이면 넉넉합니다. 해마다 나무를 한 그루씩 심을 만하고, 철마다 들꽃씨를 한 줌씩 뿌릴 만하고, 맨발로 사뿐사뿐 오가면서 춤출 만한 풀밭을 누리는 너비이면 즐겁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방울춤으로 놀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맞이춤으로 노래하고, 해가 드리우는 날에는 빨래를 해바라기로 내놓으면서, 아이들이 이마에 땀을 내며 달리고 뛸 수 있을 만한 너비이면 사랑스럽습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톨스토이 님이 남긴 여러 글자락 가운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 곁에 놓고 되새길 여러 삶노래’를 갈무리합니다. 톨스토이 님은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깨우치려 했습니다. 스스로 뒤집어쓴 허물부터 고스란히 바라보려 했기에 스스로 마음 한복판에서 사랑을 일깨울 수 있었고, 이 사랑씨앗을 차곡차곡 심는 글밭을 일굴 만했습니다. 가난집에서 태어나야 가난을 알거나 말할 수 있지 않습니다. 가난만 말할 적에는 가난도 가멸참도 오히려 말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둘 사이를 녹여내는 살림빛은 한 마디도 못 읊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살림이 넉넉하지 않거든요. ‘살림’ 가운데 ‘살림돈’도 있지만, 숱한 살림살이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부스러기인 돈입니다. 호미 한 자루에 도끼 한 자루가 살림입니다. 숯과 냉과리가 살림입니다. 작은 자루랑 이불 한 채가 살림입니다. 아이들 말소리가 살림이고, 어른들 이야기꽃이 살림입니다. 쇳덩이(자가용)를 거느리기에 살림하고 멉니다. 잿더미(아파트)를 붙잡기에 살림을 잊습니다. 풀씨랑 꽃씨랑 나무씨가 살림을 일구는 바탕이고, 온갖 씨앗을 손바닥에 얹다가 가볍게 심을 마당이랑 뒤꼍이랑 밭자락을 누린다면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릴 만합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L.N.톨스토이/박형규 옮김, 이성과현실, 1990.9.30.)


ㅅㄴㄹ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정말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45쪽)


“공연한 짓을 해서 아이들의 버릇을 그르치지 말아요. 저런 애들은 한 주일쯤 잊어버리지 않도록 혼을 내줘야 하는데.” 할머니는 말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그거야 물론 우리네들의 생각이지만 주님의 뜻은 그게 아니거든요. 사과 한 알 때문에 이 아이를 때려야 한다면 이 죄 많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요?” 노파는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다. (61쪽)


“네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어. 네 눈은 증오심 때문에 흐려졌다. 남의 잘못은 눈앞에 환히 보여도 자기의 잘못은 등 뒤에 감춰져 있다.” (74쪽)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34쪽)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뭣을 할 수 있다는 거냐?” 하고 이반이 묻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저는 당신이 원하신다면 무엇으로라도 군사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지?” (146쪽)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빠홈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을 팠다. 그리고 그를 묻었다. (228쪽)


어느 날 움막에 들어앉아 있던 대자에게는 이제 더 이상 모자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으며,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거기서 대자는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2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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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인문책시렁 304


《오만한 제국》

 하워드 진

 이아정 옮김

 당대

 2001.1.9.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이아정 옮김, 당대, 2001)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이분 책을 곁에 두는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나, 이분이 싸움날개(전투폭격기)를 몰며 꽝꽝 터뜨리던 무렵 스스로 지저른 죽임짓을 밝히는 대목은 앞으로도 눈여겨볼 글줄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쪽만 ‘때린이(가해자)’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올바르다(정의의 편)고 외치면서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죽임짓을 일삼은 무리가 있어요.


  하워드 진이라는 분은 그이 스스로 ‘미국 싸움날개’를 몰지 않았다면, 또 그 싸움날개가 무슨 뜻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다면, ‘역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온갖 거짓말을 캐내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보짓을 일삼은 적이 있어도 깨우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보짓을 한 적이 없더라도 오히려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기도 합니다.


  눈을 뜨고 참길을 걸어가면서 참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언제나 되새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휘둘리는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일쑤입니다. 허수아비가 되면, 돈도 이름도 힘도 쉽게 얻습니다. 허수아비가 되지 않겠노라 손사래치면, 돈도 이름도 힘도 없는 맨몸이 되겠지요. 그런데 맨몸으로 설 줄 알기에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어른’으로 거듭날 만합니다.


  나이만 먹는 이는 늙은 꼰대입니다. 나이먹기를 멈추고서 철들려는 몸짓으로 피어나기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둘레를 보면 ‘어른 아닌 꼰대’인 놈들이 스스로 마치 ‘어른’이라도 되는 듯이 굴거나 뽐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어른’이라면 언제나 무릎을 꿇고서 어린이 곁에 설 뿐 아니라,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과 말과 몸짓으로 사랑을 물려주게 마련이에요. ‘어른 아닌 꼰대’이기에 어려운 말을 아이들한테 윽박지르며 외우도록 시킵니다. ‘그저 꼰대인 늙은이’인 터라 우리 삶터를 갈라치기(분열·차별)로 끊고서 자꾸 싸움을 부추깁니다.


  어른일 적에만 비로소 어버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른이 아닌 사람은 어버이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른인 넋으로 눈뜨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어머니·아버지’로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림을 추스르는 보금자리를 일구어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습니다.


  아기를 낳기에 ‘어버이’라 하지 않습니다. 철든 몸짓으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줄 알아서 ‘어버이’입니다. 낳기는 했어도 사랑을 물려주지 못 하는 몸짓이라면 어른도 어버이도 아닌 그냥 ‘늙은 꼰대’입니다. 말과 이름을 어질게 가려서 쓸 노릇입니다. 말과 이름을 찬찬히 짚으면서 우리 넋을 돌아보고, 우리 하루를 스스로 그릴 적에, 비로소 이 땅에서 모든 총칼을 녹여내고, 아이들을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 건질 뿐 아니라, 우리 누구나 참사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와 권력이 특정한 방법으로 분배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20쪽)


정밀 폭격은 엄청난 자기기만이었다. 우리는 독일군이 도시를 폭격하여 수백 혹은 천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분노했었다. 하지만 이제 영국군과 미군은 단 한 번의 공습으로 수만 명을 죽이고 있었다. (166쪽)


이미 대량폭격에 길들여진 미국의 대중들은 원자탄 폭격을 태연하게, 사실상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 자신의 반응이 어땠는지 기억한다 … 나는 원자탄의 폭발이 히로시마의 남자, 여자, 어린이 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유럽에서 6마일 고도로 날며 떨어뜨린 폭탄에 맞아죽은 사람들의 죽음처럼, 추상적이고도 먼 것이었다 … 일단 처음에 어떤 전쟁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지고 나면, 그 뒤로는 생각을 중지한 채 승리를 위해 저지르는 모든 일 또한 도덕적으로 타당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17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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