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3.5.31.

수다꽃, 내멋대로 44 분노



  ‘불타오르(분노·증오)’면, 앞뒤를 안 본다. 불타오르는 터라, 오직 ‘미워하고 싫어하는 놈’만 쳐다보면서 이글이글 태워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타오르기 때문에 ‘저놈만 죽이면 다 돼!’ 하고 여기는데, 저놈을 불길로 태워서 죽였는데, 뜬금없이 ‘아무 잘못이 없는 딴사람’을 불태우기 일쑤이다. 또는 ‘미운놈을 태워죽이’려다가 애먼 사람까지 태워죽이기 일쑤이다. “모기를 잡으려다 집을 불태운다”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가 ‘불(분노·증오)’이 되어버리면, ‘앞뒤가림’을 아예 잊고 말기에, ‘참(진실)’을 보려는 마음이 아닌, ‘미운놈을 찾아내고 솎아내어 죽이고픈 마음’이 가득하고 만다. ‘참(사랑이 가득한 마음)’이 아니라 ‘차가움(미움이 가둑한 마음)’으로 기운 탓에, 그놈도 죽이지만, 나도 죽고, 우리 둘레 착한 사람까지 다 죽인다. 이른바 ‘정의의 용사’가 나와서 ‘밉놈(악당)’을 물리치는 만화를 보자. ‘밉놈’ 하나를 죽인다면서 그만 마을(도시)을 송두리째 불바다로 만들지 않는가? 이 모습이 바로 ‘분노라고 하는 민낯’이다. 불(폭탄)은 아무것도 안 가린다. 무턱대고 덤벼서 모조리 죽음이란 잿더미로 몰아붙이는 기운이 불(분노·증오)이다. 얼핏 보았을 적에 아이가 그릇을 깨뜨렸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얌전히 있었는데, 바람이 훅 불고 지나가면서 그릇이 흔들려 저절로 떨어져서 깨질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엄마아빠가 아끼는 그릇을 왜 깼니!” 하면서 확 불타올라 아이를 다그치거나 나무라거나 때리기까지 한다. 불타오르는 엄마아빠를 본 아이는 ‘불타오른 엄마아빠는 내(아이) 말은 아예 안 듣는’ 줄 알아차리며 그저 두려워 말도 못 한다. 숱한 어버이는 아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을 아이한테 그만 덤터기를 씌운다. 왜냐고? 어버이 스스로 앞뒤를 못 가리도록 스스로 불(분노)이 된 탓이다. 이른바 나라꼴(정치·사회)을 보면, 이쪽도 저쪽도 못난놈이다. 우두머리(권력자)란 모름지기 ‘사람들 눈을 속이면서 돈·이름·힘을 거머쥐는 자리’이기에, ‘깨끗한 우두머리’란 없다. 참말로 없다. 깨끗한 사람은 우두머리(정치·교육·문화예술 지도자)가 되지 않는다. 깨끗한 사람은 조용히 철들어 착한 어른이 될 뿐이다. 착한 어른은 언제나 아이들 곁에서 도란도란 같이 소꿉놀이를 하고, 아이 눈높이를 헤아려 ‘쉬운말’을 쓰고,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들을 품고 감싸고 돌보는 길을 간다. 착한 어른은 우두머리 짓을 안 하고, ‘이슬떨이’로서 ‘길잡이’를 할 뿐이다. 길잡이는 앞장서거나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즐겁게 스스럼없이 나아가고서, 아이들이랑 손에 손을 잡고 나란히 노래길·놀이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보라. 대통령·국회의원·시도지사·시의원·군의원 가운데 ‘이슬떨이로서 어린이 곁에서 소꼽눌이를 하고 쉬운말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른’이 있는가? 아예 없다. 그러니, 우리는 나라꼴(정치·사회)을 쳐다보면 그저 불(분노)이 치밀어오를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라꼴을 쳐다보지 않을 노릇이다. 아이들 얼굴을 쳐다보고, 들꽃을 쳐다보고, 들숲바다를 쳐다보고, 해바람비를 쳐다보고, 마음빛을 쳐다보고, 이웃이랑 쉽게 주고받을 ‘착한 우리말’을 쳐다볼 노릇이다. 그러나 정 나라꼴(정치·사회)을 쳐다보고 싶다면, 먼저 ‘불타오르(분노·증오)’지 말아야 한다. 이놈이건 저놈이건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거나 탓할 마음을 싹 지워야 한다. 이놈이건 저놈이건 ‘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못했는지만 쳐다볼 노릇이고, 어느 쪽에 선 어느 놈이건 값(벌)을 달게 받도록 마음을 기울이고서 끝내면 된다. 보라! ‘전두환 손자’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엄마아빠랑 할매할배를 ‘잘못 만난 탓’에 제법 오래 굴레에서 허덕인 줄 오래도록 모르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동안 ‘전두환 손자’ 스스로 알게 모르게 저질렀을 숱한 잘잘못을 털어내려고 용쓰는데, 잘못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한테 어찌 돌을 던지는가? 그러니까, 이쪽이건 저쪽이건 잘못을 말끔히 뉘우치고서 값(벌)을 달게 받으려는 사람은 너그러이 보아줄(용서) 노릇이요, 어느 쪽에 선 놈이건 콧대가 높고 핑계에 달아나기만 하는 놈은 ‘불길’이 아닌 ‘참(진실)’이라는 눈빛으로 딱하게 보며 타이르거나 나무라되, 그놈 스스로 값을 치를 때까지 안 잊으면 된다. 문득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눈물로 뉘우치는데, 이 아이들을 안 봐줄 수 있는가?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다시 돌아보면서 되새기도록 타이르고, 자꾸자꾸 타이르고 보듬을 노릇이다. 그런데, 우리가 불길(분노)에 휩싸이면 다 죽여버리고 마니, 불길이 아닌 ‘별빛’에 ‘햇볕’으로 스스로 숨길을 가다듬어야지 싶다. 밤길을 밝히는 횃불이나, 집안을 고요히 밝히는 촛불이 되자. 오직 사랑이라는 빛줄기를 가만히 품어 어른이 되자. 우리 엄마아빠가, 또 싸움터(군대)에서, 또 일터(회사)에서, 숱한 사람들이 불길(분노)에 휩싸여 나를 괴롭히거나 두들겨팬 짓을 치러 왔다. 그분들 눈에는 사랑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불이 아닌 사랑을 오롯이 그리려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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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꽃

곁말 110 달가림



  해가 질 무렵 큰아이하고 마을길을 걷다가 우람한 후박나무 가지 사이로 붉은빛을 봅니다. 뭘까 하고 바라보니 저 멀리 달이 붉게 뜨는 모습이더군요. 슬슬 저녁을 차리는데 마당에서 뛰놀던 작은아이가 우리를 부릅니다. “저기 봐! 달이 사라져! 얼른 나와 봐!” 해가 질 무렵 붉게 오르던 보름달이 어느새 꽤 사라집니다. 우리별(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군요. 처음에는 조금 가리고, 이내 뭉텅 가리더니, 어느새 온통 가립니다. 우리별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사이에 별빛은 한결 초롱초롱합니다. 보름달이 밤을 비출 적에 꽤 밝다고 하지만, 미리내를 이루는 별이 비출 적에도 퍽 밝습니다. 오늘날 큰고장은 별빛을 살필 곳이 사라진 곳입니다. 불을 끄더라도 별을 보기 어려운 서울이에요. 그러나 사람들이 큰고장이나 서울에 북적거리지 않고 손수 흙을 가꾸며 밥옷집을 건사하던 지난날에는 어디에서나 누구나 별밤을 누렸어요. 별빛으로도 넉넉히 밝아요. 달가림이 일어나더라도 밤길을 얼마든지 거닐 만하고, 밤모습을 헤아릴 만합니다. 해누리(태양계)에서는 해도 우리별도 달도 저마다 돌기에 이따금 서로 나란히 서면서 가리곤 해요. 달가림이나 해가림을 이룹니다. 하늘바라기를 잊지 말라면서 귀띔하듯 찾아오는 별놀이 같습니다.


달가림 (달 + 가리다 + ㅁ) : 우리별(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일. (← 월식月蝕)


온달가림 (온 + 달 + 가리다 + ㅁ) : 우리별(지구) 그림자가 달을 모두 가려서 하나도 안 보이는 일. (← 개기월식)


쪽달가림 (쪽 + 달 + 가리다 + ㅁ) : 우리별(지구) 그림자가 달을 살짝 가려서 어느 쪽이 안 보이는 일. (← 부분월식)


해가림 (해 + 가리다 + ㅁ) : 1. 해가 달을 가리는 일. 해하고 우리별(지구) 사이에 달이 들어서면, 해가 달에 가려 안 보이기도 한다. ← 일식(日蝕) 2. 해를 가리는 것·자리·지붕·처마. 해가 비추거나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가린다. (← 파라솔, 차양, 차양막, 차일遮日, 차광, 차광막, 선캡)


온해가림 (온 + 해 + 가리다 + ㅁ) : 해가 달에 모두 가려서 하나도 안 보이는 일. (← 개기일식)


쪽해가림 (쪽 + 해 + 가리다 + ㅁ) : 해가 달에 살짝 가려서 어느 쪽이 안 보이는 일. (← 부분일식)


고리해가림 (고리 + 해 + 가리다 + ㅁ) : 해 한복판에 달이 들어서면서 가리되, 해를 모두 가리지 못하면서, 해가 고리처럼 보이는 일. (← 금환식, 금환일식)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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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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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꽃

곁말 109 소리책



  우리가 펴는 책은 눈으로 읽습니다. ‘눈으로 볼’ 만한 여러 가지를 마주하면서 가만히 받아들이고 헤아리기에 ‘읽다’라는 낱말을 써요. ‘마음읽기’란, 얼핏 눈에 안 보인다고 여기는 마음이지만, 생각을 틔우고 눈빛을 밝혀 내 마음부터 열면, 서로 마음하고 마음이 만나기에 환하게 흐르면서 속빛을 알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여느 ‘책’은 “눈으로 읽을거리”입니다. 손으로 짚는 무늬로 읽는 글이 있으니 “무늬로 읽을거리”인 ‘무늬글책(점자책)’이 있어요. 여기에 소리로 들으며 헤아리는 글이 있어 “소리로 읽을거리”인 ‘소리책’이 있습니다. 글이 태어난 뒤로는 글씨로 읽고 물려주고 나누었는데, 글이 없던 무렵에는 말로 들려주고 나누는 살림이었어요. 따로 글이나 책이 없더라도 생각을 나누었고 물려받았으며, 오래오래 살림빛을 밝히면서 사랑길을 이었습니다. 이제 글이 널리 퍼진 온누리는 글하고 책을 새롭게 맞아들입니다. ‘글씨책’ 곁에 ‘무늬글책’하고 ‘소리책’이 있어요. 세 가지 책으로 둘레를 한결 넓고 깊게 헤아립니다. 세 가지 책으로 서로 새롭게 이웃으로 사귑니다. 세 가지 책으로 세 가지 숲빛을 품으면서 새삼스레 오늘을 가꾸면서 노래하는 마음으로 피어나요.


소리책 (소리 + 책) : 소리로 들려주는 책. 눈으로 읽지 않아도 귀로 들으면서 헤아리는 책. 귀로 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줄거리를 살필 수 있는 책. (←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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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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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5.30.

수다꽃, 내멋대로 43 88만원세대



  어릴 적에 골목이나 너른터(운동장)에서 동무들하고 뛰놀다가 갑자기 우르르 서로 무리를 지으며 부른다. “종규야! 이리 와!” 이쪽에서 무리지은 아이들도 동무이고, 저쪽에서 무리지은 아이들도 동무이다. 둘로 나눈 무리는 한 사람을 더 늘리려고 용을 쓴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드디어 한마디를 터뜨린다. “난 어디에도 못 들어가겠어! 둘 다 동무들이잖아!” ‘그냥 놀 뿐’이라지만, 줄다리기나 오징어나 콩주머니를 하며 끝없이 짝을 바꾸어서 어울리는 놀이가 아닌, 처음부터 무리를 갈라서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로 다툰다면, 어디에도 안 끼었다. 뒤로 홱 돌아서서 달아난다. 쌩 하고 달아나는데, 동무들은 ‘달리기’를 하자는 줄 여겨 어느새 무리가 풀어지고 달음박질놀이로 바뀐다. 우리는 왜 ‘어느 쪽’에 서야 할까? 어느 해에 태어났기에 ‘태어난해’라는 또래로 묶여야 할까? 어느 해에 무슨 배움터(학교)를 들어갔기에 ‘학번’이라는 금을 갈라야 할까? 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살아갈 뿐, ‘나이·주민등록번호·학번·군번’으로 갈라야 할 까닭이 없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그쪽이든 똑같다. 저마다 옳다고 외치지만 ‘갈라침·금긋기(분단·분열·분리)’일 뿐이고, 이 무리짓기부터 ‘따돌림(차별)’이 싹튼다. 2007년이던가, 《88만 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고, 둘레에서 이 책을 마구 추켜세우던 그즈음, 나는 어쩐지 코웃음이 나왔다. “무슨 얼어죽을 88만 원?” 그무렵 내 한달벌이는 ‘88만 원’은커녕 ‘50만 원’도 ‘30만 원’도 아니었다. 때로는 ‘10만 원’으로 볼볼 기었다. ‘그들(지식인)’이 금긋는 ‘88만 원 세대’라는 말은 고약했다. 왜 이런 ‘무리짓기(세대갈등)’를 일삼아야 하는가? 일부러 틀(프레임)을 만들어서, 왜 자꾸 갈라치기(이간질)를 하는가? 이 틀(프레임)로 이 나라에 새롭게 불길(분노)을 일으키고, ‘분노 프레임’으로 강단·강의를 차지하면서 ‘새길’이 아닌 ‘불길(분노)’로 금긋기(이분법에 따른 사회분열)로 치닫겠구나 싶었다. 《88만 원 세대》가 ‘나쁜책’일 수는 없되, 이런 책을 쓰고 이야기를 펴는 이들은 ‘통장잔고 0원’을 겪어 본 적이 없을 텐데 싶더라. ‘가난·구조적 차별·학벌’을 따지는(비판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분들 가운데 고졸·국졸인 사람이 있을까? 또는 서울·수도권 아닌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가난하지도 않고, 가난을 겪지도 않고, 빈곤층·차상위계층도 아닌 그분들은 ‘근로장려금’을 받은 일도 없겠지. 예전에 최영미 시인이 ‘근로장려금 수령 대상자’로 딱 한 해 된 적 있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그저 웃음이 났다. 여태 가난해 본 적이 없다가 꼭 한 해 돈벌이가 줄었대서 징징거리면, 늘 가난하게 살아가는 차상위·근로장려금 수령자는 어찌해야 할까. 달콤발림으로 꼬드기면서 ‘시키는 대로 나팔수가 되면 다달이 통장잔고가 늘어난다’고 다가오는 무리가 늘 있다. 온나라 어느 고장에서나 그 고장 기득권(시장·군수)을 봐주는(옹호하는) 글을 써주면 짭짤한 벌이와 자리(교수 또는 고문 또는 원장)를 준다. ‘나눔’은 아름길이 될 수 있지만 ‘가름·쪼갬’은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불길을 일으켜서 그저 싸움(전쟁)으로 치닫는 굴레이다. 우리가 스스로 사랑을 지피지 않고서 불길(분노)만 지필 적에는, 모든 정치·문단·언론·교육 권력자들이 뒤에서 팔짱끼며 낄낄댄다. 그들은 우리가 ‘아름다운 책’이 아닌 ‘분노를 지피는 책’을 더 많이 읽어서, 스스로 ‘생각을 멈추기’를 바라더라.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는 말씀이 있듯, 참말로 우리는 ‘사람’일 노릇이다. 우리말 ‘사람·살다·살리다·사랑·사이·새(멧새)·생각’은 말밑이 같다. ‘살(살갗)’도 같은 말밑이다. ‘살빛(살색)’은 나쁜말이 아닌, “사람 겉몸을 감싼 얇으면서 빛나는 옷”인 ‘살’을 드러내는 빛깔인데, ‘살빛’이란 낱말을 따돌림말(차별어)로 여겨 ‘살구빛’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논리)가 판치는 대목도, 우리가 스스로 사람됨과 사람빛을 잊어버리도록 내몰고 만다. 그런 목소리도 다 ‘금긋기(분열·이간질)’일 테지. 거짓말을 앞세워 틀(질서·프레임)을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높은 곳에는 어깨동무(평화)가 깃들 틈새가 없다. 그래서 나는 혼길을 걷는다. 몸에도 마음에도 날개를 달면서 뚜벅뚜벅 걷는다. 먼길을 갈 적에는 버스를 얻어타고, 버스에서 내리면 하늘빛을 머금으며 걷는다. 걷다가 멈추어 들꽃을 보고, 바람길을 읽고, 구름꽃을 느낀다. 나는 ‘그들이 세운 틀·무리’에 깃들 마음이 없다. 언제나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어울리고, ‘곁님’하고 ‘나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를 숲빛으로 가꾸는 길을 가려는 마음이다. 나는 아무 또래(세대)가 아니다. 그저 ‘숲사람’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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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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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5.29.

수다꽃, 내멋대로 42 딴청



  어릴 적을 돌아보면, 나로서는 일곱 살까지 신나게 놀던 나날이 있고, 여덟 살에 이르러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깃든 나날이 있다. 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둘레 어른들이 으레, 거의 날마다, 자주 하던 “그래, 여덟 살 때까지는 내버려 둬. 그때까지는 실컷 놀아야지.” 같은 말이 있다. 더 옛날에는 더 달랐겠지. 더 옛날에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딴짓·딴청’이라 여기지 않고 ‘놀이’나 ‘소꿉’이라 여겼다. 그러나 ‘틀’에 가두려 하면 모든 놀이·소꿉은 그만 ‘딴짓·딴청(주의력 결핍)’으로 여기면서 ‘나쁜짓(태도 불량)’으로 못박더라. 아무래도 ‘틀(제도권·학교·군대·감옥·정부·사회)’이라는 눈으로는 이렇게 보겠지. ‘틈(자유·기회·시간·소통·대화)’을 두지 않는 ‘틀·굴레’이기에 ‘단단’하게 ‘틀어막’고 ‘틀어쥔(거머쥔)’다. 사람들 넋(영혼)을 틀어쥐어서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 나라이다. ‘틈(자유·기회)’이 없으니, ‘틔울(싹틔울)’ 수 없고, ‘틈(시간·대화)’이 없으니, ‘열(생각을 열·말길을 열)’ 수 없다. 우리가 배움터(학교)를 따로 세워서 겪은 지는 이제 고작 온해(100년)이다. 온해 앞서라 하더라도 누구나 배움터를 다니지 않았고, 가난하거나 종(노예·백성·천민)이라는 자리에 있던 사람은 얼씬조차 못 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거나 모르는데, 1400년대에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이란 글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배우거나 구경할 수 있던 사람은 한줌(1%)조차 안 된다. 한문을 익혀서 쓰던 나리(권력자)가 아니면 훈민정음을 듣거나 배울 길이 없었다. 종살이(노예살이·농부·천민)를 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짓밟힌 삶이었고, 종이나 붓은 만질 수 없었고, 종이랑 붓은 너무 비싸기까지 했고, 종(노예·백성·천민)으로 살던 사람들은 나리(양반·사대부·권력자)가 쓰는 글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려다가 들키면 볼기(곤장)를 얻어맞거나 목숨까지 잃었다. ‘훈민정음·정음·언문·암클’은 1900년대에 접어들 즈음까지 참말로 ‘아무나 못 배우고 못 쓰던, 숨죽이던 글’이다. 나는 1993년에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쳤는데, 그무렵에는 배움터에서 이 대목을 가르쳐 주었고, 적잖은 책에 이 대목이 나왔지만, 어쩐지 요새에는 이 대목을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마치 1400년대부터 ‘종(노예·백성·천민)으로 억눌린 숱한 사람들’이 글살이(문자생활)를 할 수 있었다는 듯, 거짓말을 가르치는 분이 부쩍 늘었다. 아무튼, ‘딴짓·딴청’이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보면, ‘시키려는 쪽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한다’요, ‘심부름을 맡기려는 쪽에서 말하는 대로 안 듣는다’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왜 딴짓이나 딴청을 할까? 어른이 시키는 일·짓·말이 썩 달갑지 않거나 어렵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살필 틈이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다 아는 말’이라지만, ‘아이로서는 다 모르는 말’이기 일쑤이다. 아이 곁에서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말씨’를 손질하거나 걸러야 하는 까닭을 다들 제대로 모르는데, 아이들한테 너무 어려워서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거든. ‘어른들이 교과서나 책으로 적은 글’은 ‘아이한테는 뜬구름잡는 헛소리’이거나 ‘우격다짐으로 외워야 하는 굴레’이곤 하다. ‘숲·숱하다·수북하다·수박·수수하다·수두룩하다·쉽다·쉬다·숨·숨다’는 말밑이 같으며 얽힌다. ‘스스로·스승·스님’도 말밑이 같으며 얽히는데, ‘숲·스스로’는 만난다. 아주 쉬워 흔한 우리말은, 서로 잇닿으면서 생각을 북돋우고 틔우며 연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 곁에서 ‘쉽고 수수한 우리말’을 써야, 어른으로서도 어질게 철이 들고, 아이로서도 즐겁게 소꿉놀이를 하면서 마음틔움·생각열기·사랑나눔으로 뻗게 마련이다. ‘집(보금자리·살림터)’이라면 가두지 않는다. ‘틀(학교·군대·감옥·정부·사회)’이라면 가둔다. ‘집’은 심부름이나 시킴질이 안 흐르는, 함께 짓고 가꾸고 일구어 나누는 ‘날개’이다. ‘틀’은 오직 심부름과 시킴질이 판치면서, 외워야 하고 똑같아야 하고 따라가야 하는 ‘수렁’이다. 아이들은 차림옷(교복)을 입으면 안 된다. 똑같은 옷을 맞춰 입히는 데는 ‘틀’인데, 이런 틀은 ‘학교·군대·감옥·정부’인걸. 옷과 몸짓과 말이 틀에 박히면 ‘날개(자유·민주·평화·평등)’를 못 편다. 마음껏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라야, 날개를 펴면서 틈을 내어 철빛을 읽는 어른으로 자라날 만하다. 틀로 틀어쥐어 억누르고 똑같이 맞추면, 틀에 박히고 말아 마음도 생각도 사랑도 살림도 집도 없이 ‘학생·회사원·지식인’이라는 굴레에 갇혀서 종살이로 흐른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몸짓·말짓·눈짓’은 ‘딴짓(다른 짓)’을 해야 맞다. 손가락도 꼬물거리고, 발가락도 꼼지락거리면서 놀아야 아이답다. 아이 아닌 어른도 매한가지이니, 얌전히 앉아서 듣기만 하거나 외우기만 해서는 둘 다 갇힌다. 이른바 ‘수업·강의’에서도 왁자지껄 떠들고 수다를 펴면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교사(강사)·학생’ 모두 날개를 펴며 신나게 새길을 배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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