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52 공부 2023.5.19.



머리에 욱여넣기만 하니

멀미가 나서 고단하고

멍멍 어질어질 지치고

생각이 멎는 듯해


마음에 담으려는 길은

스스럼없이 마주하고

스스로지어 만나면서

천천히 슬슬 가지


거미는 하늘을 가르면서

맑게 바람빛 실을 풀고

제비는 구름을 가르면서

밝게 들빛 노래를 품네


꽃피고 잎지는 철을 읽어

눈오고 비오는 날을 읽어

해뜨고 별돋는 빛을 읽어

속으로 익히고 몸으로 배워


ㅅㄴㄹ


‘공부(工夫)’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을 뜻한다는데, 우리말 ‘배우다’를 “새로운 기술을 익히다”로 풀이하는 낱말책입니다. 겹말풀이예요. 이 같은 뜻풀이로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거나 어떻게 ‘익히’는가를 알기 어렵겠다고 느껴요. ‘배우다’는 “스스로 몸을 놀려 해보거나 겪다.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스스로 해보거나 겪다”처럼 뜻풀이를 새롭게 추슬러야지 싶습니다. 새롭게 해보면서 그야말로 새롭게 받아들여서 스스로 알아보려는 길이 ‘배우다’라고 할 만합니다. ‘익히다’라면 “자꾸, 오래, 꾸준히 하면서 쉽게 하도록 하다”로 뜻풀이를 붙이면서, ‘배우다·익히다’를 알맞게 갈라서 쓰는 길을 밝혀야지 싶어요. 어두운 곳이 눈에 ‘익’고, 낯선 길도 어느덧 눈에 ‘익는’다고 해요. 처음에는 하나도 알기 어렵고 낯설지만, 하고 또 하고 거듭하면서 몸에 어느덧 붙도록 하는 길이 ‘익히다’입니다. 더 잘 해내고 싶을 적에는 ‘갈다·갈고닦다·닦다’라는 낱말을 쓰지요. 더더욱 잘 해내고 싶으니 ‘벼리다’라는 낱말을 쓰고요. 둘레를 읽고 생각하고 마음을 기울이니 하나씩 알아갑니다. 글도 하늘도 숲도 마음도 읽어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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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1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달아 나도 공부하게되네요. 공부라는 한자어가 바로 쿵푸인듯.

파란놀 2023-06-10 08:40   좋아요 0 | URL
‘쿵푸‘라 말씀하시니
<쿵푸 팬더>가 떠오르네요.

저는 아직 <쿵푸 팬더> 영화평을 안 쓴 듯한데,
아이들은 진작에 100번을 넘게 보았고,
저는 아직 50번쯤밖에 안 본 터라....

저도 아이들처럼 <쿵푸 팬더>를 100번 넘게 본 뒤에는
<쿵푸 팬더> 영화평을 써야겠다고
문득 생각해 봅니다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62 초록 2023.5.25.



풀은

온누리를 푸르게 물들이고

뭇누리를 가만히 품어주고

한누리를 푸지게 북돋운다


풀잎은

다 다른 잎빛에 잎새로

바람을 불러들여 돌보고

이슬을 송글송글 맺는다


풀꽃은

풀벌레가 노래하는 곳

벌나비가 쉬어가는 집

씨앗에 낟알이 영글지


풀꽃나무는

푸릇푸릇 우거지며 숲

해를 머금고 비를 받아

누구나 살풋 깃드는 빛


ㅅㄴㄹ 


풀잎은 어떤 빛인가요? 나뭇잎은 어떤 빛깔이지요? 풀이기에 ‘풀빛’입니다만, 적잖은 분들은 그만 풀을 풀빛이라 안 하고 ‘초록’이나 ‘녹색’으로 가리킵니다. 중국 한자말이라는 ‘초록(草綠)’은 “1.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 또는 그런 색의 물감 = 초록색 2. 파랑과 노랑의 중간 빛 = 초록빛”을 뜻한다고 합니다. 일본 한자말이라는 ‘녹색(綠色)’은 “= 초록색”으로 풀이해요. 우리한테는 ‘풀빛·푸름’이라는 우리말이 있으니, 이 말씨를 알뜰살뜰 쓸 수 있으면 됩니다. 푸르기에 풀이요, 푸지게 자라면서 푸른숨을 베풀 뿐 아니라, 푸른밥(나물밥·풀밥)을 베풀기에 풀입니다. 풀을 머금으면 우리 몸에 있던 찌꺼기를 풀어줍니다. 풀은 푸르게 일렁이는 바람을 불러서 모든 앙금을 풀어냅니다. 풀은 이 별에서 너른 땅(뭍)을 품습니다. 풀이 품는 곳에서 새도 풀벌레도 짐승도 사람도 푸근히(포근히) 보금자리를 지어서 살아요. 숲은 바로 풀이 바탕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숲이란 ‘풀꽃나무’가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풀을 풀로 바라보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무럭무럭 자라 몸과 마음이 싱그러이 빛나면서 철드는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푸름이(푸른씨·청소년)’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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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마라 - 우리가 백기완이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엮음 / 돌베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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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6.10.

헌책읽기 13 그들이 대통령 되면 누가 백성 노릇을 할까



  둘레를 보면 ‘정권퇴진 운동’에 목소리를 내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한테 이따금 묻습니다. “그놈들만 끌어내리면 이 나라가 깨끗한가요?” 그저께쯤 고흥읍내 한켠을 걷다가 ‘100억짜리 사방공사’를 보았습니다. 멀쩡한 멧자락 한켠을 깎아내고 시멘트를 조금 들이붓고서 ‘100억 예산집행’이라고 떳떳이 밝히더군요. 예전 어느 우두머리가 ‘4대강 삽질 22조’를 썼다는데, 다른 분은 ‘들숲바다에 햇볕판(태양광패널)에 바람개비(풍력발전기)을 200조 넘는 돈을 쏟아부어 때려박았’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누리호’를 쏜다지만,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바닷가에서 꽝꽝 쏘면 27킬로미터가 떨어진 우리 집도 흔들리고 큰소리가 울립니다. 자, 그럼 ‘나로기지’가 있는 바다와 갯벌 살림은 ‘떨림(진동·소음)’으로 몽땅 죽겠지요? 오늘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어른스럽게 할 일이라면 “모든 썩은짓(부정부패) 씻기”여야지 싶습니다. 저놈들만 썩지 않았어요. 이쪽에 있다는 ‘분들’도 나란히 썩었습니다. 그대는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타는가요? 시골버스나 시내버스에서 푸름이(청소년)들이 얼마나 ‘썩은 입내’를 풍기면서 막말(욕설)을 일삼는지 듣거나 보는지요? 골목 한켠에서 얼마나 많은 푸름이(청소년)들이 담배를 태우면서 침을 찍찍 뱉고 떠드는지 보는지요? 이 아이들은 ‘누구한테서 막말을 배우고 누구한테서 막짓을 물려받았’을까요? 집과 배움터(학교)에서, 또 글(문학)과 영화·웹툰에 흔하게 퍼진 ‘폭력·욕설·살인·강간’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보고서 따라하는 줄 느끼지 않는다면, 엉터리 우두머리를 끌어내리고 또 끌어내려도 쳇바퀴일 뿐입니다. 그놈 하나뿐 아니라, ‘모든 썩은놈’을 끌어내릴 때라야, 비로소 이 나라가 똑바로 설 수 있습니다. 어린이한테 차마 보여줄 수 없는 꼴은 저 우두머리 한 놈뿐일까요? 제발 눈을 뜰 노릇입니다. 우리가 ‘나이만 먹은 꼰대’가 아닌 ‘철든 어른’이라면 이제부터 ‘착하고 참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대통령 되면 누가 백성 노릇을 할까?》(백기완, 백산서당, 1992.1010.첫/1992.12.30.6벌)


ㅅㄴㄹ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가. 돈 있는 사람들이 돈만 내면 광고 등으로 얼마든지 나오게 되어 있다. 전파 방송을 돈 있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지금 농민들은 피눈물이 나건만 호소할 데가 없다. 지금 노동자들은 할 소리가 그렇게 많아도 그 소리를 ‘보는틀’을 통해 한 마디도 못해 보고 있다. 양심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그 대신 사기꾼 정상배들은 감기만 들어도 ‘보는틀’에 나오고, 제아무리 악덕재벌이라 하더라도 돈만 내면 얼마든지 상품광고를 할 수 있는 저 방송매체, 그것이 바로 있는 자들의 폭력기구이지 어떻게 공영방송, 공정한 방송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오늘도 단추만 누르면 “이놈들아 내 물건부터 팔아주지 않고 무엇을 꾸물대느냐”고 공갈만 하는 저 간악한 장사치들의 지겨운 광고방송을 보라. (144쪽)


여기서 이들 두 김씨(김대중·김영삼)가 우리에게 안겨준 30년 동안의 정신적 피해를 반드시 점검하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는 국민들의 무력감이다. 둘째는 그들이 정치판의 전면으로 나서던 60년대 말경만 하더라도 임금노동자는 불과 백만 명, 그러나 90년대인 지금은 그 열다섯 배인 1500만 명이다. 이와 같이 계급분화가 일어나 일하는 일꾼이 생산판에서 또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분명한 역사의 알기(주체)로 등장했는데도, 밤낮 두 김씨가 역사를 주도하는 것처럼 꾸며대는 현실에서 오는 자기상실증이요, 셋째로는 두 김씨에 대한 기대망상이 아니라 기대파국에서 오는 냉소주의다. 백 번 설쳐 보아라.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하는 식의 냉소주의가 끝내는 허무주의로 된 현실이다. 이 점은 지금 여당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계와 학꼐, 심지어는 민중운동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만연된 심각한 문제다. (212쪽)


한마디로 보수야당 갖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늘의 독재체제 부패구조의 일부입니다. 먼저 그 뿌리부터 말씀드릴까요? 오늘의 야당의 뿌리는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집단입니다. 왜놈들이 우리의 처녀들을 수십만 명씩이나 잡아다가 성의 노리개로 몰살시킨 이른바 정신대 이야기는 치가 떨리지요. 그 악귀 잡신이 왜놈들뿐인 줄 아세요? 오늘날 야당의 뿌리의 하나인 박순천 여사가 바로 일제 때 우리네 처녀들에게 정신대로 나가라고 강권하고 혹은 연설을 하고 다니던 대표적인 친일파, 여성의 적이며 인류의 양심을 저버렸던 정신대 범죄의 장본인입니다. 조병옥 박사는 또 어떤 인물일까요. 해방 직후 통일을 염원하는 세력을 대량 학살한 장본인의 하나입니다 … 장준하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신익희 씨는 독립투사가 아니라 사기 협잡꾼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맥의 뿌리를 오늘에 이어받은 야당이야말로 오늘의 분단독재체제의 일부라는 것을 부인할 도리는 없으며 따라서 보수야당은 부패청산의 해결자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59쪽)


그러면 무엇이 희망일까요. 사람이 돈을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돈에 의한 지배착취, 돈에 의한 불균등을 청산하고 사람이 돈을 다스리고 사람이 역사창조의 알기가 되는 세상, 그것을 만들기 위한 실천과 이상의 통일이 곧 우리의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27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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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유미리 지음, 한성례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6.10.

헌책읽기 12 세상의 균열과 혼魂의 공백



  저는 전라남도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전남 작은시골에 깃들어 열 몇 해란 나날을 보내기 앞서까지 ‘전라도가 이다지 썩은 줄’ 조금도 몰랐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동안 ‘인천이 허벌나게 썩었다’고 늘 느꼈고, 서울로 옮겨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서 출판사에 들어가 일할 즈음 ‘서울이 더럽게 썩었다’고 으레 느꼈으며, 충청북도로 옮겨 이오덕 어른 글자락을 갈무리하며 다섯 해쯤 사는 동안 ‘충청도를 비롯해 글판·배움판(교육계)이 썩어문드러진 꼴’을 언제나 새삼스레 보았습니다. 이따금 부산마실을 하면서 부산 곳곳에 ‘부산시가 헛돈을 쏟아부은 얼나간 관광시설’을 지켜보면서, 그야말로 이 나라 구석구석 안 썩은 데가 있나 고개를 갸웃합니다. 우리나라에 ‘진보·보수’가 있을까요? ‘다 썩은 무리’하고 ‘확 썩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유미리 님이 쓰는 글이 한동안 한글판으로 잇달아 나왔지만 이제는 거의(또는 아예) 안 나옵니다. 《세상의 균열과 혼魂의 공백》을 읽고 보면, ‘속속들이 썩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도무지 뭘 할 수 있겠는가 싶어 속으로 앓다가 조용히 눈물을 거두고서 차분하게 ‘오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눈빛’을 느낄 만합니다. 한글이되 우리말이라 하기 어려운 “세상의 균열과 혼魂의 공백”은 뭘까요? 이렇게 옮기고서 ‘번역’을 했다고 여기는 쓸쓸한 민낯입니다. “世界のひびわれと魂の空白を”인데 ‘を’는 어디에 팔아먹었나요? ‘ひびわれ’하고 ‘魂の空白’은 ‘틈’과 ‘빈얼’로 옮겨야지 싶습니다. ‘世界’는 “이 땅”으로 옮겨야 할 테지요. 왜 그럴까요? 유미리 님은 “푸른별(지구)이라는 이 땅에 아무런 ‘틈(틈새)’이 없어 싹틀 수도 움틀 수도 없는 사랑이 슬픈 나머지, 사람들이 잊다가 잃어 ‘텅 빈 얼’을 스스로 아파한 나머지, ‘이 꼴을’ 어떡해야 아이한테 안 물려줄까?” 하고 속삭입니다. ‘물려주고 싶은 땅과 틈과 얼을’ 생각하는 글자락입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얼차릴’ 일입니다.



《세상의 균열과 혼魂의 공백》(유미리/한성례 옮김, 문학동네, 2002.5.25.)


#이땅에서틈과빈얼을

#世界のひびわれと魂の空白を #柳美里


ㅅㄴㄹ


내 이름은 미리(美理)다. 구청에서 알아보았더니, ‘밀양(密陽)’의 어원은 ‘수룡(水龍/미리리)’이라고 한다. 밀양, 미리리, 미리. 그리고 두 살 때 죽은 외할아버지의 바로 아래 동생은 ‘수룡(水龍)’이라는 이름이었다. (51쪽)


그들의 무례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시간 약속이나 일을 진행하는 게 분명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사과하지 않으며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우선 행동부터 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면서 몸에 밴 법칙과 습관으로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났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내 안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9쪽)


전후 일본인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한 것일까? ‘나라를 위해’를 ‘회사를 위해’로 바꾸고 기업 전사가 되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거품경제가 터진 지금, 사람들의 손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평화? 전후 민주주의? (72쪽)


며칠 전에 있었던 일본 교직원 노동조합 대회와 사회당 임시 당대회를 보도로 알았는데, 두 대회가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매우 놀랐다 … 무엇이 닮았는가 하면, 논의 끝에 방침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사전에 다수파에 의해 방침이 결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간파나 반대파가 뒤엉켜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게 위해 물밑에서 혹은 공공연히 흥정으로 일관한다. (81쪽)


선거권도 없는 재일한국인에게 왜 납세 의무가 있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듬해부터 나는 아주 간단하게 납세자가 되었다. (111쪽)


대동아 공영권의 망령은 고도성장기에도 출현했다. 회사를 위해 다른 건 개의치 않고 멸사봉공으로 일했다. 공해로 사람이 죽어도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 회사는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수은중독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127쪽)


대화가 가장 활발하게 오가던 그 당시조차 대리인이라는 무사시 대학의 여교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생하며 자랐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재일한국인들 중에서 너 같은 사람은 흔하다. 그런데 그걸 장사밑천 삼아 텔레비전이나 잡지 인터뷰에서 주절주절 떠들어대고 있다니, 바보 아니냐! 자살 미수 경험도 있다고 하던데 자실을 팔아먹겠다면 지금 당장 죽는 게 어때?” 이렇게 작품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일로 매도하고 협박하더니 덧붙였다. “두고봐라. 너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릴 테니. 우리는 너 같은 사람 간단하게 매장시킬 수 있는 인맥과 힘이 있어.”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화해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177)


류세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아이 초상화를 다른 가족의 찬성을 얻을 때까지 고쳐 그려야 한다고 요구하면 어떤 화가라도 경악할 것이다. 이런 얘기는 누가 들어도 황당무계한 얘긴데, 회화에서는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 어떻게 소설에서는 가능한지, 꼭 오에 씨에게 묻고 싶다. (190쪽)


그러자 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문예지에 실린 형편없는 소설 따위를 뭐 하러 읽나? 차라리 플로베르의 작품을 읽는 게 백 번 낫지. 그러고 보니 얼굴이 제법 반반하군. 누드 사진집 내면 팔릴 것 같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내 손은 가만히 있었다. 내 손이 날아간 것은 바로 그 다음에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기 때문이었다. (227∼228쪽)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무식한 작가가 확고부동한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갖고 있는 인물들을 향해 언론전을 벌였다는 사실도 그들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들은 내 의견을 일축할 수도 없었다. (24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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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하얀눈빛 (2022.12.15.)

― 순천 〈책방사진관〉



  하루를 여는 일이란, 어제를 털고서 오늘을 새로 걸어가는 몸짓입니다. 어제까지 아쉽거나 못미덥거나 쓸쓸한 자취를 고이 내려놓고서 이제부터 새마음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잃은 열 가지가 있으면, 이 열 가지를 새로 추슬러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지을 수 있어요. 하루하루 익힌 숨결을 되새기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구름빛을 살피고 햇살을 돌아봅니다. 바보하고 헤어지느냐 안 헤어지느냐를 따지면 스스로 바보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를 바라보면, 이 마음에 담는 숨결로 즐거울 길을 지어요. ‘짓는이’ 또는 ‘지음이’인 사람은 글만 짓거나 쓰지 않습니다. 하루를 짓고 삶을 짓고 꿈을 지어서 차근차근 생각을 지어가는 길에 오늘을 짓습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이야기를 짓고,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글·그림으로 피어납니다.


  문득 순천으로 건너갑니다. 이모저모 저잣마실을 하고서 〈책방사진관〉으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작은아이하고 바깥마실을 하며 여러 모습을 지켜봅니다. 우리 눈에는 둘레에서 흘러가는 모습을 담을 수 있고, 어느 곳을 가더라도 꿈씨앗을 심는 발걸음일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넘기다가, 글책을 훑다가, 적잖은 ‘어른 글꾼’은 아이들한테 ‘꿈씨·생각씨·사랑씨·숲씨’를 물려주려는 줄거리보다는 ‘부스러기(인문지식)’를 외우도록 부추기는 줄거리로 책을 여민다고 느낍니다.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자면 ‘인문지식’을 갖추어야겠으나, ‘삶’을 누리고 ‘살림’을 가꾸는 길에는 ‘인문지식’이 아닌 ‘마음씨’를 품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도덕·예의·규칙’으로는 아름나라로 나아가지 않아요. ‘사랑으로 품는 마음씨’일 적에 아름누리로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보고 느끼는 대로 말을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삐뚤빼뚤 쓰지 않고, 늘 아이답게 쓰고 그립니다. 우리는 아이들 손길에서 어떤 마음을 느끼거나 읽을까요? 잘하기(전문가)로 나아가야 할 아이가 아니라면, 아이 발걸음과 손놀림을 수수하게 맞아들여서 삶이야기·살림이야기·사랑이야기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십이월이란, 한 해가 저무는 끝이라기보다 새해를 여는 첫발이라고 느낍니다. 꼬마도 꽃도 끝에 서기에 새길로 갑니다. 섣달은 ‘서면서(멈춰서면서), 서는(일어서는)’ 걸음마입니다. 하얀눈빛이란 눈송이로 차곡차곡 그리는 들빛이면서, 나무마다 찬찬히 웅크리는 잎눈이요 꽃눈입니다. 서로 바라보는 따사로운 눈망울 빛결도 언제나 하얀눈빛일 테고요.


ㅅㄴㄹ


《나쁜 말 사전》(박효미 글·김재희 그림, 사계절, 2022.2.25.첫/2022.6.30.3벌)

《화 괴물이 나타났어!》(미레이유 달랑세/파비앙 옮김, 북뱅크, 2022.8.5.)

《길동무 꼭두》(김하루 글·김동성 그림, 북뱅크, 2022.11.30.)

《악당이 된 녀석들》(정설아 글·박지애 그림·사자양 밑틀, 다른매듭, 2022.1.27.)

《사람 살려, 감염병 꼼짝 마!》(지태선 글·그림, 사자양 밑틀, 다른매듭, 2021.11.8.)

《행복의 정원》(김소연 글·채복기 그림·사자양 밑틀, 다른매듭, 2021.11.30.)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숲하루 글, 스토리닷, 2022.12.1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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