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시작이다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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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우리말숲 / 다듬읽기 2023.7.2.

인문책시렁 308


《책은 시작이다》

 오사다 히로시

 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2.11.15.



  《책은 시작이다》(오사다 히로시/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2)를 읽었습니다. 이제는 책을 말하는 사람도 책도 많습니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책나래’보다는 ‘책굴레’에 머물고, ‘책숲’보다는 ‘책나라’에 기우는구나 싶습니다.


  ‘나래(날개)’란 스스로 날개돋이를 하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씨앗을 심는 길을 가리킵니다. 나래는 애벌레가 옛몸을 녹이면서 스스로 짓습니다. 풀잎이나 나뭇잎만 갉으면서 눈코귀가 없이 입만 있던 애벌레는, 한참 덩치만 키우다가 어느 날 ‘입놀림(먹기)’을 멈춰요. 이러고서 제 몸에서 실을 자아내어 고치를 짓고는 깊이 잠듭니다. 꿈길로 가지요. 꿈길로 나아가는 애벌레는 눈물을 여미고서 고요히 생각을 짓고, 이 생각은 미움도 시샘도 놀림도 불길도 아닌 그저 오롯이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빛씨앗입니다.


  빛씨앗을 마음에 심는 생각을 오롯이 편 애벌레는 ‘입으로 먹기만 하던 토실한 애벌레라는 몸’을 모조리 녹입니다. 죽이거나 없애지 않아요. 녹입니다. 옛몸을 미워하지 않고, 눈코귀가 있는 다른 숨붙이를 시샘하지 않아요. 그저 ‘나란 누구인가’ 하나만 바라보면서 꿈을 그리기에 어느새 ‘옛몸을 다 녹이고서 날개를 몸에 맺는 새몸’은 나비나 나방으로 깨어납니다. 이러한 길이 ‘날개돋이’요 ‘책나래’라 할 만합니다.


  책나래라 할 적에는, 인문책도 정보·지식도 아닌, 잘난책(베스트셀러)이나 오래책(스테디셀러)조차 아닌, ‘숲책·푸른책’을 스스로 품어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이와 달리 ‘책굴레’는 숱한 이름값·힘·돈에 얽매여 굴레에 스스로 가둔다는 뜻이에요. 이름난 책을 읽는들 우리 스스로 이름을 드날리지 못 합니다.


  ‘책나라’는 ‘책(정보·지식)을 내세우는 나라(정부)’라는 뜻입니다. 나라(정부)는 종이(자격증·졸업장)에 얽매이지요. 우리는 종이꾸러미라는 책을 읽되, ‘글쓴이 솜씨종이(자격증·졸업장)가 아닌 글종이(원고지)’만 바라볼 노릇입니다. 그런데 ‘책나라’일 적에는 허울을 쓰고 말아 알맹이를 잊어요. 열매를 못 봅니다. 또한 모든 나라(정부)는 서울(도시)을 세웁니다. 서울은 시골을 짓밟으면서 힘·이름·돈을 홀로 차지하는 굴레예요.


  우리가 책을 곁에 둔다고 할 적에는 ‘책나라 아닌 책숲’일 노릇입니다. 풀꽃나무랑 해바람비가 어우러지는 숲을 품는 ‘책숲’을 바라보고 돌보는 몸짓일 적에, 비로소 열매랑 씨앗을 나란히 누리고 나누는 길을 열어요.


  《책은 시작이다》는 어린이책 이야기도 꽤 다룹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누구나 사랑을 나누고 누리는 길잡이를 이루는 이야기밭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린이책에 담는 글처럼 온누리 모든 곳에서 ‘어린이 눈높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길’을 펼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책을 안 읽는다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을 늘 읽고 새기면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쉬운말(살림말)로 생각을 펴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어른이에요.


  책으로 삶길을 열자면, 스스로 책나래를 이루면서 책숲으로 갈 일입니다. 책나라도 책굴레도 아닌, 책빛을 책씨로 맺으려면, 숲책을 읽으면서 숲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쓰는 매무새여야겠지요. 숲말이란 마을말(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입니다. ‘지식용어·전문용어’나 ‘문화·예술·문학’이 아닌, ‘삶·살림·사랑’을 ‘숲’에서 ‘사람’으로서 펴고 나누고 짓고 그릴 적에는, 온누리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ㅅㄴㄹ


지금 우리는 전부 다 똑같아지고, 전부 다 똑같은 책을 읽고, 전부 다 똑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데도, 오히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70쪽)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말 안에서 태어나고 어떤 말에 의해서 자라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76쪽)


말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합니다. 말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풍요로운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84쪽)


도대체 언제부터 어린이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또 어째서 어른들은 어린이책을 읽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존재일까요? (97쪽)


어린이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려운 점은 어린이책의 세계를 모르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103쪽)


음악에서 말하는 기술혁신은 전부 ‘나눔’ 문화의 기술혁신이었습니다. (207쪽)



#長田弘 #読書からはじまる


오늘날을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로

→ 오늘날을 보여주는 하나로

→ 오늘날을 나타내는 하나로

7쪽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 먼저 ‘누가 동무인가’를 생각해야겠습니다

→ ‘동무란 누구인가’부터 생각해야겠습니다

15쪽


인간이 늘 필요로 해 왔던

→ 사람이 늘 바라던

→ 사람이 늘 곁에 두던

19쪽


전승을 통해, 문자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 말로, 글로, 책으로 우리한테 내려온

→ 이야기로, 글로, 책으로 우리한테 내려온

25쪽


무엇을, 즉 소프트웨어를 묻습니다

→ 무엇을, 곧 속을 묻습니다

→ 무엇을, 곧 빛을 묻습니다

→ 무엇을, 곧 마음을 묻습니다

41쪽


왜 독서의 경우에는 맨 먼저 하드웨어를 묻지 않을까요

→ 왜 읽을 적에는 맨 먼저 겉을 묻지 않을까요

→ 왜 글읽기는 맨 먼저 몸을 묻지 않을까요

→ 왜 책읽기는 맨 먼저 옷을 묻지 않을까요

41쪽


식품에 비유하자면 유통기한이 대단히 깁니다

→ 먹을거리에 대면 쓰임날이 대단히 깁니다

→ 밥에 견주면 마감날이 대단히 깁니다

45쪽


점점 더 가속적으로 발전해 온

→ 더 빠르게 발돋움한

→ 더욱 빨리 자란

45쪽


비로소 번호를 써넣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 제대로 기입되기까지 무려 천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 비로소 값을 써넣었다는데 … 제대로 써넣기까지 자그마치 즈믄 해가 넘었답니다

→ 비로소 눈금을 써넣었다는데 … 제대로 넣기까지 자그마치 즈믄 해가 걸렸답니다

46쪽


인생을 심호흡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 삶을 들이켤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 오늘을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61쪽


‘기량이 좋다’라는 말은 겉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릇이 좋다’는 말은 겉모습을 말하지 않습니다

→ ‘됨됨이가 좋다’는 말은 겉을 말하지 않습니다

87쪽


도대체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존재일까요

→ 참말로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숨결일까요

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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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두바퀴 2023.6.23.쇠.



두 발을 굴려서 새로 길을 내는 ‘두바퀴’가 있더구나. 두 발을 안 구르면서 멀리 오가는 ‘두바퀴·네바퀴’가 있고. 너희는 ‘바퀴’를 굴려서 짐을 가볍게 나르고 몸을 멀리 보낼 수 있다고 여기지. 틀린 일은 아니야. 그런데, 바퀴로 가려면 들이랑 숲을 밀어내야 하지 않아?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릴 적에는 들도 숲도 멀쩡하지. 곰·여우·늑대·범·코끼리가 다니더라도 들숲이 망가지는 일이란 없어. 한동안 발자국이 남더라도 풀씨가 자라고 가랑잎이 덮으면서 흙빛으로 고스란히 돌아가지. 이와 달리, 너희들이 타는 모든 ‘바퀴’는 따로 들숲을 파헤치고 죽이더구나. 생각할 수 있을까? 들숲을 고스란히 두면서 푸르게 이웃하고 어우러지는 길을 다닐 적에는 ‘멀고 가깝고’란 없이 ‘길’을 간단다. 너희를 둘러싼 이웃을 만나고 느끼고 얘기하려고 ‘두 다리’로 걷지. 너희 곁 이웃을 몰아내고서 너희끼리 놀려고 이웃 삶터를 무너뜨리고 죽여서 ‘바퀴길(찻길)’을 내더구나. 그 바퀴길(찻길)은 나쁘지는 않지만 ‘살림길·어울림길’이 아니지. 바퀴를 더 몰고 더 타고 더 달릴수록, 너희 몸은 ‘잿더미’라는 죽음터에 스스로 파묻힌단다.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만지고,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기에, ‘너’는 ‘너를 둘러싼 남’을 느끼고 알아차리면서 ‘나와 너’라는 ‘두’ 길이 언제나 ‘하나’인 줄 익힐 수 있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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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빠르다 2023.6.24.흙.



‘때곳(시공간)’이란 없는 줄 바라보고 느끼고 받아들여서 산다면, 빠름도 느림도 없는 줄 알지. ‘때곳’을 마음에 놓기에 어느 일은 ‘빠르’고 어느 일은 ‘느리’다고 갈라. 그래서 ‘좋음·나쁨’이라고 여기면서 ‘빨라서 좋다’나 ‘느려서 좋다’고 느끼지. 이런 느낌도 나쁘지 않아. 삶이라는 자리에서 느끼고 배우는 길 가운데 하나야. 그런데 네가 ‘때곳·빠름느림·좋음나쁨’이 모두 헛것인 줄 안다면, 너로서는 ‘함(하다·해보다)’이 있단다. 무엇을 ‘할’ 적에는 ‘할’ 뿐이기에, 언제 어디에서 누구랑 왜 어떻게 ‘하는’가를 따지거나 가리지 않아. ‘할’ 적에는 ‘하는’ 일만 보고 받아들이거든. ‘함’을 바라보지 않기에 ‘일삯’이나 ‘값어치’를 따져서 ‘이만큼이어야 좋다’거나 ‘그만큼은 나쁘다’고 가른단다. 굳이 일삯을 안 받거나 값어치를 깎을 까닭은 없어. 그리고 일삯에 매이고 값어치를 쳐다볼수록 길들지. ‘길’을 가는 삶이 아닌, ‘길든’ 채 쳇바퀴에 매이는 몸짓인 ‘때곳’이야. 빨리 해야겠어? 빨리 죽으려 하니? 느리게 해야겠어? 끝내고 넘어갈 마음이 없니? 똥오줌을 누려면 누고서 끝내고 네 ‘일·하루·길’을 바라보렴. 숨만 쉬거나 밥만 먹을 셈은 아니지? 숨을 쉬거나 밥을 먹었으면, 그다음으로 나아가려는 네 ‘일·하루·길’을 그려서 누리렴. ‘빨리’ 해치우면 ‘끝’도 ‘함’도 ‘넘어섬’도 아니야. ‘빨리’뿐 아니라 ‘느리게’에 매이면, 너한테는 ‘일·하루·길’이 사라지면서 ‘오늘·삶·살림’이 나란히 스러진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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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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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찌르는. 2023.6.25.해.



벼락이 우르릉 치면, 하늘하고 땅 사이를 훅 잇는 빛길이 번쩍하면서 생겨. 이 길을 타고서 숱한 빛씨앗이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서 오간단다. 비가 솨솨 내리면, 하늘·땅·바다 사이를 가벼이 잇는 물길이 밝게 생겨. 이 길을 타고서 숱한 숨씨앗이 왁자지껄 웃고 노래하면서 다닌단다. 구름이 걷히고서 벼락이며 비가 떠나면, 어느새 햇살하고 별살이 가만히 퍼지는데, 고요히 웃고 조용히 노래하면서 춤추지. 벼락은 땅을 안 찔러. 비는 땅하고 바다를 안 찔러. 해랑 별도 찌르는 일이란 없어. 그런데 사람이라는 몸을 입고서 나라(정부·국가)라는 틀을 세우면 으레 서로 찌르네. 누가 먼저 찔렀을까? 찌르기를 멈출 수 있을까? 지름길(질러가는 길)은 가장 가까운 길이라 여기는 듯한데, 둘레도 옆도 안 보면서 마냥 가로지르려고 한다면, 너한테 삶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하느냐’하고 ‘안 하느냐’가 아냐. 삶이라는 길에서는 ‘안 하는 함’도 있어. 삶이란, 마음에 이야기를 지어서 담는 길이니, 네가 짓는 이야기에는 늘 숱한 ‘함(하기·해보기)’이 흐른단다. 그러나 ‘찌르기’는 ‘함’이 아니야. 쿡 찌르든 아프게 찌르든 불쑥 찌르든, 찔러 본들 터지거나 막힐 뿐이야. 둘레에서 너랑 같은 쪽에 서야 하지 않고, 네가 둘레를 따라갈 까닭이 없어. 질러가려고 하면 이내 지쳐. 질러가니까 스스로 질려서 아무 이야기가 없이 ‘심부름(시키는 짓)’에 갇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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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꽃 . 소멸 2023.6.26.달.



빗물은 부스러기에 쓰레기를 씻어내지만 없애지 않아. 빗물은 들숲을 감돌지만 푹 덮어버리지 않아. 바다는 뭍을 가만히 감싸는데, 땅을 모조리 물에 잠기도록 불어나지 않는단다. ‘물’은 살리는 빛이자 노래이자 춤이자 씨앗이야. 물이 흐르기에 들숲이 푸르고, 물이 바다를 이루기에 모든 목숨이 사이좋게 어우러지고, 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내려오기에 ‘누구나 하늘길을 배우는 틈’을 넌지시 알려준단다. 하늘로 올라서 구름이 되는 아지랑이를 보렴. 구름이 아무리 두껍게 끼어도 바다는 마르지 않는단다. 물을 바람에 곁들여 늘 새로 받아들이기에 모든 목숨붙이는 저희 몸을 돌보고 가꾸면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어. 물은 안 사라져. 물방울은 안 죽어. 너희 넋은 ‘몸’이라는 옷을 입지? ‘몸’이라는 옷은 ‘물’로 이루기에 언제나 ‘삶’을 새로 보고 듣고 겪고 느껴서 배우는 길을 간단다. 몸이라는 옷에서 ‘물기운’이 사라지면, 너희 넋이 깃들 자리인 몸이 더는 힘을 낼 수 없기에 ‘물빛 없는 몸’을 떠나려고 한단다. 물을 품기에 삶이 있고, 물을 알기에 말을 엮어 이야기를 짓고, 물을 잊기에 죽음으로 가고, 물을 모르기에 이 별에 흐르는 사랑을 등진단다. ‘사라짐(소멸)’이란, 물방울이라는 빛을 잊고 잃을 적에 일어나. 너희가 삶·살림·사랑을 바란다면 ‘하나이면서 모두’인 물빛으로 물방울이 되고, 물처럼 노래하면서 흐르면 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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