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44


《다시 태어나야 할 겨레의 신문 2》

 박해전 엮음

 울도서적

 1994.2.25.



  2023년 7월 끝자락에 ‘주호민·한수자 막짓’이 불거졌습니다. ‘주호민 집안 아이’는 2022년에 어린배움터(초등학교)에서 두 살 어린 여학생 뺨을 때릴 뿐 아니라, 바지를 훌렁 벗는 응큼질(성폭력)을 벌였어요. 이런 짓을 벌인 아이가 ‘별아이(자폐 어린이)’였기에 ‘학교폭력 가해자 전학 조치’를 하지는 않고 ‘일반학급 교육이 아닌 특수학급 교육으로 분리조치’를 했는데, ‘주호민·한수자’ 씨는 어린배움터 길잡이(특수교사)가 이녁 아이를 괴롭혔다(아동학대)면서 형사고발을 했다는 얘기가 거의 한 해 만에 알려졌습니다. ‘때린이 어버이(가해자 학부모)’가 뜬금없이 어린배움터를 휘저은 막짓인데, 몇몇 새뜸(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은 이 일을 글로 아예 안 다루다가 ‘사람들이 자폐 혐오를 드러낸다’는 글을 슬쩍 띄워요. ‘주호민·한수자’ 씨가 ‘문재인 공개지지’를 했고 ‘남파간첩 만화’를 그렸고 ‘천안함 피격 희화화’를 했기에, ‘한경오’ 세 곳에서는 ‘주호민·한수자 지키기’를 하는 듯싶습니다. 그러나 ‘어린 여학생이 받은 끔찍한 주먹질(학교폭력)·응큼질(성폭력)’에다가 두 사람이 그동안 벌인 막짓(갑질)을 눈감는다면, 곧은소리도 바른소리도 아닌, ‘한집안 감싸기’일 뿐입니다.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잘못은 잘못이라 밝히고 따져야 곧은붓입니다. ‘저쪽 밉놈’만 나무라려고 한다면 바른붓이 아닌 뒤틀리고 흔들리는 붓일 뿐입니다. 지난 1994년에 석 자락으로 나온 《다시 태어나야 할 겨레의 신문》을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한겨레신문의 임원은 창간부터 해직기자 출신이라는 거의 유일한 공통분모만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기업경영에는 문외한인 기자 출신이 스스로 경영을 담당함으로써 계속 적자에 허덕이고 금전사고가 빈발하여 조직운영의 미숙함, 책임성 없는 안일한 경영태도를 보였다 … 편집권이라는 애매한 용어보다는 편집의 자율성이 한겨레신문에 더 어울리는 어휘이다. 왜냐하면 한겨레신문은 경영진과의 배타적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들만의 배타적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영진과 동반자적 관계에서 편집의 자율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국민주주를 포함하여 모든 한겨레신문의 구성원들이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240, 244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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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34


《알바 고양이 유키뽕 5》

 아즈마 카즈히로 글·그림

 김완 옮김

 북박스

 2004.3.11.



  열네 살인 1988년부터 배움수렁(입시지옥)에 사로잡힌 터라 06∼23시를 오롯이 배움터에 묶였는데, 열네 살이 되기 앞서까지 날마다 치른 일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루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오면 나들간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저랑 언니는 구두랑 버선을 벗기고 한참 팔다리에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이렇게 하고서야 비로소 우리 아버지는 발을 씻고 잠자리로 갔습니다. 힘들게 일하여 돈을 버는 어른을 깍듯이 모셔야겠습니다만, “나는 앞으로 저런 회사원이 될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터에 오래 머물면 돈을 더 벌까요? 돈을 더 벌면 우리 삶은 얼마나 더 아름답거나 기쁠까요? 《알바 고양이 유키뽕 1∼15》에는 ‘곁일(알바)을 하며 돈을 벌어 살림을 건사하는 고양이’가 나옵니다. 고양씨는 얼결에 일자리를 찾고, 일터마다 “응? 고양이가 일을 한다고?” 하면서 놀라지만, 웬만한 사람보다 일을 잘하고, 사람은 도무지 일을 못하는 곳에서까지 일을 합니다. 다만 고양씨는 ‘자리잡기(정규직 노동자·회사원)’는 안 합니다.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더라도 일을 잔뜩 하느라 지친 터라, ‘힘들여 번 돈’은 ‘지친 몸을 달래는 데’에 쉽게 나가거든요. ‘곁일 고양이’는 ‘일자리·돈’을 찾더라도 ‘하루(시간)’를 넉넉히 누리고 싶습니다. ‘오늘’을 누려야 삶이 즐겁거든요.


#ユキポンのお仕事 #東和広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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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828


《천하무적 홍대리 2》

 홍윤표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2000.1.15.



  일이란 누구나 어디에서나 합니다. 우리말 ‘일’은 ‘일다’라는 낱말을 이루는 바탕입니다. 가만히 있을 적에는 아직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나, 문득 움직일 적에 비로소 무엇이 나타나고, 이렇게 나타나기에 ‘일’이라 하는데, ‘움직이다’라는 우리말에서 ‘움’은 ‘움트다’에서 가리키는 ‘움’이에요. 새롭게 나오려고 하는 작은 숨결인 ‘움’이기에, “새롭게 나오는·움이 트려고 하는” 결이나 모습이 ‘움직이다’이고, ‘일·일다’도 처음으로 이루면서 나타나는 모든 모습이며 몸짓을 그려요. 이런 말결을 하나하나 짚노라면 ‘일하다’라는 오랜 낱말은 ‘돈벌이(돈을 벌기)’로만 좁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남이 시킬 적에는 ‘심부름’일 뿐이요, 스스로 일으키거나 일어나도록 마음이며 뜻이며 힘을 들이기에 ‘일·일하다’라 할 만해요. 《천하무적 홍대리》는 1998년에 처음 나오고, 2000년에 뒷이야기가 나오며, 다섯째까지 나오다가 멈춥니다. 수수한 일꾼(회사원)이 수수한 일터(회사)에서 보내는 하루를 수수하게 그리는 수수한 이야기는 적잖이 눈길을 끌었고, 연속극에서 줄거리를 훔쳐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님이 일터를 그만두고 “만화만 그리면서 프랑스로 그림을 배우러 다녀오”는 동안, 오히려 이야기는 빛을 바랬습니다. ‘수수한 이야기’는 멋진 붓끝이 아닌 ‘수수한 오늘’을 스스로 일꾼(회사원)으로 살아갈 적에 저절로 샘솟기 때문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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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공부의 시대
강만길 / 창비 / 2016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우리말숲 / 글다듬기 2023.8.5.

다듬읽기 22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강만길

 창비

 2016.7.15.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강만길, 창비, 2016)를 읽었습니다. 강만길 님도 일본 한자말을 꽤 쓰지만, 다른 글바치에 대면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습니다. ‘훈민정음·한글’이 얽힌 뿌리를 살피기도 한 분이기에 어느 만큼 쉽게 풀어서 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대목까지 엿보기는 어렵습니다. ‘발자취’를 다루는 ‘길’이기에 옛길을 살피며 오늘길하고 앞길을 돌아보게 마련인데, ‘발걸음’을 ‘새길’로 내딛으려면 ‘말길·글길’도 ‘새말·새빛’으로 나아가도록 가다듬을 적에 한결 밝으면서 숨길을 열 만합니다. ‘앞으로 태어나서 자랄 어린이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씨’로 우리 삶길이며 살림살이를 짚고 다룰 수 있다면, 우리 앞날은 틀림없이 다를 만하리라 봅니다. 일본말씨하고 일본 한자말을 걷어내는 손길 하나도, 조그맣게 거듭나면서 피어나려고 하는 몸짓입니다. 글도 책도 모르던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가 쉬운 말씨에 깃들었거든요.


ㅅㄴㄹ


살아온 세상을 되돌아보는 자서전 같은 것을 내어놓은 지

→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보는 삶글을 내어놓은 지

→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삶적이를 내어놓은 지

5쪽


남의 나라 역사만 배울 때는 몰랐는데

→ 다른나라 발자취만 배울 때는 몰랐는데

→ 이웃나라 발자국만 배울 때는 몰랐는데

18쪽


특출나게 했다가는 감옥 가기 마련이었겠지요

→ 남달리 했다가는 사슬터 가게 마련이었겠지요

20쪽


그렇게 자본주의 맹아가 생성되고 발달했는데

→ 그렇게 돈바라기가 싹트고 발돋움했는데

→ 그렇게 돈판이 움트고 거듭났는데

35쪽


비록 개항은 되었다 해도

→ 비록 나루맞이였다 해도

→ 비록 나루를 열었어도

36쪽


더이상 해방구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더는 너른터일 수 없는 흐름입니다

→ 더는 한마당일 수 없는 나날입니다

58쪽


우리 땅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이해가 맞아야 하는데

→ 우리 땅을 둘러싼 힘센나라 길미가 맞아야 하는데

→ 우리 땅을 둘러싼 꼭두나라 밥그릇이 맞아야 하는데

84쪽


민족의 독립을 이루려는 진보적 노선에 선 사람 모두를 기어이 좌우익으로 나누어 따져 본다면

→ 겨레가 홀로서도록 앞장선 사람 모두를 끝내 왼오른으로 나누어 따져 본다면

1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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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2023.8.5.

말꽃삶 14 이해, 발달장애, 부모, 폭력



  요즈음 푸름이가 ‘저미다’라는 낱말을 모른다고 어느 이웃님이 푸념을 하시기에, ‘슬라이스’라는 영어가 퍼졌기 때문이 아니라 푸름이 스스로 부엌살림을 안 하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부엌일을 하고 부엌살림을 익히면서 손수 밥살림을 헤아리는 나날이라면 ‘저미다’뿐 아니라 ‘다지다·빻다’가 어느 자리에서 쓰는 낱말인지 알게 마련이고, “가루가 곱다”처럼 쓰는 줄 알 만하고, “가늘게 썰다”처럼 써야 알맞은 줄 알 테지요.


  말은 늘 살림살이에서 비롯합니다. 살림살이란, 삶을 누리거나 가꾸려고 펴는 손길이 깃든 길입니다. 스스로 하루를 지으면서 누리거나 다루거나 펴는 살림·살림살이인 터라,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어버이나 어른 곁에서 함께 살림을 맡거나 소꿉놀이를 해보면서 말길을 열어요. 살림이 없이는 말이 없습니다. 살림을 짓고 나누고 익히고 펴는 사이에 저절로 말길을 뻗습니다.


  ‘고약하다’라는 오랜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은 으레 어른이 씁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쓸 일은 드뭅니다.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 사람을 가볍게 나무랄 적에 ‘고약하다’라는 낱말을 써요. “네가 떼를 쓰는 짓이 고약하단다”처럼 쓰는 말입니다. “철없이 함부로 꽃을 꺾거나 잠자리랑 나비를 괴롭히니까 고약하지”처럼 써요.


  또래나 동무나 동생을 들볶거나 때리거나 놀리는 짓도 ‘고약합’니다. 그래서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철든 어버이’나 ‘어진 어른’이 이따금 나무라면서 가볍게 들려주는 말씨인 ‘고약하다’를 들으면서 매무새를 다스려요.


 고약하다 곱다


  고약하지 않은 매무새란, 고운 매무새입니다. 곱지 않은 매무새란, 고약한 매무새예요. 찬찬히 철이 드는 길에 곱게 피어납니다. 철딱서니가 없이 굴기에 아직 고약합니다. 고약한 채 뒹굴면 그만 ‘고얀놈’ 소리를 듣는데, ‘고얀놈’이란 ‘고린(고리다·구리다)’ 틀에 사로잡힌 몸짓입니다.


  고약한 버릇에 고이기에 고립니다(구립니다). 고이지 않고 고르게 흐를 줄 알아야 ‘곱’지요.


  그렇다고 ‘고분고분’ 따라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철을 가릴 줄 알 적에 비로소 곱게 눈뜨면서 고요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요. 곱게 고요히 피어나는 숨결이기에 철이 드는 어른으로 서고, 철을 제대로 살피거나 가누거나 다스리면서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오늘 하루를 누리고 나눕니다.


 느리다 느림보 느림꽃


  늦게 피는 꽃이 있습니다. 일찍 피는 꽃이 있어요. 곰곰이 보면 ‘늦꽃·이른꽃’이라기보다 ‘다 다른 꽃’입니다. 꽃은 그저 꽃이에요. 저마다 알맞게 피어날 철을 헤아려서 즐겁게 눈을 뜰 뿐입니다.


  둘레(사회)에서는 으레 ‘발달장애’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더군요. 왜 어린이한테 ‘발달장애(또는 발달지연)’란 이름을 씌워야 할까요? 왜 어린이를 이런 눈으로 가두려 하나요? 다 다른 아이는 다 다르게 자랍니다. 아홉 살까지 엄마젖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열 살까지 이불에 오줌을 쌀 수 있습니다. 그저 그럴 뿐입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동무나 동생을 때린다면, 자꾸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른다면, 이런 철없는 버릇을 따끔하게 나무라거나 부드러이 타이를 줄 알아야 어버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안 본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본 짓’을 따라합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동무나 동생을 때리지 않아요. ‘때리는 몸짓이나 손짓’을 어디에선가 봤으니 따라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막말(욕)을 생각해 내어 쓰지 않습니다. 둘레에서 막말을 일삼으니까 잘 듣고서 따라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철없이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짓’을 본다면,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곧바로 다잡아야지요. 똑같은 말을 숱하게 되풀이하면서 차근차근 알려줄 노릇입니다. 무엇보다도 ‘잘못을 잘못이라고 알려주는 일’ 못지않게 ‘참하고 곱고 착한 몸짓하고 매무새’란 무엇인가를 어버이하고 어른이 먼저 보여줄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막말을 따라한다고 나무랄 수 있되, 우리 스스로 먼저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나 막말을 불쑥 내뱉지 않았는지 뉘우칠 노릇입니다. 또한 아이들한테 보여준 그림(영상과 영화)에 주먹질(폭력)하고 막말(욕)이 쉽게 흐르는데 그냥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는가 하고 뉘우쳐야지요.


  언뜻 보자면 ‘발달장애 = 느리다(느림보)’일 텐데, 이제는 눈길을 바꿀 만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느림꽃’으로 마주할 수 있어요. 어느 아이는 삼월꽃처럼 일찍 피어나고, 어느 아이는 칠월꽃처럼 느긋이 피어납니다. 모든 꽃이 굳이 삼월에 피어야 하지 않습니다. 칠월뿐 아니라 팔월에 피어도 되어요.


  우리가 먹는 쌀밥은 벼가 맺은 열매인 낟알입니다. 낟알을 얻으려면 나락꽃(벼꽃)이 펴야 하는데, 나락꽃은 팔월 한복판에 이르러야 맺습니다. 가만 보면 나락꽃은 ‘느림꽃(늦꽃)’일 테지만, 그저 ‘나락꽃’이라고만 이름을 붙여요.


 생각꽃 마음꽃


  아이를 낳았기에 ‘어버이(부모)’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즐겁고 착하고 참하면서 아름답게 물려받을 매무새에 살림을 가꾸는 사람일 때라야 비로소 ‘어버이’입니다. 밥을 차려 주기에 어버이일 수 없어요. 옷을 갈아입히거나 일하여 돈을 벌기에 어버이라 하지 않습니다. ‘어른’도 매한가지예요. 나이만 먹고 몸집이 크기에 어른일 수 없습니다. ‘어진’ 사람이기에 어버이에 어른입니다. 어진 사람으로서 사랑을 아름답게 펴기에 어른이요, 이런 어른이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보금자리를 푸르게 가꾸면서 풀꽃나무를 고르게 품을 줄 알아서 어버이라고 여깁니다.


  아이들이 철마다 다르고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라면, 어른들은 철을 익히고 읽으면서 스스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어른이나 어버이란 이름이 어울리려면 ‘생각꽃’을 피워서 ‘생각씨앗’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물려줄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어른하고 어버이 곁에서 ‘생각씨앗’을 물려받아서 새삼스레 가꾸고 돌보아 마음밭을 일구고 마음씨를 다스리기에 마음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마음씨 = 마음씨앗’입니다. ‘솜씨(손씨) = 손으로 짓는 씨앗’입니다. ‘말씨 = 말로 나누고 짓고 펴는 씨앗’입니다.


  잘 헤아릴 노릇입니다. 어른이란, 먼저 핀 꽃입니다. 어린이란, 나중 피는 꽃입니다. 어버이란, 앞장서서 피는 봄꽃입니다. 아이들이란, 느긋하게 함께 걸어가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놀이하면서 즐거운 여름꽃에 가을꽃입니다.


 알다 읽다


  ‘이해(理解)’를 하려고 애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자말이기 때문에 안 쓸 ‘이해’가 아닙니다. 우리말 ‘알다’하고 ‘읽다’를 헤아리면서 스스로 철이 들고 어른스러울 줄 알 노릇이라고 봅니다. ‘알’에서 깨어나듯 눈뜨는 길이 ‘알다’입니다. 알차게 나아가려는 ‘알다’입니다. 물결이 일듯 온누리 ‘일’을 ‘익히’면서 차곡차곡 받아들이려고 하는 ‘읽다’입니다. 눈으로 슥 훑는대서 ‘읽다’이지 않아요. “일을 익히려는 길”인 ‘읽다’입니다.


  자,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어른입니까? 우리는 어진 넋입니까? 우리는 어버이입니까? 우리는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서 숲을 품는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지을 줄 아는 얼입니까? 우리는 말 한 마디에 마음마다 피어날 꽃씨를 심으면서 생각을 반짝반짝 일으킬 줄 압니까?


  아이가 둘레를 슬기로우면서 즐겁게 읽고서 스스로 꽃으로 피어나는 길을 앞장서서 보여줄 적에 어른이요 어버이입니다. 아이가 물려받거나 배울 만한 삶이나 살림이 없다면 어른도 어버이도 아닌, 그저 주먹질(폭력·아동학대)입니다. 주먹질이란, 주먹으로 때리는 짓이기도 하지만, 삶·살림·사랑을 못 보여주거나 안 가르치는 바보짓도 가리킵니다. 어린이한테 숲빛으로 사랑을 물려주지 않는 굴레살이도 ‘주먹질(아동학대·폭력)인 줄 깨달을 수 있으면, 우리나라는 아름답게 거듭날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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