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3.8.23.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백승우와 네 사람, 시금치, 2013.9.5.



두바퀴로 천등산을 넘는다. 시골에서도 숲길을 걷거나 달리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에는 숲길이 없다시피 하기에 걷거나 달리기 어렵다. 들숲바다를 곁에 두어도 미닫이(창문)를 꽁꽁 틀어막으면 덧없다. 먼발치 풀꽃나무를 찾아다니기만 할 적에는 보금자리가 사납다. 시골은 스스로 풀빛을 등지고, 서울은 스스로 죽음터에 갇히는 얼거리이다. 오늘은 포두중학교 1학년 푸른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꽃 열여섯 꼭지를 적어서 건넨다. 스스로 노래(시)를 쓰는 일도, 노래를 배우는 일도 없구나. ‘진로·직업’하고 ‘특기·적성’에 따라 ‘돈벌이’만 찾아 주어야 할까? 마음이 홀쭉하거나 가난한 채 몸뚱이만 자라면 어떤 삶일까?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를 읽었다. 잘 쓴 글을 담았는데, 우리는 ‘관행농’도 ‘유기농’도 할 까닭이 없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짓기’를 할 노릇이다. ‘만들기’는 멈출 일이다. 살림짓기란, ‘밥살림·옷살림·집살림’뿐 아니라 ‘마음살림·마을살림·서로살림’이고, ‘사랑짓기’로 흐른다. ‘만들기’는 때려세우고 올려세울 뿐이며, 똑같은 틀로 짜맞춘다. ‘지음이’는 풀죽임물(농약)을 안 쓰고, 안 꾸민다. ‘만들기’는 스스로 죽이고 서로서로 치고받으면서 겨룬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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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8.23. 고개넘이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고개를 넘어 옆마을 푸른배움터(중학교)로 갑니다. 함께 우리말꽃을 폅니다. 일찍 가서 노래꽃(동시)을 옮겨적습니다. 이 아이들한테 노래꽃을 한 자락씩 줄 생각입니다. 시골 푸름이가 ‘노래빛(시 선물)’을 하나씩 받아서 마음에 사랑씨앗에 숲빛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얼른 두바퀴를 천천히 달려서 천등산을 가뿐히 넘어야지요.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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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말꽃삶 16 묻다



  우리말 ‘묻다’는 세 가지입니다. ‘파묻는’ 길이 하나요, ‘물어보는’ 길이 둘이요, ‘물드는’ 길이 셋입니다. 소리는 같되 쓰임새나 뜻이 사뭇 다른 세 가지 ‘묻다’입니다.


  글은 말을 옮긴 그림입니다. 한글을 으레 ‘소리글(표음문자)’로 여기지만, ‘묻다’를 비롯한 숱한 우리말을 하나하나 짚노라면, 한글은 ‘소리글 + 뜻글’인 ‘뜻소리글(표의표음문자)’이라 해야 걸맞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소리만 담는 글”이 아닌 “뜻을 함께 담는 글”입니다.


  우리말 ‘묻다’를 알맞게 쓰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말 ‘묻다’를 도무지 안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삶을 가꾸고 살림을 돌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수수한 사람들은 글을 모르거나 책을 안 읽되, 말을 말다이 여미어요. 글을 알거나 쓸 뿐 아니라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은 삶·살림·사랑하고 등진 채 ‘묻다’가 아닌 ‘중국스럽거나 일본스러운 한자말’하고 영어를 붙잡곤 합니다.


묻다 1 ← 매장(埋葬), 사장(死藏), 은닉, 은폐, 호도, 매립, 매몰, 장사(葬事), 장례, 장례식, 초상(初喪), 상(喪), 삽목


묻다 2(물어보다) ← 질문, 문의, 문제(문제점·문제적), 설문(設問/설문조사), 질의, 질문대답, 질의응답, 큐앤에이(Q&A), 상의(相議), 상담, 요구(요구사항), 요청, 간청, 권유, 대답 요구, 책임 요구, 전갈, 부탁, 청탁, 청구, 청원, 타진, 섭외, 장소섭외, 주문(注文/주문사항), 제언, 제시(제안), 제의(提議), 오퍼(offer), 제기, 제창(提唱), 문제 제기, 의뢰, 의심(의심스럽다·의심쩍다), 인터뷰, 조사(調査), 사찰(査察), 연구, 탐문, 탐색, 탐사, 신문(訊問), 심문, 허락, 신청, 고문(顧問), 시험(試驗), 시험문제, 취조, 발본색원, 수소문, 안부(安否), 문안(問安), 청취조사, 사정청취(事情聽取), 연락, 자문(諮問), 자문(自問), 구애(求愛/구애자), 구혼(구혼자), 청혼(청혼자), 프로포즈(프러포즈),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실례(失禮)합니다


묻다 3 ← 흔적이 남다


  우리말은 ‘묻다’ 하나가 아니기에 ‘파묻다’나 ‘끝장내다’나 ‘보내다’나 ‘감추다’나 ‘숨기다’를 쓰기도 합니다. ‘여쭈다·여쭙다’나 ‘알아보다·알리다’나 ‘캐다·캐묻다’나 ‘좇다·짚다’나 ‘찾다·찾아보다’나 ‘시키다’를 쓰기도 해요. ‘물들다’나 ‘붙다·들러붙다’나 ‘남다’를 쓰기도 하고요.


  미국사람은 ‘화이트 하우스’처럼 수수하게 말할 뿐인데, 막상 우리나라는 ‘하얀집·흰집’이 아닌 ‘백악관’으로 옮깁니다. ‘하우스’하고 ‘화이트’처럼 쉬운 영어를 쓴 미국인데, 우리나라 글바치는 ‘집’하고 ‘하얗다·희다’처럼 쉬운 우리말을 안 씁니다.


  기와가 푸른빛이라면 ‘푸른기와집’이나 ‘푸른지붕집’이나 ‘푸른집’입니다만, 이 나라 글바치는 애써 ‘청와대’처럼 이름을 붙였어요. 우리말로 쉽게 쓰면 멋도 안 나고 높지도 않다고 여기는 마음 탓입니다. 영어나 한자말을 붙여야 멋스럽거나 높다고 여깁니다.


하얀집 ← 백악관

푸른집 ← 청와대


  갖추거나 차려서 입는 옷이니 ‘갖춤옷’이나 ‘차림옷’이지만, 굳이 ‘양복’이란 한자말을 쓰는 우리나라예요. ‘수레’를 가리키는 ‘카(car)’를 그냥 쓰는 미국이요 영어인데, 우리는 ‘수레’를 새롭게 살리는 길을 아예 생각조차 안 합니다. 다만, 아이들이 ‘자동차’를 못 알아들으니 할매할배는 ‘부릉부릉’이나 ‘부릉이’처럼 소리를 흉내낸 이름을 쓰지요.


  이때에 생각해 볼 만합니다. 할매할배가 아이한테 “자, 우리 부릉이 타러 가자.” 하고 말한 지 무척 오래되었는데, ‘부릉이’를 ‘자동차·차·자가용’을 풀어낸 즐겁고 새로우며 쉬운 우리말로 언제쯤 삼을 수 있을까요?


  영어 ‘트레인’은 뜻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한자말 ‘기차’도 뜻이 대단하지 않아요. 할매할배는 아이한테 “오늘은 칙폭이 타러 갈까?” 하고 말합니다만, 이 ‘칙폭이’를 언제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삼으려나요?


부릉이 ← 자동차

칙폭이 ← 기차


  생각하는 사람은 눈망울이 반짝반짝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힘(권위)을 내세우려 하고, 눈망울이 죽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삶·살림·사랑을 짓기에, 말도 스스로 지으니,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여 지은 말을 ‘사투리’라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힘을 내세우고 멋을 앞세우려 들더군요. 지난날에는 중국을 섬기거나 따르거나 우러르면서 중국말이며 한문이어야 한다고 여겨요. 이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니 스스로 말을 지을 줄 모르고, 글조차 스스로 안 짓습니다. 중국을 섬긴 이들은 중국글을 흉내내었을 뿐입니다.


  일본이 총칼로 치고들어와서 거의 마흔 해를 억누르다 보니, 이동안 이 나라 글바치는 거의 다 일본물이 들었어요. 일본말을 아주 잘 쓸 뿐 아니라, 일본글을 숱하게 써냈지요. 이들 글바치는 일본이 물러간 뒤에 “마흔 해나 써서 익숙하다면 일본 한자말도 우리말로 삼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희승이 엮은 《콘사이스 국어사전》은 일본 낱말책 이름인 ‘콘사이스’까지 베꼈는데요, 이만큼 속속들이 썩었어요. 일본 한자말을 섬긴 이들도 스스로 새말을 지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저 그들 스스로 익숙한 일본 한자말을 외워서 흉내내었을 뿐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늘 물어봅니다. 낡은 마음은 파묻으면 어떻겠어요? 낡은 마음을 파묻어야 겨울을 지나 새흙이 되어 새싹이 돋는 밑거름이 됩니다. 낡은 한자말로 쓴 흉내낸 글은 이제 떠나보내면 어떻겠어요? 낡은 말씨로는 새나라도 새마을도 새마음도 새길도 새글도 새넋도 새살림도 새터도 새빛도 새꿈도 못 그리게 마련입니다.


  이제는 사투리를 쓸 때입니다. 스스로 지은 새말인 사투리를 저마다 즐겁게 쓰면서 어깨동무할 때입니다. 어린이 눈높이로 바라보고 헤아리면서 말빛을 북돋울 때입니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묻지 않더군요. 묻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고이고 갇힌 채 흉내쟁이에 머물 뿐 아니라,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더군요. 묻지 않아 스스로 고이거나 갇힌 이들은 어린이를 바라보지 않고, 푸름이를 마주하지 않기도 해요. 나이가 들어 늙은 티를 낼 뿐, 스스로도 아기로 태어나 어린이로 살며 푸름이로 자란 삶길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풀꽃·풀꽃나무 ← 화초(花草), 무명초(無名草), 백화(百花), 백화초목(百花草木), 초목, 목초, 화훼, 화훼식물, 식물, 녹색식물, 자연(자연환경·자연조건), 대자연, 천지자연, 산야, 산천, 산하(山河), 산수(山水), 산천초목, 백성(백인百人), 백정, 민중(민초), 양민, 중생(衆生), 인민, 서민, 시민, 소시민, 불가촉(불가촉천민), 천민(賤民), 프티부르주아, 대중(대중적), 도민(道民), 만백성, 만인, 국민, -자(者), -인(人), -민(民), 잡상인, 잡스럽다(잡놈雜-·잡배雜輩·잡물雜物·잡다雜多·잡동사니雜同散異·잡종·잡학), 잡초(잡풀), 잡화(雜花/잡꽃), 무명화(無名花), 방초(芳草), 야생초, 허브, 약초, 약풀, 초야(草野), 생화(生花)


  풀꽃나무를 보기를 바라요. 산천초목도 식물도 백화초목도 떠나보내요. 백성도 시민도 서민도 인민도 민중도 국민도 대중도 아닌, 풀꽃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언제까지 잡초나 야생초처럼 낡은 말씨에 사로잡히려는지요?


  쉬운 말이기에 사랑이요 어깨동무(평화·평등)입니다. 안 쉬운 말이기에 미움이요 싸움이여 겨룸이며 다툼입니다. 쉬운 말이기에 어린이 마음을 읽고 나누면서 아끼고 돌봅니다. 안 쉬운 말이기에 어린이를 다그치고 나무라고 가르치고 길들이려 합니다.


  어린이는 부릉이를 안 몹니다. 어린이는 걸어다니다가 뛰고 달립니다. 숱한 어른들은 어린이 곁에서 걷지 않더군요. 어린이를 부릉이에 태울 마음은 있어도, 부릉이를 내다버리고서 어린이랑 손을 잡고서 걷고 뛰고 달릴 마음은 좀처럼 못 봅니다.


  둘레를 봐요. 안 걸어다니는 사람이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는 길(정책)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린이하고 손을 잡고서 느긋이 걷다가 놀다가 쉬다가 하늘바라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배움수렁(입시지옥)을 걷어낼 생각을 할까요?


  참말로 스스로 물어볼 때입니다. ‘질문’ 따위는 집어치울 때입니다. 묻고 묻고 묻으면서 스스로 꽃으로 하늘빛으로 바람으로 거듭날 오늘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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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김구연 (2023.7.21.)

― 인천 〈아벨서점〉



  인천도 서울도 온나라 고을마다 담그림(벽화)이 볼썽사납습니다. 이 나라는 담그림을 아름답게 빚거나 담아내지 못 합니다. 옛날 임금집 둘레에 ‘꽃담’을 쌓던 꽃스러운 손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꽃담은 오백 해를 흘러도 꽃담입니다. 그러나 온나라 담그림은 백 해는커녕 열 해조차 못 버틸 뿐 아니라, 처음부터 마을빛을 깔보거나 골목빛을 얕보면서 마구마구 돈으로 처바르는 붓질입니다.


  골목사람이 담벼락에 작대기 하나를 줄에 받쳐서 옷걸이에 빨래를 꿰어 볕바라기로 말리려고 내놓는 손길이 담그림입니다. 골목사람이 귀퉁이나 빈터에 꽃그릇 하나 놓고서 숲이나 멧골에서 퍼온 흙을 담아서 씨앗 한 톨 묻고서 기르는 남새가 푸르게 밝히는 숨결이 담그림입니다. 해가 하루를 나아가면서 드리우는 빛줄기랑 그림자가 담그림입니다.


  뿌리를 알 길조차 없는, 더구나 누리판(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쁘장하다’거나 ‘멋지다’는 그림이나 무늬를 얼렁뚱땅 옮겨서 그린대서 담그림일 수 없어요. 그러나 숱한 ‘문화예술가’에다가 ‘공무원’이 손을 잡고서 ‘골목하고 마을을 볼썽사납게 망가뜨리는 벽화사업’을 자꾸자꾸 벌입니다.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에서 뻗어나가는 딱한 담그림을 보다가, 얼마 앞서 이슬로 떠난 김구연 님을 떠올립니다. 송월동 골목집에서 달개비 파란꽃을 그윽히 사랑하며 지켜본 김구연 님은 들꽃빛을 담은 글자락을 남겼어요. 손에 힘이 다하여 더는 종이를 넘길 수 없는 날까지 꾸준히 책읽기를 품으면서 넋을 가꾸었어요.


  책을 읽어야 마을이나 골목을 알지 않습니다. 숱한 책을 두루 읽으면서 마음을 일구어야 인천을 속속들이 헤아리면서 담그림을 펼 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다리 책골목이라는 데에 깃들어 ‘문화예술’을 펴려 한다면, 사나흘에 하루쯤 책집마실을 하면서 책을 장만하고, 여러 책집지기님 삶자락에 오래오래 밴 책빛을 듣고 살펴보면서 ‘벼가 익듯’ 고개를 숙이면서 배울 노릇입니다.


  푸른씨(청소년)는 어른씨가 무엇을 보여주거나 얘기하거나 밝히려 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지켜봅니다. 푸른씨는 어른씨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거나 얘기하거나 밝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별처럼 빛나는 씨앗을 보여주거나 얘기하거나 밝히기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우리 나이가 이미 푸른씨 나이를 훌쩍 넘었더라도, 우리 마음은 누구나 푸르게 일렁입니다. 한해살이 풀꽃도 여러해살이 풀꽃도 해마다 해바람비를 새롭게 맞아들이면서 싱그럽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새롭게 책빛이며 골목빛이며 삶빛이며 사랑빛을 익힐 적에 비로소 사람빛을 펴리라 봅니다.


ㅅㄴㄹ


《文化 속의 數學》(김용운, 현암사, 1976.10.9.)

《獄中記·高原의 사랑》(루이제 린저/김문숙·홍경호 옮김, 범우사, 1975.9.25.첫/1982.8.10.3벌)

《그런 의미에서》(임후성, 문학과지성사, 1997.7.15.)

《학교는 오늘도 안녕하다》(배상환, 나남, 1988.3.5.첫/1989.1.5.5벌)

《두고 온 시》(고은, 창작과비평사, 2002.1.15.)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E.콘즈/한형조 옮김, 세계사, 1990.3.20.첫/1990.6.30.3벌)

《까치가 감나무에게 들려 준 동화들》(이동렬 글·이영원 그림, 늘푸른, 1991.11.30.첫/1992.11.20.2벌)

《실록연작시 지리산》(이기형, 아침, 1988.12.15.)

《베트남戰爭》(리영희, 두레, 1985.5.5.)

《일송정 푸른솔은》(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엮음, 삼민사, 1988.8.15.)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3》(지두 크리슈나무르티/안정효 옮김, 청하, 1982.11.20.첫/1991.1.25.2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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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우리가 사랑하는 (2023.7.21.)

― 인천 〈나비날다〉



  어릴 적에는 구월동에 사는 동무나 피붙이를 찾아가는 길에 걸었고, 집으로 돌아가며 걸었습니다. 신흥동하고 구월동은 먼 듯하면서도, 정작 걷고 보면 어느새 집에 닿는 길이었어요. 이웃마을을 느끼고, 옆마을을 새롭게 바라보는 걷기였습니다.


  구월동 한켠을 걸으면서 돌아봅니다. 1995년에 떠나서 2007년에 돌아온 인천에서 날마다 한나절 남짓 골목골목 걸었습니다. 1982∼1993년 사이에 걷던 골목을 다시 바라보았고, 이 골목마을을 엉터리로 찍어서 퀴퀴한 구닥다리처럼 보이도록 깎아내리는 찰칵쟁이(사진가)를 더는 보아줄 수 없어서, 인천내기로서 스스로 이 골목마을 온모습을 온빛으로 천천히 담자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든 그림으로든 빛꽃(사진)으로든 담으려면, 먼저 보고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볼 틈이 없이 휙휙 달리거나 스치면 못 느끼고 안 받아들여요. 골목사람은 서두르지 않아요. 골목밭에 묻은 씨앗 한 톨이 나무 한 그루로 자라기까지 느긋이 기다립니다. 골목빛은 ‘바쁜 서울내기’한테는 하나도 안 보일밖에 없습니다.


  온나라 벼슬아치(대통령부터 9급 공무원까지)가 으레 안 걷습니다. 안 걸어다니면서 이웃을 보거나 느낄 수 있을까요? 안 걸으면서 쓰는 글은 우리 삶을 얼마나 담거나 보이거나 밝힐까요? 이곳에서 저곳 사이를 휙휙 가로지르는 이들이 벌이는 ‘문화·인문·예술’에는 아무런 삶도 사랑도 살림도 없게 마련입니다.


  어느덧 주안동 안쪽 깊이 걷습니다. 어느새 잿더미(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나옵니다. 잿더미 옆길을 뙤약볕을 쬐며 걷다가 멈춥니다. 잿더미 곁에서는 걷고픈 마음이 사라집니다. 버스를 타고 배다리로 갑니다. 〈나비날다〉에 깃들어 숨을 돌립니다. 등짐을 내려놓고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곳, 우리가 사랑하는 님, 우리가 사랑하는 마을, 우리가 사랑하는 별, 우리가 사랑하는 글, 우리가 사랑하는 꽃이랑 숲이랑 나무랑 풀이랑 너랑 나는 무엇인가요?


  ‘사랑받다’라는 말이 있되, ‘사랑주다(사랑을 주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사랑짓다’하고 ‘사랑하다’뿐이거든요. ‘사랑짓다’라 할 적에는, 스스로 모든 눈길과 마음길과 삶길과 하루길과 손길과 발길(발걸음)을 사랑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일으킨다는 뜻이고, ‘사랑하다’라 할 적에는 스스로 둘레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한테나 사랑으로 마주한다는 뜻이에요. “사랑을 주다” 같은 말은, 곰곰이 보면 말이 안 되어요. 사랑은 줄 수 없고 ‘짓고’ ‘할’ 뿐이니까요. 사랑을 짓기에 ‘나눌’ 수는 있고, 스스로 길어올리며 지은 사랑이기에 둘레에서는 이 사랑빛을 문득 ‘나누어 받을(사랑받을)’ 수 있어요.


ㅅㄴㄹ


《후와후와 씨와 뜨개 모자》(히카쓰 도모미/고향옥 옮김, 길벗스쿨, 2018.10.31.)

《식물기》(호시노 도모유키/김석희 옮김, 그물코, 2023.5.30.)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이설야와 일곱 사람, 다인아트, 2023.5.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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