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 3 - 루나 코믹스
이와모토 나오 지음, 박소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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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8.17.

어울빛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 3》

 이와모토 나오

 박소현 옮김

 소미미디어

 2022.11.23.



  지난 2018년에 첫걸음이 한글판으로 나오고서 아주 띄엄띄엄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 3》(이와모토 나오/박소현 옮김, 소미미디어, 2022)까지 나왔으나, 뒷걸음을 언제 옮길는지 까마득합니다. 이미 2024년에 일본판은 아홉걸음까지 나왔거든요.


  널리 찾거나 바라는 손길이라면 바로바로 한글판이 나올 테지만, 영 안 찾거나 안 바라는구나 싶으면 안 옮기거나 더디 옮길 수 있습니다. ‘임금나라·싸울아비’라는 얼거리이지만, 막상 이 그림꽃에 나오는 싸울아비는 ‘싸움질’이 아닌 ‘살림길’을 바라는 매무새요 하루입니다. 칼을 휘둘러서 저놈을 무찌르려는 하루가 아닌, 칼부림이나 주먹질이 없이 서로 아름다이 만나고 사귀며 지내는 길을 바라거든요.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싸움연모를 잔뜩 갖추는 나라일수록 가난하고 굶주리고 힘듭니다. 임금과 우두머리는 늘 노닥거리고 흥청망청이어도, 여느사람은 쪼들리고 억눌리고 짓밟힐 뿐 아니라, 목소리조차 못 내지요. 세굴레(3S)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임금나라 얼거리를 읽어낼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임금과 우두머리에 벼슬아치하고 글바치는 사람들을 가난수렁에 몰아넣으면서도 세굴레(3S)를 앞세워서 눈귀를 다 막고 홀립니다.


  스스로 뛰놀거나 땀흘릴 너른터는 없되, 으리으리하게 지은 놀이터(운동장·경기장)에서 몇몇 ‘프로 운동선수’만 뛰면서 목돈을 거머쥐는 얼거리인 민낯입니다. 두런두런 모여서 이야기꽃을 지필 보금자리와 마을은 사라지고,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면 손쉽게 온갖 그림(영상·영화·유튜브)으로 꾀고 가두는 굴레입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살림꾼으로 즐겁고 아름다이 사랑을 펴는 길을 안 가르치고 안 말하고 안 다루는 나라요 배움터입니다. 순이돌이는 서로 다르기에 하나인 숨결로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갈 사람이지만, 사슬나라나 총칼나라에서는 순이랑 돌이가 서로 갈라치면서 싸우도록 불씨를 놓을 뿐입니다.


  그림꽃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는 앞선 《금의 나라 물의 나라》에서 선보인 ‘나라·사람·우리·꿈’을 키운 판이면서,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에서는 미처 못 다루거나 덜 다룬 ‘삶·살림·사랑·씨앗’을 깊게 다루려는 얼거리이고,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에서 슬쩍 다룬 ‘시골·숲·마을·함께’를 한결 새롭게 추스르는 줄거리입니다.


  얼이 없으면 얼뜨기라고 합니다. 얼이 있기에 얼찬이요 어른입니다. 얼을 가꾸고 빛낼 줄 알기에 어울리고 얼크러지며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른이 할 일과 맡을 몫이란 어울림·어깨동무·어버이예요.


  어린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 적에 아름다울는지 헤아리면서 이 나라 배움터를 갈아엎을 노릇입니다. 어른으로 선 사람은 어떤 얼과 넋으로 어린이 곁에 설 적에 사랑을 물려줄 만한지 생각하면서 마을과 나라와 집을 돌볼 노릇입니다.


  알고 보면,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모두 없어도 됩니다. ‘집’이 집답게 서면 배움터뿐 아니라 나라조차 부질없습니다. 모든 집이 손수짓기를 하면서 삶짓기와 사랑짓기를 하면,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노래짓기에 놀이짓기에 하루짓기를 할 테니, 문학조차 없어도 될 뿐 아니라,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 오늘 이야기를 글로 담아서 뒷사람한테 슬기롭게 이어줄 테지요.


  사랑으로 짓는 집과 마을과 나라에는 첫째나 막째가 없습니다. 사랑없는 굴레이기에 ‘1등·경쟁·승패·상금·자격증’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짓는 집에는 아무런 자격증·면허증이 없어요. 아기를 낳는 자격증이나 면허증이란 없습니다. 밥을 짓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소꿉놀이를 하는 자격증이나 면허증이란 없습니다. 아이한테 말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무슨무슨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그림책 한 자락을 읽히는 데까지 ‘테라피 자격증’을 앞세우는 이 나라는 그저 거꾸로 치닫는 수렁입니다. 스스로 짓지 않으니 허울스런 이름을 내세우고 말아요. 스스로 안 가꾸고 이웃하고 안 나누기에 자꾸만 ‘1등·자격·학력’이라는 쇠사슬을 높이 치면서 스스로 갇힙니다. 아름나라보다는 아름누리와 아름마을과 아름집을 바라는 일곱 아이는 일곱 빛깔로 온누리를 가꾸는 손길을 펴고 싶다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펴는 《마로니에 왕국의 7인의 기사》가 한글판으로 제때 나오면서 제대로 읽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사람들은 나를 방문자라고들 불러.” ‘방문자? 어디서 들었는데.’ “처음이야. 내 이름을 누가 물어본 건.” (14∼15쪽)


“‘그녀’는 내가 실패한 다람쥐를 구해서 이름을 붙여줬으니까, 분명히 내게도 이름을 주고 소중하게 아껴줄 거야.” (53쪽)


“휘로칸의 손녀여, 나나 저 녀석은 왕족의 적이 아니란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로로처럼 우리를 진심으로 믿지 않는 녀석이란다.” (56∼57쪽)


“시녀야, 난로 위에 장식되어 이던 내 망치 컬렉션은?” “싸우다 신랑의 머리를 박살내면 안 되니까 창고에 넣어놨어요. 자, 아기 배내옷도 완성이에요. 언제든 애기씨를 낳기만 하세요.” (88쪽)


“어때? 커다랗지? 생물의 나라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새가 있다고 해. 새를 좋아하는 사람 중엔 수다쟁이에 특이한 사람이 많은데, 너는 신기하게도 말이 없구나.” (118쪽)


“나는 이런 순간을 경험할 때 정말! 진심! 최고로 ‘신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빌어!” “겨우 그걸로?” “너는 안 그래?” (181쪽)


#岩本ナオ #マロニエ王国の七人の騎士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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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소년 - 상
이시키 마코토 지음, 나가사키 다카시 원작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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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8.16.

만화책시렁 668


《어둠의 소년 上》

 나가사키 다카시 글

 이시키 마코토 그림

 김서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4.30.



  이미 몸을 잃었으나 이승을 못 떠나는 넋이 있습니다. 애꿎게 죽었다고 여기면서 응어리를 풀고 싶은데, 몸이 없는 탓에 ‘몸있는 사람’은 못 알아보기 일쑤입니다. 이제 몸을 잃으면서 이승을 떠나는 넋이 있습니다. 애꿎게 죽었어도 기꺼이 응어리 없이 스르르 녹이고 풀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넋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둠의 소년 上》에는 애꿎게 죽은 나머지 응어리덩이가 된 아이가 넋으로 ‘몸입은 아이’ 곁에서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감추기에 잘잘못이 불거집니다. 환히 드러내면 잘잘못을 씻어냅니다. 어제 저지른 잘못을 오늘 새롭게 곱씹으면서 스스로 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숱하게 저지른 잘못을 꽁꽁 감추거나 덮거나 꾸미면서 겉속이 다른 응어리로 허덕일 수 있어요. 우리 둘레를 보면, 잘잘못을 숨기는 분이 무척 많아요. 날마다 새 하루일 테지만, 응어리진 몸마음으로는 날마다 새 굴레일 뿐입니다. ‘잘못’이란 스스로 눈물로 털고 씻기에 ‘잘’로 거듭나게 마련이에요. ‘말썽’도 스스로 뼈를 깎으면서 달래고 다스리기에 ‘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ㅅㄴㄹ


“뭐, 괴물임에는 틀림없지. 나는 한 번 죽어서, 지옥에서 괴물이 되었는데, 이승에 못다 한 일이라도 있는지, 어째선지 부활한 모양이야.” (30쪽)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야. 입을 다물고 있는 게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얘길 누구한테 하든, 미쳤다고밖에는 생각지 않을 거야. 어디 그뿐인가? 만약 어디선가 사신이라도 나오면, 당신이 차로 치고 파묻어버린 게 돼!” (177쪽)


+


《어둠의 소년 上》(나가사키 다카시·이시키 마코토/김서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


사실 난 망인(亡人)이거든

→ 그런데 난 죽었거든

25쪽


뭐, 괴물임에는 틀림없지

→ 뭐, 틀림업이 도깨비지

→ 뭐, 틀림업이 두억시니지

30쪽


그 토사 속에서도 살아났으니

→ 그 흙모래에서도 살아났으니秘傳

116쪽


결국은 비기를 쓰는 수밖에 없어

→ 끝내 숨은힘을 쓰는 수밖에 없어

→ 끝내 잠든힘을 쓰는 수밖에 없어

→ 끝내 속힘을 쓰는 수밖에 없어

146쪽


구해 주려 한 은인인 줄 알았네

→ 살려주려 한 꽃님인 줄 알았네

→ 살려주려 한 분인 줄 알았네

176쪽


그렇다면 무조건 함구하자

→ 그렇다면 아주 다물자

→ 그렇다면 그냥 입다물자

17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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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케이스 - 국가상징에 대한 한 연구
이해영 지음 / 삼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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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16.

인문책시렁 364


《안익태 케이스》

 이해영

 삼인

 2019.1.15.



  어느 한 사람을 훌륭하게 떠받들려고 하면 으레 곪더군요. 이를테면 박정희나 이승만을 추켜세우려고 할 적마다 고름이 물씬 배어나옵니다. 이들은 우두머리로 올라앉아서 사람들을 우려내고 윽박지르고 짓뭉개는 얼뜬 하루를 보냈어요. 우리 살림살이는 누가 이끌었기에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살림살이는 바로 스스로 일군 땀방울로 맺습니다. 때리고 쥐어짜고 떠밀면서 억지로 올린 돈값이란, 허울스러운 거품입니다. 이런 거품은 오래지 않아 스러져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까닭을 다들 쉽게 잊습니다. 풀죽임물도 비닐도 플라스틱도 죽음거름도 없이, 그저 스스로 돋고 시들고 돌고도는 숲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숨을 쉬면서 삶을 짓습니다. 숨을 안 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놈도 못난이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우두머리도 허수아비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서울내기도 시골내기도 숨을 쉬어야 하지요.


  돈을 잔뜩 벌더라도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엉뚱한 곳을 쳐다보면서 길을 잃거나 헤매는 굴레예요. 사람이 사람다운 까닭은, 우리가 먹고살 만한 바탕은, 이 나라가 버티는 밑동은, 바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입니다.


  《안익태 케이스》(이해영, 삼인, 2019)는 ‘안익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본앞잡이나 일본노리개나 일본허수아비로 실컷 노닥거린 뒤에 슬그머니 에스파냐로 달아나서 숨다가,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마치 예전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꺼풀을 씌워서 돈벼락을 맞고 싶던 딱하고 안쓰럽고 가엾고 안타까운 아재 한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 굴레였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여러모로 알차고 알뜰한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아주 크게 하나가 엇나갑니다. 일본앞잡이인 ‘에키타이 안’이었다는데, ‘에키타이 안’을 나무라는 글결이 온통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말씨가 아닌 일본말씨로 ‘에키타이 안’을 꾸짖고 타이르는 글이란, 이리 보건 저리 보건 똑같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못 쓸까요? 우리는 언제쯤 우리말을 배울 셈일까요? 일본노리개를 타이를 적에 일본말씨를 써야 할까요? 일본허수아비를 다그칠 적에 일본말씨밖에 할 말이 없을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가다듬거나 추스르기 어렵더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가다듬어서 바로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 낱말씩 다듬고, 한 달에 한 말씨씩 바로세우고, 한 해에 한 꾸러미씩 돌아볼 줄 알 때에, ‘에키타이 안’ 같은 부스러기쯤은 손쉽게 털어낼 만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면 보푸라기란 저절로 사라집니다.


ㅅㄴㄹ


전시의 만주국 고위 외교관이 안익태를 그저 ‘대성’시키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사저로 불러들여 먹이고 재우고 했다면 ‘내선일체’의 참으로 눈물겨운 미담이 아닌가. (43쪽)


에키타이 안은 에하라 고이치에게 그가 기대하는 대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그의 스페인 도주는 마찬가지 일제의 유럽 첩보망과의 연관에서 보자면 어쩌면 그 자체로 잘 준비되고 기획된 일일지도 모른다. (55쪽)


지금도 우리는 〈한국 환상곡〉 피날레에서 만주국의 선율을 부르고 또 듣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날 일본어로 불린 에하라의 합창 부분 텍스트는 이렇다. “1. 10년 세월 제국은 무르익었다. 부지런한 땀은 보답 받았네. 민중은 환호한다. 나라는 저 멀리 빛난다. 2.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되어 사람들은, 희망에 차 번성한다. 난蘭은 환히 피었고, 새 질서의 첫 열매가. 3. 우리는 일본과 굳건히 연결되었네. 이 신성한 목표 속에 하나의 심장과도 같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독일이여, 또한 이탈리아여, 힘을 냅시다. 4. 영원한 봄날은 이미 가까이 와 있네. 모든 족속 만족해할 그날이. 보라! 저 만주 평원 위에, 향기로운 난 환히 피었다.” (101쪽)


전쟁의 한복판 할우하루 고단한 삶을 견뎌야 했던 혹한 속의 비엔나 시민들이 에키타이 안의 일본어로 된 오족협화의 선율에 진정 위로를 받았을까. 그가 일본 건국 기념일에 〈만주국〉을 통해 비엔나 시민들을 위무하고 전의를 독려하던 그 시간대, 조선의 민중들은 나날이 일제의 탄압과 수탈, 그리고 강제징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109쪽)


스스로 만든 〈애국가〉를 ‘매국’의 도구로 재활용하다 그것을 다시 애국이라 주장하면서 그 중간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도단이라고 해야 할 게다. (131쪽)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 최남선은 해방 후 〈자열서〉라는 어정쩡한 반성문이라도 제출해야 했지만, 안익태에겐 그런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그냥 침묵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에키타이 안은 가만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익태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156쪽)


근 반세기가 지나 이제야 공개된 이승만에 대한 안익태의 청탁 리스트를 어떤 ‘예술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분별없는 마구잡이 청탁에 차라리 분별 있게 대응한 건 이승만이었지 않은가. 주미 대사관 자리 청탁에서 시작해 카네기홀 콘서트 주선, 본인이 주인공인 뮤지컬 영화 지원, 한미 문화 협회, 국제 음악제 그리고 미국 내 유명 연주 단체 협조 요청까지 꽤나 긴 이 청탁 리스트에서 그래도 이승만 하야 후 그나마 성사된 건 국제 음악제뿐이 아닌가 싶다. (165쪽)


+


저자 誌

→ 글쓴이

→ 지은이

7


특히 애국가, 혹은 국가國歌는 가장 고도한 음악적 정치 현상이나 행위 중 하나다

→ 그런데 나라사랑노래나 나라노래는 나라를 노래로 몹시 내세운다

15쪽


에키타이 안의 행적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의문부호가 달려 있다

→ 에키타이 안이 걸은 길은 아직 너무나 많이 물음꽃이 달린다

→ 에키타이 안은 그야말로 너무나 알쏭달쏭한 발자국이다

→ 에키타이 안이 무엇을 했는지는 늘 너무나 궁금하다

54쪽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 나치 독일에 대단한 떠벌쟁이로서 틀림없이 땀을 바쳤고

→ 나치 독일에 빛나는 알림꾼으로서 뚜렷하게 일을 했고

→ 나치 독일에 높직한 나불꾼으로서 똑똑히 품을 팔았고

55쪽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 이 값으로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숱한 돈을 빼먹은 대목은 아니라 하기 어렵다

→ 이 몫으로 오늘도 모두 알 수 없는 온갖 길미를 누렸으니 숨기기 어렵다

55쪽


그의 사저에서 기식하던 중이었다

→ 그이 홑채에서 묻어살았다

→ 그이 혼채에서 얹혀살았다

75쪽


비엔나 시민들이 에키타이 안의 일본어로 된 오족협화의 선율에 진정 위로를 받았을까

→ 비엔나사람이 에키타이 안이 일본말로 지은 한닷겨레 가락에 참말로 마음을 달랬을까

→ 비엔나사람이 에키타이 안이 일본말로 쓴 온닷겨레 노랫가락에 참말 마음을 녹였을까

109쪽


강제징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 나라 얘기라고 할 것인가

→ 종살이에 내몰렸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나라 얘기라고 할 텐가

→ 들볶이며 고달팠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나라 얘기라고 할 셈인가

109쪽


그 중간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도단이라고 해야 할 게다

→ 이 사이를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차라리 말장난이라고 해야 한다

→ 이 틈새를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차라리 바보라고 해야 한다

→ 이 사잇길을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131쪽


친일 부역의 형태와 경로도 처해 있는 구체적인 조건에 의해서 규정되기 마련이다

→ 일본따라지도 모습과 길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 일본앞잡이도 몸짓과 걸음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132쪽


여기에는 약간의 이설도 있다

→ 좀 딴얘기도 있다

→ 조금 엉뚱한 말도 있다

→ 퍽 엇갈리는 말도 있다

141쪽


안익태에겐 그런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디딤길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들머리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너울목조차 없었다

156쪽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 간의 ‘해리적解離的’(dissociative) 정체성 간격이 확장될수록 거대 서사, 과잉 서사의 편향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가 갈라질수록 더 외곬로 부풀리고 덧입히게 마련이다

→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가 엇갈릴수록 자꾸 기울면서 부풀리고 꾸미게 마련이다

1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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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가업 家業


 가업을 잇다 → 집일을 잇다

 가업은 주로 장자가 이어받았다 → 집안길은 으레 맏이가 이어받는다

 선대의 가업을 물려받은 셈이었지 → 앞어른 일꽃을 물려받은 셈이지


  ‘가업(家業)’은 “1. 대대로 물려받는 집안의 생업 ≒ 가직 2. 집 안에서 하는 직업 3. 한집안이 이룩한 재산이나 업적”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집일·집안일’이나 ‘집안길·집안내림·집안물림·집내림·집물림’으로 손봅니다. ‘내림일·물림일’이나 ‘일꽃·일길·일꽃길’로 손볼 만합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가업’을 둘 더 실으나 모두 털어냅니다. ㅅㄴㄹ



가업(街業) : 길거리에서 하는 영업

가업(稼業) : [광업] 광산 운영에서, 광물을 캐는 작업을 진행하는 일 = 가행



그럼에도 사에키의 가업을 잇겠다 하는 거라면

→ 그런데도 사에키 일꽃을 잇겠다고 한다면

→ 그렇지만 사에키 집안길을 잇겠다고 한다면

《나츠코의 술 12》(오제 아키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2) 191쪽


그래. 야구도 가업도, 모두 없어졌어

→ 그래. 공치기도 일길도, 모두 없어

→ 그래. 공치기도 집내림도, 모두 없어

《은수저 8》(아라카와 히로무/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3) 56쪽


본래는 아들인 내가 가업을 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 아들인 내가 집안일을 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 아들인 내가 물림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도쿄 셔터 걸 3》(켄이치 키리키/주원일 옮김, 미우, 2016) 156쪽


조금 더 오랜 시간 가업의 길을 걸어온

→ 조금 더 오래 집내림길을 걸어온

→ 조금 더 오래 집안길을 걸어온

《가업을 잇는 청년들》(백창화·장혜원·정은영, 남해의봄날, 2013) 242쪽


놀이터도 가업으로 이어서 하는 걸까

→ 놀이터도 집일로 이어서 하는가

→ 놀이터도 물림일로 하는가

→ 놀이터도 물려받아서 하는가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편해문, 소나무, 2019) 164쪽


제재소를 가업으로 이어가는 분

→ 나무집을 집일로 이어가는 분

→ 나무터를 일꽃으로 이어가는 분

《전라선》(김지연, 열화당, 2019)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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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제재 製材


 나무를 제재하면 고운 무늬가 생긴다 → 나무를 깎으면 무늬가 곱다

 나무를 제재하여 가구를 만든다 → 나무를 다뤄 세간을 짠다


  ‘제재(製材)’는 “베어 낸 나무로 재목(材木)을 만듦”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나무깎기·나무벼림·나무새김’이나 ‘나무손질’이라 하면 됩니다. ‘나무질·나무일’이라 할 만하고, ‘나무·나무붙이·밑나무’라 할 수 있어요. ‘깎다·다루다·짜다’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ㅅㄴㄹ



제재소를 가업으로 이어가는 분

→ 나무집을 집일로 이어가는 분

→ 나무터를 일꽃으로 이어가는 분

《전라선》(김지연, 열화당, 2019)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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